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마법 소녀는 배드 엔딩을 타파해야 해!
* * *
먼저 움직이는 건, 렌.
자연스럽게 드레스로 옷을 되돌린 렌이 검은 번개를 날리자, 레이야는 보랏빛 번개로 그걸 반격한다.
거의 동시에 발동한 마법이 중앙에서 부딪히자 그대로 펑. 하고 폭발을 일으키는 모습.
그걸 본 렌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막았군요."
"너야말로 상쇄했네. 제법..."
"...그럼 이건 어떤가요."
"너야말로 이건 어때."
렌이 지옥불을 꺼내 쏘아내자, 레이야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번개 구슬을 소환한다.
그리고 순간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
ㅡ눈에 무언가가 읽혀서 그대로 마법을 이해한다.
"타임 스톱."
읽은 마법을 그대로 발동하자, 레이야의 눈에 당황이 깃든다.
뭐야, 이 사람도 시간 마법 쓰네.
회색으로 변한 세계에서 레이야와 나는 서로를 바라본다.
번개 구슬 다발을 미리 만들어내고 있던 그녀에게 슈팅 스타를 시전하지만, 서로 허공에 정지한 모습.
번개 구슬이 어디로 날아갈지 예측해낸다.
모든 경로를 틀어막을 숫자의 슈팅 스타를 허공에 띄운다.
"...이건 생각 못했는걸."
그걸 보고 곧바로 빗자루로 바닥을 한 번 쓸어내는 레이야.
그리고...
콰과과과광!
허공에서 번개와 빛의 탄막, 지옥불이 연쇄작용을 일으키면서 부딪힌다!
"...? 시간 마법인가 보군요."
사라진 레이야와 어느새 나타난 무수한 탄막이 부딪히자, 렌은 담담히 상황을 파악하는 데 성공한다.
빗자루 쓰는 행동이 전이 마법 발동 조건이었나 보네.
사천왕을 만난 것치곤, 싱겁게 끝나버렸다.
"시간 마법을 복사하셨습니까?"
"응, 이제 시간 계열도 싸울 수 있겠네."
"좋은 소식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잠든 사람들에게 손을 뻗는 렌.
그러자 주변에 퍼지려고 하던 지옥불과 사람들에게서 뭔가 가루 같은 게 동시에 손으로 모이고, 그녀는 그걸 흡수하듯 쥐는 걸로 마법을 제거한다.
...흐응, 마나 드레인의 응용이구나.
참고가 된다.
"...마스터의 눈은 무서울 때가 많군요."
"조건 없이 기술이 뺏기니까?"
"네."
그렇게 말하곤 다시 드레스를 없애는 렌의 모습.
그대로 알몸이 되는 걸 본 순간, 나는 시선을 피하며 마법 소녀 폼을 해제한다.
...아, 그러고 보니 전부 다 천이 녹았었지.
그런 마음 편한 생각을 하며마법 소녀 폼을 해제하자, 사람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깨어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게 머선129... 음?"
"뭐야... 갑자기 왜 잠든 거야..."
"피곤해요오...☆"
"으으음... 잠들어버렸...?"
마법 소녀 폼이 해제한 순간, 임시로 만들어둔 옷까지 전부 사라지는 모습.
지금 온천에 있는 사람은 전부 나체인 상태가 된다.
물론 전부 여자라서 나 빼곤 다 문제없...?
"어... 어...?!"
"왜 그래 안...?"
"잠깐, 일단 진정하지. 나도 지금 무슨 상황인지..."
"꺄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앙!
순식간에 메모라이즈 된 스킬을 안톤에게 꼬라박는 센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잠시 사고가 있던 이후.
다시 신전으로 돌아가는 길의 안톤은 이미 온몸이 멍으로 무장된 무언가로 변해있었다.
...유레하랑 센이 날뛰어서 맞은 것치곤, 굉장히 양호하다.
"크, 크흠... 거, 너무 한 거 아니냐? 불가항력이었다고."
"여성진 전체 알몸을 봐놓고, 뻔뻔하네요★ 죽일까요☆"
"아니, 미안하다..."
담담하게 서있던 나와 다르게 유레하와 센은 안톤을 죽일 기세로 마법을 날리기 시작했지만, 내 조율로 간신히 안톤을 살리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불가항력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센이랑 유레하한테 계속 혼나는 건... 뭐, 기분의 문제니까. 안톤도 눈 호강은 했을 테니 불만은 없겠지.
"스노우는 부끄럽지 않아? 감싸주는 게 혹시..."
"...연애할 상황은 아니야. 좋아하는 것도 아냐. 불가항력인 건, 맞으니까."
"그, 그래? 의외네..."
"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니까."
내가 무표정하게 말하자, 센은 머쓱한 표정을 지음 더는 안톤을 매도하지 않는다.
...남자한테 몸 좀 보인다고 닳는 것도 아니니까.
[그 정도 수치심은 여자로서는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건 그렇지만 나는 남자잖아?
[여자입니다.]
"..."
아무래도 렌은 내 성 정체성을 여자로 바꾸고 싶은 모양이다.
아니, 어차피 모든 게 끝나면 원래 몸으로 돌아갈 건데...
[원래의 스노우는 여자아이니까, 본인 것이 아닌 건 소중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일 리가 있어."
"뭐가, 스노우 님?"
"아무것도 아냐."
파이렌의 말에 고개를 저은 후 나는 아까 배운 시간 마법을 건드려본다.
푸른 시계 마법진이 펼쳐지면서 점점 회색으로 물들어가는 세계.
마법진을 되돌리자, 다시 세계는 원래 색을 되찾는다.
...루루가 쓴 거랑 다른 게 있나?
[고유 마법이냐 아니냐의 차이겠죠. 마력 소모량, 유지 시간, 사용 범위가 전부 다릅니다.]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곤 하늘을 바라보자, 별무리가 하늘에 가득하다.
아포칼립스처럼 밤에 빛이 없어서겠지.
해봤자 횃불밖에 없는 이곳에도 별은 하늘에 가득하다.
...그러고 보면, 별의 마나는 왜 수호의 마력인 거지?
방패라든지, 태양이라든지 그런 것도 있는데...
[그걸 말하자면, 제법 오래전으로 돌아갑니다만.]
"..."
그건 방에서 듣기로 하자.
모두가 잠든 밤.
나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기 위해...
[할머니 아닙니다. 마스터.]
네.
살기에 가까운 기운을 나에게만 쏘아낸 렌이 기운을 거두면서 말했다.
[별의 마나, 태양의 마나, 달의 마나... 각가 수호, 희망, 예지의 마나라고 불리는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희망이면 루루도?
[루루는 빛의 마나, 태양의 마나가 섞인 융합 속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죠. 추가로 지저의 마나라고 불리는 게 섞이긴 했습니다만,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왔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렌이 말을 이었다.
[최초의 발생지가 어딘지는 저희도 확실하겐 알지 못합니다. 무수한 세계가 있고, 그 세계 여러 곳에서 발생한 마력들이죠.]
"..."
[현천계의 신이라면 알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물어볼 방법이 없으니 넘어가기로 하죠. 어찌 됐건, 방금 말한 총 4개의 마나는 각 세계에 정확히 4명의 주인을 얻게 됩니다.]
"...?"
[그리고 별의 마나는 수호자, 태양의 마나는 지휘자, 달의 마나는 관찰자, 파괴... 지저의 마나는 파괴자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지저의 마나와 땅의 마나는 다른 거야."
[네, 지저의 마나와 땅의 마나는 다른 종류입니다. 지저의 마나는 굳이 따지자면 지옥과 지상의 경계선에 있는 마나거든요.]
지상과 지옥의 경계선이라 회색인 건가?
렌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럼 우리 세계의 관찰자는... 아니, 관찰자는 뭐하는 사람이야."
[관찰자는 세계를 관조하는 사람입니다. 미래시와 천리안의 주인을 뜻하죠. 보통 관찰자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기록하는데 모든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이며, 아마 어디선가 혼자 틀어박혀서 기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구나."
[관찰자가 있는 지대는 어지간한 상황에선 안전지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전면에 나서지 않고, 미래를 예측해 위험을 전부 피하는 사람이니까요. 성남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구한 사람 중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국 왜 별의 마나가 수호자인 거야?
[그렇게 정해졌으니까요.]
"..."
[별의 마나를 가진 사람은 세상을 지키기 합당한 인품을 지니고 있고, 태양의 마나를 가진 사람은 세상을 이끌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좋은 방향으로 향하죠. 달의 마나를 가진 사람은 타인과 접촉을 배제하며 틀어박히는 경우가 많았고, 지저의 마나를 가진 자는 세계에 불만이 있거나, 실수든 어떻게든 세계를 파괴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뿐이었습니다.]
"그렇구나. 하지만 루루는..."
[지휘자이자 파괴자인 경우는 정말 특이 케이스입니다. 실제로 인품도 파괴자에 적합하지 않았죠. 2번째 수호자가 나타난 부작용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부작용 발생 원인은 아마도...]
말을 잇지 못하고 뜸 들이는 모습에 나는 렌을 꾹하고 누른다.
잘 들어 렌, 세상에서 짜증 나는 게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아마도 마스터 때문이겠죠.]
"나 때문..."
[수호자의 몸에 담긴 영혼이 뒤바뀐 탓일 겁니다. 다만, 뒤바뀐 영혼도 수호자의 적성이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 굴러간 케이스죠.]
"응."
[마스터를 '다른 세계의 수호자'라고 인식하게 됐을 겁니다. 그래서 이 세계엔 수호자와 파괴자 시스템이 아직 굴러가고 있지 않다고 세계가 판단하고, 새로운 수호자와 파괴자를 만들어낸 걸 테고요.]
"그렇구나."
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그녀의 말에 이상함을 느낀다.
...혹시나 싶어 묻는 거지만, 그럼 지금 이 세계의 상황은 어떻게 된 거야?
아무리 봐도 마왕은 파괴자에 가까운 존재다. 실제로 세계를 멸망시키고 있기도 하고.
그런 상황이라면 이 세계에도 수호자가 있어야 하는 게...
[이미 상황이 종료된 거겠죠.]
"상황이 종료..."
[수호자와 파괴자는 각각 다른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두 사람 전부 죽은 게 분명하죠.]
"그래..."
[현재 마왕은 용사 파티였던 사람. 마왕이 된 사유는 아마...]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야."
[...여신이 했던 말에 힌트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응."
여신이 나에게 전달해달라고 하던 말을 기억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이걸 전달하면 마왕이 더 난리 칠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뭐, 전달해달라고 했으니 전달할 뿐이다.
어차피 마법사는 나를 이길 수 없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 낭만적입니다만, 남을 희생시켜서까지 할 일이 아니군요.]
"응... 살리려는 사람이 수호자라는 모양이야."
[그렇습니까. 불가능한 도전에 가깝겠군요.]
"...불가능한 도전이구나."
[예, 수호자나 파괴자는 기본적으로 현천계나 진마계로 가게 되니까요.]
"거긴 어디야."
[저도 정확한 건 잘 모릅니다.]
"..."
[...언젠가 마스터도 가게 될만한 곳입니다. 대악당이나 대영웅급인 사람들이 보통 가게 되는 곳이죠.]
나는 영웅이 아냐.
딱 잘라 말하려고 하지만, 이때까지 해왔던 일이 양심이 찔려 차마 부정하진 못한다.
...원래 세계는 내가 나서지 않으면 멸망했겠지.
그저 의무를 다했을 뿐이지만, 결국 영웅처럼 행동했던 건 사실이니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희생시키는 것뿐이네."
희생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인류를 멸망시키고 있는 마왕을 잡는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있다면, 그걸 접게 만들어주는 것도 마법 소녀가 해야 할 일.
...정말 그럴까.
"구할 수 없는 걸까."
[구할 수 있냐 없냐로 따지면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세계는 이미 끝난 세계라는 거지."
[...네, 그리고 마스터가 받은 미션은 명확하니까요.]
마왕을 죽여라.
미션 내용을 달성하기 위해선, 그 아이를 구해선 안 된다.
게다가 구한다고 하더라도... 분명 그 아이는 용서받지 못하겠지.
자신의 희망을 위해서 죽인 생명이 너무 많았으니까.
"...차라리 몰랐으면, 마음은 편했겠네."
내가 미미하게 미소 지으면서 말했지만, 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