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마법 소녀는 배드 엔딩을 타파해야 해!
* * *
파이렌과 유레하까지 하프에게 설명을 듣는다.
전부 들은 유레하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으음~ 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아까 그 닌자☆는 뭘까요~? 잘 모르겠는데요☆"
"...글쎄, 그것까진 잘 모르겠는걸? 애초에 닌자가 뭐지?"
"아하~☆ 거기서부턴 가요?"
"유레하, 이 세계에는 닌자가 없는 걸로 보여."
"그렇게 보이네☆"
"...우리가 관여하면서 상대 진영에도 뭔가가 추가된 게 아닐까."
우리가 갑작스럽게 참전하게 되면서 세계의 멸망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그걸 대신할 무언가가 나타났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유레하, 유레하, 그것도 있었잖아."
"알고 있다니까☆"
"뭔데."
"닌자 말고도 적이 잔뜩 있었답니다☆ 저희한테 말하지 않은 게 있으시진 않으신가요★?"
"...그래, 그건 전부 우리 측에서 싸우다가 전사한 인원들일 거다."
"죽은 사람들...?"
하프의 말에 파이렌이 창백한 표정으로 묻자, 그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마왕의 능력 중에는 사자 소생 같은 게 있으니까. 부활시켜서 명령하는 거지."
"지키다 죽은 사람인데도 말을 듣는 거야."
"마왕에게는 명령권이 있으니까. 그 점은 어쩔 수 없어."
명령권.
아무래도 부활한 사람을 부릴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는 건... 지금까지 이 세계에서 죽은 사람 중에 강하다 싶은 녀석들은 전부 부활했다는 이야긴데.
"유레하."
"네, 마스터♥"
"닌자나 다른 부활자들은 우리 기준으로 얼마나 강했어."
"저희 기준으로 전략전하면 그럭저럭이었답니다☆? 마스터 기준으로는 평범하게 전부 잡을 수 있을 수준이었네요★"
"그래."
평균 스펙은 높은 편이지만, 내 기준에선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다는 의미다.
그 정도라면 가는 길에 거슬리진 않겠지만... 문제는 전이 포탈을 통해서 쏘아지는 마법.
가볍게 피해내긴 했지만, 공격이 가벼운 수준은 아니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그걸 계속 피하면서 뚫고 가긴 힘들 거 같은데.
"일단 묻겠는데, 부활한 사람들 죽여도 다시 부활해?"
"아니, 그렇진 않아. 첫 부활이야 저항할 수 없는 쪽이었지만, 다음 부활은 영혼이 거부할 수 있거든. 부활하기 싫은 사람은 거부할 거고, 적어도 우리 측에서 죽었던 사람들은 그 이상 부활하지 않을 거야."
"...그럼 주변 정리부터 해야겠네."
결계가 해제되기까지 시간이야 남았다지만, 최소한 주변 정리는 해놔야 덜 위험할 확률이 높겠지.
[마스터]
"응."
[퀘스트 내용에는 인류를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농담이지."
[...네, 장난 좀 쳐봤습니다.]
[이 누님, 진담이었다고~?]
[세르칸, 조용히 하십시오.]
[근데, 내 생각도 같긴 해? 차라리 마왕한테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게 성공률이 더 높을걸? 어차피 이 세계는 '배드 엔딩'으로 만들어진 세계라고? 굳이 주인이 지킬 이유는 없단 말이지. 게다가 성공하면 지켜지기도 하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렌과 세르칸의 말에 나는 잠시 침묵한 상태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하프와 유레하, 파이렌에 뭔가 떠들고 있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두 사람의 말도 일 리가 있다.
여기는 우리 세계가 아니고, 우리는 여기 사람들을 지킬 이유가 없다.
그리고 지키고 싶다고 하더라도 일직선으로 마왕성으로 쳐들어가서 마왕 잡는 일 자체가 좀 더 성공 확률이 높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을 지키는 건, 마법 소녀의 일이야."
"맞는 말이에요☆ 저희는 마법 소녀니까요?"
"응, 스노우 님 말이 옳아."
"..."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파이렌과 유레하가 곧바로 동조해온다.
그러자 하프 혼자 이해하지 못한 건지, 의아한 얼굴을 하는 모습.
방침을 정한다.
"파이렌, 유레하."
"네, 마스터♥"
"응, 스노우 님."
"주변의 적을 전부 쓸어버리는 데 집중할 거야. 너희도 그렇게 해줬으면 해. 그리고 하프."
"말해봐."
"용사 마을의 병력을 수비에 치중해줘. 결계 강화에 써도 좋아. 혹시나 놓친 적이 있다면, 너희가 어떻게든 처리해줬으면 해."
"그건 당연한 일이야."
"우리는 주변을 전부 청소하고 그대로 마왕성으로 직행할 거야. 우리가 주변 정리를 끝내면, 너희 활동 범위도 넓혀야 돼."
"할 수 있겠어?"
내 말에 하프가 고뇌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어온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하곤 자리에서 일어서는 나.
파이렌과 유레하가 따르겠다는 것처럼 몸을 일으키자, 금발의 궁사가 말했다.
"바로 할 생각이야?"
"시간이 없으니까."
최소로 잡으면 2주의 시간이 남았다.
딱히 보급이 필요없는 우리로서는 정신적 피로만 계속 떨쳐내면서 움직이면 되니까, 시작할 거면 당장 시작하는 게 좋다.
"닌자는 내가 처리할게. 너희는..."
"네, 알고 있답니다☆ 마스터의 템포에 맞출게요☆"
그렇게 말한 뒤 우리는 곧바로 방을 나선다.
하프가 불안해 보이는 표정을 보였지만... 뭐, 그건 아직 우리 스펙을 모르니까 그렇겠지.
신전을 나서자 입구에서는 아까 봤던 체인 메이스의 전사가 대기하고 있는 모습.
우리가 나오길 기다렸다는 것처럼, 그는 기둥에 기대어 있다가 말했다.
"벌써 이야기가 끝난 모양인데."
"응."
"...이제 어쩔 생각이지?"
"근방 청소하고, 마왕성으로 갈 거야."
"진지하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남자의 말과 함께 함께 서 있던 잿빛 눈동자의 소녀가 나를 주시한다.
가능할 거라고도 생각하고, 해야 한다고도 생각하는데...
"가능한가, 아닌가의 문제를 떠난 거야."
"..."
"이곳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마저 전멸당할 위기에 처해있어. 그렇다면, 우리는 해야만 해."
"어째서지? 하프에게 들었다. 너는 이쪽 세계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군."
"저희는 마법 소녀거든요☆"
내가 말하기 전에 유레하가 내 앞에 나서며 선수 치듯 입을 연다.
이어서 내 옆으로 걸어나온 파이렌 역시 웃으면서 말했다.
"마법 소녀는 사람을 돕는 게 일이야."
"...이해할 수 없는 녀석들인데."
"안톤, 저 사람들은 진심인 거 같아."
"그래, 어처구니없지만 전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게 신기한 녀석들이야."
소녀의 말에 안톤이라고 불린 전사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우리를 떠보려고 했던 모양이다.
"이만한 바보들이 합류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지. 환영하마, 우리 마을에 온걸."
"바로 갈 거지만."
"그래, 우리도 지원하려고 온 거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라. 이 꼬맹이도 도와줄 거니까."
"누가 꼬맹이야? 제대로 불러."
"그래, 센도 도와줄 거다. 나름 마도사니까."
"그럼 당장 필요하겠네. 마도사면, 이 마을 결계를 연구해서 계속 강화해줘. 안톤은 우리가 놓치는 적이 있으면 처리해주고."
"...그렇게 곧바로 말할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용사 마을 결계는 이미 분석 중이야. 상대가 먼저 분석할 거 같아서 불안한 거고."
아무래도 결계가 분석당하는 걸 알고 있어서인지, 그 쪽은 이미 분석 중이었던 모양이다.
그럼 상관없다.
우리가 할 일은 전부 쓸어버리는 것뿐이니까.
고맙다. 잘 부탁하마, 새로운 용사.
"...용사 아니라니까."
검으로 치명상을 입히자, 검은 기사가 재로 변하면서 그렇게 말하곤 사라진다.
우리가 처리한 적의 숫자는 총 10명.
아까 봤던 닌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보이는 거라곤 죄다 검사와 궁수 같은 녀석들뿐이었다.
...이건 굉장히 수상쩍은 이야기다.
"이쪽도 끝났어요☆"
"마도사는?"
"없었네요★"
"스노우 님, 이상해. 마법사가 하나도 없어."
"..."
다른 두 사람도 이상함을 느낀 건지, 곧바로 나에게 보고해온다.
역시 수상한 상황이다.
"마법사를 본진에 집중하는 거네. 왤까."
"원격 마법을 쓸 때 필요한 게 아닐까요~☆"
"마법진으로 쓰니까 상관없을 거야."
"그럼 결계 해석을 위해서라면..."
"혼자서 해도 되는 일이야."
수상하다.
너무 수상한데, 이유를 모르겠다.
마법사를 모아서 뭘하는 걸까?
대규모 마법이라도 영창 중인 건가?
"그보다 스노우님, 이상한 점이 한 가지 더 있어."
"응."
"원격 마법 빈도가 너무 길어."
"?"
"저희가 싸울 때는 거의 10초 단위로 날아왔어요☆ 근데, 지금은 5분에 한 번 올까 말까인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 유레하가 어딘가를 향해 손가락을 튕기자, 그쪽에서 콰앙! 하는 폭발음이 들려온다.
아무래도 원거리에 있던 트랩에 전이 마법이 겹쳐 마력 폭주를 일으킨 모양이다.
"...그래도 지금 우리가 알아낼 수단이 없어. 나아갈 수밖에."
"알고 있..."
"렌!"
[프로텍션]
까앙!
유레하가 채 말을 끝내기 전에 느껴진 마력에 내가 방어 마법을 펼친다.
어디선가 휘둘러진 검을 막아냄과 동시에 곧바로 슈팅 스타를 띄워 사방으로 펼치듯 전개.
정면에 있던 검은 흑기사는 능숙하게 검막을 펼쳐 모든 탄막을 튕겨내고, 등에 있던 또 하나의 대검을 마저 뽑아든다.
"...쌍대검이라니, 독특한 취향이네."
"기습을 알아채다니, 대단한 감각이군."
아니, 그 덩치가 아무리 빨리 와도 눈치채는 쪽이 더 빠를 테니까.
2m에 가까운 키를 가진 데스 나이트를 보며, 나는 천천히 검을 세운다.
상대는 마력을 쓰는 검사다.
그 마력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진 모르겠지만, 읽어낸다.
마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선별해낸다.
"두 사람 다, 물러서."
"흠, 마도사인 줄 알았는데, 검사였나?"
"당신이 검을 쓰니까, 검으로 싸울 뿐이야."
"재밌는 소리군."
정말로 유쾌하다는 것처럼 검은 기사가 붉은 안광을 일렁인다.
전투하면서 흥분하는 타입.
그러면서도 이 기세라면, 중검이나 패검 측인가.
아니면 전투 자체는 냉정하게 보는 타입일지도.
"나는 마왕군 사천왕의 일축. 데스나이트 킹 루난이다."
"별무리의 마법 소녀, 스노우야."
그 말과 함께 상대에게 디버프를 걸지만, 그대로 튕겨 나오는 걸 확인한다.
...생각보다 더 강한 상대라는 의미다.
"사술같은 건 쓰지 말았으면 좋겠군, 그편이 더 즐거울 테니까!"
발이 움직인다.
팔과 손목의 관절을 확인한다.
0.2초 후 횡 베기.
0.25초 후 종 베기.
2개의 검이 거의 시간차없이 나에게로 달라붙듯 휘둘러지고, 나는 바람의 마력을 피워올려 상대의 뒤를 향한다.
그러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그대로 나를 베어오는 횡 베기.
어깨가 꺾였을 게 분명한 움직임으로 날아오는 대검에 몸을 숙인다.
동시에 올려 베기를 시전.
또다른 검이 내 검을 쳐낸다.
횡 베기를 하고 있던 검이 대각선으로 베어 들어온다.
백스텝으로 피하자, 마력을 이용해 일직선으로 돌진한다.
"아쿠아 브레스."
콰아아아아!
아쿠아 브레스로 밀어내며, 동시에 반동에 몸을 맡겨 하늘로 날아오르자, 루난이 크흐. 하고 재밌다는 듯 말했다.
"검사로서 싸운다고 했던 거 같은데."
"마검사 처음 보나 보네."
"어떤 마검사가 블루 드래곤의 브레스를 쏘아대지? 웃기는군."
그렇게 말한 루난이 마력을 폭파시키며 따라붙는다.
체공 상태로 땅을 밟듯 마력을 연속으로 폭발.
그대로 비행 상태를 유지하는 신기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날아오는 검을 바람의 마력을 밟아 피해낸다.
그리고...
"나의 하수인이여, 적을 먹어치워라."
빛의 짐승이 루난을 삼켜버렸다.
그 순간 보인 건, 검에 일렁이던 마기.
마력이 아닌 검은 기운을 알아챈 내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회피하자, 콰아아아아앙! 하는 폭음과 함께 빛의 짐승이 찢겨 나간다.
"잔재주다, 마도사."
응, 이거 좀 무섭긴 하네요.
[이 세계는 판타지 세계라서 확실히 제대로 된 검법과 전투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의하시길.]
주의가 좀 많이 늦지 않아, 렌?
저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나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