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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103화 (103/149)

〈 103화 〉 4부 1F 프롤로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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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실패했다.

아니, 성공했지만 실패했다.

마왕을 쓰러 뜨리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한 이유가 남지 않았다.

"하하... 아하하하..."

죽었다.

오빠야가 죽었다.

용사는 피투성이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세계 최고의 헌터는 수인화를 해제하지도 못한 채 벽에 기대앉아 기절해있었다.

마왕은 재가 되어 흩날리고, 세계 최고의 신관은 심장이 사라진 채로 서 있었다.

ㅡ나는 그 모든 광경을 바라봤다.

너덜너덜해진 몸을 억지로 움직이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망가진 마력을 억지로 움직였다.

푸른 마법진이 나타난다.

다시 시작하면 돼.

다시 시작하면, 모두 살릴 수 있을 거야.

[루프 리미트 ­ 0]

"아..."

되돌리지 못한다.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기회였다.

"오빠야... 오빠야..."

삐그덕거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다가, 풀썩하고 엎어진다.

나만이 죽지 못했다.

모두가 죽었는데, 나만이 죽지 못했다.

모든 용사 파티가 전멸했는데, 나만이... 나만이 죽지 못했다.

"세레스... 에리카... 페이 오빠야...!"

시간 마법을 배운 육신은 죽은 상태로도 죽지 못했다.

자동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치명적이었던 부상은 다시 고쳐지고 말았다.

대가는 그저 한동안 움직이기 힘든 정도뿐.

사실상 '불사'가 됐다는 사실에 나는 절망했다.

"왜... 왜...!"

나도, 모두와 함께했는데.

나도, 모두와 함께 싸웠는데.

나도... 모두와 같은 마음이었는데.

왜 나만, 나만 두고 전부 떠난 거야.

하다못해, 오빠야만이라도 살았다면...!

"케흑...!"

죽은 피를 토해내고, 그대로 기어서 모두에게로 다가간다.

마왕이 사라진 곳에 남은 불길한 보랏빛 구슬이 있었다.

방대한 마기가 그 안에 들어있었다.

기어서 오빠야의 다리를 건드리자, 털썩. 하고 오빠야의 신체가 내 위로 넘어진다.

간신히 옆으로 몸을 뒤집고, 오빠야의 얼굴을 바라본다.

초점 없는 눈동자를 마주한다.

"아... 아아..."

봉인했던 감정이 폭발한다.

광증에 가까운 애정이 버티지 못하고 터져 나와, 모든 것을 절망으로 바꾼다.

"안 돼, 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

마왕의 구슬을 깨뜨린다.

마기를 온몸에 흡수하기 시작하자, 끔찍한 고통이 몸을 돌아다닌다.

상관없다.

모두를 살려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악마랑 계약하는 것이라도.

다시, 다시 살려낼 수만 있다면...

"일어나... 일어나! 세레스! 에리카! 페이!"

마기가 폭주하듯 몰아치며 아직 육체를 채 떠나지 못한 영혼들을 강제로 다시 불러낸다.

검의 용사, 세레스의 손가락이 꿈틀거린다.

최고의 사냥꾼이 움찔하며 몸을 떤다.

ㅡ누구보다 앞장서서 싸운 주교의 몸에는 미동조차 없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벌써 저질렀구나, 파르시."

오빠야만이 살아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에 시선을 옮긴다.

레이야 할머님.

전 용사 파티 마도사이자, 언데드로서 부활한 사천왕.

"할머니, 할머니, 이상해요. 오빠야가 살아나지 않아요. 네? 오빠야가, 오빠야가 살아나지 않는다고요!"

"그야, 당연하지 않겠어. 그 꼬맹이는 여신의 사도니까, 부활할 일은 없어."

"어째서? 어째서요? 오빠야는 신성력과 마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잖아요?"

"마기의 주인인 마왕이 죽었으니, 계약도 풀렸겠지. 당연한 결과란다."

"아... 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소녀는 한참 동안 절규하다가, 고개를 푹 하고 숙인다.

잠시 후 철컥. 하고 몸을 일으키는 용사, 세레스.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깨어났는지 알아챈 걸까.

그녀의 눈동자에는 싸늘함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파르시, 미쳤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야. 우리가 뭐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오빠야를 위해서잖아..."

"뭐...?"

"오빠야를 위해서였잖아! 세레스! 에리카! 너희 둘도 똑같았잖아! 오빠야를 좋아해서, 오빠야의 목적이 마왕 토벌이었으니까 움직인 거잖아! 전부 오빠야를 위해서, 오빠야를 위해서였다고! 마왕 퇴치 같은 거, 오빠야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도...!"

"..."

"파르시 말이 맞아요, 부정해선 안 되죠? 세레스."

"아냐, 나는 마왕을 물리치려고..."

"그래서, 페이 오라버니를 좋아하지 않았다고요?"

"그 말이 아니잖아..."

이제는 자기 손을 녹이려고 드는 성검을 떨어뜨린 세레스의 양팔에 힘이 빠진다.

데스나이트로 부활한 그녀의 입에 허탈한 미소가 잡히고, 이내 털썩 주저앉으며 약간 변색한 머리칼을 붙잡는다.

ㅡ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결과였다.

그녀들은 세계를 위해 마왕 타도에 성공했지만.

용사 파티로서의 임무를 다하고도 행복해질 수 없었다.

­­­­

"전부... 전부 마왕이 문제였어."

"...하지만 마왕은 이미 죽었는걸."

"그래, 이제 파르시 네가 마왕이 됐지."

"...에?"

"뭘 모르는 척하고 있어. 네가 건드린 건, 마왕의 증표인 것을."

레이야 할머니의 말에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온몸을 타고 흐르는 마기를 바라본다.

마왕의 증표.

마왕의 힘을 담은 구슬을 건드리고, 그걸 전부 받아들이는 것에 성공하고 말았다.

내가 가진 재능은 끔찍하게도, 그나마 이뤄냈던 목표마저 잃게 만들었다.

"..."

[시스템이 당신의 마왕명을 찾고 있습니다...]

[확인, 당신의 이명은 '윤회의 마왕'입니다.]

ㅡ나를 보조했던 무언가는 냉정하게 내가 마왕이 됐다는 사실을 알린다.

"..."

머리가 멍하다.

모든 걸 버리고 나서야 성공했던 목표마저 사그라진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세레스가 화냈구나.

평소와는 다르게 굴러가지 않는 머리가 그 사실을 다시금 이해한다.

"오히려 괜찮지 않겠어."

"..."

"네가 마왕이 됐다는 건, 복수할 수 있단 이야기지."

레이야 할머니의 말에 멍하니 그녀를 바라본다.

평소와 같은 무표정한 모습.

마치 석상이 말하는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복수? 무슨 복수를...!"

"너희를 용사 파티로 보낸 인간들에게 복수할 수 있지. 인간이 멸망하면, 페이를 데려간 루나한테도 복수할 수 있어."

"아... 아... 아하..."

그럴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오빠야의 원한을 갚을 수 있을까?

"인류는 너희에게 희생을 강요했지, 이제 너희가 인류한테 희생을 강요할 차례라고 생각하면 어떻겠니?"

"그럴 수는..."

"루나를 협박하기라도 해야지 않겠어. '인류가 멸망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페이의 영혼을 돌려줘.'라고."

"ㅡ."

우리 세 사람이 모두 침묵한다.

여신을 협박한다.

협박해서 페이의 영혼을 받고, 다시 부활시킨다.

그러면, 그러면 다시 볼 수 있는 거야?

오빠야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야?

"믿져야 본전이잖아. 너희는."

ㅡ그렇게 우리는 마왕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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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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