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마법 소녀는 배드 엔딩을 타파해야 해!
* * *
나중에 배울 시간 마법이 어찌 됐건, 지금 당장 배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당장 전투는 없고, 전투 처리는 마을 사람들이 전부 하고 있었다.
전 영주, 기사, 병사, 용병, 궁정 마도사, 서기관, 학자 등등...
인류 마지막 도시여서 유능한 분들이 전부 알아서 처리 중인 모양이다.
"그래서 아예 숲을 태워 버렸어요☆ 들어보니까 마계화? 라는 게 깔렸었는데, 깔끔하게 전부 타버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구나."
"문제는 나무 재활용이 쬐끔~ 힘들어졌다던데... 그건 어쩔 수 없죠? 희생자가 없는 게 어디에요!"
"응."
놀랍게도 부상자는 있지만, 전사자는 제로.
마력 유동을 느낀 지휘관이 천천히 범위 바깥으로 전선을 물렸고, 마법 범위 안에 있던 마물들만 전부 맞았다고 한다.
그걸 확실하게 확인한 유레하가 숲 방향으로 바람을 불게 하고, 그 덕분에 확정적 승리.
거의 괴멸했다고 한다.
"지옥불? 이었죠☆? 원래 그거 안 꺼지는 불이라고 들었던 거 같은데...☆"
"지옥불이긴 하지만, 마법이니까요. 회수 가능했습니다. 오히려 마력 자체는 증가한 채로 돌아왔죠. 마물은 마기 덩어리라서요."
"헤에~☆"
불태운 마물이 전부 마력으로 전환된 모양이다.
마법 쓰고 회수한 다음에 다시 그 이상 마력 회복까지? 개사기...
"마력 무한한테 듣고 싶진 않습니다."
"그 상태로도 들리는구나."
"무슨 이야기 하시는 건가요☆"
"렌은 내 생각을 읽으니까."
"앗!? 저도 그러고 싶은데♥"
실망할 텐데.
어차피 읽을 수 있는 건 렌 뿐이니까, 신경 쓰진 말자.
침대에 엎어진 상태로 말린 오징어처럼 축 늘어져 있자, 요정 상태인 렌이 내 볼을 콕콕 찌른다.
잠시 후 시체라는 것처럼 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유레하가 내 허리 위로 올라탄다.
...무겁진 않은데, 기분이 묘하다.
"제가 마사지 해드릴게요, 마.스.터♥"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딱 봐도 엄한 짓을 하려는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몸을 맡긴다.
등을 안마해주려는 건지, 양손으로 꾹꾹 누르기 시작하는 모습.
뭔가 기분이 묘한데... 그래도 확실히 제대로 안마하는 느낌이다.
바람의 마력까지 실어서 안마하는 모양인데...
"흐아아..."
여기저기 생각보다 굳어있던 건지, 바람의 마력이 스쳐 지나간 곳의 근육이 풀려간다.
간지러운 느낌과 시원한 느낌이 겹쳐 기분 좋은 상황.
조금씩 조금씩 위를 향하던 손이 어깨에 닿자, 가장 굳어있는 부분이 건드려진다.
"흐아...!?"
스노우가 마법 소녀긴 하지만, 원 육체의 스펙은 고등학교 2학년.
책상에 많이 앉아있던 사람은 어깨가 굳을 수밖에 없다.
...최근 검을 많이 썼는데도, 이 모양이네. 마법 소녀는 완벽한 육체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며, 패시브 씨.
아무튼 생각보다 정상적인 마사지에 마음을 완전히 놓고 있을 때 즈음.
어깨가 거의 다 풀렸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점점 손이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조금씩 내려오다가 도착한 지점은...
"...거긴 안 돼."
"마스터는 가슴이 작으니까☆, 여기도 풀어줘야 한다고요♡?"
옆가슴에 닿으며 천천히 옆구리까지 내려오는 그 손길에 몸을 움찔한다.
정말로 순수하게 마사지만 하고 있는 거 맞지...?
조금 불안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지만, 일단 그렇다고 하니 어쩌겠는가.
믿을 수밖에 없다.
"가슴 작은 부분은 지적 안 하시는군요."
"사실이니까. 약 올리는 말도 아니었는걸."
설이라면 당사자니까 화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다르다.
오히려 빙의 당했을 때 가슴이 컸다면 그건 그거대로 위험했을 테지.
첫 전투 때 사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 하면서 사는 사람은 마스터뿐일 겁니다."
"둘이서 계속 무슨 이야기에요! 에잇!"
"...간지러우니까 하지 마."
결국 욕심을 채우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원피스 안에 손을 넣는 유레하.
내가 팔을 움직여 손을 떼려고 하지만, 양다리로 내 팔을 완전히 봉쇄한 상황이란 걸 깨닫는다.
...영악한 아이라니까.
장난치는 걸로 뭐라고 하고 싶진 않으니, 얌전히 당해주기로 하자.
"얌전히 당하다가 무슨 일 당할지 모릅니다."
"유레하, 지금도 조금 선 넘었으니까, 자제해."
"아하하... 촉진이라구요, 촉진?"
"그래?"
촉진은 얼어 죽을.
스멀스멀 배 쪽으로 내려오는 손을 느끼며, 나는 별의 마력을 일으켜 유레하를 허공에 붙잡는다.
그러자 저항하지 않고 얌전히 허공에 떠오르는 모습.
몸을 돌리자, 그녀의 잔뜩 흥분한 얼굴이 눈에 띈다.
"얼굴이 변태 같아, 유레하."
"스, 스노우 님이 너무 귀여워서 그렇답니다♥"
"다음부턴 자제해."
"네♥ 주인님♥!"
그렇게 작은 해프닝이 종료되고, 조금 시간이 흘러 파이렌이 방에 들어온다.
아무래도 파이렌은 화염 마법 계열 뒤처리까지 끝내느라 좀 늦었던 모양.
...화염 마법 뒤처리는 유레하가 더 잘하지 않아?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스노우 님! 쉬는 중이야?"
"응... 할 거 없으니까."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이쪽 세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전투계는 수련 외엔 할 일이 없다.
원래 세계에선 전투 >잠깐 쉬고 전투>잠깐 쉬고 전투라서 이런 여유를 가진 적이 드문 편.
몬스터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면 그거라도 잡으러 다닐 텐데, 오늘 있었던 싸움으로 이 근방 몬스터들은 멸종했다고 한다.
몇몇 영웅급 사람들도 렌이 다 태워버린 모양이고.
...어라? 이거 완전 전투광 같은 말이네.
"그렇구나! 그럼 온천이라도 가자, 스노우님!"
"귀찮... 온천이 있구나, 여기."
귀찮다고 생각하다가, 온천이라는 말에 엎어져 있던 몸을 꼼지락대며 일어난다.
온천은 움직여서 갈만한 가치가 있지.
슬쩍 유레하가 있던 침대를 바라보자, 언제 사라졌는지 이미 가버린 상황.
내 생각을 읽은 렌이 말했다.
[아까 씻으러 간다고 한 게, 온천으로 간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구나."
마법 소년데 뜬금없이 씻어야겠다고 말해서 뭔 소린가 했더니.
아무튼 그런 게 있다면 좋은 일이다.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키자 보이는 건, 굉장히 기대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파이렌의 모습.
복장도 어쩐지 중세 학자의 복장을 한 게, 아무래도 업무에도 끌려갔다 왔던 모양이다.
...숨길 수 없는 피로가 눈 밑에 가득하다.
"가자."
"응! 스노우 님! 헤헤..."
내 말에 좋아하면서 먼저 온천으로 앞장서서 걸어간다.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강아지처럼 머리를 비비는 모습.
...머리카락이 상당히 부드럽네.
그런 쓸데없는 생각만 하며, 온천으로 이동했다.
온천은 신전에서 조금 떨어진 뒷산에 있었다.
결계 바깥이라는 점이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미니 간소 결계 정도는 설치된 모습.
대마법급 공격이 아닌 이상에야 뚫릴 일이 없어 보이는 결계를 보며, 나는 온천 건물로 들어선다.
탈의실에서 옷을 벗을 것도 없이 그냥 마법으로 해제해버리자, 원피스가 완전히 사라진다.
입구 앞에 잔뜩 놓인 천을 보곤 잠깐 뭘까 고민했지만, 수건 대용이라는 걸 깨닫고 굉장히 긴 수건으로 몸을 가린다.
...중세에도 이런 게 있었구나.
잠깐 이게 맞나 싶어 눈을 깜박이지만, 평범하게 온천으로 들어간다.
"..."
"오, 너희도 왔냐? 자자, 들어오라고~"
"주인님♡ 저 보러 오신 건가요?"
"나참... 온천에선 조용히 해, 안톤."
당연하다는 것처럼 천을 두른 안톤, 센, 유레하가 거기 있었다.
생각해보면 여기서 현대 상식을 가진 사람은 나뿐.
이 상황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도 나뿐이겠지?
좀 어지럽네.
[아직 탕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마스터.]
"혼욕탕인 건 생각 못 했어."
[마스터는 별 지장 없지 않습니까?]
남자 몸에는 별 관심 없단 게 정답이긴 한데, 여자애들이 같이 있는 건 좀...
[방금 파이렌도 옷 벗고 두르고 온 겁니다만...?]
파이렌은 어린애잖아.
[그걸로 따지면, 유레하도 어린앱니다.]
"하아..."
렌의 말에 나는 마지못해 이해하고 탕에 조심스럽게 발을 담근다.
사실 혼욕탕이라곤 해도 실제로 흥분한다든가 그런 느낌은 없다.
그저 현대 상식을 가지고 있어서 인식 부조화가 온 거뿐이지.
남자한테도 여자한테도 딱히 관심이 없는 상태라서...
[마치 중성적인 신령을 보는 느낌이군요.]
"응?"
[아무튼, 좋습니다, 그럼...]
열심히 떠드는 아이들을 보고 있는데, 갑작스레 렌이 실체화하기 시작한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곳에 나타난 건, 마찬가지인 천을 두른 렌의 모습.
...렌은 몸매 좋은 편이구나.
가볍게 감탄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온천은... 오랜만이군요."
"센, 봤냐!? 방금 무기가 인간으로...!"
"알아, 스노우의 무기는 에고 웨폰이니까."
"에고 웨폰?! 그거 지금 가진 사람 아무도 없잖아!"
"저기 있네."
"오, 오오... 그러네..."
갑자기 안톤이 멍청해 보이는 행동을 하지만, 센 역시 차분한 척하면서도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실체화 자체에 드는 마력량을 들으면 애써 숨기는 것도 못할 거 같은데.
머릿속에 장난쳐보자! 같은 나쁜 생각이 스치지만, 자제하기로 했다.
"음..."
온천에 들어온 렌의 감정이 조금 흘러드는 기분이 들었다.
따뜻한 감각에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그리워하고 있는 느낌.
렌이 살던 마계에도 온천 같은 게 있었던 모양인지, 그리워하면서도 슬퍼하는 감정이 흘러들어온다.
...뭐, 그럴 수 있지.
괜히 아는 척하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온천을 즐긴다.
들려오는 건 아직도 살아남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유레하와 파이렌이 장난치는 소리.
센과 안톤, 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도 들려오고, 희미하게 불이 타오르는 소리도 들려온다.
온천 근처를 밝히고 있는 횃불들의 소리겠지.
어쩐지 감각이 좀 더 먼 거리까지 들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거기까지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
모든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몸이 잠드는 것처럼 포근한 감각이 온몸에 새겨지기 시작한다.
그래, 마치 침대에 있는 것처럼...?
이상하다고 생각한 순간, 안정된 정신이 발동하는 걸 느끼고 눈을 번쩍 뜬다.
주변을 둘러보니 렌을 제외한 모든 아군이 온천에 몸을 담그다 못해 스르르 들어가기 시작하는 모습.
별의 마나로 급하게 모두를 온천 밖으로 꺼내자, 사람들의 몸을 가리던 천들이 전부 녹아내리듯 사라진다.
"렌."
"네."
렌이 마기를 사용해 영역 안 모든 상태 이상을 차단하자, 내 몸에 있던 천 조각도 반절 정도 녹다가 멈춰 선다.
인체에 해로운 물질은 없는지, 딱히 중독 회복 현상도 나타나지 않는 모습.
순환시를 키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력을 느끼고 하늘로 시선을 옮긴다.
"과연, 그래도 마나의 지배자라 눈치가 빠르네. 기습 상태 이상에도 안 걸릴 거라곤 생각 못했는걸."
보랏빛 긴 생머리에 생기 넘치는 눈동자.
붉은빛 케이프에 붉은 마녀 모자.
화속성이 주력일 것 같은 분위기의 마녀복의 여성이 하늘에 떠있었다.
손에 담긴 건, 전격의 마력.
이 마을의 주력을 전부 태워버릴 생각이었던 건지, 보랏빛 마법진 2개가 돌아가며 파직. 하고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안 걸리려고 시약 가루로 흩어버린 건데... 무색무취의 수면제를 어떻게 저항하는 걸까?"
"...?"
딱히 독 저항이 발동한 적은 없는데.
내가 의아하게 그걸 바라볼 때 렌이 말했다.
"저와 계약된 상태인데, 시약으로 만든 수면 가루에 당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당신은 마족. 어째서 인간의 편을 들고 있어."
"저는 이쪽 세계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군."
아무래도 나와 비슷한 성향인지, 표정 변화가 미미한 소녀를 보곤, 온천에서 나와 마법 소녀 폼으로 변신한다.
...주변에 나체 사람들이 있으니까 거슬려서, 전부 간단하게 의류를 만들어 의자로 옮겨놓는다.
"음, 방어구가 마력이라서 의미가 없구나. 혹시나 싶어서 의류 제거제도 섞었는데."
"그래서 너는 누구야."
내가 순환시로 바라본 색채는 무지개색.
문득 누군가에게 들었던 무지개색 마도사에 대한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센이 보였던 반응도 생각난다.
'대마녀 레이야'를 할머님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게 마왕인 파르시의 할머니라서 나온 반응이라면.
"무지개색 마도사, 대마녀 레이야."
"나를 아네, 이계의 아이."
2번째 사천왕, 대마녀 레이야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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