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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118화 (118/149)

〈 118화 〉 마법 소녀는 배드 엔딩을 타파해야 해!

* * *

지쳤다.

농담이 아니라 움직이기 싫을 정도로 지쳤다.

아무리 그래도 나와 비슷한 급이거나 높은 급인 마도사 둘이 마력을 빼가는 경험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것도 나 역시 전투 중이라면 더더욱.

[검사를 상대로 버틴 게 다행입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어떻게 버틴 거야?]

"미래가 한 순간씩 보이니까, 어떻게든 틀어막았어."

검술에는 검로라는 게 있다.

몸에 익은 검로로 움직이는 검격의 흐름을 자르는 건, 나름대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검로를 읽어내고, 그 검로가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경로를 예측해 미리 검을 쑤셔 박는다.

그 검격에 흐름이 끊기고도 이어질 수 있는 검기의 경로를 추측해 추가로 움직인다.

완벽한 카운터를 위한 검술.

아직은 불완전해 반격은 불가능했다.

"후우..."

"마스터☆ 제가 안마해 드릴..."

"아니, 시간 없어."

"넹★?"

"...바로 가야돼."

마왕성 근처의 좌표를 입력한다.

시간이 없다.

다른 사천왕들이 돌아갔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이 마지막 기회.

'사천왕 없이' 마왕과 싸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지금이다.

"앗, 그럼 우리도...!"

"마을을 도와줘. 적이 마도사라면... 1대1이면 충분해."

그렇게 말하며 바람의 마력을 만들어낸다.

윈드 스텝이 갈 수 있는 곳은 '현재 위치와 연결된 장소'다.

즉, 다시 말해...

"윽."

[굉장히 먼 거리였군요.]

마력만 된다면, 세계 어느 위치에 있든 건물 밖에선 이동이 가능하단 이야기다.

순식간에 빠져나간 마력으로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리지만, 이내 비행을 유지한다.

...마왕성.

여기저기 부서진 상태로 전혀 수리조차 되지 않은 마왕성이 있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몸 상태가...]

"문제없어."

[알겠습니다.]

[무리하지 말라고? 사천왕이나 하나하나 격파하면 되잖냐. 부활 안 한 녀석이 대부분이고.]

"...아냐, 지금이어야만 해."

예지에 가까운 예측이 말해주고 있었다.

마왕을 '구원'할 수 있는 타이밍은 지금뿐이다.

눈 앞의 결계를 순환시로 바라보자, 결계의 핵이 보인다.

...이번 핵은 아예 지하에 박혀 있네.

베어내는 건, 요원하다.

그렇다면...

"스타더스트 스트라이크."

콰아아앙!

별빛 기둥이 쏟아지지만, 결계에는 파문만 일어날 뿐.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결계를 나는 고민하며 바라본다.

이걸 뚫을 방법이...

[나로 찌르라고~]

"응."

낡은 검의 형태로 변한 세르칸을 그대로 결계에 꽂는다.

자연스럽게 스윽하고 들어가면서 쩌적. 하고 갈라져 가는 결계.

미동도 없던 결계가 찢겨나가는 걸 보며 마력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그저 깨져나가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어떻게 한 거지?

[방금 내가 변한 검 능력 자체가 결계 파쇄거덩.]

"...어디서 저런 게 나온 거야."

[이건 나름대로 원래 세계 보급품이라고? 일회용이지만.]

"..."

뭐하는 세곈지 모르겠지만 두려워져요.

아무튼 나도 만들려면 시간이 걸릴 결계를 부수자, 성에서 극대 마법진이 순식간에 10개 이상 나타난다.

내가 마법을 베어버린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하나하나가 검으로 베어내기에는 끔찍할 정도의 마력을 담고 있었다.

"아."

10개의 폭풍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쏘아진다.

내 회피 경로까지 생각한 듯 온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마력 폭풍에 나는 혀를 차면서 바람의 마력을 일으킨다.

[안 됩니다.]

"...!"

바람의 마력이 직격 직전에 풀려난다.

영창 파쇄.

거의 즉발에 가까운 사용 마법을 그 즉시 디스펠 해버렸단 사실에 인상을 찌푸린다.

"렌, 세르칸."

[알겠습니다.]

[오우! 가자고!]

양 손에 검을 쥔다.

마력 폭풍의 핵은 정중앙.

온 몸에 마력을 두른 채로 폭풍을 뚫고 나간다.

마법 소녀복이 찢겨 나가다가 복구되는 걸 반복한다.

...마력을 두르고 있어도 베여나가는 감각은 참을 수 없다.

고속 비행으로 마력의 핵으로 들어가 베어낸다.

추가타로 날아드는 포격의 정중앙을 가른다.

다음 공격까지 0.5초.

"..."

순수 비행 실력으로 이어지는 운석 마법을 간신히 피해낸다.

무슨 운석이 저렇게 빨리 떨어져.

[운석은 원래 빨리 떨어집니다만.]

팔 근처에 붙은 불이 꺼진다.

성으로 가속하기 시작한다.

"아."

성 근처에 왔을 때 허공에 새겨지는 건, 수십에 가까운 마법진.

그 전부가 속박 마법이라는 걸 읽어낸다.

즉시 바람의 마력으로 칼날을 빗어낸다.

절반 이상이 캔슬당한다.

날아드는 수십 개의 마력의 사슬을 절단해나간다.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해 막아내지 못한 사슬을 베어낸다.

순간, 세계가 회색으로 물든다.

다시금 새겨지기 시작한 수십 개의 속박 마법이 보인다.

"나도 움직일 수 있어."

봤던 시간 마법을 응용해 내 몸을 원래의 색으로 물들인다.

속박 마법이 발동하기 전에 기동해 마법과 함께 베어낸다.

그러자 원래의 색을 되찾는 세계.

얼마 남지 않은 속박 마법을 깔끔하게 베어낼 때.

눈 앞에 거대한 극대 마법이 생겨났다.

"..."

리플레이인가.

시간 마법을 쓸 수 있으니, 예상했다.

0.2초도 걸리지 않고 쏘아지는 극대 마력포에 검을 휘두른다.

반발력이 느껴지지만, 점점 앞으로 나아간다.

주변에 조금이라도 휘말리면, 그 부위는 절단나겠지.

"세르칸."

[맡겨달라고.]

다른 팔에 있던 세르칸을 그대로 투척.

마력포 범위 밖으로 나간 세르칸이 극대 마법진의 중앙을 찌른다.

마법진이 깨져나간다.

"타임 스톱."

이번 내 쪽에서 시간 정지.

생각 이상으로 마력 소모가 심한 걸 느끼면서도 성 안에 진입하는 것에 성공한다.

그러자 복도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언데드들.

하나 같이 데스나이트인 게 재밌다.

"다 비켜."

등 뒤에 약식 스타라이트 브레이커 마법진이 그려진다.

스타라이트 브레이커는 8개의 마법진이지만, 지금 만들어낸 건 4개.

4개의 마법진이 순식간에 새겨지는 순간, 곧바로 포격 형태로 빗어내 발사한다.

"스타라이트 스매셔."

그렇게 만들어진 포격을 렌의 검 면으로 깡! 하고 쳐내자, 온 사방으로 별빛이 퍼져 나간다.

앞에 있던 적은 전멸.

비행으로 나아가자, 구식 함정들이 나에게 쇄도한다.

[프로텍션]

마력이 담긴 화살들이 전부 렌의 실드에 막힌다.

그리고 앞에 나타나는 건, 부식성 용액.

통로를 가득 채우는 용액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한다.

"여긴 평소에 어떻게 지나간 거야."

[글쎄요... 적이 올 때만 발동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구나."

아쿠아 실드를 펼쳐 부식 용액을 전부 흘려낸다.

땅과 하늘에서 마법진이 새겨진다.

"그건 이미 봤어."

서걱! 쨍그랑!

속박 마법을 파기시킨다.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응은 빨랐다.

발동이 0.4초라면, 0.3초 안에 파쇄하면 그만이다.

멈추치 않고 비행하자, 눈앞에 마력이 팽창한다.

잠시 후 마력 폭발.

콰아아앙!

"마법이 아닌 순수 마력 폭발이라니, 생각 잘했네."

마법이었다면 좀 더 빠르게 반응했겠지.

눈 앞에 터진 마력 폭발을 피해 뒤로 비행한 순간, 온 사방에서 창이 솟아난다.

...지나갈 땐 발동 안 했잖아.

윈드 스텝은 캔슬 당하고, 시간을 멈춰버린다.

0.3초 멈춘 사이 지나치자, 콰가각! 하고 자기들끼리 부딪혀 이상한 소리를 내는 함정.

온 사방의 벽이 압축되듯 다가오기 시작한다.

"던전 같아."

비행을 좀 더 가속하자, 통로 전체를 채우는 마력포가 일직선으로 쏘아져 온다.

프로텍션으로 막아내지만, 위태롭게 흔들린다.

"렌."

[네.]

렌을 부르자, 전방으로 쏘아진 지옥불이 통로의 마력을 태워 나간다.

0.3초 후 마력 폭발.

...내가 마력 폭발은 막아낼 수 없단 걸 알아챈 모양이다.

다만.

"발동 불가능해."

지옥불이 복도 전체를 불태우고 마력 폭발에 들어간 마력을 먹어치운다.

마력 폭발은 말 그대로 순간적으로 마력을 폭주시켜 터뜨리는 일.

발동 가능할 리가.

"..."

물리적인 함정만 회피 기동으로 피해내면서 복도의 문 앞에 도착한다.

마치 진짜 왕의 홀을 상징하듯, 거대한 문과 거대한 결계가 보인다.

"세르칸."

[오우.]

쨍그랑!

세르칸으로 베어내고, 마력을 담아 문을 쾅! 하고 내려친다.

그러자 훅! 하고 날아가다가 허공에 멈추는 쇠문짝.

자연스럽게 쿵.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문짝을 보곤 나는 자연스럽게 방으로 들어간다.

낡은 레드 카펫.

벽은 수복한 지 오래된 건지, 여기저기 금이 가 있고, 바닥 역시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

가장 눈에 띄는 건, 거대한 얼음 덩어리와 그 안에 갇혀있는 가슴이 뚫린 남자.

시체를 보존하는 취미는 아니겠지.

작은 왕좌에 앉은 남색 곱슬 머리칼의 소녀를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흙먼지에 뒤덮여 색이 조금 바래진 연보랏빛 케이프.

고생을 많이 한 듯, 케이프를 유지하는 리본 끝자락이 찢겨 있고, 케이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홍빛 셔츠 역시 흙먼지로 뒤덮였고, 갈색 치마는 여기저기 찢겨나간 지 오래.

무릎 위까지 덮는 스타킹 역시 올이 나가 자기 관리가 되지 않았단 사실이 역력했다.

"왔구나, 새로운 용사."

피로, 절망, 분노, 집착, 슬픔, 쓸쓸함.

복잡한 마음에 가득 차있던 눈동자에 희미한 전의가 담긴다.

등 뒤에 새겨지는 건, 톱니바퀴의 형상을 한 시계.

대놓고 시간 마법진을 잔뜩 그려내고 있는 모습에 나는 말했다.

"시간 마법은 통하지 않아."

순환시를 끄고 미래시로 일어날 미래를 바라본다.

최적의 전투 경로를 찾아내면서 제압할 방법을 찾아낸다.

"상관없어."

모든 마법진 위에 새로운 마법진이 겹친다.

리플레이.

이 공간 안에서 만들어졌던 모든 마법진이 일시에 발동한다.

과연 마왕이라고 해야 할 지.

유일하게 빛이 바랜 시간 마법진을 앞세워 재밌는 짓을 하고 있다.

"파르시."

"...친한 척 부르지 마."

"여신의 전언이야."

"뭐...?"

별의 마력을 끌어올린다.

내가 말하는 순간, 전투는 시작된다.

ㅡ그녀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여신이 말했어. '그는 제가 있는 곳이 아니라, 더 높은 곳으로 가버렸답니다. 신령으로서 책무를 다하기 위해, 아예 이 세계를 벗어나서 살릴 수 없어져 버리고 말았죠. 이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 신관에게 말을 전달하기 전에 전부 죽이더군요. 이미 알고 있지 않았나요, 위대한 마나의 지배자.' 라고."

"ㅡ."

파르시가 일순간 멈춘다.

눈에 담기는 건, 분노.

절망이 가득한 눈동자보다는 훨씬 나은 눈동자를 가지게 된 소녀를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담는다.

"그딴 말, 듣고 싶지 않아."

"알아."

"너...!"

마법진이 일시다발적으로 폭발하듯 움직인다.

모든 타게팅은 나 하나.

성 안에서 다 사용했다간 분명 성이 박살 나버릴 텐데.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등 뒤에 8개의 마법진을 그려낸다.

"일단 머리를 식히자."

"죽어...!"

그렇게 마지막 전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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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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