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마법 소녀는 배드 엔딩을 타파해야 해!
* * *
"정체를 밝히지 않겠어, 아가씨?"
녹색 케이프에 멋들어진 갈색 가죽 갑옷을 입은 챙 모자의 남자가 나에게 말한다.
...전형적인 판타지의 음유시인&궁수 같은 복장이다.
실제로 석궁을 겨누고 있는데, 생각 이상으로 매서운 기운을 나에게 뿜어내고 있다.
쉽지 않겠는데.
일단 경계하고 있을 뿐 적대하지 않고 있단 사실에 감사해야겠다.
"별무리의 마법 소녀, 스노우야."
"마법 소녀...?"
"그런 수상한 이명 모른다고, 꼬맹아."
이번에 말한 건, 온몸에 상처 자국이 가득한 남자.
섬뜩해보이는 체인 메이스를 들고 묵빛 하프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있는 걸로 볼 때, 전사에 가까운 복장이다.
"스노우?"
"으음... 특이한 복장인데..."
"마법 소녀가 뭐지?"
"그만, 너한테서 마기는 느껴지지 않지만... 일단 물으마, 넌 어디서, 어떻게 왔지?"
궁수의 말에 나는 곰곰히 생각하는 기색을 보인다.
여기서 다른 차원에서 왔다고 하면, 알아들을까?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마왕을 잡기 위해, 너머에서 왔어."
"너머?"
"나는 수호자, 별의 마나를 지닌 수호자. 인류가 위험할 때 등장하는 마법 소녀야."
그렇게 말하며 별의 마력을 모으자, 누군가 창을 찔러온다.
당연하게도 그 공격은 렌이 막아내는 모습.
그 행동에 놀란 체인 메이스의 남자가 퍽. 하고 창을 휘두른 녀석의 등을 한 번 쳐 넘어뜨리고는 말했다.
"신성력도 마기도 아냐. 좀 더 성스러운...!"
"용사, 용사인가!"
"용사도 신성력으로 싸우는 검사였을 텐데?!"
"하지만... 인류가 끝장나기 직전인데도 루나님이 아직 용사를 내려주시지 않았잖아! 가능성이 있어!"
이게 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 세계에 마법 소녀가 없다는 사실이 조금 신경 쓰인다.
...다른 애들은 여기로 떨어지지 않은 건가?
아무래도 전부 다른 차원으로 흩어져서 미션을 진행하고 있는 모양이다.
"...공격은 미안하게 됐어. 우리가 지금 민감한 상황이라."
"괜찮아."
"나는 하프. 이곳, 퍼스트 마을의 지휘관으로 행동하고 있어. 네가 가진 마력은 말 그대로 '수호'의 마력이네. 정말로 수호자인 거야?"
"응."
이 쪽 세계는 아니지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녹색 궁사... 하프가 옆을 슬쩍 바라본다.
그곳에 있는 건, 남색 마녀 모자를 쓴 한 소녀.
잠깐 나를 바라보던 잿빛 눈동자의 소녀는 이내 시선을 하프에게로 돌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네. 전부 무기를 거둬라!"
하프의 말에 모두가 절도있게 무기를 거둔다.
복장은 각양각색이지만, 제대로 단결하고 있는 모양.
기왕 마력을 모은 김에 회복 마법으로 전환해 흩뿌리자, 모든 인원이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신...관?"
"신성력이 아닌데 어떻게 제대로 된 치료를?!"
"...?"
모두의 놀란 모습에 내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하프는 자신의 금색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말했다.
"따라와 주겠어? 잠시 이야기 좀 하자."
"..."
[나쁘진 않아 보입니다. 마왕이 있다는 건, 인류와 마왕의 대치 구도라는 의미니까요.]
"응."
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하프를 따라나섰다.
...판타지 신전은 또 처음이네.
중세 시대에 만들어졌을 법한 새하얀 신전에 들어온 내가 신기함에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마치 병원을 연상하듯 온 사방이 새하얀 곳임에도 은은한 기운이 편안함을 주는 장소.
순환시로 읽어봐도 새하얀 마력이라는 것밖에 읽히지 않는다.
"신기한가 봐?"
"응, 신전은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내 반응을 확인하면서 물어오는 그의 말에 나는 수긍의 의사를 표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내가 이런 광경을 볼 일이 있었을 리가 없으니까.
내 말에 뭘 착각한 건지, 조금 괴로워 보이는 표정을 보인 그가 말했다.
"그래, 신전이란 신전은 전부 파괴됐지. 사실상 이 마을 신전 외에는 남은 게 없으니까."
"...?"
"우리가 제대로 지켜내지 못해서 미안하게 됐다. 자, 앉아."
그의 헛소리를 들으면서 도착한 곳은 응접실로 보이는 장소.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찻잔을 가져와 진짜 풀을 넣어 마법으로 차를 끓이기 시작한다.
생활 마법이라니, 생각해보면 우리 쪽은 그런 게 없었는데.
아무래도 시스템을 이용한 마법이 대부분이라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 바깥 상황은 알고 있니?"
친근한 어조로 물어오는 하프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러자 음~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능숙하게 차를 내주는 모습.
잠시 한 모금 차를 마신 그는 모자를 모자걸이에 걸면서 말했다.
"그럼 지금 이 마을이 마지막 마을인 것도 모르겠구나."
"...응?"
"퍼스트 마을... 용사 마을이라고 불리는 이 마을이 인류의 마지막 마을이야."
인류 마지막 마을.
그 말에 나는 왜 이 사람들이 경계를 심하게 한 건지, 알아챌 수 있었다.
바깥에 남은 인류의 마을는 없다.
바깥에서 왔다면, 마왕의 수하일 확률이 높다는 거겠지.
"네 마력은 마왕군이 가질만한 게 아냐. 너는, 정확하게 어디서 왔지?"
밖에서 왔을 리가 없다고 확신하는 모습.
그의 말에 나는 음... 하면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나는 다른 차원에서 왔어."
"...허무맹랑한 말이긴 한데, 오히려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응."
"여기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살아남았을 리가 없거든. 이번 대 마왕은 인류를 멸종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거니까."
"음..."
인류를 멸종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남은 마을은 여기뿐이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인 걸 생각하며, 다시 퀘스트 내용을 바라본다.
마왕을 죽여라.
...마왕만 죽이면 인류가 여기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도 어떻게든 된다는 의미다.
"아무튼 아까 말했다시피 나는 멸망할 상황을 막기 위해서 온 거야. 마왕을 죽여야만 하거든."
"후우... 그래, 그렇군. 너 정도의 사람이 합류해준다면, 좀 더 버틸 수 있을까. 좋아, 그럼 마왕의 정보가 필요하겠군."
버틴다인가.
이미 체념에 가까운 그의 말에 나는 팔짱을 끼며 바라본다.
말하는 걸로 볼 때, 내 스펙이 자신보다 위라는 건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버틴다'라고 말했다는 건, 마왕이라고 불리는 녀석의 스펙이 생각 이상이라는 의민데...
"이번 대 마왕은 '윤회의 마왕'이라고 불리고 있어. 전대 마왕인 '침묵의 마왕' 아리아네가 죽은 직후, 바로 나타나 버린 마왕이지."
"마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생기는 거야."
"아니, 이번 건은 정말 안타깝게도 예외 상황이야. 침묵의 마왕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한 '용사 파티' 중 하나가 마왕이 된 상황이거든. 그래서 인류가 승리할 수 없었지. 우리는 세계의 90%를 빼앗긴 상황이었으니까."
"...아, 그런 건가."
용사 파티라는 게 있었고 마왕 퇴치에 성공했다면, 분명 인류의 최고 전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최고 전력이 떠나서 약해진 와중에 그 전력이 적이 돼서 돌아온 상황에 가까우니까... 10%가 남은 인류가 더더욱 밀리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사실 지금 인류가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신기할 수준이다.
"윤회의 마왕... 파르시는 우리가 역습할 때마다 그 역습하는 멤버들을 전멸시키면서 철저하게 찢어버리고 있어. 솔직히 용사 마을에 펼쳐진 결계 때문에 못 오고 있을 뿐이지."
"마왕이 최전선에 있어?"
"마도사라서 전이로 마법을 날리더군. 어처구니없는 화력 때문에 우리 인원들이 버티지 못하는 거고."
"..."
모예요, 사기캐잖아요.
마법사인 것도 모자라서 제자리에서 앉아서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마법을 갈기는데, 그게 병력을 전멸시킬 수준이라고 한다.
듣기만 해도 지금 인류가 살아남지 못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얼마나 버틸 수 있어."
"...사실 마왕이라면 이곳 결계도 조만간 해제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오래 잡아도 2주일 정도겠지."
"마왕이 있는 곳까지 거리는."
"...마차로 2주일 거리다."
이미 글렀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 체념의 가까운 목소리로 말하는 하프.
2주인가, 마차로 2주라고 생각하면, 비행으로는 한 3~4일 정도 걸린다고 판단하면 되려나?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다.
"그 정도면 괜찮아. 우리는 마법 소녀거든."
"마법 소녀가 대체 뭐하는 건지, 알려줄 수 있어? 잘 모르겠거든."
"...인류를 수호하는 마법사들? ...어려워."
정의하기 힘들다.
원래 세계에서야 마법 소녀라고 하면 아, 그거? 라는 느낌인데, 막상 정의를 말하라고 하면 말하기 힘들다.
그냥 소녀가 변신해서 마법을 쓰니까, 마법 소녀잖아.
"마법사... 그럼 힘들 거 같은데. 이번 대 마왕은 '무지개색의 마도사'거든."
"무지개색의 마도사."
"요일마다 머리카락색이 변하는데, 그 색에 맞는 마법의 화력이 2배 가까이 늘어나는 특징이 있어. 물론 역속성 마법은 반대로 0.5배로 줄어들지만."
"신기하네."
"문제는 파르시가 '마나의 지배자'라는 거다."
"마나의 지배자."
"마도사의 정점에 올랐을 때 얻는 등급이지. 지금 적에게는 레이야, 파르시. 총 2명의 마나의 지배자가 있다. 너도 마나의 지배자겠지?"
"..."
몰?루.
그게 뭔지 모르니까, 나한테 물어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보통 게임에서 이렇게까지 띄워 주는 적이라면 포션이라던가, 강화 아이템을 많이 갖춰서 가는 게 좋겠지만... 아쉽게도 나한텐 그런 게 없으니까.
마나 무한 치트가 어디야.
"괜찮아, 마도사와는 조금 다르니까."
"흐음... 그래, 어차피 더는 수도 없었으니까..."
하프가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침묵한다.
내가 이길 거라고는 1도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 썩 기분 나쁘긴 하지만, 그만큼 강력한 적이라는 거겠지.
주의하는 게 좋겠다.
쾅쾅쾅! 덜컥!
"하프님! 하프니이이이임!"
"?"
"무슨 소란이야? 손님하고 대화 중인데."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
"지금?"
"결계 밖에서 전투가 일어났습니다! 아군, 아직 결계 밖에 살아남은 아군 마도사가 있습니다!"
"뭐? 그게 말이 돼?"
인상이 흐릿한 누군가의 외침에 하프의 푸른 눈에 경악이 담긴다.
몸을 벌떡 일으키며 뛰쳐나가려다가, 나를 바라보곤 멈칫하는 모습.
나는 차분하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같이 가자."
"고마워, 따라와!"
내 말에 즉시 달려나가기 시작하는 하프.
주변에 바람이 휘감기는 걸 보며 내가 눈을 크게 뜨자, 조용히 있던 세르칸이 말했다.
[호, 정령술사잖아? 바람의 정령 쓰는데?]
"..."
진짜 판타지스러운 곳이네.
"치잇! 유레하!"
"알고 있어!"
사방에서 쇄도해오는 검은 복면인들을 유레하가 바람으로 밀어낸다.
동시에 땅을 폭파시키는 파이렌.
닌자로 추측되는 적들은 능숙한 움직임으로 폭발 범위에서 벗어나고, 유레하는 계속해서 고속으로 기동하며 윈드 트랩을 사방에 설치하기 시작한다.
"파이렌! 6번째!"
"익스플로전 밤!"
콰아아아아앙!
유레하가 뭔가 느낀 듯 소리치자, 숲 한가운데 부분에 폭발한다.
그 위치에 있는 건 왠 통나무 하나뿐.
파이렌이 그걸 본 순간, 그녀의 뒤로 무언가가 날아든다!
"윈드 퍼레이드!"
진작에 알아채고 날아든 수리검을 바람으로 튕겨내는 유레하.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슥. 하고 닦은 그녀는 이내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빨리 주인님을 찾으러 가자!"
"빠져나갈 수 없을지도 몰라, 유레하..."
"내가 밀어낼 테니까, 그 사이에...!"
그 순간.
허공에 포탈이 열린다.
두 사람의 위치에서 보이는 건, 보라색으로 빛나는 하나의 마법진 뿐.
포탈을 통해 마법이 발동할 거라는 걸 깨달은 유레하가 곧바로 파이렌을 억지로 잡아챈다!
"으왓?!"
"윈드 스텝!"
콰과과과광!
그녀들이 있던 자리에 번개 다발이 쏟아진다.
끝도 없이 쏟아져 내리는 번개를 보며,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끼는 파이렌.
그녀들이 잠깐 그 번개에 시선을 뺏긴 사이, 낮은 고도까지 내려온 그녀들에게 수십의 인영이 쇄도한다!
"핫?!"
번개에 시선을 뺏긴 탓일까.
이번 공격에 반응하지 못한 유레하가 눈을 질끈 감는 순간이었다.
"렌."
[네.]
퍼버버벅!
허공에서 별빛이 쇄도한다.
그와 함께 나타난 거대한 포탈을 보며, 재빠르게 파이렌과 유레하를 잡아채는 은발의 소녀.
그 사람의 얼굴을 본 유레하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다.
"주인니임!"
"응, 너희도 있었구나. 다행이다."
그렇게 파이렌과 유레하는 스노우와 합류해 퍼스트 마을로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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