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마법 소녀는 배드 엔딩을 타파해야 해!
* * *
다음 날 아침.
신전에서 가져다준 갓 구운 빵 따뜻한 수프를 마시고 멍하니 앉아있을 때, 한 방문객이 찾아왔다.
"계십니까."
"들어오셔도 돼요!"
내가 문쪽을 바라보자, 파이렌이 먼저 답한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건, 평범한 농부의 옷을 입은 중년 남자.
하지만 내 눈에 담긴 건, 처음 보는 마력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었다.
일반인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숨겨진 마력은 내 눈을 피하지 못한다.
...우리 세계에선 본 적 없는 속성인데, 렌? 알아?
[달의 마력이군요. 관찰자입니다.]
"관찰자."
"...흐음, 바로 알아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만."
잘 정돈되지 않은 턱수염을 긁으며 말하는 모습에서 어쩐지 귀찮음이 묻어난다.
본인이 원해서 온 자리는 아니라는 의미겠지.
"관찰자가 뭔가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측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 관찰자는 틀어박혀 있다고 들었어. 무슨 일이야."
"이거이거, 처음 보는 아가씨가 반말...이라기엔 나름대로 대영웅이구만? 그럼 나도 딱딱하게 안 한다?"
그렇게 말을 가볍게 놓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딱히 평소에 존댓말 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그쪽이 친숙하다.
"그래그래~ 이 아저씨는 영 예의 차리는 게 서툴러서 말야."
"아저씨인 게 자랑인가요☆?"
"뼈아픈 소릴 하는 아가씨구만? 뭐, 좋아. 덕분에 내가 살 수 있을 테니... "
"산다니, 무슨 말이에요?"
파이렌의 질문에 남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관찰자...라고 해도 못 알아먹겠지? 이 마을 관리진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돼~ 루케시아 어쩌고라는 이름인데, 대충 루크라고 불러라."
자기 이름을 루케시아 어쩌고라고 소개하는 사람은 또 처음 보네.
아무튼 관찰자이자 관리인이라면 제법 높은 직급.
무슨 일로 온 걸까.
"여기 원래 멸망할 운명이었지, 아가씨?"
나를 정확하게 바라보며 말하는 루크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실제로 멸망할 세계라고 확실하게 결정된 곳에 떨어진 거니까.
알아챈 걸 보니, 정말로 관찰자인 모양이다.
"아가씨들은... 흐음, 그렇구만. 다른 세계 사람에... 오, 멸망할 세계를 구하라는 미션을 받았군. 여러 세계를 돌겠어?"
"..."
"흠... 흐음? 다른 두 아가씨는 어느 정도 보이는데, 은발 아가씨는 잘 안 보이는구만. 아가씨, 혹시 본인..."
"그만."
"어이쿠, 말하면 안 되는 내용인가? 알겠다고."
내 정체까지 까발리려는 루크의 말을 차단하자, 쌍둥이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본다.
내가 눈을 감고 고개를 젓자 알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모든 걸 설명하는 건, 나중에 할 일이다.
"다 끝나고, 어차피 알릴 생각이야."
"그래? 흐음~ 그렇구만? 아무튼, 미리 고맙다고 해둘게. 너희가 실수만 안 하면, 세계는 멀쩡히 굴러갈 테니까."
"응."
아무래도 우리가 성공하는 미래를 관측한 모양이다.
그 이후까지 관측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이 세계 사람들이 할 일.
적어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니니까.
"마왕성에 들어가면, 루난이랑 에리카는 피하라고? 보인 건 그거뿐이니까."
"두 사람은 피해야 하는 거야."
"음... 차라리 급습해서 마왕만 잡는 게 확률 제일 높아 보이긴 한데, 내 관할은 아니니까.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파이렌의 침대에 풀썩 앉는 루크.
자연스러운 행동에 파이렌은 그 옆에 앉아서 멀뚱히 그를 바라보고, 유레하가 말했다.
"우와, 엄청 뻔뻔한 사람이네요☆"
"자주 들어."
"그래서, 당신은 뭐하러 온 거죠?"
어느 새 요정화로 내 어깨에 앉은 렌이 묻자, 루크가 말했다.
"오, 이거 귀하신 분이 오셨군. 이야, 여기가 아니라 진..."
"그 이상 발언하면, 목숨을 보장할 순 없군요."
"이 친구들은 왜 이렇게 비밀이 많으실까? 알겠다고."
"렌."
"...네, 마스터."
"진마계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어."
"..."
"나중에 말해줘."
"네..."
내 말에 그 즉시 루크의 옷에 화염이 들러붙지만, 어느새 조끼를 벗어 던진 그를 보며 조끼에 붙은 불을 회수한다.
...역시 진마계라는 곳 출신이라고 이야기하려 한 모양이다.
"하하, 이거, 내가 너무 나댔구만? 좋아좋아, 용건을 말하지."
"응."
"파르시를 구했으면 한다."
"ㅡ."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거두고 진지하게 말하는 그와 시선을 마주한다.
파르시를 구했으면 좋겠다... 인가.
진심으로 우리가 그걸 들어줄 거로 생각하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마왕을 물리치지 않으면, 우리는 이 세계에서 나갈 수 없다.
그는 우리에게 이 세계에서 나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은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가능해. 가능하고말고. 나는 관측하는 사람이야. 과거, 미래, 현재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지. 말할 수 있는 부분은 한정되어 있지만 말야."
"...미래 중에 구해내고 우리가 떠나는 미래가 있어?"
"그럼, 그래서 하는 말이라고?"
파이렌의 질문에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다가도 얌전히 쓰다듬받는다.
나때와는 다르게 머리를 정리하는 모습이지만, 어쩐지 조금 불쾌감이 드는데.
"너한테 파이렌은 못 줘."
"뺏어갈 생각 없다고?"
"마스터♡ 저는 마스터한테만 받을 거예요♥!"
"나도 스노우 님이 더 좋아."
"...응."
"어라, 미움받았나~ 뭐, 좋아. 아무튼, 너희는 모두를 구하고, 떠날 수 있어. 그렇기에 마법 소녀지. 그렇지?"
"..."
거기서 마법 소녀를 꼬집으면서 말하면, 더는 할 말이 없다.
우리에게 사람을 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다만... 구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너는 어떻게든 구해낸다고? 믿어봐."
"...응, 일단 해볼게."
"좋은 선택이야! 이야~ 한시름 놓았..."
"저와 볼일이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만."
루크가 그렇게 말하면서 나가려고 하자, 어느새 실체화한 렌이 입구를 막는다.
그걸 보며 식은땀을 삐질 흘리는 남자.
어쩐지 나한테 도움을 구하는 시선을 보내지만, 무표정하게 그걸 바라볼 뿐이었다.
"어이... 진짜냐고, 아가씨. 내가 끌려가면 최소 사망..."
"그 정도는 아니니까, 엄살 부리지 마시길."
"제엔장!"
창문으로 재빨리 이동하려 하지만, 마법 소녀 기준으로도 하품 나오는 속도.
세계를 볼 수 있는 미래시가 있어도 신체 스펙이 저래서야 아무것도 할 수 없다.
ㅡ스노우는 아직 예지 능력자 같은 건 못 만났나 봐? 미래 예지도 엄연히 마법의 영역이라구? 보자보자... 오, 예지안이 아니라 다른 눈을 가지고 있구나? 그럼 어쩔 수 없지.
"...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설이의 말에 나는 그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러자 눈에서 희미하게 푸른 빛을 내는 루크.
잠시 후, 그는 눈을 크게 뜨면서 소리쳤다.
"아니, 아저씨 밥줄 이거밖에 없는데!?"
"...이런 거구나."
순환시가 변화한다.
아니, 다른가.
ㅡ순환시를 켜지 않았을 때만 발동하고 있다.
방금 익힌 '마법'을 눈에 담는다.
보는 건, 루크가 경험할 과거.
앞으로 봤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슬쩍 시선을 위로 올리자, 루크의 눈이 나를 마주한다.
"아쉽지만, 관찰자를 관측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아가씨."
"스노우 님, 저 사람 능력 익힌 거야?"
"응."
"역시 주인님♥"
"음음, 그래도 격이 낮군. 단기 예지 정도인가? 전투에는 쓸만한 능력이겠지!"
"...그래."
순환시를 가지고 있어선지, 제대로 복사되진 않은 모양.
그래도 눈앞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잔상처럼 읽힌다.
정확히 1초 정도의 미래가 겹쳐 보이는 모습.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걸 느끼며, 미래시를 해제한다.
"...전투 땐 순환시가 더 나아."
"그건 그렇겠구만? 이야, 모든 마력을 보는 눈이라니... 파르시 마력안의 진화 버전인가~?"
"..."
"뭐, 열심히 해보라고. 아가씨."
그렇게 말하며 렌한테 붙잡힌 루크가 어딘가로 질질 끌려간다.
단기 미래 예지에 마력을 더 불어넣자, 보이는 건 신전 뒤에서 얌전히 이야기하는 모습.
...문제는 없겠네.
그렇게 방문은 여러 가지 의미로 마무리되었다.
"시간 마법을 썼다고...?"
"아무래도 여신이 제대로 뽑은 거 같네."
"...그럴 리가 없어. 여신의 힘은 고갈된 지 오래란 말야. 그래서, 그래서... 난 되돌아가지 못했어."
레이야의 말에 파르시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한다.
여신의 힘은 고갈된 지 오래.
남아있었다면 마지막 마을만이 남기 전에 용사를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그녀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럼 그건 뭘까. 지칭이 '마법 소녀'라던데."
"마법 소녀...? 처음 듣는데..."
"빨강 꽃과 초록 종도 마법 소녀. 하지만 은방울이 가장 강했어. 그리고... 호위하는 마족도."
"마족? 마족이 호위하고 있다고?"
"격이 마왕급이던데, 뭐하는 녀석일까."
무표정하면서도 진심을 담은 것처럼,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말하는 레이야.
그러자 구석 의자에 앉아 잠자코 있던 루난이 입을 열었다.
"그건 아마 도플갱어 퀸일 거다."
"...도플갱어 퀸? 세실?"
"음... 그 녀석과는 차원이 다르더군. 폭렬검으로 어떻게든 뚫어냈다만, 신성력을 사용했다."
"신성력이랑 마기를 같이 썼다. 라는 이야기네."
"..."
레이야의 말에 파르시의 눈이 떨려온다.
그녀가 아는 도플갱어 퀸의 능력은 기억을 전부 복사하고, 힘을 절반 정도 복사하는 능력.
ㅡ어쩌면, 소녀에겐 유일한 기회일 지도 모른다.
"가짜라도... 괜찮아. 신성력과 마기를 같이 쓸 수 있다면, 조건은 충족하잖아...?"
"...이런, 이상한 소릴 해버린 게 문제잖나."
"애초에 루난이 신성력 이야길 안 했으면 문제 없었어."
"그래, 그렇지... 기억을 그대로 가진 오빠야라면, 문제없잖아? 나는 오빠야의 모든 걸 봤으니까. 언제나 오빠야랑 있었으니까..."
"애정 98% 봉인은 그대로 유지 중인 거 아니었나?"
"...이젠 봉인만으로 안 되는 거야."
언데드임에도 서서히 광기에 빠져드는 마왕에 한숨을 쉬는 두 마족.
그들의 반응이 그렇든 말든, 마왕인 그녀는 서서히 완전히 얼어붙은 한 주교의 시체를 껴안으면서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육체가 있으니까, 기억을 뽑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인간에겐 뇌가 있으니까, 영혼이 없어도 기억이 남았을지도 몰라. 도플갱어 퀸에게 흡수시켜서... 흡수시켜서 오빠야를 대신하면 돼...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어... 세실이 없어서 생각하지 못했던 거야...!"
"..."
"전 마왕군에게 명한다."
혼자 얼음을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리던 마왕이 온 사방에 마기를 흩뿌린다.
무수한 마왕군 전체에 통신 마법을 거는 말도 안 되는 재능.
심지어 마기 소모까지 평범하게 감당하고도 마기가 남아도는 소녀의 모습에 루난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이번엔 사천왕 전체가 한 번에 가겠군, 레이야."
"이길 수 있겠어."
"음... 뭐, 혼자선 힘들다만 사천왕 전체가 덤빌 테지. 당연히 이길 수 있다."
그렇게 말하며 대검을 어깨에 걸친다.
그 모습에 가볍게 허공에 이동 마법진을 그려내는 레이야.
잠시 후, 모든 마왕군에게 마왕의 명령이 떨어진다.
"별무리의 마법 소녀라고 자칭하는 마나의 지배자, '스노우'가 가진 도플갱어 퀸을 뺏어와. 지금 당장!"
그렇게 전쟁이 시작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