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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101화 (101/149)

〈 101화 〉 과거의 잔재

* * *

머릿속에 전생의 나를 그린다.

아직 프로게이머가 되기 전의 나에 대한 이야기.

무언가를 익힐 때마다 즐거움만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하고, 친구들과 즐겁게 이야기하면서 같이 게임을 하고.

그 당시만 해도 나는 그저 공부를 좀 하는 학생이었을 뿐이었다.

ㅡ내 티어가 친구들을 압도하기 전까진.

"오늘 피방 고? 랭 허쉴?"

"랭크... 지금 티어 어디였더라."

"응? 실버."

"미안, 나 실버 계정이 없어."

"? 뭐임 너 일주일 전만 해도 실버였잖음. 골드까진 같이 듀오 되는데?"

"...나 지금 다이아야."

"?"

내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장난치지 말라는 것처럼, 툭툭 치는 친구에게 인증하기 위해 계정을 보여준다.

실제로 인증까지 하자, 그제야 믿어주는 친구.

"미친, 롤 댕 열심히 했나 보네. 뭐야 롤 계정 인당 3개까진 만들 수 있으니까, 그럼 노멀이나 하러 가자."

"응."

그때까진 별문제가 없었다.

티어가 마스터가 되고, 그랜드 마스터가 되고, 챌린저가 될 때까지.

분명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친구 역시 별 부담 없이 나와 게임을 했었지.

달라진 건, 내가 프로 제의를 받았다고 말했을 때부터였다.

"야."

"응."

"자랑하려고 나 불렀냐?"

"...?"

평소처럼 같이 놀러 가던 중 들려온 친구의 말에 나는 멍하니 친구를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그럴 수 있다­로 항상 넘기던 친구의 반응이 신선해서였을까.

아니면 스스로 위기감을 느꼈던 걸까.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 친구와는 그 이후로 제대로 놀지 못했던 기억이 있었다.

ㅡ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

친구를 잃고 프로의 길로 들어섰다.

감독님은 얌전한 내 성격을 좋아했고, 위험한 상황이든 안정적인 상황이든 차분한 모습을 코치들이 좋아했다.

같은 선수진도 마찬가지.

전략을 빠르게 흡수하고 그 전략을 좀 더 다듬어서 차근차근 설명하는 나를 좋아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난하게 연승할 수 있었고, 가끔 전략 선택 미스로 패배하는 것 외엔 별문제도 없이 승리를 이어나갔다.

문제가 생겼던 건, 2년쯤 지난 후부터.

개인 사정으로 멤버가 나가고, 연습생이었던 아이가 올라왔을 때부터 시작됐다.

"저, 저... 바, 반가워요! 도현 선배님이죠!?"

"...응, 반가워."

"팬이에요!"

"아, 응. 고마워."

아직 고등학생 정도 수준이었던 아이였다.

제법 명성을 얻고 있던 나의 뭘 보고 그렇게 좋았던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제법 귀여운 아이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 팀이 막내의 실수로 연패한 날이 있었다.

스크림에선 제대로 하던 막내였지만, 본 경기의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걸까.

팀은 아슬아슬하게 승리했지만, 그렇다고 막내가 부담감을 이겨낸 건 아니었다.

팀 전체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은 밤.

솔랭을 하며 밤샘 연습을 하던 나에게 막내가 찾아왔다.

"형..."

"응, 왔구나."

어두운 표정.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막내의 표정을 보면서도 나는 그저 담담하게 그를 반겼다.

평소와 같은 태도에 안심한 걸까.

막내의 표정이 그나마 밝아진 것을 느낄 때 즈음 그가 말했다.

"이번 경기, 제가 너무 못했죠?"

"응."

"우와, 단호박이야..."

당연한 질문을 하는 녀석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시무룩해진 얼굴로 내 옆자리에 앉는다.

어차피 매칭도 안 잡히는 상황이라 녀석의 말을 들어볼까 하고 고개를 돌리자, 막내가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을까요."

"..."

어려운 질문이었다.

막내가 부족한 건 실력이 아니었으니까.

막내가 실수하고, 실패한 건 단순히 경험 부족으로 인한 부담감 때문일 뿐.

안타깝게도 나는 부담감을 느낀 적이 없기 때문에 조언해줄 수가 없었다.

다만...

"네 실력은 좋은 편이야. 하지만 우리 팀에 들어온 너는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져 있지."

"그야... 형들이 저보다 잘하니까요."

"그럼 간단해. 너도 우리만큼 실력을 끌어올리면 돼."

"그게 말처럼 쉬우면..."

"응, 쉽지 않아. 그러니까, 도와줄게."

그때부터 막내와 나의 개인 교습이 시작됐다.

교습은 코치의 역할이지만, 내가 막내를 도와준다고 하니 오히려 우리 팀 사람들은 기뻐했다.

평소에 자기 할 일만 묵묵히 할 일만 하던 사람이 먼저 나선다고 했으니, 기뻐하지 않을 리가 있을 리가.

그렇게 개인 교습을 통해 막내의 실력이 생각 이상으로 많이 오르게 되었고, 그 결과는 대회에서 이어졌다.

[아! 들어갑니다! 완벽한 타이밍이에요!]

[스웬과 샤퍼의 깔끔한 연계! 위기의 상황에서 2:5로 한 건 해냈어요!]

[이게 저번에 힘들어했던 샤퍼가 맞나요!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정말 사소한 실수로 불리한 상황이 만들어졌을 때, 나와 막내의 콤비로 어떻게든 역전.

그 상태로 경기를 끝내고 나서 사건은 시작됐다.

샤퍼가 개인 교습을 받고 실력이 확 늘어났다는 걸 들은 연습생들과 선수들, 심지어 코치진까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한 것.

한동안은 괜찮았다.

다들 재능있는 사람들이었고,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 잘 흡수해 나갔다.

그 결과는 대회에서 증명되기 시작했고, 우리는 최고의 팀이라는 칭호로 불리면서 연전연승해나갔다.

ㅡ그리고, 가장 연장자였던 형과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평소와 같이 피드백을 하던 도중.

형이라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뒤에서 이런저런 조언을 하던 도중이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이게 나아요."

"알고 있어. 알고는 있는데..."

"아니에요, 형. 형이라면 분명 할 수 있어요."

"..."

관전 피드백을 통해 하나하나 짚어주기 시작할 때. 형이 한숨을 내쉬면서 괴로운 듯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그저 잘 안 풀리나 보네. 하면서 그걸 관망할 때.

형이 말했다.

"민호야."

"네, 형."

"나는 안 되겠다."

"형, 형 실력이면..."

"아냐, 민호야. 난 안 되겠어. 안 되겠다고."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데이터상으로 형은 분명 가능한 사람이다.

나이가 늘어나면서 형의 반응 속도가 떨어진 점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형은 뇌지컬로 화려하게 승부수를 두던 사람이었고, 그런 형의 플레이 타입을 완벽하게 이해하던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형, 할 수 있다니까요."

"유 민호!"

"..."

"...소리쳐서 미안. 근데, 오늘은 그만 보자."

자기도 모르게 소리친 건지, 흠칫하던 형이 사과하며 축객령을 내린다.

그대로 컴퓨터 앞에 엎드리는 모습.

그렇게 나는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방을 나서고 말았다.

그 후로도 마찬가지였다.

형뿐만이 아니었다.

매번 최고의 효율로 타입에 맞게 가르치던 나였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프로였다.

프로였기 때문에 자신의 타입에 맞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팀원들이 지쳤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 내가 가르치는 실력이 부족하구나.

ㅡ그렇게 모든 팀원에게 피드백을 하기 시작했다.

"아, 형. 그만 좀요! 지금 배운 것도 머리 터질 거 같다니까요?"

"그래도 다 생각하고 움직여야 해. 그래야 상대를 확실하게 이길 수 있어."

"누가 그걸 몰라서 안 해요? 못하는 거예요!"

"넌 할 수 있어."

"어디서 그런 과한 믿음이 나오는 거예요?"

나에게 처음으로 배웠던 막내를 제외하곤, 전부 나와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고립되기 시작했지만, 괜찮았다.

이야기한 걸 완전히 흡수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다들 어떻게든 내 말을 이해하고, 게임에 적용하려는 흔적들이 보였으니까.

막내만큼은 날 제대로 이해하고, 계속 흡수하고 있었으니까.

ㅡ막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하필이면 프로게이머에게 가장 중요한 양손이 망가져 버리고 말았다.

원래 움직임처럼 빠른 움직임, 반응 속도를 낼 수 없게 되었다.

녀석을 울부짖으면서 울었고, 나는 그런 막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막내가 팀을 나가게 된 날.

녀석이 말했다.

"형은 형 재능 이하의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차라리 피드백을 전부 관둬요. 그게 맞아요."

"...그래, 그렇구나."

"그래도 오더나 그런 건 잘 따라주잖아요? 형 실력 자체는 믿는 거니까."

"그래."

"...힘내요, 형. 전 뭐, 스트리머나 하죠. 뭐."

그렇게 말하며 떠나간 막내.

막내의 조언에 따라 피드백을 멈추자, 이번엔 감독님과 코치가 나에게 피드백을 왜 멈추냐고 물었다.

모두가 따라오지 못한다는 조언을 듣고, 한동안 멈추겠다고 말했다.

...감독님 생각은 달랐던 거 같지만.

"계속해."

"애들이 흡수할 때까진, 멈추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냐, 지금도 성과는 계속 나오잖아. 계속해봐."

"...알겠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피드백을 진행했고, 나는 완벽하게 혼자가 되었다.

혼자 경기하는 건 익숙한 일이었다.

오더는 따르지만, 더는 팀원들이 상냥하게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리 팀은 나를 제외하곤 침묵이 흘렀고, 그걸 캐치한 어떤 기자에 의해 '무거운 침묵'이라는 어이없는 별명도 붙었다.

모든 팀원들의 계약이 끝났을 때.

내가 키운 녀석들이 전부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감독님의 미스였다.

나의 미스기도 했다.

애초에 피드백 같은 걸 안 했더라면.

그만두라고 했을 때, 그만뒀더라면.

여러 가지 후회가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프로게이머로서 정점에 섰고, 그걸 한동안 유지하다가 계속해서 바뀌는 주변 환경, 실력이 조금 떨어진 걸 느끼고 프로게이머를 그만뒀다.

"진짜 갈 건가?"

"네."

"너는 아직도 톱이야. 몇 년은 더 할 수 있어."

"방송이나 할까 하고요."

"방송은 팀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

"이제 다른 게임이 하고 싶어요."

"...정말 안 되겠어?"

"네."

그렇게 나는 프로를 그만뒀다.

­­­­

"어, 음..."

내 이야기를 듣던 루루는 어색한 표정으로 아하하... 하면서 웃어 보이지만, 나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새파란 하늘.

분명 빙의하기 바로 전날도 이런 느낌이었지.

"나는 공략 스트리머로 직종을 바꾸고, 그럭저럭 다시 성공했어. 어차피 돈은 모을 만큼 모았었고, 단순하게 취미였으니까."

"부자였어요!?"

"부자...긴 했지."

대회 상금을 거의 독식했는데, 부자가 아니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다.

계약금, 대회 상여금 등 여러 이유로 돈을 받아서 저축했기 때문에 돈은 넘치도록 있었다.

그렇다고 외롭지 않은 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방송을 하는데도 혼자서 진행하는 게 힘들었지. 다행인 건, 그래도 네이밍 때문에 공략만으로도 뜰 수 있었다는 정도일까."

"흐음... 신기하네요~! 지금이랑은 완전히 다른 상황 아니에요?"

"생각해보면 스노우가 누구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본 적이 없으니까, 그 때문이 아닐까?"

"..."

아마 그게 정답이다.

이 세계는 내가 해야 할 일만 해왔을 뿐,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시킨 적이 없었다.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굉장히 타당한 일뿐.

"그렇네요, 그럼 스노우 씨라서 거부 받지 않은 게 아니라..."

"애초에 네가 했던 실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끝까지 받아들여진 거지. 그럼 네가 남자였어도 똑같지 않았을까~?"

"..."

그럴지도.

그녀들의 말에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예전에 했던 일들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와 잘 지내고 있다.

그렇게 판단해도 되겠지.

"괜찮아요!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지만, 스노우 씨는 반복... 아니, 민호 씨는 반복하지 않은 거잖아요! 할 일만 한 거잖아요!"

"..."

"...저, 그, 근데 원래 나이가 얼마나 된 거예요. 그럼?"

"?"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잠깐 눈을 깜박이다가 고민의 기색을 보인다.

그렇네, 일단...

"은퇴할 때 22살. 스트리머로 2년이니까, 24살."

"우와... 7살 차이네요! 그 정도면 가능!"

"..."

"미성년자랑 성인의 연애는 곤란하지 않을까?"

루루의 말에 아린이가 아하하... 하고 웃으면서 그렇게 말한다.

...조금은 후련해진 기분이다.

누구한테 자기 과거를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렇게 편안할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기회를 만들어준 루루한테는 감사하도록 하자.

"아, 온 김에 바다에서 놀아요! 어차피 우리 마법 소녀라서 온도도 딱 맞을걸요!"

"...마법 소녀 패시브 생각해보면 너무 많다고 생각해."

"기분 탓이에요."

"그건 됐어됐어~ 안 중요해. 간만이니까 빨리 놀자!

아니, 절대 기분 탓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지만, 곧바로 바다로 뛰어나가는 루루와 아린이를 보곤 한숨을 폭 하고 내쉰다.

그러니까 마법 소녀 복을 옷으로 바꾸려면...

"...?"

어라? 그런 기능 없는데.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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