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3부 에필로그
* * *
"전 포문 파이어."
[포가 하나밖에 없습니다만.]
[그럼 2개가 되면 되겠구만!]
내가 장난스러운 어투로 말하자, 렌이 평소와 같은 어조로 답한다.
내 말을 듣고 자연스럽게 포의 형태로 모습이 변경되는 세르칸을보며 나는 잔여 마력을 모아 비홀더와 만티코어를 동시 조준한다.
"일렉트릭 퍼니쉬먼트, 아쿠아 브레스."
일렉트릭 퍼니쉬먼트는 비홀더에게.
아쿠아 브레스는 만티코어에게 조준한다.
내 마력을 느낀 건지, 라구엘이 슬쩍 나를 바라보더니, 들고 있던 빛의 창을 만티코어의 날개로 날리는 모습.
그걸 본 괴물은 당연하다는 것처럼 회피 기동을 하지만, 유도탄처럼 끝까지 쫓아오는 창에 당황하는 기색이 보인다.
사자 머리가 으르렁거리면서 입에 화염을 담는 순간, 내 아쿠아 브레스가 만티코어에게 적중했다.
치이익!
크어어어어!
만티코어의 주둥이에 정확하게 적중해 속을 파고드는 아쿠아 브레스.
생각 이상의 위력이었는지 만티코어가 괴성을 지르며 바둥거리기 시작했고, 그대로 창 역시 날개에 꽂혀버린다.
"내 창은 모든 것을 심판하는 불길일지니."
그와 함께 새하얀 불꽃에 타들어 가기 시작하는 만티코어.
속은 아쿠아 브레스로 엉망이 되고, 겉은 새하얀 불로 타오르기 시작하자, 만티코어는 그대로 땅으로 떨어져 불을 끄려는 기색을 보인다.
"결계는 폼이 아닌데."
결계에 그대로 쾅! 하고 부딪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만티코어.
그 사이 비홀더가 눈깔 레이저(?)를 일자로 쏘아내는 걸 보고, 분홍빛을 띠기 시작한 전격을 바로 쏘아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레이저 과부하로 잠깐 정지했던 비홀더를 태워나가는 번개.
녀석이 마비된 순간, 라덴이 가볍게 숨을 불어넣듯 브레스를 직격시키고 비홀더도 소멸.
남은 건... 발론.
빌어먹을.
드래곤까지 적이 됐다는 걸 깨달은 발록이 급하게 달려드는 천사들을 털어내며 도망치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일.
나와 라덴이 동시에 속박 마법을 발동해 발록의 움직임을 멈추자, 사방에서 빛의 창과 화살 세례가 떨어져 내린다.
크으으윽!
"라덴."
뭐냐.
"저 녀석도 조종당하고 있는 걸까."
풀어준다고 크게 달라지진 않겠지.
"그럼 됐어. 스타더스트 스트라이크."
라덴의 말에 나는 곧바로 손가락을 내리긋는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빛 기둥에 발록이 묶여있는 상태로 공격을 막아내려 하지만, 불가능한 일.
모든 천사와 인간들이 점사하고 있는 상황에 마법에 집중하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콰아아앙!
끄아아아악!
[확실히 전보다 화력이 많이 강해졌군요.]
심상치 않은 크기의 폭격에 감탄하듯 말하는 렌.
발록의 형상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고, 플레이어들은 시스템 보상을 정산받은 건지 너도나도 허공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보스 레이드 정산 같은 게 있었지.
[시스템을 벗어나서 해당하지 않는 이야깁니다.]
"그렇긴 하지만."
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제 땅 쪽을 바라본 채 고민한다.
계속 마력 충당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없다.
내가 안 자고 계속 버티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사람들을 어떻게 데리고 가야할 지, 고민할 때였다.
"레드 드래곤을 시스템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다니, 생각 이상으로 굉장하군요."
"라구엘."
"그대의 협력에 감사합니다, 스노우. 답례로 저희 쪽 정찰병의 소식을 전달하겠습니다."
"?"
"이 세계 지도 좌측으로 표기되어있는 땅의 윗 대륙이 거의 전체 소멸했고, 바닷물이 밀려들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생존자들을 옮길 거라면, 아랫 대륙이나 네크로맨서의 영지를 이용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네크로맨서?"
루카를 떠올리면서 중얼거리자, 라구엘은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대륙 포식 때도 열심히 영토를 지키는 데 성공한 모양.
잠깐 생각하던 나는 그나마 거기가 가깝겠다고 생각하곤 말했다.
"인간들은 일단 네크로맨서 영지로 옮기고, 내려갈 사람은 내려가게 할게. 천족들은 어떻게 할 거야?"
"저희는 별로 내키지 않는군요. 동쪽에도 형제님들이 싸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니,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응, 한국이라는 곳은 내 이름을 대면 천족들을 받아줄 테니까, 거기랑은 싸우지 마."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천천히 천족들에게로 날아가는 라구엘.
잠시 그걸 바라보던 내가 라덴의 등을 탁탁 치면서 말했다.
"사람들 위치 안내만 하고, 너는 나랑 같이 한국으로 가자. 마력 없어서 곤란해."
...굳이? 내가 갈 필요가 있나?
"이제 이 세계에 내가 할 일은 별로 안 남았거든."
그렇게 말하고 먼 곳을 향해 시선을 옮긴다.
세계 지도 정중앙 바다 한가운데 나타난 거대한 탑.
몇 층인지도 확실하게 인지되지 않을 정도로 하늘을 뚫은 탑을 보니, 막막한 느낌도 든다.
...괜찮아.
노트북에 따르면 저기 정상에 있는 적이 최종 목적지다.
그리고 클리어해야 하는 시련은 총 5개.
모든 시련이 회차마다 달랐다고 하니, 완벽한 랜덤으로 구성되는 5개의 세계를 클리어해야 한다.
어차피 미션은 하나.
열심히 해보는 게 좋겠지.
정리가 끝난 시각.
우리는 루루와 라덴, 루카 일행까지 모두 데리고 한국으로 이동했다.
루카가 네크로폴리스 못 버린다고 징징거렸지만, 내 목적이 탑 꼭대기에 있는 보스라고 말하니,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듣곤, 따라오는 모습.
어차피 네크로폴리스가 공격받을 일도 없고, 크샨이 관리를 맡고 있기로 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그녀가 말했다.
"...진짜로 걱정할 필요 없을까."
"플레이어들 정도는 크샨이 이겨. 크샨도 초월자니까."
하긴 파워 인플레가 우리만 높았을 뿐, 원래 지금 단계에 3단계가 된 것도 이상한 일이니까.
지금 강한 플레이어라고 하면 4성 정도.
마법 소녀들이 대체로 4성 이상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세연이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세계 마법 소녀 외 밸런스가 이상하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마법 소녀들이 있어서 사람이 그렇게 많이 안 죽는 거니까."
"으음..."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미는 게 귀여웠다.
한국은 이미 영토 통일이 완료된 상황으로 왠지 전부 SF화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마릴다의 말로는 '한국에 있는 자원으로는 SF화 안 시키면 댕같이 멸망하는데?'라던가.
가끔 다른 나라에 전함을 끌고 가서 자원 도둑질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듣자 하니 다른 나라의 마법 소녀들도 제법 만났다고 한다.
...주로 적으로.
"마릴다, 그러다가 전함 수리에 또 한세월 써."
"흥, 어쩔 수 없잖아. 한국 자원이 부족한걸."
결국 그 자원도 전부 고갈될 거로 생각하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해볼 문제겠지.
지금 당장 해야 할 건 정해져 있다.
인벤토리에 있던 물건을 떠올리자, 내 손에 열쇠 하나가 잡힌다.
시련의 탑에 진입할 수 있는 열쇠.
그리고 그곳에 갈 수 있는 건, 7명의 마법 소녀.
...다른 시련의 탑 퀘스트 소지자들에게 물어보니, 같은 클래스만 갈 수 있는 열쇠라고 한다.
"루리에, 사이네는 데려가야 해."
오랜만에 도착한 집에서 잠시 나와 함께하고 있는 마법 소녀 멤버들을 살핀다.
데려갈 수 있는 건 6명.
합이 잘 맞는 루리에와 사이네는 필수.
남은 넷은...
"파이렌과 유레하 자매."
화속성과 풍속성은 거의 필수적이다.
남은 자리는 2개.
당장 떠오르는 건 윈, 링, 루카, 루루 정도.
"...그러고 보니 루루 지금 일어났나?"
루루가 일어났다면, 가능하면 루루의 힘을 빌리고 싶다.
이제 한국 자체에 위협이 오는 건 충분히 막을 수 있으니까, 그게 베스트겠지.
분홍색 파자마에서 터덜터덜 걸어 옷장에 있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는다.
입자마자 조금 먼지가 쌓였던 옷이 그대로 말끔해지는 모습.
...늘 생각하지만, 이 능력 하나만큼은 편리하다고 생각한다.
집 밖으로 나오자 가을의 시원한 바람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춥지도 뜨겁지도 않은 딱 적당한 온도의 바람.
...실제 온도를 보면 추워야 하는데, 마법 소녀 패시브 때문이려나.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바람의 마력을 피어 올린다.
공간을 넘어 도착한 곳은 새롭게 새워진 병원.
강철로 만들었으면서도 무슨 짓을 한 건지 계절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신기한 건물에 들어서자, 지나가던 한 사람이 나를 보고 인사한다.
"여긴 왠일이예요? 스노우 님?"
"루루를 찾아왔어."
"아, 루루 씨는 2층이에요. 루리에 씨랑 같은 곳에 있어요."
서류를 들고 이동하던 미경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2층으로 날아간다.
...걸어가기 귀찮아서 그런 건 아니고, 이제 와서 계단 타는 것도 이상하단 느낌이라.
누구한테 하는 건지 모를 변명을 하며 2층으로 가자 보이는 건, 누군가와 다정하게 걷고 있는 루리에의 모습.
푸른 마법 소녀와 노란 마법 소녀가 웃으면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일어났네?"
"아...!"
내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옮겨지더니, 나를 보고 눈을 크게 뜨는 루루.
...파괴자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닌지, 아직은 조금 잿빛이 남아있는 모습이지만 표정부터 다르다.
분명 많은 일을 당했을 상황임에도 빛나는 눈동자.
나를 보자마자 당연하다는 것처럼 내 품으로 뛰어드는 모습.
내가 당황하면서 그녀를 받아주자, 루루의 눈동자에 새겨진 노란 별 마크가 반짝인다.
와, 진짜 마법 소녀스럽게 생겼네.
"사랑해요! 결혼해주세요!"
"?"
"루, 루루?!"
"헤헤, 농담이에요.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셨다고 들었어요! 고마워요! 근데 마법 소년데 남자네요? 신기하다."
"??"
[원형을 보는 눈이 파괴자 때는 흐려져 있었군요.]
나와 루리에가 당황하면서 그녀를 바라보자, 렌이 담담하게 그렇게 말한다.
본질을 보는 눈?
[그녀는 상대의 영혼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대의 마력, 원래 영혼의 형태를 볼 수 있는 눈이죠. 그렇게 좋은 효과는 아닙니다만...]
여기서는 내가 스노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는 걸 간파한 모양이다.
언젠가 말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그건 전부 끝나고 나서의 일.
나는 품에서 비비적대고 있는 루루의 머리칼을 슬며시 만져주면서 말했다.
"아쉽지만, 나는 아직 여자야."
"응? 하지만... 아, 일단 알겠어요."
"이렇게 귀여운 남자가 어딨어~ 그렇지?"
"외모는 귀엽지만."
순순히 인정하면서 말하자 루리에가 피식하고 웃으면서 나와 루루를 동시에 쓰다듬는다.
아무튼 루루의 상태를 보니 상당히 건강한 모양.
...솔직히 대륙 하나를 먹어 치운 녀석이라곤 믿기지 않는 수준이다.
"루루가 일으킨 사건이라는 건, 안 걸린 거지?"
"애초에 알아보니까 붕괴가 일어나자마자 그쪽 임시 정부에서 살아있던 모든 인간한테 제트팩 같은 걸 줬었나 봐. 그래서 죽은 사람은 거의 없었데."
그건 다행인 이야기다.
루루의 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면, 그녀를 어떻게 봐야 할 지 모르겠으니까.
잠시 우리 이야기를 듣던 루루는 음... 하면서 고개를 갸웃하더니 조금은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언니나 스노우 씨를 상처 입히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루리에는 엄청 상처 입었을 거 같은데."
"쿠궁!?"
내 말에 입으로 효과음을 내며 글썽거리는 눈동자로 루리에를 바라보는 루루.
그러자 루리에는 아냐아냐!? 하면서 빠르게 루루를 안아주고, 그녀는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푸른 마법 소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장난이야!"
"그런 장난 치지마, 심장 떨어져."
"헤헤, 미안."
"...이제 이야기 진행해도 되는 거지."
"앗, 말씀하세요!"
내 말에 그제야 쫑긋하고 귀를 세우는 루루.
루리에는 내가 할 말을 알고 있었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루루를 바라보지만, 그렇다고 최고 전력에 가까운 소녀를 데려가지 않는 건 손해다.
"우리는 시련의 탑으로 갈 거야. 마법 소녀가 총 7명 필요한데, 너도 같이 가자."
"음음, 그렇군요! 하긴, 한 번쯤 갈 때 됐죠! 알겠어요! 대신에..."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고민조차 하지 않는 루루의 반응.
내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일 때, 빛의 마법 소녀는 말을 이었다.
"탑까지 끝나면, 원래 모습으로 봐요?"
"ㅡ."
"원래 모습...?"
루리에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지만 루루는 환한 미소만 입에 담고 있을 뿐이었다.
확신을 가지고 있는 건가.
...어쩐지 강제로 내 엔딩을 정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