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마법 소녀는 배드 엔딩을 타파해야 해!
* * *
50만이 넘는 군대가 퍼스트 마을로 몰려오기 시작한다.
덩치 큰 오우거나 트롤을 필두로 본 드래곤이 하늘에서 루난을 태우고 날아다니고 있다.
"제길."
루크의 눈이 빛난다.
궁사인 윈이 손이 보이지 않을 수준으로 마력 화살을 연사하고, 센이 대마법은 영창한다.
테란이라고 불리는 영웅이 병사를 다독이고, 본인도 만들어진 성벽 위로 올라가 양손검으로 자이언트 킬링을 준비한다.
"...쯧, 레닌 녀석. 순수하게 재밌어하고 있는데."
삐죽 머리칼을 거칠게 긁은 테란이 말하자, 옆에 있던 윈이 하하. 하곤 장난스럽게 웃는다.
그러면서도 한발에 소형 몬스터를 한 마리씩 처단하고 있는 모습.
벌써 그가 죽인 잡몹들이 수백에 달하고 있지만, 50만에 비하면 티도 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뭐, 그렇지 않겠습니까? 용사로서 활동했을 때 이후로 루난은 굉장히 지루했을 테니까요."
"1대 용사 다음으로 최강의 용사였던 녀석이니 그럴 수밖에."
"그래도 테란 씨도 3대 용사였잖아요? 2대 용사 때 루난... 아니, 레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하시죠?"
"그래, 녀석이 죽고 얼마 안 되서 용사가 됐으니까. 마왕이 연속으로 발생한다니, 드문 케이스를 다시 볼 줄 몰랐어."
"그것도 제법 귀여워해주던 꼬맹이가 마왕이 됐죠!"
"그래, 용사 파티가 마왕이 된 건 최초군. 흡!"
그렇게 떠들면서 오우거 좀비가 도착한 순간, 그는 하늘 높이 점프한다.
중형 대형 몬스터들의 공성전.
인류가 막아내기 위해 세운 성벽 정도는 보잘것없는 크기였기에 지금 퍼스트 마을에서 내세울 수 있는 건... 개개인의 무력뿐이었다.
"대지 개벽!"
콰아아아앙!
가장 앞에 있는 트롤과 오우거를 한 번에 찢어버리면서 동시에 바닥을 박살내 소형 몬스터들까지 충격파로 쓸어버리는 모습.
동시에 갈색 마력이 담긴 횡베기를 날리자, 휘청이던 좀비들까지 말끔하게 쓸려나간다.
"이야, 군단도 이끌고 많이 컸다? 레닌."
"음... 원래 내가 너보단 컸을 텐데, 테란."
테란이 전장을 휘저으면서 다니자, 본 드래곤이 착지해 그에게 발톱을 휘두른다.
그러자 양손검에 힘을 잔뜩 쥐더니, 쾅! 하고 발톱과 발까지 박살내버리는 테란.
그걸 본 루난이 가볍게 바닥에 착지하고, 본 드래곤을 하늘로 다시 날려보낸다.
"아쿠아 스플래쉬!"
날아오르는 본 드래곤을 향해 떨어지는 거대한 물 회오리.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면서 점점 범위가 넓어지는 바다 회오리에 루난과 테란 근처 적이 다시 한 번 공격에 휩쓸린다.
"너희는 성벽을 공격해라, 저 놈은 내가 상대한다."
그렇게 말하며 대검으로 자세를 잡는 루난.
그러자 양손검을 들고 피식 웃은 테란 역시 양손으로 검을 강하게 쥐고, 그대로 대치한다.
전쟁 중에도 두 사람의 근처에만 다가오지 않는 언데드들.
서로의 틈을 노리듯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으며 대치할 때, 어디선가 루난에게 화살 다발이 날아든다!
"흠?"
티디디딩!
다른 쪽 대검을 꺼내 그 면으로 막아내는 순간, 테란이 그대로 쇄도한다.
잠깐 생긴 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
그 모습에 붉은 안광을 일으킨 루난의 몸에서 마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와라!"
"뒈져라!"
카앙!
양손검이 휘둘러진다.
막아내는 건 화살을 막은 대검이 아닌, 원래 들고 있던 대검.
막아내기 힘든 각도로 유도했지만, 루난은 인간이라면 꺾일 수 없는 각도로 팔을 꺾어 막아낸다.
"미친!"
"예전이랑 다를 바 없군."
그리곤 화살을 막아낸 대검으로 그대로 내려찍기.
보통 사람이라면 그대로 피해야 정상인 공격을 테란은 희열로 가득 찬 미소와 함께 파고든다.
자살과도 같은 돌진.
하지만 테란을 잘 알고 있는 루난은 얼굴을 찌푸리며 꺾인 팔을 되돌리곤, 시차로 대검을 추가로 휘두른다.
"여전하군."
그리고 흐릿하게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해서 2번째 대검만 막아내는 모습.
지나친 첫 대검이 등을 살짝 베고 지나가지만, 테란은 아무렇지도 않게 2번째 대검을 떨쳐낸다.
"너도 여전해."
그러면서 슬쩍 몸을 뒤로 물리자, 그의 몸에 담기는 바람의 기운.
그런 그의 뒤로 녹색 모자의 궁수, 윈이 합류한다.
"오랜만입니다, 루난님."
"너는... 흠, 46대?"
"46대 맞습니다. 의외로 정확히 기억하시네요?"
"네 녀석은 일단 마왕을 죽였잖나."
그렇게 말하면서 대검 한 자루를 다시 검집에 집어넣는 루난.
한 대검은 수비로 밖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에 두 사람은 긴장을 놓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봐주긴 힘들겠군."
"봐줬으면 좋겠는데요~ 어쩔 수 없겠죠. 마왕님 명령일 테니?"
"나 참, 그 꼬맹이 명령에 레닌 녀석이 움직인다니..."
그 말 직후 다시 공격한 건 테란 쪽.
윈의 화살이 말도 안 되는 각도로 휘면서 루난의 사방을 점하고, 테란의 검에 갈색 마력이 담긴다.
그걸 보며 대검에 마기를 담는 루난.
그리고 검들이 부딪히는 순간.
"전부 분쇄해, 실피드!"
"폭렬검."
"대지 폭발!"
윈의 모든 화살에 바람의 기운이 담긴다.
루난의 검에 담긴 마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간다.
테란의 검에 담긴 대지의 기운이 폭사한다.
콰아아앙!
폭발이 일어나며, 동시에 온 사방을 밀어내는 칼날 바람이 하나의 돔을 만들어낸다.
폭발의 충격파로 마력이 담긴 칼날 바람이 언데드 진형을 휩쓸고, 근방에 터져나가듯 초토화 당한다.
잠시 후.
모래 먼지가 걷히자 보이는 건, 갑옷이 여기저기 깨진 루난과 피투성이로 날아간 테란. 그리고 흙먼지만 뒤집어쓴 윈의 모습.
칼날 바람이 윈이 소환한 실피드의 것이라 그나마 데미지가 덜했던 모양인지, 모자가 날아가 금발만 휘날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뒤에 있는 건, 흐릿한 녹색 여인의 형상.
바람의 정령왕인 실피드는 그에게 무언가 속삭이듯 이야기한다.
"알고 있어."
그러자 조심스럽게 다시 마력 화살을 활에 담아내는 윈.
루난의 눈에 화살이 날아가는 순간, 흑기사의 눈동자에서 강렬한 안광이 일렁인다!
"울부짖어라, 타일란트!"
"아니, 그거 반칙...!"
모든 공기가 압축된 것처럼 일어나려던 테란과 윈이 땅으로 짓눌린다.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가 막아내려고 하지만, 마치 힘겨루기를 하듯 짓눌리지만 않고 현상 유지.
마신의 무구가 발현하는 힘에 윈은 덜덜 떨리는 팔로 간신히 활을 루난에게로 겨눈다.
"보아라, 이 앞에 나의 적이 있으니."
실피드가 그의 주문에 놀란 눈으로 그걸 바라보다가, 허공에서 흐릿해지며 사라진다.
테란이 압력을 마력으로 강제로 밀어내면서 검을 내리꽂으며 일어선다.
"크으으으으... 지랄 맞은 거 꺼내고 있네, 빌어먹을."
"흠... 제법 잘 버티는군?"
"명한다, 바람의 아이여. 내게 모든 걸 꿰뚫는 힘을."
"하게 놔둘 거 같나?"
궁수가 주문를 읊고 있다는 건, 굉장히 수상한 일이다.
마법을 사용하는 건 마도사 뿐.
마도사가 아닌 사람이 주문을 읊고 있다면...
"어딘가의 마도구인가?"
"어딜 가!"
카앙!
달려드는 루난을 테란이 온몸으로 막아선다.
덕분에 팔 한 짝이 날아가지만, 만들어낸 잠깐의 틈.
그 잠깐의 시간으로 활에 마력을 듬뿍 실은 윈이 활시위가 놓인다.
"프레이 윈드!"
마지막 화살을 쏘아낸 후,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엎어진다.
기절하면서 쏘아낸 하나의 화살.
여인의 형상이 흐릿하게 겹친 화살이 루난에게 날아든다.
"흠...!"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루난.
자연스럽게 화살의 궤도에서 벗어나지만, 화살은 이지가 있는 것처럼 그에게 따라붙는다.
"곤란하군."
그에 수비에 쓰이던 대검을 들어 올리면서 대검 둘을 꽉 쥐는 모습.
화살의 그의 코앞까지 오는 순간, 그가 소리쳤다.
"타일란트, 제압해라!"
쿠웅!
화살 하나를 마기와 힘을 다해 내리찍는 루난.
중력 때문인지 피해내지 못한 화살이 그대로 대검에 적중하고, 키기긱 소리를 내며 검을 뚫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한다.
빗겨서 움직이기엔 중력을 이기지 못한다.
꿰뚫기엔 힘이 모자라다.
그걸 판단한 건지, 화살이 뒤로 회피하는 순간이었다.
콰앙!
"칫."
"흠."
남은 팔로 검을 억지로 휘둘러 이뤄낸 기습이 막힌다.
허리가 있을 수 없는 각도로 꺾이며 마기로 막아낸 공격.
그 공격을 막은 대가로 땅이 크게 들어가지만, 루난의 육신은 자연스럽게 재생된다.
"언데드가 되더니 더 괴물이 됐냐..."
"너도 되면 알 수 있다."
"헛소리 까네."
그 말 직후 루난의 발차기에 멀리 날아가 성벽에 처박히는 테란.
주변 언데드들이 그를 먹어치우려고 하자, 안톤이 근처를 밀어내고 센이 내려와 방어 마법을 펼친다.
이어진 화살의 공격을 마기가 담긴 검으로 강하게 쳐낸 뒤, 알 수 없는 기술로 허공에 묶어버리는 루난.
잠시 센 쪽을 바라본 그가 기이한 안광을 흘리면서 말했다.
"음... 아직도 저런 전력이 남았나."
대마도사가 남았다는 점이 의외였던 건지, 루난이 성큼성큼 걸어 두 사람에게로 다가간다.
전 용사들을 쓸어버린 그를 긴장한 눈으로 바라보는 센.
방어 마법 앞으로 그가 다가오자, 안톤이 소리쳤다.
"형씨, 나랑 붙자고! 다른 애들 괴롭히지 말고!"
"흠?"
"안톤, 안..."
"하압!"
센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의 철퇴가 사슬과 함께 루난에게로 날아든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더니, 투구에 달린 뿔로 그대로 받아내 밀어내는 루난.
그리고 마치 한숨을 쉬는 것처럼 아래를 보더니, 안광을 빛내면서 말했다.
"애송이, 전력 차를 알고도 덤비는 용기는 가상하다만... 그 정도 마력으론 내 갑옷에 흠집도 못 낸다."
"...그러시겠지."
그렇게 혀를 차면서도 돌아오는 철퇴를 다시 연격.
그러자 루난은 귀찮다는 것처럼 대검을 휘두르고, 그대로 마력 담긴 철퇴가 산산이 조각나 주변을 때린다.
"이제 철퇴도 없군, 어떻게 할 생각이지?"
"흐아아아아!"
루난의 말에 아예 몸통 박치기를 시도.
센이 어떻게든 캐스팅을 추가해 그에게 방어 마법을 걸어주지만, 그뿐이었다.
텅.
가벼운 소리와 함께 꿈쩍도 않는 루난의 모습.
그 사실에도 당황하지 않고 허리를 붙잡지만,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흑기사는 고정된 상태로 움직이지 않는다.
"...안쓰럽군."
퍼억!
"커억!"
"안톤!"
그대로 검 면으로 후려쳐 멀리 날려버리는 루난.
테란의 바로 옆 성벽에 강하게 처박힌 안톤을 보며, 그녀는 분노한 눈동자로 그를 노려본다.
"마도사, 대마도사라... 지금 같은 시기에도 대마도사 경지에 오르다니, 썩 아까운 재능인데."
"왜... 왜 이런 거예요! 여기는 당신의 마을이기도 하잖아! 당신들이 세웠던 마을이잖아!"
2대 용사 레닌. 현 마왕군 사천왕 루난.
퍼스트 마을을 만든 무지개색 마도사, 프렌의 연인이자 마왕과 동귀어진했던 대영웅.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퍼스트 마을에 존재하지 않았다.
"일단은 계약으로 묶여있는 몸이라서 말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당신이라면, 그런 계약 따위 무시할 수 있잖아..."
"마왕과의 계약은 그렇게 어설프지 않아, 꼬마."
그렇게 말하며 그는 무심하게 대검을 들어 올린다.
명백하게 방어 결계를 깨부수기 위한 일격에 눈을 질끈 감는 센.
그 순간이었다.
"안타깝게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흠?!"
화륵!
흑염이 그의 몸을 강타한다.
범상치 않은 공격에 대검으로 막아내지만, 온몸이 타오르는 걸 깨닫는 루난.
마력을 폭발시켜 화염을 떨쳐내자, 검은 화염은 주변 언데드들을 태우며 증식하기 시작한다.
"네 놈은..."
"안녕하신가요, 마왕군 사천왕 루난. 저는 렌. 마스터, 스노우 님의 명에 따라 북쪽은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죽어주시길."
그렇게 말하는 렌의 등 뒤로 무수한 검은 화염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생명체를 불태우면서 절대로 꺼지지 않는 마계의 화염들.
한 개인이 소환했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화염을 보며, 루난의 안광이 붉어진다.
"마왕...인가?"
"그런 허명 따위, 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루난에게로 집중되는 검은 화염.
그렇게 전투가 시작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