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마법 소녀는 배드 엔딩을 타파해야 해!
* * *
다음 날.
일단 현재 상황을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다녔다.
"엉~ 이번 대 마왕은 용사였던 애들이 맞을걸?"
"그럼 특징은..."
"마도사니까... 무지개석 마도사겠지?"
"무지개석 마도사...?"
"어이쿠, 우리 새 용사님은 모르나보구만? 무지개석 마도사란 건 말야~"
그러니까, 용사 아니라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지개석 마도사라는 건, 주 속성이 계속 변하는 마도사를 지칭한다고 한다.
일주일동안 주력인 속성이 계속 바뀐다는데... 요일별로 머리카락색이 바뀌니까 알아내기는 쉽다는 모양.
"예를 들어 푸른색 머리칼을 가지고 있으면, 수속성이 강한 상태인 거지."
"머리색 말고는 알아볼 방법이 없나요☆."
"응? 아아, 없진 않지! 정령들을 읽으면 알 수 있어!"
"정령을 읽어요? 정령이 있구나!"
"어느 정령의 기운이 가장 강한지를 읽으면, 그날이 무슨 요일인지 알 수 있잖나."
모예요, 그거. 니들만 아는 상식이에요.
[읽어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마스터의 순환시라면 가능할 겁니다.]
렌의 말에 내가 순환시를 키지만, 세상이 색채로만 보일 뿐, 딱히 크게 달라지는 점은 없었다.
원래 세계보다 색채가 더 진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
"오늘 수요일이구나."
"오~ 아가씨도 정령을 볼 수 있나? 맞지맞지~"
세상에 가득 찬 색채들이 멋대로 움직이는 게 눈에 띈다.
일반적인 마력이 아닌 무언가 생명체인 것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모습.
형상은 보이지 않지만...
[판타지스럽네요.]
"..."
마족도 따지고 보면 판타지 아냐?
[제가 사는 세계는 메인이 마계였으니까, 아니지 않을까요?]
내 입장에서 마계가 판타지 세계인 걸 사실인걸...?
또다른 사람에게 마왕에 대해서 물었다.
"항상 힘들어 보이는 아이였죠."
"힘들어보이는 아이...?"
"뭔가 쫓기는 느낌? 그런 느낌이 강한 아이였어요."
"뭐에 그렇게 쫓기는 거에요?"
파이렌의 물음에 으음~ 하고 고민의 기색을 보인 아주머니가 말했다.
"그렇네요, 그 아이는 이 마을을 떠날 때 이미 대마도사와 그다음 단계에 걸치고 있었어요. 경지에 집착한 게 아닐까요?"
"경지에 집착..."
"매번 '이 정도로는 오빠야를 살릴 수 없어... 좀 더 강해져야 해.'라고 말했었어요."
"오빠야는 누군가요☆?"
"그 아이가 오빠야라고 부르는 건 한 명밖에 없어요. 페이 주교님이었죠."
"페이 주교...?"
파이렌이 의아한 목소리를 내지만, 나는 누굴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용사 파티의 신관이자, 마도사가 마왕이 된 원인.
...그렇게 말했었지, 여신이.
"생각해보니 이상하긴 하네요? 페이 주교님이 마을에 오기 전부터 그 소리 한 거 같은데..."
"그럼 페이 주교라는 사람이랑 관련 없는 거 아녜요?"
"이상한 일이긴 하네요."
"뭐, 상관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 사람은 지금 어딨어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주교가 마왕군에 있을 리는 없긴 한데..."
"죽었을 거야."
대화를 듣던 내가 담담하게 사실을 전하자, 그 이야기를 들은 아주머니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 성실한 아이가 왜 마왕이 됐을까 싶었는데..."
"죽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마왕이 됐지만, 마왕의 힘으로도 '사제'를 살리는 건 무리였던 거지."
"네, 맞아요. 제가 알기로도 사제는 그 영혼을 신께 바친 존재들이라서 죽으면 신께로 돌아가거든요. 그럼 왜 그 아이는 우릴 공격하는 거죠?"
그 이유까진 잘 모르겠지만, 예상 가는 부분은 있었다.
부활시키는 데 실패했다면, 당사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 이 정도론 부활할 수 없구나. 어쩔 수 없네. 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다.
"어떻게든 살려내기 위해서."
"어떻게든 살려낸다고요? 신께로 간 영혼을...?"
"마왕이 됐으니까, 신한테 협박하고 있는 거야. '안 돌려주면 전부 죽이겠어.' 라고."
"세상에..."
일단 어떤 아이인지에 대한 정보는 확실히 얻게 됐다.
다음으로 얻어낸 정보는 용사 파티에 관한 이야기였다.
"검의 용사인 세레스랑 최고의 사냥꾼이었던 에리카, 무지개석의 마도사인 파르시, 신성력 하나만으로 주교가 된 천재 주교인 페이... 그렇게 4명이었던가?"
"4명이서 마왕을 잡으러 간 거야."
"넷이면 충분했어. 사실상 용사 파티라는 게, 전부 죽이고 오는 게 아니라 암살자거든. 지휘관만 죽이는 거야."
"그건 환상 깨는 이야기네요☆"
"그렇긴 하지?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사람이 아무리 강해도 체력 한계가 있으니까. 근데 감탄스럽긴 하네? 그걸 하나하나 묻고 다닌 거야?"
"응."
내 대답에 센이 말했다.
"그럼 바보짓 좀 했네. 우리 마을 도서관에 '모든 용사 파티'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어. 이번 대 용사 파티도 마찬가지고. 우리 마을 사람들이 용사 파티가 마왕이 됐다는 걸 아는 이유도 그거 때문이야."
"..."
"전 용사 파티 마도사 중에 고유 능력인 '레코드'를 가진 사람이 있거든. 과거 기록을 읽어내는 마법인데, 덕분에 유실된 기록이 하나도 없어. 가서 확인하면, 원하는 정보 얻는 게 가능할 거야."
"그래서 알고 있었군요? 마왕이 전 용사 파티라는 거☆."
"그런 셈이야."
그런 게 있었다면, 기록상으로 '현재 마왕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같은 게 적혀 있겠지.
그렇게 우리는 센의 조언에 따라 도서관으로 향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파르시]
클래스 : 마나의 지배자
50대 용사 파티의 마도사이자, 무지개색 마도사.
...(중략)
무지개색 마도사의 특징으로 요일마다 주 속성이 변한다. 월요일은 남색(어둠), 화요일은 빨간색(화염) ... 등이 있다.
...
현 마왕으로 확인된다. 타락 사유는 알 수 없으나, 여신에게 원한이 있는 모양.
현재 마법진을 만들면서 퍼스트 마을의 결계를 갉아먹는 중이다.
뭘 위해서 인간을 멸망시키고 있는지 불명.
주력 마법은 속성에 따라 다른데 ... 이상이다.
이미 마왕성은 마법사의 공방이 되었을 확률이 높으니, 위험도는 급증한다.
우리는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그걸 알고 있어선지 우리에게 시간을 주지 않는다.
현재 마왕군 사천왕은 파르시의 먼 조상 루난, 할머니였던 레이야, 50대 용사 세레스, 50대 용사 파티의 헌터인 에리카로 구성되어있다.
각각 전사, 마녀, 검사, 궁수 클래스이며, 소드 마스터, 마나의 지배자, 소드 마스터, 보우 마스터 클래스를 가진다.
"..."
음, 이게 뭔 소리지.
일단 알고 있는 정보가 정리된 느낌에 가깝다.
클래스라는 게 있고, 그 클래스의 최고 위치에 올라있다는 소리인 모양이다.
루난은 내가 잡은 사람인데, 소드 마스터...인가.
루시에르의 방어를 뚫었으니, 생각 이상의 파워를 가진 건 분명하다.
내가 쓰러뜨린 건, 역상성이라는 점과 캐스팅 시간이 있는 마법을 발동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
루시에르의 방어가 한순간이라도 뚫릴 스펙이었다면, 내 방어는 손쉽게 뚫리게 되겠지.
결국 즉발할 수 있는 마법 밖에 사용할 수 없단 소린데...
그런 기술로는 녀석에게 데미지를 줄 수 없다.
"소드 마스터가 뭐야?"
"...판타지 계열 소설에서는 검의 끝을 본 사람을 말해. 아마 루난의 검술은 자신에게 완성된 검술인 모양이야."
"대단하네요☆"
"그걸 잡은 스노우 님도 대단해..."
[그건 내가 탱킹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어."
설마 이런 곳까지 와서 스펙이 부족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마도사 계열은 쉬워. 일단 나한테 어지간한 마법은 안 통하니까."
문제는 다른 사천왕들이다.
루난은 상대해본 결과 이기기 힘든 녀석.
레이야는 마녀... 마도사 계열이니 충분히 할 만하겠지.
세레스와 에리카가 뭐하는 녀석인진 모르겠지만, 전부 마법 계열로 보이진 않는다.
"오~ 뭐야, 정보 수집이야?"
"안톤."
"이 녀석들은 내 옛 친구들이니까, 나도 잘 안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있다길래 와봤다."
"...도서관에선 조용히."
"커흠. 그럼 밖에서 이야기하자고."
안 그래도 우리 일행에게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는데, 안톤의 큰 목소리에 더 많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쪽을 바라보는 할머니에게 슬그머니 고개를 숙여 사과한 후, 책을 대여하기 위해 가져가는 나.
그러자 안경을 낀 사서는 잠시 내 얼굴을 보다가 말했다.
"새 용사로구나. 아니, 용사라기엔 이질적인가."
"마법 소녀."
"마법 소녀? 특이한 클래스구나. 그래, 이름은?"
"스노우."
"스노우... 그래, 눈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새하얀 아이로고."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뭔가를 써낸 할머니가 나에게 다시 책을 건넨다.
대여 완료라는 의미려나.
"책 대여는 3일까지. 3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회수되니, 알아두거라."
"응."
책 자동 반납이라니, 엄청 편리한 기능이네.
쌍둥이 자매와 밖으로 나오자, 안톤이 가자는 것처럼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주점?
"저기, 안톤."
"오우, 술이나 마시면서 말하자고!"
"안톤."
"알았다니까~ 가서 말하자!"
"...이 미치광이 전사는 우리가 미성년자라는 걸 왜 모르는 걸까요☆ 별 모양으로 잘라버릴까요☆?"
"엉?!"
유레하의 말에 안톤이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다가, 문득 시선이 스윽하고 셋의 몸을 스캔한다.
그리고는 납득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좋아, 기분 나쁘네.
"죽일까요, 마스터☆"
"? 왜 화난 거야?"
"...안톤, 죽고 싶은 거야."
"어이쿠, 미안미안. 너희가 전부다 17살이 안 됐을 거라곤 생각 못 했어."
나와 유레하가 화내는 기색을 보이자, 안톤이 어색한 미소와 함께 손을 젓는다.
파이렌은 아무래도 무슨 의미로 한 건지 모르는 모양이다.
...파이렌은 정말 아가야. 지켜줘야 돼.
근데 17살?
"17살...?"
"응? 당연한 건데? 17살부터는 성인이잖냐."
"..."
"주인님☆ 저는 아직 16살이에요."
어라, 그건 정말로 몰랐던 사실이다.
참 안타깝지만, 내 기억 상으로 스노우는 18살.
이쪽 세계 기준으론 성인이다.
"우리 세계랑 상식이 다르네."
"그래? 여기 사람이 아니랬지? 음~ 뭐 괜찮지 않겠어? 자자, 가자고~"
"저희는 주스로 충분한 거예요☆"
"오렌지 주스도 있어?"
"오우... 너희는 확실히 어린앤가 보군. 좋아, 주인장한테 말해주지. 스노우, 너는?"
"...술도 괜찮아."
"크, 역시 아가씨는 성인이구만?"
어차피 상태 이상 같은 건 안 걸릴 테니까.
[딱히 상태 이상 면역 같은 건 없지 않습니까?]
"...멀쩡한 걸."
안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저녁.
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던가?
으음... 딱히 제대로 된 정보가 없었던 거 같은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진 기억납니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렌... 그야..."
무슨 이야기 했더라?
별로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아.
[쌍둥이 자매가 어디로 갔는진 기억납니까?]
"으응...? 어디 갔는데?"
[좋습니다, 지금 어딘진 아십니까?]
"화장실..."
[여긴 화장실이 아닙니다.]
"으응...? 아, 숲인가아."
[하아...]
렌도 참, 내가 그것도 모를까 봐.
화장실이 안 보이니까 밖에...
어라? 화장실 갈 이유가 없는데 왜 나왔지이...
[취했습니다, 마스터.]
"안 취해써어~ 나 안정된 정신 이써~"
[신전으로 돌아가십시오.]
"레엔~ 이상한 소리 하지마아~"
[안정된 정신은 정신 공격을 막는 거지, 딱히 정신 이상을 막아주는 스킬이 아닙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아무튼 숲에 나온 이유가 없다. 다시 들어가자.
비행하다가 귀차니즘에 의해 힘을 빼면서 날아가기 시작한다.
...결계 조금 거슬리긴 한데, 그렇다고 치우면 혼나겠지?
[파이렌과 유레하는 잠시 추격하러 갔습니다.]
"추겨억? 누굴?"
[마스터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이상한 일을 벌이는 사이 몬스터 대군이 쳐들어왔지 않습니까. 애초에 숲에 나온 것도 그거 때문이고요.]
"그랬나아?"
[돌겠네.]
그런 말 하면 못써...
그렇게 말한 렌이 인간 형상으로 실체화하더니, 그대로 나를 안아 들고 날아가기 시작한다.
멀리서 보이는 흐릿한 광경에 별의 마력을 끌어올리려고 하자, 퍽. 하고 내 머리를 때리는 느낌.
위를 올려다보자, 검은 머리칼의 소녀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마스터는 잠이나 주무시길,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와 함께 서서히 졸려오기 시작하고, 내 의식은 점점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