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나라 전복
* * *
평범하게 수업을 듣는다.
고등학교 수업은 전에도 지금도 들은 적이 없어서 그런지, 제법 어려운 내용.
공부를 놓은 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런가, 굉장히 낯선 내용뿐이다.
"..."
그래서 사인 코사인이 뭔데.
수학 쪽은 아예 1도 모르겠다.
"푸흐흐... 생각보다 만물의 지식에 대해 무지한 모양이구나, 미래의 마녀여."
"...고등학교는 처음이니까."
"음...?"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의 기색을 보이는 소녀.
요즘 시대에 중졸로 끝내는 사람은 흔하지 않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미, 미안..."
"컨셉 깨졌네."
"흐, 으음! 운명의 인도가 도달하지 못했다니, 안타까운 일이로구나! 허나, 걱정하지 말지어다! 이 암흑 여제가 그대에게 친히 지식을 하사할 것이니!"
"이 선희, 머리에 지식 하사를 때려 박기 전에 조용히 수업 들어라."
당황해서인지, 큰 소리로 소리친 암흑 여제... 선희라는 이름의 소녀에게 선생님이 가볍게 말한다.
그러자 키득거리면서 웃는 아이들.
선희는 얼굴을 확하고 붉히며 교과서에 얼굴을 묻고, 나는 별다른 반응 없이 노트를 보기 시작한다.
...그림이나 그리자.
쉬는 시간.
몇몇 아이들이 다가와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 공세를 펼치지만, 최대한 무난한 대답을 생각해내 전부 답해준다.
수업 시간이 될 때까지 시달리고 있는 나를 보며, 선희가 재밌다는 것처럼 키득거린다.
"..."
"미래의 마녀여, 그대는 인간들과 어울리는 게 좋은가?"
"응."
아까와는 다른 차분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선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 내 원래 성격을 받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해야 할지.
원래 성격대로 말하다 보면, 어느샌가 조금씩 사람들이 떠나간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조언만 했을 뿐인데.
"나는 인간이 싫다네, 마녀여."
"...?"
인간이 싫다.
선희의 말에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그녀는 마법 소녀가 될 운명인 사람.
마법 소녀는... 인류애가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어째서."
"무얼, 인류는 추악하기 때문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펜을 까딱거린 선희가 말을 이었다.
"인류는 어떻게 대하든 모두 연기하고 있지. 모두 다른 본성을 가지고 있었던 걸, 여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네."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걸 추악하다고 할 수 있을까."
본성을 숨기고 있다고 추악하다 한다면, 지성을 가진 생명체들은 전부 추악한 게 되겠지.
물론, 이런 일로 말싸움 하고 있을 생각은 없다.
"다들 생각하는 건 다르니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을게. 다만... 겉과 속이 다른 건 모두 마찬가지야. 너만 해도 그렇잖아. 너도 겉으로는 강한 사람인 척하지만..."
중2병이라는 건, 속이 여린 사람이 자주 보이는 모습이다.
나는 남들과는 달라.
남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괜찮아.
자존심은 세지만, 속은 여려서 계속해서 상처받는 사람.
관심을 받고 싶은데,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주로 나타나는 증상.
그게 중2병이다.
"훗, 무엇을 말하는가 했더니. 그대는 아직 여가 왜 암흑 여제인지 모르는구나?"
"...?"
"여를 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좋다, 미래의 마녀여. 하지만 발언에는 주의하거라. 여는 정말로 힘이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인류가 추악하다고 말하는 것이거늘."
"많은 걸 봤다고...?"
"그렇고 말고, 미래의 마녀여. 여도 미래를 보고 왔다네."
"아."
그렇게 되는 건가.
지금 이 아이는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아까 환상이라고 말했던 걸 믿지 않은 건가.
하긴 갑자기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믿을 사람이 어딨겠냐만은...
"...묻고 싶은 게 있어."
"뭐지?"
"나는 지금 여기가 환상이라고 말했어. 그러니까, 그걸 전제로 하는 말이야."
"환상이라니, 썩 웃긴 이야기군. 이런 광범위 환상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단 건가?"
"...그러니까, 그걸 전제로 들어."
"일단 들어는 보지."
내 말에 지루하단 얼굴로 바라보는 선희.
...목숨이 걸린 건 내가 아니라 본인이라는 걸 깨닫지 못해서겠지.
그것까지 자각시키도록 하자.
"...그래서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거야."
"음..."
내 말을 다 믿진 않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느낀 걸까.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던 선희가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내 손목을 붙잡고 어딘가로 향한다.
그러자 뒤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리는 소리.
...어차피 환상 세계라서 상관없지만, 신경 쓰이네.
"그 말을 증명할 방법이 하나 있지."
"?"
"그대의 말대로라면 나와 운명의 실로 맺어졌던 '스노우'는 다른 사람일 터?"
"그렇지."
"지금 집으로 찾아가 보면 되는 거 아니겠느냐?"
"..."
일 리가... 있어!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변신하는 선희.
고풍스러운 검은 드래스와 오른쪽은 가린 안대.
양쪽 등 뒤로 활짝 펼쳐지는 4장의 흑익과 백익.
전에 예상했던 대로 이 변신 폼은 선희... 이 아이의 의상이었던 모양이다.
"궁금한 게 있어."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네 마법 소녀 명은 뭐야?"
가볍게 변신한 뒤 묻자, 선희는 조금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인다.
...부끄러워 하고 있다.
중2병스러운 옷이나 그런 건 안 부끄러워하면서 이런 쪽에서 부끄러워하는 건 의외네.
"...의 마법 소녀."
"?"
"공상의 마법 소녀, 링이다."
공상의 마법 소녀인가.
이름만으로는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잘 모를 속성이다.
다만 아까 피오레의 활용법을 생각해볼 때...
"환상을 실체화하는 능력이야?"
"그대는 고대 전승에게서 부여받은 힘을 환상이라고 하는가! 전부 원래부터 있던..."
"응, 알겠어."
허둥거리면서 소리치는 그녀의 말을 자르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억울하다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는 모습.
...뭐, 이해할 수 있다.
자신에게 특별한 힘이 나타났고, 그 힘이 생각하는 걸 그대로 구현하는 능력이라면.
나라도 착각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니, 그냥 게임 속 캐릭터 스킬들 써보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내가 날아오르자, 링은 뾰로통한 얼굴로 나를 따라 날아오른다.
생각해보니까 환상 세계 주제에 맵이 엄청 넓네.
마법 소녀니까 마력이 넘쳐서 그럴지도.
그렇게 생각하곤 빠르게 날아가며 동시에 바람의 마력으로 우리 둘의 모습을 숨긴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평범한 민간인들만 있던 시기.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다.
"...우와, 생각도 못한 손님이네!"
내가 지상에 도착하자마자 나와 비슷... 아니, 똑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저쪽이 좀 더 밝고 활발할 거 같은 분위기라는 게 다른 점일까?
"안녕, 스노우, 링!"
"...안녕."
"으므, 정말로 마녀가 둘이구나!"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발.
은은하게 빛나는 연분홍빛 눈동자.
나도 즐겨 입는 새하얀 원피스.
겨울임에도 춥지도 않은지, 평범하게 여름 원피스를 입고 있는 소녀가 웃어 보인다.
...확실히 유지는 예쁘네.
"아, 스노우는 내 이름을 모르려나?"
"유지 유미카."
"으응?! 왜 그 이름을 알고 있는 거야...?"
내 말에 유지는 당황하면서 얼굴에 손부채를 하기 시작한다.
...이상한 건가?
하긴 한국에 살고 있는데 유지 유미카라는 이름으로 있었을 리가 없긴 하다.
"한국인."
"명실상부 한국인입니다!"
"은발에 연분홍색인데."
"아하하, 그건 부모님 영향이랑 전생 영향... 크흠. 아무튼 그렇다구."
"?"
영문을 모르겠다.
"내 이름은 '유 설'이야. 음... 아, 이쪽 세계 선이니까, 이미 내 이름 들었을 수도 있겠네? 링이랑 같이 온 걸 보니 전학으로 처리됐지?"
"...여의 귀에 뮤즈의 하모니가 들려오는 건 좋다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군."
"아, 미안. 일단 이런 식으로 방문하는 케이스는 세계선 자체가 드물 거라서... 아마 환상이거나 아직 못 겪은 세계선일 거라고 생각해. 스노우는 그걸 확인하러 온 거야? 아니면 환상 세계 해제가 어려운 상황이라던가?"
"후자."
현재 상황에 대해 예상되는 부분이 있는 건지, 설은 그렇게 물어온다.
많은 세계선을 겪었으면서도 이런 경우는 없을 거라고 단언하는 건, 그녀가 뭔가 알고 있어서일까.
...사실 클리어만 생각해서 설에 대해서 아는 부분은 그렇게 많이 없다.
"흠흠, 미래 예지가 발동하지 않는 걸 보니까, 거의 확정이라고 생각하긴 했어."
"...미래 예지?"
"후후후, 스노우는 아직 예지 능력자 같은 건 못 만났나 봐? 미래 예지도 엄연히 마법의 영역이라구? 보자보자... 오, 예지안이 아니라 다른 눈 가지고 있구나? 그럼 어쩔 수 없지."
장난스럽게 나를 놀리듯 말하면서도 희미하게 손끝이 떨리고 있다.
어쩐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은 환상.
현실의 자신은 나한테 몸을 넘겨준 상황.
결국 자기 자신이 남아있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 예지를 하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는 정보니까.
아직 마음의 준비를 끝내지 못한 설인 걸까.
아니면... 끝까지 설은 그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끝내지 못했던 걸까.
"..."
아무래도 모든 게 끝나면... 육신을 돌려주는 쪽으로 갈피를 잡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냥 돌아가면 되니까.
이쪽이랑 통신이 되는 수준만 돼도 좋고.
"에이,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 환상이라도 너랑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이득이네! 멋대로 불러오는 건데 이야기도 못 하는 건 마음에 걸렸거든!"
"이야기, 이미 했었어."
"으응?! 그래?! 근데 왜 유지 유미카로 기억하는 건데!?"
"이름에 대한 이야기는 안 했어."
"우와, 현실의 나!? 어떻게 된 거야!"
과장되게 웃으면서도 들어오라는 것처럼 방으로 안내하는 손짓에 나는 잠깐 링과 눈을 마주치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가서 티백으로 차를 내오는 설.
아포칼립스가 된 이후로 차 같은 건 마신 적도 없는데, 조금은 낯설다고 생각하며 나는 별생각 없이 차를 입에 머금는다.
...별다른 느낌은 없다. 프로게이머 시절 때도 차 같은 건 마신 적 없으니까.
"아포칼립스에는 기호 식품이 안 남아있으니까 말야~ 매번 돌아올 때마다 돈 다 써서라도 잔뜩 챙겨두거든!"
"...내 시점에선 없던데."
집에 있던 식량이라 해봐야 기본적인 보존식품뿐이었다.
"아하하... 다 먹었나?"
"이상한 일이로고, 같은 존재인데 서로 다른 존재처럼 말하는 건 어째서지?"
"다른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이야."
"음...?"
딱 잘라서 말하는 우리 둘의 말에 링이 의아한 표정으로 우릴 번갈아 가면서 바라본다.
그러다가 으으음... 하면서 고민하는가 싶더니, 아! 하면서 소리치는 링.
"디오스쿠로이의 가호를 받은 자들인가!"
"...쌍둥이냐는 이야기지? 여전히 유별난 소릴 한다니까."
"아냐."
"으음...!? 그럼 대체 어느 쪽인가?"
"얘 몸은 내 몸이 맞아. 하지만 영혼이 달라."
"으으음...?"
"까놓고, 빙의물이야."
"빙의!"
못 알아듣는 기색을 보이자,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말하는 설.
내가 잠시 그녀를 바라보자, 아하하~ 하면서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링이 하는 말은 대체로 못 알아들으니까."
"그건 그거대로 취급이 심각하네."
"두 사람, 여가 앞에 있다는 걸 잊고 있는 게 아닌가?"
못마땅하다는 것처럼 말하는 링의 말에 설이 키득거리며 웃더니, 요리할 게 없네 하면서 곤란하단 표정을 보인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녀는 조만간 집을 떠나 아포칼립스 이후를 준비할 테니까.
"네가 안배한 사람들 덕분에 성공한 게 많아."
"그건 다행이네."
"얘는 아예 다른 나라라서 늦게 만났지만."
"아하하... 위치가 제멋대로라서 어쩔 수 없는걸."
"...루루는 폭주 중이야."
"루루!? 루루 폭주하면 끝인데!?"
"전용 무기를 얻는 건 막았어. 루리에랑 사이네가 막을 거야."
"어... 그 둘이서...?"
"응, 충분할 거야. 그러니까..."
차분하게 차를 마시고 찻잔을 내린 그녀의 손을 잠시 잡는다.
그러자 흠칫하면서 손의 떨림이 멈추는 모습.
...표정이나 말하는 거에선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계속해서 두려워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환상인 소녀지만, 그렇다고 해도 보고 있기 안쓰럽다.
"걱정하지 마. 네가 맡긴 건 완수할 거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랑 어울릴 수 있게 만들게."
"아, 아하하... 내가 너무 떨었어? 미안."
"아니, 괜찮아. 모든 게 끝나면, 방법을 찾아서 너한테 육신을 돌려줄게."
"그럴 필요는 없어! 어차피 스노우랑 어울리고, 스노우랑 함께했던 사람들이잖아! 뺏을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그러니까, 기다리기만 해."
"..."
"불안해하지 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모두 해낼 거니까. 너는 안심하고 기다리면 돼. 네 영혼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는 알고 있어."
알고 있다.
설이와 대화할 때 물어본 내용 중 하나니까.
얼버무려 대답했지만, 어렴풋이 위치를 알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꿈속에서 본 빙의와 관련된 마법에 대한 지식도 머릿속에 남아, 차원 관련 마법에 대한 지식도 얻었다.
그러니까 모든 게 끝나면, 전부 돌아오게 만들 수 있다.
"우리가 둘이 되든, 너에게 몸을 돌려주고 내 몸을 소환하든, 방법을 찾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거 알아, 스노우?"
"뭔데?"
"내가 환상이긴 하지만... 50회차 시점인 나거든?"
"...?"
그 말을 지금 왜...
"지금 하는 말, 분명 실제로 들었을 거라고 확신해."
"...어째서?"
"내 눈은 예지안이랑 다른 것이 합쳐진 무언가거든."
그렇게 말하며 연분홍빛 눈동자를 금빛으로 바꾸는 설이의 모습.
내가 의아한 눈으로 눈을 깜박일 때 즈음,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 미래는 확정됐어. 응, 바깥의 나도 네가 있는 장소의 과거에 이 일들을 경험했을 거야."
"...환상인데?"
"물론. 내가 불러오는 사람이 얼마나 멋진 말을 하는지, 무조건 듣고 싶단 말야."
"..."
애가 부끄러운 소릴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설이가 키득거리면서 하는 말에 링은 한숨만 내쉬면서 차를 입에 담는다.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는데, 딱히 뭔가 할 말이 없는 거겠지.
소외감 느끼고 있을지도.
"아, 그리고 링."
"음! 바로 말해보게!"
"지금 이 세계 환상 세계인 거 확실하니까, 스노우 말에 따라 빠져나와. 스노우가 직접 왔다는 건, 너 혼자 묶여있단 소리가 아니거든?"
"여는..."
"육체 뺏겼으면 말이라도 잘 들어, 알겠지?"
"아, 알겠다."
스노우의 말에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링.
잠시 후.
서서히 세계가 하얗게 변해가기 시작한다는 걸 깨달을 내가 설이를 바라보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스노우."
"응."
"일시적으로 읽어낸 미래가 하나 있어."
"응."
"고유 결계, 완성해야 해?"
"?"
그 말을 끝으로 내 의식은 무언가에 맞은 것처럼 튕겨 나가듯 밀려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