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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109화 (109/149)

〈 109화 〉 마법 소녀는 배드 엔딩을 타파해야 해!

* * *

Side 렌

평소에는 수면 마법도 안 통했을 마스터를 눕히고, 가만히 그녀를 바라본다.

새하얀 얼굴과 은빛 머리카락.

항상 빛나고 있는 연분홍빛 눈동자.

그녀가 누군가의 환생이라는 걸 알려주는 증표.

"...술에 많이 약했습니까. 참고가 됐습니다."

평소의 무표정과는 다른 귀여운 얼굴로 잠들어있는 마스터.

잠시 뺨을 만지자 으응... 하면서 싫어하는 기색이 보이신다.

"이럴 때가 아니군요."

지금도 최전선에선 전투 중이다.

물론 지금 쳐들어온 적은 지휘관급만 영웅급일 뿐.

고블린, 오크, 스켈레톤 같은 가벼운 병사들은 파이렌과 유레하 선에서 정리할 수 있으리라.

천천히 마력을 일으키며, 몸을 움직여본다.

원래의 육신으로 돌아온 게 오랜만이라 좀 어색한 느낌.

손가락부터 팔, 다리, 허벅지... 모든 육체가 제대로 완성됐다는 걸 확인한 후, 천천히 별의 마력을 마기로 전환해 본다.

"...역시 별의 마나로군요."

완벽하게 변환되는 마력을 느끼며 천천히 비행한다.

모든 마나로 치환될 수 있는 수호의 마력.

마기로도 치환되는 건 제법 흥미로운 주제지만,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전장 근처로 가자, 마나에 민감한 자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내 쪽을 바라보며 무언가 소리친다.

그러자 몇몇 궁병과 마법사가 나에게로 타겟을 옮기는 것도 보인다.

"나는 멸망의 대행자, 나는 모든 빛의 종말을 행하는 자."

영창을 입에 담는다.

마기가 폭발하듯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이제는 싸우던 검사들마저 알아챈 건지, 앞에서 싸우다가 눈먼 화살이나 킬침에 맞는 모습도 보인다.

...바보같은 인간들.

"명한다, 이곳에 있는 나의 적에게 안식을. 고한다, 힘없는 자들을 스러지게 한 자들에게 천벌을."

하늘이 완벽히 어두워지며 마물들이 기뻐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편이 왔다.

자신들의 마도사가 왔다.

인간들을 쓸어버릴 아군이 왔다.

그렇게 기뻐하는 마물들을 보며, 싸늘한 죽음을 선포할 뿐이었다.

"데스 플레임 레인."

내 말이 끝나고, 하늘에서 불의 비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와!? 대단해! 화염비 어떻게 내려요!?"

적에게만 떨어지는 마법에 아군이라고 느낀 건지, 인간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서린다.

내가 아군이라는 걸 알았던 건지, 파이렌이 감탄하면서 화염 마법을 영창 하는 모습.

역시 순수한 아이군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덤덤히 마물들이 사라져가는 걸 바라보기 시작했다.

"당신이라면 언젠가 사용할 수도 있겠죠. 내가 쓴 마법의 발동 조건을 잘 보시길 바랍니다."

"알겠어 렌님."

"...제가 렌인 걸 알아채셨나요?"

"스노우 님이랑 계약된 건, 렌님 뿐만이 아닌걸?"

"그렇습니까."

생각해보면 이 아이들도 마스터와 계약된 몸.

똑같이 계약된 거나 다름없는 저를 구별하는 건, 간단한 일이겠죠.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여주고 말했다.

"파이렌, 당신이 이 기술을 쓰려면... 별이 하나 더 늘어나야겠군요."

"5성? 하지만 더 올릴 수 있을까...?"

"모르는 일입니다만,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보단 해보고 포기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응, 렌 님 말이 맞아."

"파이렌~ 좀 도와줘☆~ 불이 더 필요해★~"

"알았어!"

제가 일으킨 불바다를 바람으로 더 크게 만들던 유레하의 말에 파이렌은 그쪽으로 다시 날아간다.

...저 아이들도 언젠가 마스터에게 큰 도움을 줄 테지요.

성장시킬 필요성을 느낍니다.

"저기, 당신 누구야? 마법 소녀들이랑 아는 사이로 보이는데..."

"센... 이었던가요, 당신은."

"내 이름을 알아?"

내 마법이 궁금했던 걸까?

남색 로브에 남색 마녀 모자를 쓴 잿빛 소녀가 나에게로 날아와 묻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현 인류 최고 마도사. 하지만 상대 마도사 마왕과 비교하면 스펙이 떨어져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죠. 당신의 재능으로는 대마도사의 경지가 끝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보자마자 팩트 폭력은 너무 하잖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서 당신 누구야!?"

"저는 스노우 님의 디바이스, 스노우 님의 계약자. 렌이라고 합니다."

주머니에 있던 붉은 부채로 입을 가린다.

그러자 어딘가의 귀족처럼 느껴진 건지, 더 알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센.

스노우 님의 정체도, 제 정체도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 최소한의 정보면 되겠군요.

"마족. 수호의 마력을 쓰는 사람이랑 마족이 계약했다고? 그게 말이 돼?"

"물론이죠, 아시다시피 용사 파티의 주교도 마기 사용자였습니다. 제가 마기를 쓴다고 해서, 마족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죠?"

"그건 그 사람이 특이 케이스일 뿐이잖아! 어떻게 생각해도 당신은 마족이고!"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네요, 진실을 보는 눈을 가졌습니까?"

흉흉하게 빛나는 잿빛을 바라보며, 가린 입가에 미소를 담는다.

마족이 아니라는 말이 거짓이라고 떴으니, 마족이라는 게 확정이란 의미군요.

제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곤란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마족이지요. 하지만 스노우님의 계약자라는 말도 진실이라고, 보셨을 터."

"...그건 맞아. 그래서 신뢰가 떨어졌어."

"그렇습니까? 스노우 님은 이미 세계의 적을 처리하고 다음 세계로 온 것 뿐인데... 당신은 마족이 전부 나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군요."

"실제로 마족은 나쁜 녀석들뿐이니까."

"그야말로 큰 착각이군요."

"마족이 아무리 괴짜라도 인류의 적이라는 건 변함없어."

"그건 당신들 세계의 이야기가 아닌지요."

내 말에 센은 멈칫하면서 나를 바라본다.

의식의 전환 자체는 빠르군요.

우리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건, 이 마을의 중요한 사람이라면 전부 알고 있는 내용.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도 마도사라 나름대로 생각이 있나 보네요.

"저희가 있던 세계는 마족이나 천족 개념 자체가 생긴지 얼마 안 된 세계입니다. 인간과 동물들만 살아가던 세계죠."

"그런 세계가... 있다고?"

"예, 이쪽과는 다른 멸망의 별이 그 세계로 내려오면서 어떤 천계와 마계가 연결됐지요. 그런 세계에서 살아온 저희에게 '마족은 나쁜 녀석들이다.'라고 말해도... 저희는 협력해서 파괴자를 물리쳤습니다. 정말로 저희는 나쁜 자들인지요?"

"..."

어찌보면 그저 난해한 말을 늘어놓았을 뿐인 이야기.

하지만 총명한 마도사는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한 듯,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고민한다.

자신이 가진 상식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저런 반응이라면, 생각이 유연한 사람이니 합격점.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치곤 굉장히 깨어있는 사람이다.

"아니, 너는 나쁜 녀석이 아닌 모양이네. 네가 정말로 다른 마족과 같은 녀석이었으면, 나한테 그런 설명도 안 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면 다행이로군요."

"그래서? 네 주인은 어딨는데?"

"..."

그녀의 말에 제가 땅에서 싸우고 있는 안톤을 바라보자, 센이 시선을 따라가다가 이해했다는 것처럼 눈을 가린다.

잠시 마른 세수를 한 그녀가 한숨을 내쉬곤, 그대로 입을 열었다.

"딱 봐도 어린앤데 술까지 먹였어? 아무리 지금 사태가 개판이라곤 하지만..."

"이쪽 세계의 기준이라면, 제 마스터는 성인이라서 상관은 없을 겁니다."

"몇 살인데?"

"18살입니다."

"우와... 진짜 예상도 못 한 나이네."

생각보다 높다는 사실에 놀란 건지, 센이 감탄사를 흘린다.

"그보다 현 인류 최고의 마도사가 이렇게 대화하고 있어도 되는 겁니까?"

"그걸 말이라고 해? 렌 씨가 내린 마법 한 방에 적 지휘관 대다수가 전멸했거든? 물론 저 녹색 꼬마가 유도한 거긴 하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오합지졸이야. 굳이 내가 마법 쓸 것까지도 없을 정도로."

"최대한 수를 줄이는 게 좋을 텐데요."

"그건 당연히 하고 있어."

그 말과 함께 그녀가 손을 뻗자, 왠 거울 하나가 빨려 들어오듯 날아온다.

그걸 잡음과 동시에 마력을 일으키고, 다시 부메랑을 날리듯 날려버리는 모습.

거울에서는 끝도 없는 수탄이 난사되고 있었다.

"내 마력만 있으면 계속 수탄을 발사하는 아티팩트야. 잔챙이는 이거면 충분해."

"그렇군요, 확실히 그렇게 보입니다."

무수한 수탄 세례에 몬스터들이 쓸려나가는 걸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대마법사라고 제대로 된 무구는 가진 모습이다.

"렌 씨는 얼마나 강해? 비교 대상이 없긴 한데..."

"마스터보단 제가 더 강할 겁니다. 직접적으로 1대1을 한다면, 잘 모르겠지만요."

"그게 무슨 말이야?"

"마스터의 능력은 마도사에겐 굉장히 곤란한 능력이라서 말이죠. 다만, 순수 마도사로서 화력은 제가 더 강할 거란 이야기입니다."

근접 전투로 들어가도 능숙하게 예측하고, 피해낸다.

마법전으로 들어가면 자신의 마법은 명중시키고, 적의 마법은 베어내거나 피해낸다.

마치 미래를 예지하는 것과 같은 정확한 변수 체크와 반응 속도.

초창기에는 그런 모습을 보인 적 없었는데, 가면 갈수록 미래 예지급 직감이 정교해지고 있다.

"그래서 솔직히 안심하고 있습니다."

"안심?"

"마왕이 마도사라면 마스터를 이길 수 없으니까요."

"굉장한 자신감이네."

"마스터라면... 그렇네요. 마술사의 공방을 째로 박살 낼 수도 있겠군요."

공방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마법진을 건물 전체에 새긴 기동 요새 같은 거라면... 아마 마스터는 공방 자체를 파괴한다는 판단을 내리겠죠.

일반적인 마법 함정이나 메모라이즈가 새겨진 곳이라면, 평범하게 마법을 전부 베어내고 싸울 테고요.

"...스노우가 그 정도로 괴물이야?"

"적어도 마도사에 한해선, 마스터를 이길 수 없습니다."

"흐응..."

내 단언에 감탄하면서도 묘한 승부욕을 눈에 담는 모습.

아무래도 마스터가 일어나면 대련해볼지도 모르겠네요.

­­­­

일어났을 땐 이미 저녁 시간이었다.

마력이 있어선지 숙취는 없었지만...

"렌?"

[그 아가씨는 아직 안 돌아왔다고?]

"세르칸, 혹시..."

[생각보다 술주정이 작진 않구만? 주인.]

"..."

아무래도 내 기억이 정확했던 모양이다.

한숨을 내쉬고 창 밖을 바라보지만, 보이는 건 평화로운 풍경뿐.

아무래도 별 문제 없이 해결된 모양이다.

"술은 안 마셔야겠네."

[그래, 설마 맥주 한 컵에 취할 줄 몰랐다고?]

"나도 몰랐어."

별 생각 없이 원샷했더니, 정신줄이 나가버렸다.

아무래도 설의 육체 자체가 술에 안 맞는 체질인 모양.

익숙해질 때까지 먹이는 방법도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겠지.

몸을 일으켜 신전 바깥으로 나가자, 한 사제분이 나를 발견하곤 조심스레 인사하고 지나친다.

나도 가볍게 인사하고 신전 밖으로 나오자 보이는 건, 광장 중앙에서 전리품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파이렌이 나한테 날아들었다.

"스노우 님~ 깼어?"

"응."

"다행히 사천왕 급은 없었어! 그래서 이길만 했어!"

"그래, 잘했어."

파이렌이 칭찬해달라는 것처럼 눈을 반짝인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헤헤. 하면서 좋아하는 모습.

한참 그러고 있다가, 아! 나 사람들 도와주고 올게! 하고 파이렌이 먼저 날아가 버린다.

...강아지 쓰다듬는 느낌이었네.

보들보들한 감각이 제법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일어나셨습니까, 마스터."

"렌."

"기침이 좀 늦으셨군요."

"...미안."

발목까지 내려오는 귀족풍 드레스의 소녀를 보며, 나는 곧바로 사과한다.

붉은 부채에 금빛 티아라.

루비같이 붉은 눈동자의 성숙한 미녀가 가만히 나를 주시한다.

뭔가 읽어내려는 것처럼 빤히 바라보는 렌을 보며 말했다.

"뭔가 이상한 게 있어."

"아니요, 제대로 원래 모습이 되셔도 동요가 전혀 없으시군요."

"렌은 렌이니까."

"...생각해보면, 원래 그런 분이셨죠."

그렇게 말하곤 원래의 디바이스 형태로 돌아가는 렌.

동시에 마력 공급량이 줄어드는 걸 느낀다.

...공급량이 제법 컸는데, 아무래도 인간형을 유지하는 것도 마력 소모가 큰 모양이다.

[저는 인간형이라기보단 마족형이니까요.]

"아..."

[마스터가 남자로 돌아가도 큰일입니다.]

"...왜."

[여자 보기를 돌같이 대하시는데, 연인을 사귈 순 있을 런지요.]

그건 괜한 참견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음? 마스터에게 볼일이 있는 모양입니다만.]

"응."

"스노우, 잠시만."

나를 찾고 있었던 건지, 나를 보자마자 바닥에 안착하는 소녀를 바라본다.

조금 머뭇거리듯 입을 우물거리다가, 이내 크게 심호흡.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 소녀는 왠 거울 하나를 들고 입을 열었다.

"나랑 대련 한 번만 해줄래?"

고백할 거 같은 분위기로 결투 신청이라니, 이 세계의 예절은 어떻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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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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