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마법 소녀는 배드 엔딩을 타파해야 해!
* * *
분노한 것 같지만, 누구보다 냉정했다.
화내면서 마법진을 가동하자, 피할 수 없는 각도로 마법들이 집중된다.
내가 있는 장소와 내 회피 경로를 전부 차단하는 각종 마법 세례.
하나하나가 여러 속성의 강력한 마법이라 맞는 건 곤란한 것들이다.
윈드 스텝을 쓰려 하지만, 당연하다는 것처럼 파쇄 당한다.
시간이 느려진다.
코어를 베어낼 수 있는 마법을 찾아낸다.
날아오는 마법 중 쳐낼 수 있는 건 3개.
한번이라도 이 세계에서 사용했던 마법은 사용할 수 없다.
화염계와 바람계는 봉인.
생각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뇌령폭주."
파지직!
온 몸에서 전격이 퍼져 나간다.
동시에 날아드는 번개 마법류를 베어나가며, 세르칸을 채찍으로 변형시킨다.
순환시에 잡히는 핵들을 향해 자연스럽게 휘두르자, 여러 위치에 있는 핵이 전부 박살난다.
...방향 조절은 렌이 잡아줘서 다행이다.
[채찍은 마스터 생각만큼 쉬운 무기가 아닙니다.]
"응."
그리고 그대로 벽을 타고 달려가려는 순간.
점액질의 무언가가 내 몸을 감싸오고, 그에 나는 발이 미끄러지며 바닥에 착지하고 만다.
"...기분 나빠."
전격으로 몸을 털어내자 튕겨 나가는 녹색 물질.
말 그대로 발을 미끄러뜨리기 위함인지, 데미지는 없다.
"그 검..."
"...세르칸이야."
"도플갱어 퀸이지?"
뭔가 갈망하듯 말하는 파르시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젓는다.
세르칸은 도플갱어 같은 게 아니다.
[저건 또 뭔 소리래냐.]
[세르칸, 당신의 능력은 도플갱어와 비슷하죠.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놔, 그게 있으면... 그게 있으면...!"
검은 손이 천장 전체를 뒤덮는다.
온 사방에서 덮쳐오는 손을 보며, 격추하듯 전격을 흩뿌린다.
모든 손의 방향을 예측하고, 그 방향으로 일정 위력 이상의 전격을 날린다.
[마스터, 추가로...!]
"응."
그리고 동시에 전방에서 지옥의 불길이 날아든다.
꺼지지 않는 불길.
검푸른 불길의 열기를 느끼며, 나는 자연스럽게 허공으로 비행한다.
"그래비티 바인드!"
그리고 그 불길로 떨어뜨리기 위한 중력 전환.
순환시로 그 마력을 읽어내고, 핵을 찾아낸다.
"발동이 느려."
"...?!"
마법을 베어내고, 회전하면서 렌과 세르칸을 동시에 투척한다.
설마 무기를 날릴 거라곤 생각 못 했는지, 눈을 크게 뜨다가 차분하게 실드와 결계를 리플레이.
30장이 넘는 방어 마법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보이곤 말했다.
"세르칸."
[맡겨달라고.]
파킹! 파킹! 파킹!
결계가 너무나도 쉽게 깨져나간다.
그 모습에 파르시가 한 행동은 시간 마법.
세상이 회색으로 물들려고 하지만, 그 정도는 방법이 있었다.
"이게 영창 파쇄야."
쨍그랑!
시간 마법이 깨져나간다.
마법이 채 발동하기 전에 공간의 핵을 마력으로 베어버린다.
그러게 누가 시간 마법 핵을 범위 중앙으로 하래?
파르시가 급하게 몸을 빗겨가며 피해낸다.
그걸 깨달은 렌이 알아서 방향을 바꾸고, 왼쪽 어깨가 크게 베여나간다.
...혹시나 렌이 죽이면 살릴 준비 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자연스럽게 두 검을 되돌렸다.
"항복해, 마왕."
"항복? 웃기지 마."
내 말에 사납게 으르렁거린 그녀의 등 뒤에 새겨지는 푸른 시간 마법진.
동시에 그 뒤를 뒤덮는 거대한 검은 마력의 흐름.
...어라?
[시간 마법을 응용한 고속 영창. 초월 마법에 대비하십시오!]
"초월 마법은 뭐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예측으로 베기 전에 발동한단 사실을 깨닫는다.
만들어내는 건 별빛을 빗어낸 방패.
"세르칸."
"이미 나왔어."
"디바우링 생츄어리... 아니, 디바인 생츄어리야."
성역이 선포된다.
타락했던 빛의 마법 소녀의 주특기인 포식의 성역을 일반 성역으로 전환시킨다.
그리고...
"루나 배리어."
이 세계의 신의 이름을 부르고, 가호가 담긴 방어막을 만들어낸다.
성역으로 능력이 강화된다.
동시에 나를 돕겠다는 것처럼 떨어지는 하나의 성물.
금으로 된 잔을 보며, 별의 마력을 불어넣는다.
"성배..."
"타우미엘...!"
그녀가 악마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렌이 소리쳤다.
[신성 마법 전부 해제해!]
얼마나 다급했는지, 존댓말조차 잊고 소리치는 렌.
내가 그 반응에 곧바로 성역을 해제하지만, 성물과 루나 배리어까지는 무리.
세르칸은 급히 검의 형태로 들어가는 걸로 능력을 해제했다.
거대 마법진에서 검푸른빛 파장이 퍼져나간다.
손 쓸 시간조차 없이 루나 배리어를 삼키며 증폭되는 마법.
내가 뭔가 손을 쓰기도 전.
내 손에 있던 검이 인간의 형상으로 변한다.
"디서버...!"
그녀의 머리에 검은 왕관과 함께 6쌍의 까마귀 날개가 펼쳐진다.
공간 자체가 차단당한 것처럼 전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검푸른 마력.
하지만 알 수 있었다.
빠져나가는 마력 수치가 너무 높아 막을 수 없단 사실을.
"비행으로 빠져나가시길."
"렌...!"
"저는 마스터의 무구, 마스터가 빠져나간다면, 평범하게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ㅡ아니다.
지금 빠져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난다.
직감이 경종을 울린다.
렌의 위험이 아닌 본질적인 무언가.
무언가가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파르시를 주시한다.
마법을 유지하는 게 버거운 듯, 식은땀을 흘리곤 있다.
하지만 그보다 내가 마력이 더 빨리 무너진다.
궁전을 살펴본다.
지금 마력 충돌이 너무 강해선지, 금방이라도 무너질 거 같다.
렌을 바라본다.
어서 빨리 대피하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조형물을 바라본다.
얼음 속 남자가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구멍을 제외하곤 멀쩡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스킬 창 오픈."
내 능력이 나열된 '시스템'을 바라본다.
지금 이 상황을 끝내는 방법이 있다.
분명, 있다.
"렌."
"마스터, 슬슬...!"
"저 얼음 속 남자, 사망 시간이 정확하게 언제로 처리되는 거야."
"네? 너무 엉뚱한..."
내 말에 당황한 듯 경계가 순간 흔들렸지만, 간신히 유지된다.
그리곤 진지한 표정으로 눈에 마력을 담아 얼음을 바라보는 렌.
내 생각을 읽은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며, 나는 '신성 마법'을 준비한다.
"파르시, 잘 들어."
"닥치고.... 죽어...!"
"얼음 속 사람을 살려낼 거야. 네가 그 마법 해제 안 하면, 저 사람도 죽어."
"허풍 떨지 마...! 여신도 살려내지 못한다고 했는데, 네까짓 게...!"
"그럼 죽게 내버려둬."
신성력을 만들어내 끌어올린다.
사용할 마법은 '별에게 소원을'로 얻어낸 기술 중 하나.
명백히 '신성 마법'의 카테고리에 있는 기술을 떠올리며, 한 걸음씩 앞으로 발을 내딛는다.
"잠깐, 그들의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가벼운 영창과 함께 새하얀 마력이 피어오른다.
내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얼음으로 향하는 신성력을 막지 않는 파르시.
눈에는 희미하게 '혹시?'하는 간절한 바람이 깃들어있었다.
얼음이 빛으로 가득 차기 시작하자, 그녀는 떨리는 눈으로 마법 유지를 멈춘다.
서서히 사라지는 거대 마법진과 푸른 마법진.
렌의 방어 마법 회수로 마력이 어느 정도 돌아오기 시작함을 느낀다.
"새크리파이스 리저렉션."
[현재 현천계의 신령 '페이'의 의사를 묻고 있습니다...]
HP가 뭉텅이로 깎여 나가며, 눈 앞에 푸른 창이 나타난다.
강제로 살리는 것이 아니라, 본인 의사를 묻고 살린다는 퍽이나 친절한 메세지.
공동에 침묵이 가득한 채 현상이 유지되기 시작하자, 파르시의 눈에는 점점 분노가 자리하기 시작한다.
"속인 거야...?"
"아니, 기다려. 페이라는 신령의 의사를 묻고 있어."
"오빠야의... 의사...?"
내 말에 잠깐 기다리는 것처럼 멈추더니, 조금씩 걸음을 걸어 얼음으로 다가서는 그녀.
간절하면서도 애정 담긴 그 눈빛을 보며, 나는 차분하게 입을 연다.
"지금 너는 그 얼음에 손대면 위험..."
"상관없어."
치이이익.
신성력에 닿자 그녀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상당한 고통일 텐데도 묵묵히 얼음을 껴안는 모습.
그렇게 해봐야 안에 있는 사람에게 닿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런 생각을 하지만, 렌은 그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라는 거겠죠. 마력이 좀 추가로 들더라도 막지 마시길."
"...응."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모양이다.
어쩐지 렌의 눈동자가 안쓰러운 사람을 보는 눈으로 바뀐 거 같은데, 기분 탓일까?
"..."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래서 결과는 언제 나오는데?
[신령 '페이'와 연결되었습니다.]
[...그래서, 넌 누군데?]
갑작스럽게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
내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가 다시 순환시를 키자, 허공에 흐릿하게 영혼의 형상이 보인다.
주교복의 남자...라는 정도는 알겠다.
"네 연인이 울고 있어."
[그렇겠지, 나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거기서 동귀어진 당할 거라곤 생각 못 했거든.]
"돌아와."
[...마왕이 돼버린 건가.]
목소리에 담긴 허탈함이 현재 그의 심정을 대변한다.
목숨 걸고 죽인 마왕과 그 마왕을 이어버린 연인 소녀.
얼마나 참담할까.
자신이 해온 일이 자신의 동료로 엉망이 됐다는 사실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참, 내가 없으면 안 되는 녀석이라니까... 어쩔 수 없지. 부활 기회까지 줬는데, 내가 포기하면 이상하잖아.]
"응."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말한 뒤 영혼이 사라진다.
그리고 잠시 후...
[신령 '페이'가 부활을 받아들였습니다.]
[신령으로서의 격은 그대로지만, 현천계의 기억은 회수합니다.]
푸른 창이 지나감과 동시에 쩌적! 하는 소리가 얼음에서 들려온다.
시선을 옮기자 보이는 건, 안에 있던 남자의 몸이 완전히 회복되는 모습.
새하얀 마력과 검은 마력이 동시에 준동하기 시작하자, 그의 손에서 회색빛 기운이 넘실거린다.
파캉!
"내가 돌아왔다."
"..."
"..."
"어라, 재미없었어?"
나오자마자 능청스럽게 말하는 모습에 모두가 할 말을 잃자, 그는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묻는다.
그러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하는 파르시의 모습.
누가 봐도 달려들 거 같은 모습에 그는 양팔을 활짝 벌리며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마주한다.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파르시와 쓰게 웃으면서 미안함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남자.
청춘물을 찍는 마왕과 주교를 보며, 나는 미묘한 눈으로 그걸 바라본다.
"그래그래, 많이 힘들었지? 마음껏..."
"바보 멍청이 오빠야아아아아!"
"?"
콰아아아앙!
어라, 이게 아닌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