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나라 전복
* * *
수적 열세가 심각하다.
선발대라곤 하지만 마법 소녀만 10명.
피오레는 제대로 안 싸우고 침식의 마력으로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다.
...덕분에 얼려야 하는 위치가 늘어나 활동 반경이 좁아지고 있다.
"제법 오래 버텼다만, 그만 저항하는 게 좋지 않겠나? 크흐."
피오레가 밖에서 비꼬듯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묵묵히 물기둥으로 모든 공격을 요격하며 움직여간다.
전술 자체엔 능하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물과 얼음을 사용하는 마법 소녀가 없어서일까.
내가 회피하면서 한 공격이 하나도 격추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착각해준다면, 좋은 일이다.
모든 마법 소녀가 젖어가고 있었으니까.
피슉.
바닷속을 돌아다니는 칼날이 뺨을 스쳐 지나간다.
순간적으로 핏줄기가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괜찮아.
무섭지 않아.
지금의 나는 두려워할 때가 아니다.
체력은 충분.
마력은 아직 넘친다.
물속에 있는 한, 충분히 싸울 수 있다.
"네 걱정이나 해, 피오레. 적도 걱정해주고 살만한가 보지?"
내가 물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증폭해 도발하자, 피오레가 도발에 걸린 듯 뭔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자 내 바닷속으로 들어서는 2명의 마법 소녀.
...진짜 바본가?
"얼어."
물속에서 말하는 순간 두 마법 소녀가 방어 마법을 펼치지만, 방어 마법째로 얼어붙는다.
그 사이를 노리고 들어오는 침식의 마력을 차단한다.
이대로 마법 소녀 둘은 봉인.
남은 건 8명이다.
"초월자라면 직접 덤벼, 피오레."
"웃기지 마라!"
내 말에 피오레가 도발 당한 것처럼 소리치지만, 안으로 들어올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바닷속에선 내가 확실하게 이긴다는 걸 알아챈 탓이겠지.
다만 이상한 점은 공격조차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
마력시로 밖을 바라보자, 뭔가 거대한 마법이 만들어지고 있는 걸 확인한다.
합체 마법 같은 게 만들어져...?
"..."
공격을 막기 위해 남은 두 사람과 마법을 영창중인 6명.
피오레는 틈을 노리고 싶은 건지 내가 있는 바다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다.
공격은 포격 형태.
...스노우스러운 방식이다.
6명이 합체 마법을 써도 스노우의 포격 수준에 간신히 도달한다는 거에 안쓰러워해야 할지...
그래도 위협적인 건 분명하다.
"아쿠아 브레스."
계속해서 위협만 하던 아쿠아 드래곤으로 브레스를 발동하자, 두 마법 소녀가 내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보호막을 만들어낸다.
둘이서 막고 있음에도 마력이 조금 부족한지 얼굴을 찌푸리지만, 어떻게든 막아내는 모습.
...확실히 초반이라 그런지 상대 마법 소녀들이 전체적으로 약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곧바로 날아올랐다!
"드디어 나왔구나!"
"당신이 기대하는 일은 없겠지만."
마법이 발동할 일은 없다.
ㅡ모두들, 내 마력으로 흠뻑 젖어있으니까.
"기동해, 헤세드."
던전에서 얻은 전용 장비, '헤세드'를 발동시킨다.
푸른 보주가 흔들리며 빛나기 시작한다.
내 마력에 젖어있는 대상들의 마력을 잠깐 동결시킨다.
발동하기 직전이었던 마력이 흔들린다.
폭주하려는 것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하는 걸 보며 당황하는 마법 소녀들.
인원상 아주 잠깐이었기 때문에 비행까지 꺼지진 않았지만, 마력 발동을 멈추게 했다는 거로 충분했다.
아쿠아 브레스로 4명 가까이 리타이어 되고, 합체 마법은 실패.
피오레가 이를 으득 갈면서 침식의 마력을 사방에 뿌리지만 나는 하나하나 눈으로 보면서 격추한다.
"제기랄, 후퇴해!"
이제야 제대로 판단이 선 모양인지, 피오레가 봉인 당하거나 격추당한 마법 소녀들을 버리고 도주하기 시작한다.
그걸 보며 따라가려는 순간, 어두워지는 세상.
여기가 현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위를 바라보자, 머리칼이 회색으로 변해있는 루루가 보인다.
"...루루."
"기억났어."
"기억...났다고?"
"분명 나는 습격받아서 모두를 구하기 위해 각성했지."
내 전투를 모두 지켜봤던 걸까.
아까보다 훨씬 루루같은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빛의 마법 소녀는 한 걸음씩 나에게 다가온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한 거야?"
"내가 가장 후회하는 일이니까."
"환상이라는 건 알고 있었잖아."
"환상이라도 결말을 바꾸고 싶었어."
"...언니."
루루가 입술을 깨문다.
연기가 아닌 진심.
진짜로 기억을 찾은 것처럼 행동하는 루루의 모습에 나는 그저 입가에 쓴 미소를 담고 만다.
"루루."
"언니."
"기억을 찾았는데, 왜 이런 상황인 걸까."
"그건..."
무수한 빛의 짐승이 나에게로 달려온다.
마력을 일으켜 전부 얼리기 시작하지만,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마력에 배가 넘는 마력이 들어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한다.
이대로는... 죽어.
"헤세드."
"참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해, 언니."
"탐식자를 처단해!"
"언니가... 내 반대편이라는 게."
헤세드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고, 동시에 거대한 입이 나에게로 달려든다.
온 사방을 얼어붙게 나가며 그대로 깨져나가는 거대한 빛의 짐승.
루루가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나고, 물러선 자리 뒤에 있던 사이네가 눈을 번쩍 뜬다.
"앙? 뭐야, 갑자기 돌아왔잖아!"
사이네로선 강제로 환상에서 빠져나온 상황일 텐데, 당연하다는 것처럼 날아오는 루루에게 손을 뻗는 그녀.
루루도 이런 상황은 생각하지 못했는지, 눈을 크게 뜨며 다리를 휘두르지만 그 전에 읏차. 하고 그녀의 다리를 마주친 사이네가 웃으며 말한다.
"전자력!"
마치 자석처럼 루루의 머리가 사이네의 손에 붙잡히고, 순식간에 별의 마력과 전격의 마력이 루루를 태우기 시작한다.
빛의 짐승들이 여지없이 전부 달려들지만, 그대로 내가 비행하며 사이네 근처에서 격퇴를 시작.
루루가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다가, 이내 서서히 잠잠해지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시선을 완전히 피한다.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아래에 있던 빛의 영역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고, 짐승들이 힘을 잃고 스러져간다.
시전자가 힘을 잃어가고 있단 의미.
더는 공격할 이유도, 의미도 없어진 내가 창을 아래로 내린다.
팔로 잠시 눈가를 한 번 닦아내고 한숨을 한 번.
...아직 모든 게 끝난 게 아냐.
루루에게 안식을 주는 건, 피오레를 쓰러뜨린 이후다.
"끝났다~! 하, 젠장. 이렇게 이길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
"루리에~ 봐봐! 루루 좀 보라니까? 머리카락 좀 타긴 했는데, 뭐, 마법 소녀니까... 재생되겠지?"
"..."
"루리에? 잠깐 보라니까?"
기쁜 목소리로 소리치는 사이네의 행동에 분노가 솟는 것을 느끼지만, 간신히 표정을 관리하며 시선을 돌린다.
그러자 보이는 건...
"멀...쩡해?"
"앙? 당연한 거 아니냐. 기억만 되찾게 했다고? 내가 이거 배운다고 던전에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아니... 그... 어떻게 한 거야?"
"마력 컨트롤로 기억 부분만 건드렸다고~ 온몸에 쓴 건 그동안 마비시킨 거고. 딱히 제대로 통증도 없었을걸?"
"...그게 돼?"
내가 안도 반 황당함 반인 얼굴로 바라보자, 사이네는 뭘 당연한 걸 묻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새, 생각보다 사이네도 대단해졌구나.
알고는 있었지만, 감탄이 나온다.
"질질 시간 끌린 거에 비해선 허무하게 끝났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안 그래?"
"...깨어나면, 괜찮을까."
"불안하면 봉인이라도 해봐."
"봉인..."
지금이라도 같이 봉인 당하는 것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사이네가 말하는 건 그냥 평범하게 마력 묶기를 이야기하는 거겠지만, 솔직히 불안하다.
이대로 둘이서 동시에 봉인되면...
"스노우가 풀겠지."
"앙?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아냐. 그럼..."
루루의 팔에 대고 마력을 일으킨다.
회로를 망가뜨리진 않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족쇄를 달아둔다.
적어도 이번처럼 빛의 짐승을 일으키고, 먹어 치우려고 하는 행동은 불가능하리라.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쿠르르르르
"...응?"
땅에 내려서는 순간, 바닥이 꺼지는 걸 느끼며 급하게 다시 날아오른다.
보이는 건 끝없는 공허.
문제라고 한다면...
"어...아...?"
그 균열이 눈에 보이는 모든 땅에 퍼져 나가고 있다는 점일까?
"이건 또 뭔..."
근처에 있던 산부터 시작해서 모든 지상이 사라져간다.
어디로 사라지는 건지, 어디서부터 사라졌던 건지.
나는 루루를 든 채, 멍청한 표정으로 그걸 바라볼 뿐이었다.
전송이 끝나자 보인 건, 어느 학교의 풍경.
어느새 내 복장이 교복으로 바뀐 걸 보며, 나는 무표정하게 주변을 둘러본다.
"렌."
반응이 없다.
예상은 했지만, 아티팩트들은 따라 들어오지 못하는구나.
마력을 일으켜 환상을 주인을 찾는다.
위치는...
"?"
내 바로 옆?
"크흐흐, 우리의 악몽에도 이런 인재가 있었다니! 고대의 맹약을 지키는 마녀여! 그대의 이름은?"
"..."
당연하다는 것처럼 중2병스러운 대사를 내뱉으며 나타난 소녀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고 그녀를 바라본다.
음... 그러니까... 이 중2병이 원래의 몸 주인인 마법 소녀란 의민가?
조금 어지러운데.
"너는 꿈속에 있어. 지금 나가지 않으면 위험해."
"그렇고말고! 몽마의 유혹은 언제나 위험했으니, 암흑 여제를 습격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허나, 미래를 보는 은발 마녀여! 이 여제는 그런 유혹에 빠질 정도로 어수룩하지 않으니 문제없다!"
"..."
뭐라는 거야.
알아듣게 말 좀 해봐.
몽마의 유혹이라는 건 꿈을 이야기하는 거 같고... 암흑 여제는 본인 지칭인가?
난 왜 마녀라고 하지?
"내가 왜 마녀야."
그렇게 기분 나쁜 일은 아니지만 궁금해져 묻자, 소녀는 왼팔의 붕대를 다시 감다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잠시 후 푸흐흐! 하면서 소리치는 소녀.
"당연한 일이지 않더냐? 미래의 마녀여. 여는 이 시간대에 그대 같은 이세계인을 본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
"그러나 이것도 운명! 모든 건 인연의 실에 이어진 운명일지니!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악한 악마의 소굴을 안내하도록 하마!"
"응."
이번 건 잘은 모르겠지만 학교로 가는 길이라도 안내하려는 모양이다.
그녀의 말에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가기 시작했다.
"자, 설아? 들어오렴."
"...네."
그래서 왜 진짜로 전학생으로 되있소요?
안내에 따라 교무실로 들어가자, 정말로 전학 수속을 밟고 있는 상황에 어이없음 반, 황당함 반으로 있다가, 그대로 담임 선생님에게 반으로 끌려 들어간다.
여기에서 이름은 '유 설.'
...어쩐지 낯익은 이름이다.
웅성웅성.
내가 반으로 들어서자 학생들이 저마다 여러 가지 떠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남자들은 대체로 흥분한 상태고 여자들도 눈을 반짝이는 모습.
...굉장히 피곤할 거 같은 상황이다.
"자, 부담 가지지 말고. 인사해야지?"
"나... 아니, 저는..."
심장이 두근거린다.
인지가 상황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긴장한다.
환상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학생 시절 같은 상황은 딱히 경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괜찮아.
누군가에게 기대받고, 누군가에게 집중 받는 상황은 익숙하잖아.
"스노... 아니, '유 설'이라고 해. 편하게 설이라고 불러줘."
이 세계로 오기 전, 평소처럼 가면을 쓴다.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담는다.
눈매를 부드럽게 바꾼다.
긴장한 몸을 이완시킨다.
응, 좋아.
이걸로 됐어.
"뭐야뭐야, 그 머리칼!? 염색이 아니라 자연이지!?"
"와! 눈동자 색 봐봐! 쩔어!"
"...아하하."
"외국에서 살다 와서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다들 많이 알려줘라. 자리는... 그래, 저기 앉으렴."
선생님이 가리킨 자리의 옆에 예의 소녀가 방긋 웃으면서 손을 흔든다.
...그러고 보면 결국 여기는 저 소녀의 꿈이나 다름없는 환상.
모든 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전개와 이 상황, 전부 다 저 녀석이 원한 걸지도 모르겠다.
"푸흐흐, 다시 만났구나, 마녀여."
"마녀 아니야."
"윤회하는 현재 시간 선에서 마력을 사용하는 자는 그대밖에 없거늘. 너무 빼지 않아도 되는 게야?"
"..."
그렇게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마력으로 비눗방울을 만들었다가, 폭. 하고 터뜨리는 모습에 나는 입을 닫는다.
생각해보면 지금 시간대에 마력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 건 당연한 이야기.
문득 달력을 보자, 적힌 날짜는...
ㅡ2029년 3월 1일.
"아포칼립스 시작까지 1년..."
"그래, 그랬었지. 미래의 마녀여. 그때도 그대는 여를 찾아와서 말했었지. '미래에 아포칼립스가 일어날 거야.'라고. 전학이라는 형태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만..."
"...내가 찾아왔던 게 정확히 언제야."
"음, 분명 3월 6일이었지?"
...어쩌면, 이쪽 세계의 스노우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의외의 상황에 나는 눈을 반짝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