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마법 소녀는 배드 엔딩을 타파해야 해!
* * *
"렌, 팝콘 만들 수 있어."
"가져오신 것 중엔 없습니까?"
"인벤토리엔 육포밖에 없어."
[음식류 좀 들고 오지 그랬어?]
벌어진 상황을 보며, 세르칸을 푹신한 의자로 바꾼다.
그대로 앉아서 관람.
눈 앞에선 어째선지 마왕과 페이라는 주교가 열심히 투닥이고 있다.
"그렇게! 가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하란 거야!"
"아니아니, 진정해. 야!? 우왁!? 진짜 죽는다!?"
"다시 죽어!"
검은 구체가 날아다니고, 그걸 신성력으로 받아친다.
받아친 검은 구체는 파르시의 뒤로 쏙 들어가더니 다시 페이에게로 날아간다.
50개가 넘은 구체로 하는 탁구? 테니스?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세레스랑 에리카는? 어떻게 된 거야? 너만 살았어?"
"지금 내가 앞에 있는데, 두 사람 생각이 난다는 거야?"
"그 말이 아니!? 야! 늘리지 마!"
"얀데레네."
"방금 말은 평범한 질투 수준 아닙니까?"
"자기 동료한테도 질투하면 살기 힘들 테니까."
"거기!? 해설하지 말고 좀 도와주지!?"
페이의 외침에 내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육포를 우물거린다.
어떻게 봐도 자업자득 상황으로 보이는데, 도와줄 이유가 있을까?
"정확히 어디였는 진 모르겠는데! 딴 곳에 있는 걸 부른 건 너희잖아! 불렀으면 최소한 도움을 줘야지!"
"어쩌지, 일리가 있는 말이야."
"일단 차분히 대화할 겸 도와주는 게 어떻습니까?"
[슬슬 불쌍해진다고?]
"흐음."
두 사람의 말에 내가 몸을 일으키자, 파르시는 힐끗 나를 바라본다.
그리곤 얼굴을 화악 붉히더니, 시선을 피하는 모습.
아무래도 고마운데 방금까지 적이었던 터라 어색한 모양이다.
"일단 살렸는데, 혹시 다시 죽일 셈이야."
"그럴 생각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숨을 내쉬는 파르시.
그걸 바라본 페이가 잠깐 진지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파르시, 너 애정 봉인 몇 퍼야?"
"99%야, 바보 오빠야."
"...애정 봉인이 99%인데 그런 반응입니까?"
"애초에 애정 봉인 낮은 상태였으면 오빠야한테 원망 쏟을 수가 없잖아."
"...미안."
순순히 사과하는 페이를 보며 업보 많은 남자겠거니 생각하고 만다.
결국 우리 미션은 어떻게 되는 거지?
"마왕, 항복은 하는 거지."
"살려줬는데, 안 할 수도 없잖아..."
"근데 어떻게 파르시가 마왕이 된 거야? 마족 아니면 안 되...는 게 아니지. 그렇군, 아리아네가 정식 마왕이 아니라서..."
"응, 나도 마왕혼 먹었어."
"...여신 씨, 멀쩡하면 대답해."
"오빠야!? 아무리 그래도 여신님인데..."
"너 마왕 되고 여신 원망하고 난리였을 거 같은데."
"..."
여신을 대충 부르는 페이를 보며 파르시가 경악하지만, 그는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그렇게 말한다.
그러자 눈앞에 톡 하고 떨어지는 새하얀 박스.
모든 방향이 보이도록 모든 면에 글자가 새겨진다.
[감사합니다, 이계의 신령이여.]
"신령...? 신령이라고? 저게...?"
"저거라니, 굉장히 실례군요."
"아, 미안. 복장이 좀..."
"...?"
"그, 좀 가리고 다니면 좋겠는데."
내 옷을 슥하고 보면서 페이가 말하자, 파르시가 옆구리를 툭하고 친다.
그리곤 잠시 후 내가 머리 위로 별무리를 띄우자, 그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미안, 여기랑 완전 다른 복장이니까. 너희 세계에선 그게 정복일 수도 있겠지..."
"..."
"아니요, 마스터만 이런 복장입니다."
"나도 원하는 복장은 아니야."
"아, 그... 취향은 존중할게."
"...아니야."
존중하지 않아도 돼...
[당신이 가진 '열쇠'의 임무는 완료로 변경했습니다. 이것으로 당신은 다음 길로 나갈 수 있겠지요.]
"...응."
그녀의 말과 함께 푸른 창이 나타나며 퀘스트가 완료로 표시된다.
이동되는 건, 다음 날이네.
아무래도 이별할 시간을 주고 싶은 모양이다.
"열쇠? 열쇠를 건드릴 수 있는 게 다른 사람도 가능한 거였어...?"
파르시의 중얼거림에 페이는 그저 쓴 미소를 보이더니, 클린 마법을 쓰며 파르시를 깨끗하게 만든다.
그 후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
자연스럽게 쓰다듬기 시작하자, 파르시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그걸 가만히 받는다.
"연인이구나."
"뭐, 결국 아무도 못 정했지만."
"그러게, 페이는 끝까지 아무도 못 골랐는걸?"
"오라버니는 바보라서 세 사람 중에 계속 고민했었죠."
"...세레스, 에리카?"
푸른 머리칼을 휘날리는 검은 갑주의 데스나이트, 세레스.
은발을 찰랑대며 등장하는 언데드 킹, 에리카.
죽기 직전 능력을 그대로 소지한 그녀들이 나타나자, 순간 페이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혹시나 묻는데, 거기 신령 씨."
"스노우."
"그래, 스노우 씨. 저 녀석들도 부활시킬 수 있어?"
"언데드는 일단 '살아있는 존재'라서 안 돼. 게다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이미 시체가 만들어진 지 5분이 넘어서 안 돼."
"...그래."
파르시가 마왕이 아니라면, 아군으로서 유지될 수 없게 된 두 사람.
그걸 본 페이는 착잡한 얼굴로 파르시를 바라본다.
파르시를 마왕의 업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지만, 벗어나게 하면 세레스와 에리카가 다른 녀석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마왕의 업을 유지하면, 파르시는 주기적으로 인간을 멸망시키고 싶다는 광증에 시달리게 되겠지.
어찌보면 진퇴양난의 상황.
고심하던 그는 뺨을 한 번 긁적이더니, 이내 왕좌에 앉아 파르시를 무릎에 앉힌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허리춤에 있던 주머니에서 빗을 꺼내는 모습.
머리카락을 빗으로 빗겨주기 시작하자, 세레스와 에리카 역시 두 사람에게 다가간다.
[여기가 가장 재밌는 포인트 아냐?]
"응."
아까의 말을 들어볼 때, 세 사람 중에 저 남자는 정하지 못하고 죽어버린 모양.
저 세 사람이 이렇게 모였으니까...
"평소 같으면 다 죽였겠는데..."
"세레스도 이미 죽었으니까, 오라버니의 대를 이으려면 파르시는 필요해요."
"...그래도 그냥 죽이고 내가 평생 차지해도 되는데?"
"내가 마왕인 건 알지, 세레스."
"...칫."
"거기서 혀 차지 마."
그렇게 말한 뒤, 왕좌 양옆에 앉는 두 사람.
이게 하렘왕인가 뭔가 하는 그거지?
[그럼 마왕은 '파르시'로 유지하는 건가요...]
"어, 루나 씨. 부탁할게."
[그, 페이, 당신은 좀 더 정중했던...]
"누구 때문에 루프까지 하면서 죽었는데 존중할 거 같냐... 게다가 너 나보다 영격도 낮..."
[아, 알겠습니다, 그럼 파르시로 유지합니다. 대신... 페이, 당신이 그녀의 곁을 지켜주시길...]
"알고 있어. 나 아니면 누가 얘 제어하겠냐."
"제어라니, 실례야..."
"실제로 제어 안 돼서 폭주한 게 누구야?"
"애정 봉인하고도 폭주한 사람이 누굴까요."
"알았어! 알았다구!"
두 사람의 말 공격에 파르시가 뚱한 얼굴로 그렇게 소리친다.
일상 하렘물 엔딩이네.
나쁘진 않다.
[파르시가 마왕이니, 인류와 마계의 싸움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겠죠. 그럭저럭... 네, 그럭저럭 해피 엔딩입니다...]
"글씨에서 우울함이 느껴지네."
[이계의 신령이여, 들어보시길. 인류가 1% 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또다시 세계에 사람들이 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지...! 그 때까지 신력 회복도 힘들어진답니다...]
"..."
[그, 그리고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려면, 그만큼... 크흠...]
그런 현실적인 이유는 알고 싶지 않다.
그런 부끄러워하는 반응도 알고 싶지 않아...
[아, 아무튼 고생하셨습니다. 이계의 신령이여. 지금 마을 사람들이 지원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둘러 돌아가시길.]
"응."
"아, 잠깐만."
상황 종료를 확인하고 돌아가려고 하자, 한창 이야기하던 페이가 나를 부른다.
시선을 돌리자, 파르시를 내려주고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오는 모습.
뒤에 있는 세 사람이 긴장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기세가 흉흉하니까 오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왜."
"고맙다, 잘은 모르겠지만... 네 덕분에 이 세계가 사라지는 건 막은 모양이네."
그렇게 말하면서 자연스레 머리를 쓰다듬는 그를 무표정하게 바라본다.
무슨 착각을 하는 걸까, 이 녀석은.
"머리를 쓰다듬었을 때 여자애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여자애들을 잘 몰라서 그런 거야."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넌."
"그렇게 생각하고 쓰다듬은 거니까."
"뭐, 다른 두 녀석이 좋아해서 한 건 맞긴 한데..."
"그건 너한테 호감 있는 애들한테 하는 거야."
내 말에 페이가 당황하면서 말했다.
"나한테 호감이 1도 없어? 그런 거 치곤 얌전히 받고 있지 않아?"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영문을 모르겠어."
"마스터한테 슬슬 손 떼시길."
렌의 말에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몸을 물리면서 양손을 든다.
그러자 어쩐지 더 크게 긴장하는 세 사람.
...왜?
"무서운 애랑 같이 다닌다, 너?"
"렌은 내 파트너야."
"나름 강렬한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데, 파트너가 마..."
"그 이상 말하면 다시 한 번 죽일 생각입니다만, 괜찮겠습니까?"
"페이를 죽이면 우린 적이야."
"오빠야를 죽이지 마."
"오라버니가 죽게 둘 순 없어요."
내 주변에 만들어지는 검은 화염시에 순식간에 세 여자가 전투태세를 취한다.
...나름대로 은인인데, 이런 점에서는 가차 없구나.
"당신들이 정말로 저를 이길..."
"렌, 그만해."
"네, 마스터."
"완벽하게 관리하는 것도 무섭네. 아무튼, 고맙다. 우린 이쪽 정리할 테니까... 마을로 돌아갈 거지?"
"응."
"그럼 마왕이 휴전 요청을 했다고 말해줘. 휴전 대사관은 '페이'라고도 말해주고."
"...그거면 돼?"
"어, 상황 대충 알아챌 거야."
피식 웃으면서 장담하는 그를 보며, 나는 의심스럽다는 눈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장담할 정도면 뭔가 있겠지.
"알겠어. 그럼 그렇게만 전달하면 되는 거야."
"우리가 직접 마을로 간다는 것도."
"...괜찮겠어."
"안 괜찮으면 어쩌겠냐. 파르시가 지은 죄는 어떻게든 빌어봐야지."
"오빠야, 그러지 않아도..."
"잘못 했으면 벌은 받아야 해. 용서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죽을 상황이면 내가 살려서 도망 나올 테니까."
"오빠야..."
파르시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를 바라본다.
또다시 시작될 거 같은 애정 행각에 머리를 매만지며 고개를 젓는 나.
저걸 언제까지 봐야 하는 건지.
"필요해 보이니까, 상황 설명도 어느 정도 추가로 할게."
"오, 그건 고맙네."
"응."
그렇게 말한 뒤, 나는 마을로 돌아갔다.
"페이는 이미 죽었잖아? 파르시한테 세뇌라도 당하고 온 거 아냐?"
"..."
그대로 돌아가서 정보를 전달하자, 센에게서 어이없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장담한 걸까, 그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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