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100화 (100/149)

〈 100화 〉 과거의 잔재

* * *

"얘 좀 떼어줘."

다음 날.

내가 어딜 가든 딱 달라붙어서 다니고 있는 루루를 보며 말하자, 루리에가 아하하... 하면서 당황하는 기색을 보인다.

우리 수해의 마법 소녀님도 이 노란 꼬맹이가 이런 식으로 행동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저, 루루야? 언니가 취향은 이해해 줄 수 있는데..."

"무슨 취향? 스노우는 남자니까, 정상적이잖아."

"스노우는 여자... 에휴, 그래."

포기하지 마.

내가 드물게 언짢은 표정으로 루리에를 바라보지만, 그녀는 포기한 듯 다시 소파에 앉을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내 팔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루루를 쓰다듬어주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루루가 제대로 일을 해준다면, 크게 문제는 없지만.

[남자인 걸 알고 좋아하는 거니, 그냥 사귀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렌이 헛소리가 많이 늘었네.

그 경우 일단 오해를 크게 받을뿐더러, 후에 내가 죽거나 원래 세계로 돌아갔을 때 루루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게 된다.

사람 가슴에 못을 세게 박을 바에야 내가 좀 귀찮고 말지.

[마스터는 죽지 않습니다.]

"스노우 씨, 진짜 이름이 뭐예요? 육체 이름 말고, 진짜 이름!"

"...루루."

"넹?"

"잠깐 따로 이야기하자."

아무튼 정체를 눈치챘으니까, 계속 언급하는 그건 주의시키는 게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루루를 데리고 내 방으로 들어온다.

동시에 결계를 펼쳐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한 뒤, 한숨을 내쉬면서 침대에 앉는 나.

그러자 루루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아 다시 기대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둘만의 비밀 이야기라니, 콩닥거려요!"

"..."

아니, 그렇게 기대하듯 바라봐도 곤란한데.

잠깐 그런 루루를 보며 한숨을 내쉬다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루루."

"네!"

"일단 내가 남자였다는 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야."

"이미 둘만의 비밀이 있었네요!?"

"그러니까, 말하고 다니면 안 돼."

순순히 인정하면서 그렇게 말하자, 루루는 알겠어요! 하면서 고개를 빠르게 끄덕인다.

그리고... 이름을 물어봤던가.

"내 이름이 왜 궁금한 거야."

"스노우 씨는 다 해결하면 사라질 생각부터 하고 있으니까요?"

"...그건 어떻게 알았어."

"음~ 그러게요. 이건 여자의 감인 부분 일지도요! 제가 있으니까, 멋대로 가지 말아주세요!"

"..."

아니, 아직 너랑 아무 관계도 아닌데.

무표정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루루는 손가락으로 내 볼을 잡더니, 미소짓는 것처럼 강제로 움직이게 만든다.

그 행동에 손을 떼기 위해 손을 잡는 순간, 재빠르게 내 손을 양손으로 잡는 루루.

그리곤 싱글벙글 웃어 보인 노란 소녀가 입을 열었다.

"제가 같이 있어야 스노우 씨가 남자로라도 남을 거고~ 제가 있어야 표정 변화가 조금이라도 생길 거 같은데!"

"남자로 돌아가는 건 힘들지 않을까. 원래 세계라면 몰라도."

"원래 세계 몸을 소환하면 되죠!"

[맞습니다.]

렌이랑 똑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세계에서 누군가를 소환하는 마법은 쉬운 게 아냐."

"하지만 스노우 씨는 한 거잖아요?"

"내가 한 건 아니지만."

진짜 스노우가 하긴 했지.

하지만 그것도 엄청나게 마력이 넘쳐난 상태로 시행한 마법이다.

꿈이라곤 해도 술식을 본 탓인지 사용법 자체는 알고 있지만...

"영혼만 소환했어. 반쯤 실패했던 거지."

"그래서 몸을 넘겨줬군요? 원래 주인은요?"

"예측 가는 곳은 있는데, 확실하진 않아. 잘 살아있어."

"그건 다행이네요!"

"...그보다 너 지금 오버플로 상태야. 나랑 같이 탑으로 가도 괜찮을까."

순환시에 읽히는 루루의 상태를 보며, 나는 그렇게 묻는다.

루루가 기절하고 며칠 동안 일어나지 못한 이유.

루루의 마력은 '빛'과 '포식'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파괴자에서 원래대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포식'의 힘으로 대륙 전체를 먹어 치웠다.

그 먹어 치운 물질들을 전부 마력으로 전환해 흡수한 탓에 몸에 과부하가 걸려 그걸 스스로 잠재우는데 거의 일주일이 걸린 것.

...그걸 과부하 선에서 끝낸 것도 대단하고, 일주일 컷낸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과부하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아서 좀 불안하다.

"괜찮아요! 몸 상태는 양호한걸요!"

"마법 소녀 상태일 때는?"

"조금 온몸이 달아오르는 정도?"

"...완전히 다 나으면 가자."

적당한 열기 자체는 나쁘지 않겠지만... 그게 마력 제어 때문이라면 골치 아픈 일이다.

언제든 폭주할 각이 보인다는 의미니까.

"그래서 결국 이름이 뭔데요?"

"..."

내 진짜 이름이라.

스노우로 활동한 시간은 기껏해야 몇 달인데, 벌써 원래 이름을 기억해내려고 하니 어색해진다.

별로 중요하지 않잖아.

그렇게 생각하지만, 어쩐지 입 밖으로 꺼내기 조금 망설여진다.

...트라우마라고 하는 걸까, 이건.

남자였을 때,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자신이 떠오른다.

남들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이해받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었지만, 돕지 못했다.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기억이 자꾸만 내가 말하는 것을 거부하게 했다.

[마스터, 잘 들으세요.]

"..."

[이 아이는 당신의 본질을 보고 있어요. 원래 모습 그대로 보고 있단 의미입니다.]

[엥? 그런 거야?]

[세르칸, 당신은 조용히 하세요.]

[일어나자마자 들은 게 조용히 하세요라니, 슬프구만.]

나를 위로하던 렌이 세르칸에게 핀잔을 주자, 그는 투덜거리면서 능숙하게 누군가로 변신한다.

변신한 모습은...

"아린이네."

"어라? 저 사람 어디서..."

"아하하~ 세르칸도치사하게..."

"내 에고 무기야."

"앗, 그렇구나!?"

내 팔목에 있던 팔찌가 사라졌다는 걸 깨닫고 놀라면서도 눈을 반짝이는 모습.

루루의 시선이 옮겨진 사이 나는 마음속에 싹트려고 하는 트라우마를 간신히 덮기 시작한다.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마스터...]

"스노우, 마법 소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집중력이야. 뭔가 있으면, 사고 나기 전에 털어버려."

"..."

갑작스럽게 나를 찔러 들어오는 아린이의 발언에 흠칫하곤 시선을 피한다.

그러자 다시 내 손을 꼭 잡는 루루의 모습.

한참 동안 방 안에 침묵이 돌기 시작하자, 이번엔 렌까지 요정화를 발동해 내 어깨에 앉는다.

"지금까지는 바빠서 생각하지 못한 게 튀어나오는 겁니다, 마스터. 언제 또 그럴지 몰라요. 지금 털어놓는 게..."

"...그럴 수 없어."

"스노우 씨...?"

내가 계속 거부하는 몸짓을 보이자, 루루는 잠시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리곤 갑작스럽게 마법 소녀로 변신하더니,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모습.

내가 멍하니 그걸 바라보자,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방 안에 있으니까 그런 거예요! 언니한테는 말해놓을 테니까, 놀러 가요!"

"루루, 마력 쓰면..."

"아이! 이런 때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따라와요!"

그렇게 내 손을 잡고 날아오르는 루루의 행동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마법 소녀 폼으로 변신한다.

그러자 내 뒤를 따라서 날아오르는 아린이와 어깨에서 미동도 없이 앉아있는 렌의 모습.

멍한 표정으로 아래를 보자, 한창 보수 작업 중인 사람들과 던전에 다녀온 건지 여기저기 그을린 상태로 걸어가는 파티가 눈에 보인다.

여기저기 다친 거 같아도 활짝 웃고 있는 게, 오늘 수확은 괜찮았던 모양.

"...어디 가는 거야?"

"저기요!"

그녀의 말에 시선을 옮기자, 해수욕장이 보인다.

왠지 중간중간에 워프 게이트 탄다 싶었더니, 바다로 가는 거였구나.

어쩐지 예전에 봤을 때보다 한참이나 낮아진 느낌이 드는 바닷가에 도착하자, 모래사장에 그대로 착지하는 모습.

이어서 온 아린이가 어느샌가 딸기 무늬가 새겨진 새햐안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있단 사실을 깨닫는다.

"...그 상태로 날아온 거 아니지."

"아, 아냐아냐?! 그런 치녀는 아니라구! 도착 위치가 해수욕장인 거 보고 바꾼 거야!"

주변을 둘러보자 예전에 해수욕장이었던 흔적으로 부서진 파라솔과 선텐 의자등이 눈에 띈다.

근처 도시까지는 복구가 완료됐지만, 아직 휴게 시설은 전부 복구하진 못한 모양.

그래도 드문드문 바다를 보며 멍하니 있는 사람들이 있어 보이긴 한다.

...소설가려나?

솨아아­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트라우마 때문에 방어적으로 변했던 감정이 가라앉는다.

...응, 그렇구나.

확실히 이곳은 마음에 안정되는 곳이다.

"뭘 숨기고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스노우 씨는 자기 남자일 때를 싫어하는 거네요?"

"...응."

"흐음, 지금이랑 성격이 달랐어요?"

"아니."

딱히 성격 자체가 다르진 않았다.

달라진 점이라곤 성별이 변했다는 것 뿐.

외모는... 그냥저냥 평범하게 생겼었지.

"저는 스노우 씨 남자 모습도 같이 보여요. 그래도 스노우 씨가 노력했던 것도 들었고, 실제로도 모두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있어요."

"네가 난장판 낸 것도 기억하고 있는 거지."

"아, 아하하하... 모, 몰?루?"

"그건 어디서 배웠어."

"누가 그러던데요."

루루가 들을 사람이라 해봐야 마법 소녀들 정도다.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자.

"그러니까, 저는 남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

"애초에 저 남자로 알고 좋아한 건 잊은 거예요? 실망인데."

그녀의 말에 나는 침묵하며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의자로 걸어가 앉는다.

그런 내 행동에 아린이가 그대로 공주님 안기를 하듯 받아들더니 마법으로 만들어내는 새로운 선텐 의자들.

...선텐 의자 주제에 푹신한 침대형 의자처럼 보이는 건, 아린이 취향인가.

"생각할 거면 깨끗한데 누워야지~! 더럽게!"

"마법 소녀는 상관없잖아."

"상관 많습니다! 에휴, 너도 이제 여자애니까 몸 관리 정도는 해야 해!"

"..."

필요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의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자, 옆에 루루가 앉더니 나를 바라봄 헤헤 웃는다.

...얘는 대체 나에게서 뭘 봤길래 이렇게 행동하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남자인 나를 긍정해주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잠시 눈을 감고 바람을 느낀다.

시원하게 스쳐 가는 바람의 감각에 몸을 맡기며 고민에 빠진다.

감정은 언제나 평온하게.

트라우마 때문에 잠깐 흔들렸지만, 평소와 같아졌다.

이제는 그게 뭐가 대단한 거냐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어차피 이름만 알려줄 뿐인 이야기다.

...이름을 알려줄 수 있다면, 내 과거 이야기도 해줄 수 있는 게 아닐까.

나와 이 세계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에게도,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애초에 전부 받아들여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한다.

이건 테스트다.

모두에게 설명하기 전에 말하는 테스트 플레이 같은 거다.

응, 그렇다면 말할 수 있어.

알파 테스트는 언제나 해왔던 일이니까.

"...잠시 옛날이야기를 할게."

그렇게 내 이야기가 시작됐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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