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크리스마스 외전!
* * *
"크리스마스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보며, 나는 잠시 회상하듯 눈을 감는다.
회귀하기 전에 봤던 하늘의 풍경.
오늘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생각하며, 호. 하면서 따뜻한 숨결을 만들어낸다.
"앞으로 3개월이구나."
아포칼립스 시작까지 3개월.
학교도 빠지면서 찾아다닌 일들을 생각하며 나는 마력을 일으킨다.
조금씩 마법 소녀의 기능이 돌아오고 있는 걸 느낀다.
"..."
좋은 징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마법 소녀의 능력이 있다는 건, 아포칼립스는 고정이라는 소리니까.
응, 힘내자. 또 다른 나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그런 생각을 하며 은폐 마법을 쓴 후, 천천히 걸어간다.
그러다가 문득 마주친 건, 과거의 인연.
사이네가 걸어 다니고 있었다.
"응?"
사이네 뿐만이 아니라 루리에 역시.
마법 소녀로서의 모습으로 걸어 다니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눈을 깜박이고 만다.
이 시기에 루리에는 없을뿐더러, 사이네 역시 산에 있을 시간이다.
두 사람이 벌써 마법 소녀로서 활동할 리가...
"스노우! 한참 찾았잖아!"
"네, 네에?"
"무슨 네에야? 자자, 빨리 변신해. 가자!"
"어, 어딜... 어라?"
루리에의 말과 함께 자연스럽게 몸이 비행하는 걸 느끼며 멍하니 펄렁이는 망토를 바라본다.
마법 소녀일 때 내 복장.
어느새 변신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혼란스런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나참, 오늘따라 엄청 어리바리하잖냐! 성남 쪽에서 어떤 미친 빌런이 날뛰고 있다니까, 빨리 가자고!"
"비, 빌런이요?"
"아니, 왜 자꾸 존댓말이야? 소름 돋으니까 그만해."
"음... 상태가 이상하네, 집에서 쉴래?"
사이네가 닭살 돋는다는 것처럼 팔을 비비고, 루리에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줄 사람...은 없겠지.
아무튼 빌런인가.
정석 마법 소녀 물에나 나올 법한 악당인 게 틀림없다.
잘은 모르겠지만, 거기에 가면 뭔가 알 수 있을지도...
"..."
"으와!? 선물 상자에서 눈덩이가!?"
"스노우! 피해!"
"렌?!"
[프로텍션]
거리가 완전히 개판난 상황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눈은 왠 날씨 조정기라는 기계로 내리는 눈.
자기가 산타라도 된 것처럼 어떤 근육 아저씨가 선물 보따리에서 계속 선물을 던지면서 우리를 쫓아내고 있었다.
눈덩이부터 시작해서 갑자기 폭 하고 튀어 올라서 몸 속에 얼음을 쏟기도 하고, 맞아도 하나도 아프진 않지만 추울 거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있다.
"이이, 크리스마스의 악몽 같은 녀석! 추워 죽겠는데 뭐 하는 거야!"
"아니, 마법 소녀는 딱히 그런 거 영향 안 받..."
"이거나 먹어! 일렉트릭 아이!"
"야, 잠!?"
루리에가 날아오는 선물 상자를 그대로 꼬챙이로 만들어 바닥으로 내리찍다가, 급하게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리곤 바닥에 퍼져있는 눈 전체에 파직! 하고 퍼져 나가는 전류.
루리에가 저질렀다... 하며 얼굴을 부여잡고, 온 사방에 정전이 일어난다.
비, 빌런이 나타나서 사람이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인 상황이다.
"허허허, 못된 어린이들이구나!"
"산타 흉내 내지 말라고! 근육 돼지!"
"돼지?! 허허, 고얀 놈 같으니. 특별한 선물을 주마!"
그렇게 말하며 어지간하면 들기도 힘들어 보이는 거대한 선물 상자를 사이네에게 힘껏 던지는 모습.
이번 건 정말로 강해 보여서 바람의 마력을 밟고 사이네의 앞에 서자, 그녀는 피식 웃더니 곧바로 하늘에서 전류를 모아오기 시작한다.
"잠깐만 막아달라고, 스노우!"
"으응?!"
"썬더!"
"멈춰!?"
바람의 마력을 터뜨려 선물 상자를 날리고 급하게 마력 흡수를 발동해 사이네가 쓰는 마법을 강제 캔슬시킨다.
그러자 불만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이네.
"아 왜! 한 발, 딱 한 발만 쏘게 해줘!"
"헛소리 하지 마!?"
"우와, 바다를 만들 수가 없어..."
내가 사이네랑 투닥이는 사이 루리에가 해일을 지속해서 일으키지만, 눈을 어느 정도 녹일 뿐 땅을 물바다로 만드는 것은 실패.
물바다로 만들면 사람들 집이 침수당해!? 멈춰!?
"루리에! 너까지 왜 그래!"
"여기 사람들 다 피난 갔어!"
"집이 침수당하잖아! 아, 거슬리니까 그만 날려요! 스타더스트 스트라이크!"
콰아아아아앙!
"끄어어어억?!"
"아."
날아오는 선물 상자를 옆으로 날리고 손가락을 내리긋자, 그대로 빌런이라 불린 근육 산타가 비명과 함께 내리꽂힌다.
덧붙여 주변까지 파괴하는 별의 마력.
사이네와 루리에가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걸 느끼며, 아하하... 하면서 시선을 피한다.
"한 방에 보내는 거냐고! 젠장! 믿고 있었다고!"
"으, 응?!"
"역시 스노우야, 가차 없지."
"잠깐만, 제 평이 이상하지 않아요!?"
"아니, 그러니까 왜 존댓말 쓰냐니까? 평소대로 말해. 평소대로."
여러 가지 혼파망인 세계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두 사람을 데리고 집에 돌아와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회귀 자라는 것.
3월에 아포칼립스가 일어났다는 것.
세계를 구하지 못해서 회귀하게 됐다는 것.
원인이 누군지까지.
전부 들은 사이네와 루리에는 으음...? 하면서 서로를 보곤 갸웃하더니 동시에 말했다.
"넌 지금 과거의 스노우라는 느낌이야?"
"그럼 지금까지의 스노우가 아니란 거네?"
"스노우가 아니라 설이예요. 설."
"으음? 잠깐만 근데 미래의 스노우인 게 아닐까? 결국 스노우가 회귀해서 온 거잖아."
"그게 중요한가요!?"
내가 헛웃음과 함께 말하자, 루리에는 잠깐 푸흐. 하고 장난스러운 웃음을 보이더니, 푸른 머리칼을 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럼 아예 다른 곳으로 온 게 아닐까?"
"다른 곳...?"
"어차피 회귀 같은 게 있으니까, 결국 세계선이라는 게 있는 거 아냐? 그러다 보니 이상한 세계선에 떨어진 거지."
"그런 거 없거든요...?"
회귀 경력상 모든 상황이 똑같았기 때문에 고개를 붕붕 저으면서 부정하자, 루리에는 으음... 하면서 고민의 기색을 보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이네의 말.
"뭐, 애초에 우리가 아는 스노우랑 너는 다른 애니까?"
"그렇죠, 회귀했으니까."
"아니아니, 우리가 아는 스노우는 무표정한 애 거든."
"?"
사이네의 말에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면서 눈을 깜박이는 나.
그러자 루리에가 그 말을 받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오늘만큼 스노우 표정이 풍부한 건 처음 봐. 그래서 엄청 재밌어서 놀린 거야."
"저기요~?!"
"음, 근데 큰일은 맞긴 하네? 원래 스노우는 어디로 간 거지?"
"원래 스노우..."
아마 이 사람들이 아는 스노우는 3월에 빙의 당할 또 다른 내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평범하게 맞는 이야기다.
문제는 원래 세계 자체가 이렇게 평온한 세계가 아니고 아포칼립스라는 점인데... 아무리 봐도 그냥 평범한 세계란 말이지?
"아포칼립스?"
"그거 끝난 지 오래됐어."
"엑."
"스노우가ㅡ 읍!?"
"자자, 스포일러니까 말하지 말라구?"
"아니, 이미 다 말해놓고 무슨 소리예요?"
정황을 보니 또 다른 내가 아포칼립스를 무사히 끝낸 모양이다.
대단하네... ★★★를 어떻게 잡았지?
"?"
머릿속 기억이 이상하다.
왜 ★★★에 대해 생각할 수가...
"아무튼 오늘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잖아. 빌런이 등장한 건 귀찮긴 한데... 그래도 케이크는 멀쩡하니까?"
"케이크요?"
"너희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하기로 했잖아?"
그렇게 말하더니, 루리에는 능숙하게 마력을 조작해 냉장고에 있던 케이크와 음식들을 움직인다.
...루리에가 마력 컨트롤이 저 정도라니, 굉장해.
대충 봐도 4성 이상 스펙이다.
하긴 세계 구할 정도면 5성 이상이었을 테니까...
"그럼 루리에 언니, 루루는 어딨어요?"
"...응? 뭐, 뭐라고?"
"루루는 어딨어요...?"
내가 불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묻자, 루리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이 세계에서... 루루를 구하진 못한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한 표정으로 루리에를 바라볼 때였다.
띵동~
띵동띵동띵동띵동!
"그거 말고! 앞에 말한 거!"
"나가니까 난타하지 마!"
"언니~ 나 왔어!"
"앗, 루루~!"
문이 열리면서 등장한 건 금빛 머리칼과 눈동자를 가진, 전혀 변하지 않은 루루의 모습.
그 모습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를 바라보고, 희망의 마법 소녀는 ?하면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곤 바로 달려드는 루루.
"스노우~!"
"자, 잠깐만요!?"
"잠깐만요오오!? 언니이이이! 스노우가 이상해에에에!? 귀여워!"
"꺄!?"
루, 루루가 이런 성격이었던가!?
눈을 반짝이면서 격렬하게 뺨을 부비는 루루를 억지로 떼어내며 루루와 함께 온 사람을 바라본다.
에어로 샤브린.
그래, 파괴자인 이 사람도 참가했구나.
"...넌 스노우가 아니군?"
"네, 넷?"
"아니, 스노우지만, 스노우가 아닌... 이상한데."
"마, 맞긴 해요."
"에엥?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수진 언니. 스노우가 아니라고요?"
"영혼이 다른 느낌이다. 전의 스노우도 강대하고, 이번 스노우도 강대하지만... 영혼 결집력 자체는 이쪽이 더 강해 보이는군."
샤브린의 정확한 지적에 나는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으응? 하면서 고민의 기색을 보이는 루루.
하지만 잠시 후...
"뭐, 어때요! 아무튼 스노우는 맞단 거잖아요!"
"제 기억 속 루루는 좀 더 생각이 깊은 아이였는데!"
"후후후, 무엇을 숨길쏘냐! 오늘의 루루는 히어로 랭킹이 한 자릿수까지 올라간 루루라구요! 월급이 올라갔어요!"
"???"
히어로 랭킹은 또 뭐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단어에 내 얼굴에 의문이 가득 차기 시작할 때 즈음, 이번엔 벨 소리가 열리지도 않고 문이 열리며 집 안에 폭풍이 불어온다.
익숙하다는 것처럼 집안 전체에 마력을 까는 사람들.
다행히 아무것도 날아가지 않았단 걸 알아챘을 때, 누군가 내 팔을 붙잡고 비비적거린다.
"마♥스♥터♥ 오늘도 고생하셨습니...? 어라?"
하트를 휘날리며 나타난 건, 당연히 유레하.
마스터에게 모든 걸 다 주려고 하는 아이라 유난히 극성인 그녀의 뒤로 파이렌이 소심하게 조금씩 걸어 들어온다.
잠깐 휙휙 하고 주변을 보더니, 아무것도 휘날리지 않았단 걸 알고 꾸벅하고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
그 사이 유레하는 쿠궁! 하는 효과음 소리를 본인이 직접 내며 말했다.
"마, 마스터가 우리랑 계약을 끊었어!?"
"그거 네 마스터 아니다..."
"네? 그건 또 무슨..."
이 설명 대체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할까?
계속 같은 설명을 듣고 있자니, 어느새 루리에와 파이렌이 부엌에서 미리 만들어진 요리를 운반하고, 새로운 요리를 시작한다.
다음에 들어온 건 현성과 마릴다.
"오, 이미 준비하고 있었어?"
"나 참, 자동 조리기 두고 왜 요릴 하는 거야?"
그다음은...
"이거 사람 더 들어갈 수 있는 거 맞아? 엄청 많네."
"응, 가능할 거 같아."
정말 평범한 모습으로 들어온 루시에르와 그에게 딱 달라붙은 유린이의 모습까지.
아무래도 이쪽에선 두 사람이 사귀게 된 모양이다. 좋겠다...
"저희 왔어요!"
"...역시 스노우 집이 아니라 우리 저택이 낫지 않았을까."
"괜찮을, 거다. 여차하면, 확장 마법도 있으니."
다음은 미연이와 미류, 헤리어스까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사람들이 전부 있다는 건, 또 다른 내가 모든 사람을 구했다는 의미니까.
이때까지 싸운 아군들이 전부 들어오기 시작하자, 렌이 알아서 확장 마법을 발동한다.
그리고 잠시 후...
[이게 당신이 선택한 미래 중 하나입니다, 마스터.]
"...렌?"
한창 크리스마스 파티로 사람들이 노는 중에 음료를 사오겠다며 밖으로 나오자, 렌이 뿅 하고 튀어나와 나에게 말을 건다.
마치 회귀하기 전 나를 알고 있는 듯한 말투.
그 말투에 내가 눈을 크게 뜨며 바라보자, 요정 형태로 변해 어깨에 앉는 렌.
잠깐 허공에 뭔가를 그리기 시작하는 그녀를 보며, 내가 말했다.
"여기... 혹시?"
"마스터, 아십니까?"
"응?"
"이곳은 당신의 예지 속. 당신이 한 일에 대한 결과 중 하나."
씁쓸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렌이 내 눈앞에 마법진을 완성한다.
내가 노트북에 만들어 넣었던 '정보 이전' 마법.
렌이 그대로 손을 뻗은 채, 허공으로 날아올라 그 마법 앞에 서서 나에게 말했다.
"마스터, 지금 광경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응, 내가 원하는 결말이야. 크리스마스 파티라니, 그리고 아포칼립스가 끝났다니... 너무 멋진 세상이라고 생각해."
"마스터, 그곳에는 당신이 없습니다."
"...응, 그렇네."
아포칼립스가 끝나고, 능력자들이 빌런과 히어로로 나뉘어서 서로 쓰러뜨리는 정도밖에 피해가 없는 세계.
아예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지만, 사람의 마음마저 조정할 순 없으니까.
이 정도면... 정말 완벽한 엔딩이라고 생각한다.
"괜찮아, 렌."
"마스터, 저는..."
"모두가 살아남았어. 또 다른 내가 해낸 거야. 내가 50번이나 되는 루프 동안... 이뤄내지 못한 걸 이뤄줬어."
눈앞에 흐려진다.
기뻤다.
모두가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파티라니, 이토록 행복한 일이 있을까.
그 장소에 내가 없더라도.
그 끝에 내가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전부 내 눈앞에서 한 번 이상 죽은 사람들이야, 렌."
"마스터."
"모두가 살아있어. 모두의 운명이 바뀐 거라고, 렌."
"..."
"나는 이런 결말을 원했어. 아무도 죽지 않고, 내가 아는 모두가 행복해진, 그런 세상을 원했어."
"마스터도 할 수 있습니다."
"아냐, 난 못했는걸? 미래가 확정될 정도로 명확한 사람한테 맡긴다면, 이룰 수 있어."
미소가 조금, 일그러지는 걸 느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그래, 이곳엔 내가 없는 게 맞았다.
내가 없어져야 모두가 살 수 있다면.
나는...
"절대로 그렇게 두진 않아."
"렌?"
"저는... 어떻게든 마스터를 살리고, 새로운 마스터가 된 사람도 살릴 겁니다.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
렌의 말에 나는 눈물을 닦고 웃어주면서 렌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어준다.
그러자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렌의 모습.
하여간, 렌도 걱정이 많다니까.
"괜찮아, 내가 없더라도."
"마스터가 50번이나 되는 루프를 하는 동안, 저는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이건 대악마로서 수치. 어떻게든, 어떻게든 다시 찾아낼 테니까..."
"..."
"영혼만큼은, 보존해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세상이 하얗게 물들고,
세상은 눈으로 뒤덮여 사라지기 시작했다.
"..."
뭔가 이상한 꿈을 꾼 기분이 드는데.
"눈물..."
[자면서 우시더군요. 뭔가 꿈을 꾸셨습니까?]
"모르겠어."
내가 울 정도의 꿈이 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스노우는 잠에서 깨어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