〈 121화 〉 1F 에필로그
* * *
"그러니까..."
"페이가 오면 알잖아."
"그, 그렇네."
끝까지 믿지 않는 센을 보며, 무표정하게 답한다.
그러자 미심쩍은 눈을 하면서도 북문으로 따라나오는 마도사.
잿빛 마도사가 성문 밖으로 나오자, 그 앞에 전이 마법진이 나타난다.
"전이!? 사천왕급인..."
"온다고 했잖아."
센이 당황하면서 캔슬하려고 하는 걸 막아낸다.
그곳에 나타난 건, 주교복을 입은 미남자와 날이 지나가면서 붉은빛으로 변해가는 머리칼의 마도사.
그녀의 머리 위에 나타난 검은 왕관을 보며, 센이 입술을 깨문다.
"파르시..."
"센... 그렇네, 루크 아저씨는 못 나올 테니까."
"네가...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
"..."
센의 눈동자에 분노가 차오른다.
그 손에 새겨지는 건, 메모라이징 된 마법.
대마법의 전조가 순식간에 하늘에 나타나자, 파르시는 그저 눈을 감는다.
"미안한데, 그건 안 되겠다. 센."
키이이잉! 파캉!
하늘로부터 떨어져 내리는 붉은 수룡을 페이가 회색 마력을 일으켜 가볍게 받아내고, 그대로 꿰뚫는다.
압도적인 스펙 차이.
그 모습을 본 센이 계속해서 마법을 시전하지만, 페이는 쓰게 웃으면서 공격을 전부 튕겨낼 뿐이었다.
"왜! 왜! 왜 방해하는데, 페이 오빠? 저 애가 전부 죽였어. 인간을 위해서 체력이 방전돼도 묵묵히 버티던, 그 사람들을 전부 죽였어.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죽었어. 퍼스트 마을의 여행자들이 전부 죽었어. 살아남은 건, 정말 강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래, 살아남은 건... 전투에도 나서지 못했던 나약한 사람들뿐이지."
"너, 그걸 알고...!"
"네 오빠는 내가 죽였어. 나도 알아. 마왕군이 죽였지만, 그건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
"...가족을 잃어본 입장에서 이해는 하지만, 미안하다. 파르시가 죽으면, 더 큰 손해가 일어나."
파르시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닌, 현실적인 이야기로 나선다.
그녀를 죽여선 안 되는 이유를 페이는 입에 담는다.
"파르시가 마왕이면, 인류는 다시 발전할 수 있어. 광증이 발생하는 건 내가 막을 수 있고, 마왕군은 확인해보니 총력전으로 거의 다 소멸당했더군."
"...무슨 소리가 하고 싶은 거야? 페이 오빠. 이건, 이건 그런 문제가...!"
툭.
페이가 센에게 다가가 뺨을 꼬집는다.
그녀가 아프다는 얼굴로 사납게 그를 노려보자, 주교는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담으면서 말했다.
"그런 문제다. 센. 너는 인류의 대표야. 감정으로 상황을 그르쳐선 안 돼."
"..."
으득.
센이 이를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로 한동안 마음을 정리하듯 가만히 있는 모습.
잠시 시간이 흐르고, 평소의 눈동자로 돌아온 센이 억눌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마왕군, 더는 만들 생각 없는 거야."
"유지하는 건, 사천왕까지다. 세레스랑 에리카가 있어서 그쪽은 포기할 수 없거든. 대신 마왕성 근처 영토 외에는 전부 인류에게 되돌려줄게. 그리고... 우리를 공격하거나 인류가 서로 반목하고 싸우지 않는 한, 공격하지 않을 거야."
"...그걸 어떻게 믿어."
"내 영혼을 걸고 루나에게 맹세하지."
그렇게 말하자, 그의 머리 위로 푸른 십자가가 떠오른다.
설마 영혼까지 걸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파르시.
얼굴을 찌푸린 그녀가 말했다.
"오빠 영혼 오빠 거만 있는 거 아니거든!? 멋대로 걸면 어떡해...!"
"봤지? 지금 내 영혼은 파르시 영혼도 같이 담보로 걸려 있어. 우리가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증표 정도는 될 거 같은데, 어때?"
"..."
센이 그걸 보며 침묵하더니, 몸을 휙 돌리며 마을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답하지 않는 그녀의 행동에 페이가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잿빛 마도사가 찌릿하고 뒤로 노려보면서 말했다.
"당장 죽어, 페이 오빠, 파르시. 난 전달만 할 거야."
"...그래, 그거면 됐지."
그녀의 말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페이.
대충 관계를 보니, 페이라는 사제한테도 가족애 같은 걸 느끼고 있던 거 같은데... 잘 모르겠다.
근데 저거 사제 맞아?
[사제...?]
[사제가 언제부터 격투가가 됐냐?]
[몽크에 가깝겠죠? 카운터 기술 자체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기술이네요.]
"고대로부터... 렌은 알고 있는 기술이구나."
[그 말에 진의가 궁금한데요, 마스터.]
"아무런 생각도 안 했어."
그냥 렌이 몇 살인지 궁금해졌을 뿐.
[마스터...]
"궁금할 순 있잖아."
[네, 그렇다고 해두죠.]
어쩐지 한숨 섞인 목소리를 내는 렌이었다.
"스노우."
"응."
"다시 한 번 고맙고... 너, 지금 뭔가 시련을 받고 있지 않냐?"
"...아마."
"그렇지? 그럼 이게 도움이 될 거야."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무언가를 던져온다.
마력으로 잡아채자 보이는 건, 새하얀 십자가 모형.
담겨있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할 때, 그가 입을 열었다.
"마력이 바닥날 때, 사용하고 싶다고 생각해봐. 네 마력이 어느 수준이든 기적을 한 번 일으켜줄 테니까."
"기적이 뭔데."
"그건 모르지? 마력이 다시 차오를 수도 있고, 상황을 타파해줄 수도 있고... 언제 쓰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루나랑 내 선물이니까."
"응."
"오빠야, 나는?"
"너한테 신성력 물건 주면 데미지만 입지 않아?"
"괜찮아! 타락시킬게!"
"답 없는 소리 말고."
서로 투닥이기 시작하는 두 사람을 보며, 한숨을 내쉬곤 마법 소녀 복에 십자가를 심는다.
중앙에 있는 분홍빛 보석에 십자가를 집어넣자, 연분홍에 가까운 색으로 변하는 모습.
투닥거리다 말고 그걸 보더니, 페이가 재밌다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거 다 마력으로 만든 거야?"
"응."
"그럼 너 지금 진짜 옷은 안 입고 있는 거네?"
"오빠야는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입었... 을걸."
마지막으로 옷을 입은 시점이 기억나지 않아 애매하게 답하자,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어쩐지 옷이 좀 변태스럽..."
퍼억!
내가 뚱한 표정으로 마력을 일으키기도 전에 파르시가 거대한 화염 주먹을 만들어 페이를 내리꽂는다.
당연하다는 것처럼 맞아주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아프다는 얼굴만 하는 모습.
...사람의 내구도가 아니다.
"야, 화염 주먹으로 사람 치면 죽거든?"
"안 죽잖아!"
"내가 막 부활해서 얼마나 연약한데... 오빠는 실망했다?"
"엄살은...!"
"만담은 됐으니까, 슬슬 가도 될까."
"아, 미안. 그게 전부야. 우리도 이만 갈게."
내 말에 그렇게 답하곤 다시 전이 마법진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
내가 그대로 날아오르려는 순간, 성문에서 급하게 뛰쳐나온 누군가를 마주한다.
"...루크."
"헥헥... 빨리도...헥... 가네. 회의 끝나서... 헉... 급하게... 뛰어나왔는데..."
"물 마실래."
"고마워... 아가씨."
내가 물의 마력을 일으켜 식수를 만들어내자, 급하게 꿀꺽꿀꺽 하고 삼킨 루크가 후우. 하면서 성벽에 기댄다.
...뛰어와도 못 잡는 거, 알고 있었을 텐데.
미래시를 가진 사람이 몰랐을 리가 없다.
"고맙다."
"..."
"파르시에게 해피 엔딩을 보여줘서 고맙다."
"...할 일을 했을 뿐이야."
"그래, 그런가... 그럼 나도 의뢰에 대한 답례는 해야겠지?"
그렇게 말한 루크의 눈이 순간 푸른 마력으로 빛났다가 꺼진다.
이상한 걸 봤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는 루크.
잠시 후, 턱을 쓰다듬은 그가 입을 열었다.
"여기랑 완전 다른 환경이구만. 아가씨 세곈가?"
"우리 세계."
"아니, 뭐... 됐다. 이상한 돌이 가득한 장소에서 특이한 집이 보였거든.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싸우는 것도."
"똑같이 생긴 사람입니까?"
"오우, 깜짝 놀랬네. 그래, 똑같이 생긴 사람. 성격은 다른 모양이군. 쌍둥인가? 비슷한 마법으로 싸우고 있었어. 크리에이트 계열인가? 뭔가 이것저것 무기가 잔뜩 꺼내지더군."
크리에이트 계열.
...유린이랑 같은 능력일까.
"이게 어느 시점인지, 어떤 상황인진 아저씨도 몰라. 내가 본 건, 영웅 아가씨, 아가씨가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미래다. 시점은... 여길 떠나고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을 때고."
"응."
다음 시대 정보는 현대 라는 이야기로 보인다.
현대에서 세계 멸망이라... 에일리언이라도 쳐들어오는 걸까?
...아, 이미 내가 있던 세계도 아포칼립스구나?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걸 말해줄 수 있겠군."
"응."
"눈에 보이는 사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제대로 된 안목으로 바라봐라."
"제대로 된 안목..."
"뭐, 분신술이라도 쓰나 보지. 예지로 알려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그렇게 말하는 루크의 입가에 핏물이 한 줄기 떨어진다.
미래시로 본 광경을 조건 없이 알려서는 안 된다는 건가.
...관찰자는 피곤한 직종이구나.
"무리할 거 없습니다, 관찰자. 그대는 그대의 세계나 관측하시길."
"그래, 어쩌다보니 '저쪽' 관찰자랑 눈이 마주쳐버렸어. 내 실수다."
"...그 세계가 마스터의 세계와 비슷하다면, 이쪽에 관여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시길."
"그건 다행이구만. 아무튼, 이제 우리도 정보 취합 좀 해야 해. 잠깐 신전에서 쉬라고? 내일 당장 종전 축제라도 열 거니까."
"..."
"아가씨가 가기 전엔 해야 할 테니까 말이다."
"그렇구나."
이미 내가 가게 된다는 것 정도는 알아챈 모양이다.
그렇게 말하고 들어가는 그를 보며, 하늘을 날아오른다.
가는 곳은 당연히 신전의 방.
...유레하와 파이렌이 걱정하고 있을 장소였다.
"주인니임♥!"
"응."
"주인님♥ 주인님♥"
"...응. 간지러워."
내가 오자마자 들러붙어서 얼굴을 비비적대는 유레하를 빤히 바라보지만, 그녀는 떨어질 생각 없다는 얼굴로 딱 달라붙는다.
...이번엔 심지어 파이렌까지 팔을 붙잡고 놓지 않고 있다.
"스노우 님."
"응."
"걱정했어."
"응."
"무지무지 걱정했어."
"...응."
계속 반복하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다음 날.
눈을 비비며 신전을 나온 나에게 보이는 건, 이른 아침부터 활성화된 도시의 풍경이었다.
각종 점포와 가게가 활성화돼있고, 열린 창고에선 계속해서 술과 식량이 풀려 나온다.
가운데서 음식을 먹고 있는 건, 부상당했던 용사들과 센, 안톤, 루크.
상처가 아픈 걸 느끼면서도 벌컥벌컥 술을 마시고 있는 남자와 그걸 웃으면서 보는 미남자, 윈이 눈에 띈다.
"아, 왔구나."
"상처가 심하네."
"뭐, 그렇지. 신관이 탈진해서 한동안은 못 나을..."
"아쿠아 힐."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부상당한 남자들에게 회복 마법을 걸어준다.
그러자 놀란 눈으로 나를 보더니, 그대로 헤드락을 시도하는 근육질 남자.
그 손을 어깨에 있던 렌이 탁. 하고 튕겨내면서 말했다.
"무례하군요."
"엉? 아우, 요정족도 있었네. 미안미안~"
그 행동에 탕탕! 하고 내 등을 치고는 다시 술을 원샷하는 모습.
그 사이 내 앞에 은근슬쩍 술을 놓는 안톤을 보며, 센이 말했다.
"그러다가 스노우가 난동 부리면 어쩌려고 그래?"
"오우, 이런 날 마시고 안 죽으면 언제 죽냐!"
"스노우는 축제 끝나면 바로 떠나거든?"
"으잉?! 그런 거야!? 야, 이 마을에서 사는 거 아니었어?"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라 자동으로 떠난다니까! 어제 회의 때 잤어?"
"상처가 쑤셔서 말야~"
"나참..."
"...즐거워 보이네."
"즐겁긴 무슨! 아무튼, 배라도 든든하게 하고 가. 고생이 많네..."
뭔가 쓸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불쌍한 걸 보는 시선을 나에게 보낸다.
...난 딱히 불쌍한 사람은 아닌데.
그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너희 세계의 일도 꼭 해내길 기원할게."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축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한창 축제를 즐기다가, 마법 소녀 셋이서 이야기하던 도중.
어느새 우리 뒤로 다가온 루크를 바라보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갈 시간이네, 아가씨들."
"...그래."
손끝부터 흐릿해지기 시작하는 걸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파이렌과 유레하 역시 똑같이 흐릿해지기 시작하는 모습.
그 모습에 놀라 유레하가 나에게 달려오지만, 그대로 몸을 지나친다.
"앗, 아아앗..."
"다음 세계에서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스노우 님."
"응."
"슬픈 거예요☆ 꼭 완수하고 오셔야 해요?"
"알았어."
"...고생 많았어. 우리 세계를 구해줘서, 고맙다."
"언젠가 연이 닿으면, 만나자."
"그래."
연이 닿을 일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말하는 재회의 인사.
언젠가 또 만날지도 모르니까.
또 만나면,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인사한다.
"그땐 내가 더 아저씨겠지만?"
"나는 그대로 마법 소녀가 아닐지도 모르고."
"그건 좀 재밌겠는데. 관측할 거라고?"
"응."
그 말과 함께 세계가 사라져간다.
모든 게 사라지고, 만들어지는 건 어두컴컴한 세계.
잠시 후, 나는...
"..."
멀쩡한 현대의 밤 골목길에 도착해있었다.
뭐야, 여긴 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