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마법 소녀는 배드 엔딩을 타파해야 해!
* * *
다음 날.
눈을 비비적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눈에 달려있던 미래시가 멋대로 반응해서 미래를 보여준다.
음... 세르칸이 다시 변신할 수 있게 됐구나...
[주인! 이제 다시 변할 수 있다고!]
"응..."
[오늘따라 유난히 피곤해보이는구만?]
"그러게..."
이상한 꿈이라도 꾼 건지, 묘하게 피곤한 몸을 이리저리 비튼다.
...어제 왠지 뭉친 게 풀리는 느낌이라 생각했었는데, 정말로 풀리긴 풀린 건지 통증조차 없다.
"으응..."
더 잘까.
어차피 일어났다고 할 일이 있는 건 아니니까, 잠이라도 더 자야...
삐이이이이이이이익!
"..."
잠을 확 깨우는 호루라기와 같은 소리에 나는 인상을 찌푸린다.
소리에 놀라서 파이렌과 유레하까지 깨어난 모양.
뭔가 싶어 저공비행으로 흐느적거리면서 밖으로 나서자, 굉장히 서두르며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
모예요, 비상 상황이라도 돼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느끼곤 쌍둥이을 바라보자, 그녀들도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흐느적거리던 걸 멈추고 마법 소녀 폼으로 변신, 고속으로 밖으로 나서자, 광장에 우르르 몰려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마을이 얼마나 크길래 저렇게 사람이 많아?
마을 크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사람이 몰려 있다는 걸 깨닫고, 나는 그쪽으로 날아간다.
나무로 된 단상 위에 서 있는 건, 어제 봤던 루크.
관리인이라더니, 관리인 정도가 아니라 마을 회장쯤 되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오늘, 마왕군이 총공세로 쳐들어올 예정입니다. 다들 본인 무장을 전부 가지고 확실하게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마왕군이 총공세로 온다고...?"
"이 마을은 용사들이 있어서 공격하기 힘들어서 공격받지 않았잖아? 어째서...?"
"그보다 애초에 마왕도 사천왕도 전부 이 마을 출신이잖아! 어떻게 이럴 수..."
"조용."
루크의 단호한 말에 소리가 멈춘다.
...방금 그건 고유 능력일까?
순간적으로 사방에 퍼져 나간 달의 마력이 웅성거림을 침묵시키고, 그의 말을 집중하게 한다.
"이번에 쳐들어오는 적은 마왕을 제외한 마왕군 전체. 사실상 이번 공격만 막는다면... 우리는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루크가 이제야 도착해 착지 중인 나에게 말했다.
"여기 다른 세계의 영웅이 있습니다. 그녀라면 분명 마왕인 파르시를 구해... 아니, 물리칠 수 있겠죠. 이번 공격을 막아내고, 마왕 성으로 직접 공격 갈 예정입니다."
"...미래를 보는 네 눈에는 그게 가장 합리적으로 여겨졌구나."
"...지금은 공격인 자리니까, 존댓말이라도 해주면 안 되겠냐."
내가 평범하게 말하자, 그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다.
...존댓말을 몇 번 써본 적은 있지만,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다 해야 할지, 안 어울리는 옷을 입은 느낌이 강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흠흠, 이 소녀들은 이미 다른 세계를 구하고 온 전적이 있고, 이 세계 역시 구하기 위해 온 소녀입니다. 실제로 우리 세계를 구해줄 거라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해줄 수 있죠?"
"원한다면."
"마법 소녀는 사람들을 구하는 게 일인걸."
"물론이에요☆"
그의 말에 담담하게 답하자, 쌍둥이 역시 내 답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 행동에 루크가 말을 이으려는 순간.
쿠르르릉...
끔찍한 마력이 하늘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결계 파괴 마법진."
하늘에 새겨지는 보랏빛 마법진을 보며, 나는 조용히 중얼거린다.
상황을 예상한 듯 말을 멈추면서 하늘을 바라보는 루크.
잠시 후,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우리, 퍼스트 마을에서 태어난... 사천왕이 도착한 모양이군요. 모두, 본 위치로 돌아가 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마을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지기 시작한다.
동서남북.
모든 위치에 알 수 없는 마력이 피어오르는 게 느껴진다.
북쪽은 루난.
동쪽은 레이야.
서쪽과 남쪽은 세레스와 에리카...겠지.
마왕군 사천왕은 평범한 사람들로는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전력을 나눠야겠지.
"세르칸, 아린이를 불러줘."
[그래, 그러자고.]
그렇기에 또다른 수호자를 불러낸다.
세르칸의 한 편에 잠들어 있는 별의 마나를 가진 수호자.
세르칸의 형상이 변하며, 은발에 적안을 가진 마도사를 불러낸다.
등에서 휘날리는 망토.
그 망토와 함께 멋스럽게 휘날리는 머리칼.
새하얀 정장 같지만, 활동하기 편하도록 달라붙지 않는 정장 상의와 넓은 폭의 치마.
치마가 무릎 아래까지 떨어지고 나서야 그녀는 세르칸의 검 형상으로 만들어 손에 쥔다.
"우와, 마법 소녀 폼 현실에선 너무 오랜만인데..."
"나오자마자 감상이 그거구나."
"후후~ 뭐 어때. 아무튼, 제법 위험한 애들이 잔뜩이네? 한쪽을 내가 맡으면 돼?"
"응."
"스, 스노우 님? 저 사람은...?"
"내 전용 무기 전대 주인. 무기 안에 봉인돼있었어."
"우와..."
"무, 무서운 사람이에요☆"
아린이의 힘을 느끼기라도 한 건지, 유레하가 섬뜩하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러자 싱긋하고 웃어주는 아린이.
그 모습에 힉. 하고 파이렌의 뒤에 숨어버리자, 그녀가 말했다.
"나 미움받을 짓 했던가...?"
"아니, 아무튼 동쪽을 부탁해. 거기에 시간 마법사가 있어."
"아하 시간 마법 쓰는 아이면 보통 사람들은 힘들지. 응응, 알겠어."
"파이렌, 유레하. 너희는..."
"가능하면 서쪽으로 보내줬으면 하는데. 서쪽 병력한테 저 자매는 재앙에 가까울 테니까."
"...서쪽은 누군데?"
"에리카다. 디스펠 에로우만 잘 피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지."
"응."
마법을 캔슬하는 화살을 날린다고 했던가.
제법 무섭지만, 루크의 판단을 믿어보기로 하자.
"그럼 두 사람은 서쪽을 맡아줘."
"응!"
"네, 주인님☆"
내 말에 두 사람이 날아가고, 남은 건 북쪽과 남쪽.
렌까지 보내면 충분히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지만, 아린&렌 두 사람의 마력을 커버하면서 싸우는 건... 나라도 힘들 테지.
[그렇습니다.]
렌의 확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남은 건 북쪽이나 남쪽인데...
"북쪽은 윈 님과 남은 영웅이 맡을 거다. 루난이 워낙 귀찮으니까."
"그럼 난 남쪽...?"
"그래, 위치 고정으로 허공을 뛰어다니는 애가 적일 테니, 주의하도록."
"응."
그럼 남쪽이 세레스라는 아이.
이번대 용사였던 아이라고 들었다.
분명 강하겠지.
"그래도 상관없어."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전투는 꼭 필요한 전투.
사천왕을 치우고 마왕과 싸울 유일한 기회인 만큼, 확실하게 이겨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천천히 날아올랐다.
퍼스트 마을의 경계 북쪽.
하늘에 떠오른 보랏빛 마법진을 데스나이트 킹, 루난이 바라본다.
바위를 밟은 채로 대검을 어깨에 걸치고 유심히 바라보는 모습.
그런 그의 뒤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언데드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언데드 군단, 50만 명 전부 준비 완료됐습니다."
"음."
집사복을 입은 한 악마가 말하자, 그는 가볍게 답하곤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이윽고 결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대검을 그대로 쾅. 하고 앞으로 내리친 루난이 소리쳤다.
"전군! 인류의 마지막 마을, 퍼스트 마을로 진격이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크워어어어어어!
와아아아아아!
각종 몬스터들의 언데드가 소리치고, 이어서 인간형 언데드들 역시 소리친다.
잠시 후.
안전히 결계가 깨지는 순간, 모든 언데드들이 진격하기 시작했다.
"불태우고 있네."
결계가 깨지는 걸 보며 레이야가 무표정하게 중얼거린다.
빗자루를 타고 날고 있는 그녀의 뒤로 떠있는 무수한 마녀들.
생전 여성 마도사였던 그녀들은 조금은 싱숭맹숭한 표정으로 퍼스트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레이야 씨. 그래도 우리 마을인데, 역시..."
"우리 마을은 마녀의 쉼터뿐이야. 잊지 마."
"그건 그렇지만..."
영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보이면서도 마녀들은 허공에 거대한 마법진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마나의 지배자인 그녀조차 혼자 만들어내지 못하는 대 마법진.
적의 병력을 확실하게 줄일 절대 마법이 그녀들의 손에서 준비되고 있었다.
"어차피 저쪽에 마나의 지배자라고 해봐야, 이계의 지원군뿐이야. 분명 막아내지 못하겠지."
"...살아남은 용사들도 있잖아."
"지금 퍼스트 마을에 살아있는 용사는 윈, 루크, 테란뿐이야. 마도사 용사들은 마을 밖에서 연구하다가 다들 수명 다해서 죽었어."
"자세히 아네."
"용사 파티라면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책이 매일 갱신되니까."
그렇게 말하며 용사 정보 집을 꺼내는 레이야.
그러자 마녀들은 어이없다는 것처럼 헛웃음을 보이고, 이내 마법진이 거의 완성됐을 때 레이야가 말했다.
"지금부터는 마녀의 시간이야. 너희들에게 힘이 없다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도록 하렴."
"힘이 있다면, 사라지지 않아도 되는 거지?"
마법진이 완성된 순간.
레이야는 자신에게 날아든 깔끔한 일섬에 눈을 감는다.
머리가 하늘로 날아오르지만, 공포조차 느끼지 않는 모습.
기습에 다른 마녀들이 전부 경악하지만, 허공에 떠오른 그녀의 머리는 여전히 담담하게 입을 연다.
"메테오 스웜."
"칫...!"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무수한 유성우.
퍼스트 마을을 조준하고 떨어지는 유성우에 눈앞에 나타난 마법 소녀, 아린... 아니, '유미카와 유우지'는 눈을 무지개색으로 빛낸다.
"세르칸! 마법 반사경이야!"
"오케이!"
그 거대 마법진에 맞춰 유우지는 손가락을 물어뜯고 피를 휘날린다.
적은 피가 마치 슬라임처럼 양산되기 시작하더니 나타나는 하나의 붉은 마법진.
그에 맞춰 그녀의 등 뒤에 나타난 세르칸이 푸른 마법진을 만들어내고, 두 마법진이 융합되며 거대한 마법진을 탄생시킨다.
"매직 리플렉터!"
동시에 퍼스트 마을 상공을 그대로 뒤덮는 거대한 거울과 같은 반사 마법.
메테오 스웜이 자기들끼리 부딪히며 터져나가기 시작하자, 레이야는 적대적인 눈빛으로 눈앞의 소녀를 노려본다.
"순백의 마법 소녀, '유미카와 사쿠라' 등장! 잘 부탁해? 악당 씨!"
"...제법 재밌는 짓을 하네."
그렇게 마녀들과 아린의 전투가 시작됐다.
"...이래도 되는 걸까요."
은색 단발에 회색 눈동자를 가진 소녀가 씁쓸한 표정으로 마을을 바라본다.
손에 잡힌 건, 세계수의 축복을 받은 가지로 만든 활.
몸에는 궁사 특유의 녹색 스카프에 가죽 갑옷을 입고, 어느 지형에서도 움직이기 편한 검은 부츠를 신고 있는 소녀.
그녀의 뒤에는 무수한 숫자의 수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인부대 10만, 전투 준비 완료."
"...알겠어요, 곧바로 준비하죠."
이미 활시위는 떠난 상황이었기에 그녀는 냉철한 표정으로 앞으로 활을 겨눈다.
초장거리 저격.
목표는... 지휘관인 루크.
그녀의 시위가 당겨지자, 수인들 역시 전투 준비를 시작한다.
아직까지 확실하게 망설임을 떨쳐내지 못한 듯 흔들리는 활.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그녀의 시위가 놓아지는 순간, 그 화살에 무언가 맞고 폭발을 일으킨다.
"...전군, 전투 준비하시길."
하늘에 떠오른 붉은 마도사와 녹색 마도사를 보며, 에리카는 차갑게 입을 연다.
그러자 으르르... 하면서 손톱과 이빨을 세우는 수인들.
잠시 후, 두 마법 소녀는 마법을 손에 담으면서 소리쳤다.
"저는 풍령의 마법 소녀, 유레하☆"
"나, 나는 화령의 마법 소녀, 파이렌!"
""우리는 마법 소녀이자 정령""
""우리는 주인을 지키는 정령""
""정의로운 인류의 수호자로서 너희를 용서하지 않겠어.""
두 사람이 동시에 말하며 합동 마법이 시전되자, 에리카는 차분히 활시위를 담긴다.
그 화살에 담기는 건, 녹색 마력.
바람의 마력에 가까운 기운이란 걸 깨달은 유레하가 무언가 말하기 전에 활시위가 마법을 꿰뚫고 지나간다!
"나는 세계 최고의 헌터, 에리카. 너희들이 정의라면..."
그 말과 함께 시위를 당기는 에리카.
그 시위에는 한 발이 아닌 다발의 화살에 녹색 빛이 감기기 시작한다.
"우리를, 여기서 막아내 봐."
파앙!
활시위가 떠나고, 전투가 시작됐다.
"루크 아저씨 정정하기도 하지... 에휴,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는데."
바다와 같은 푸른 머리칼을 허리까지 기르고, 희미하게 흰색이 섞인 푸른 눈동자가 마을을 바라본다.
그 손에 잡힌 건, 마기로 오염되어 마검화가 완료된 성검.
데스나이트임에도 플레이트 메일이 아닌 드레스형 갑주를 입은 소녀가 장난기 가득 찬 눈동자로 마을을 바라본다.
그런 그녀의 뒤로 보이는 건, 각종 몬스터&마족들로 구성된 마왕군.
마검을 가볍게 한 번 털어내자, 주변 공기가 진동하듯 일렁인다.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용사 아저씨들 실력 좀 보면 되지! 어차피 다들 살아날 테니까!"
"세레스 님, 마족 연합군 30만, 전투 준비 완료됐습니다."
"그래? 그럼 나도 루난 아저씨처럼..."
"스타더스트 스트라이크."
웃으면서 진군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그녀가 있던 자리에 별의 마력이 떨어져 내린다.
기습적인 공격에도 당연하단 것처럼 능숙하게 마검을 휘둘러 마법을 최소한으로 막아내는 모습.
잠시 후 마법이 끝나자, 허공에 떠오른 은발의 소녀, 스노우가 말했다.
"네가 세레스구나."
"아하~ 이쪽으로 왔구나? 네가 이계의 영웅이지? 별 무리? 라고 했던가?"
"별 무리의 마법 소녀, 스노우."
"아, 그런 이름이었어!"
스노우의 말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세레스.
잠시 대치하며 서로 바라본 두 사람의 행동에 마족들이 긴장하기 시작하자, 스노우가 말했다.
"성격 알 거 같은데, 일기토 할 생각은 있어."
"개인적으로 왔으면 그랬겠는데, 무리겠네."
"그럼... 어쩔 수 없네."
그녀의 말과 동시에 땅에 노란빛의 마력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마치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퍼져 나가는 마력에 긴장하며 그걸 바라보는 마족들.
잠시 후, 그 영역에서 빛의 짐승들이 끝도 없이 튀어나오기 시작하자, 세레스가 허공을 밟고 스노우에게로 도약하기 시작한다!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우와, 사랑과 정의래! 아주 틀린 말은 아니네!"
"별무리의 마법 소녀, 스노우. 여기에 등장."
그렇게 남쪽의 전투도 시작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