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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89화 (89/149)

〈 89화 〉 나라 전복

* * *

루루의 등에 나타난 금빛 시계와 같은 무언가.

2개의 금빛 짧고 긴 막대와 원형의 고리.

...시계를 연상시킨다.

"렌, 혹시..."

[마스터.]

"?!"

내가 뭔가 말하기도 전에 사방에서 느껴지는 마력 반응에 나는 곧바로 바람의 마력을 끌어올려 공간을 밟는다.

내가 있던 위치로 떨어져 내리는 포격 5발.

...마력 반응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터라 당황스럽다.

마법진 안 보였는데, 어디서 이런...

"...시간."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뭘 알아봐. 시간 정지잖냐. 파괴자가 가지고 있는 경우, 가끔 있지.]

렌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하고, 세르칸은 확신하듯 그렇게 말한다.

세르칸은 여러 세계를 구한 사람의 아티팩트다.

얘가 확신했다면 거의 분명한 일일 터.

...리스크 없는 시간 정지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뭔가 리스크가 있을 텐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이번엔 사방에서 원형 빛 구체 수십 개가 내 위치로 떨어져 내리고, 동시에 이동할 법한 공간에도 트랩처럼 구체가 가득 찬다.

바람을 밟고 이동해봤자 피할 수 없게 만들고 싶은 모양이지만...

"안녕."

"...!"

음울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던 그녀의 코앞으로 이동하자, 그녀는 곧바로 나에게 주먹을 날린다.

인사만 했는데 주먹 날리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진정해."

가볍게 피해내곤 동시에 뒤에서 무수한 폭발이 터져나간다.

주먹으론 나에게 닿지 못할 거로 생각한 건지,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모습.

잠시 후 정말 코앞에 나타난 탄막에 나는 온몸에 별의 마력을 두른다.

콰아앙!

"...아파."

생각보다 데미지가 강하다.

...아무튼 시간을 다루면 내가 제대로 공격할 방법이 없는데?

저건 아무래도 능력이나 권능에 가까우니까.

"어쩌지."

사실 그냥 전 방위 포격을 날리면 될 거 같긴 하지만, 그랬다간 루루가 치명상을 입을 확률이 높다.

어떻게 해야...

[시간 다루는 녀석이면 우리도 시간 다루면 되는 거 아니겠냐.]

"...?"

세르칸의 가벼운 말에 내가 무슨 말이냐는 듯 바라보자, 세르칸이 어느새 인간의 형상으로 변해간다.

회색 장발에 짧은 트윈 테일.

차가워 보이는 인상에 회색빛 눈동자.

그리고 양복과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 다른 회색 교복과 붉은 넥타이.

...가슴이 제법 큰 소녀가 손에는 갈색 고풍스러운 바이올린을 들고, 허공을 날고 있었다.

우웅­

잠깐 루루 쪽을 바라보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목에 바이올린을 대고 연주 준비를 하는 모습.

그 순간, 그녀의 앞에 수십의 탄막이 나타나는 걸 보며, 나는 곧바로 손을 뻗는다.

"제1악장."

탄막에 맞기 직전.

세계가 회색빛으로 변한다.

그녀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새하얀 권능의 광채가 퍼져나가며, 결계 안의 시간이 정지한다.

정말 말 그대로 코앞.

적중 직전인 탄막들이 전부 허공에서 멈추고, 그녀의 바이올린 연주가 계속된다.

[이건... 정말로 시간 정지군요.]

"..."

아니, 시간 다루는 애도 있었다고?

대체 뭐 하는 세계관이었던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저런 애가 있었는데 아린이가 죽었단 말이지...

"뭐해."

"응."

"적은 움직여."

"아."

그녀의 말에 뒤늦게 루루 쪽을 바라보자, 놀랍게도 등 뒤의 시계가 철컥. 하고 돌아가며 루루가 그녀에게 날아오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렌을 단검화 시켜 세르칸 근처의 광구들을 베어내고, 동시에 루루의 주먹까지 튕겨내는 나.

늦었단 사실에 얼굴을 찌푸린 루루가 시침을 턱. 하고 잡더니, 곧바로 노란 빛과 함께 잿노란 마력들이 사방에 나타난다!

"리플레이."

"!"

그녀의 시동어가 끝나기 전에 세르칸을 붙잡고 곧바로 공간을 넘는다.

그러자 동시에 온 사방에 나타나는 예의 탄막 무리.

직감적으로 알아챈 거지만, 역시 전에 썼던 공격을 그대로 재생하는 모양이다.

"너무 격하게 움직이잖아."

"미안."

조금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외치면서도 약간의 노이즈만 있었을 뿐, 정상적으로 연주하면서 세르칸이 불평한다.

너무 세게 잡아채서 연주를 멈출 뻔한 모양이다.

신체 능력이 일반인급으로 약해진 모양이니, 조심하는 게 좋겠다.

"플레이."

"스타라이트 리플렉션."

그녀의 말과 함께 시간 능력이 파직! 하고 서로 부딪히며 세계 절반이 원래 색을 되찾는다.

리플레이된 공격 중엔 포격도 있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콰아아앙!

절반의 세계에서 내 보호막과 포격, 탄막이 부딪힌다.

탄막은 부딪히면서 날아온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가고, 포격은 그대로 직격.

보호막에 금이 가긴 하지만, 마력을 더 불어넣어 수복하는 것에 성공한다.

"...어째서야."

"...?"

"어째서, 나는, 아무것도, 구하지도, 쓰러뜨리지도, 사라지게 만들지도... 못하는 거야."

빛과 희망의 마법 소녀라는 이명과는 반대로 깊게 절망하고 있는 루루.

절망하면 절망할수록 그녀의 등 뒤에 있는 시계가 점점 회색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잿노란빛.

루루를 상징하는 노란색에 불순물이 섞인 것 같은 색감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분침과 시침을 동시에 쥐는 모습을 보며 다음 공격에 대비하는 나.

하지만 세르칸은 얼굴을 찌푸리며 분노한 눈으로 루루를 바라보더니, 곧바로 입을 연다.

"제5악장, 나는 거부한다."

"리턴."

쿠웅!

허공에서 무언가 충돌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회색빛이 사라지며 동시에 사방에서 날아든 탄막을 프로텍션으로 가볍게 막아낸다.

동시에 나에게 물어오는 세르칸의 모습.

"이 결계, 외부에 뭔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

"내가 알기론 불가능해."

"그러면 다행인데..."

내 말에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

바깥 세계가 조용해지며 루루가 새하얀 빛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내가 이상함을 느끼고 바닥을 바라보는 순간...

성역과 루루가 동시에 사라진다!

"...?"

"바깥에 영향은 못 끼쳐도 본인에겐 가능하단 거네..."

"무슨 말이야?"

"시간을 되돌렸어. 며칠이나 되돌린 건진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때의 위치에 있을 확률이 높아."

"그때의 위치?"

"...루리에가 봉인됐던 곳."

"설마..."

미친, 전용 무기 가지러 갔다고요?

­­­­

"사라졌어?"

영상이 제대로 비치지 않더니, 절반만 회색인 상태로 루루가 포를 쏘는 모습.

잠시 후에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결계에서 아예 사라진 루루의 모습이 보인다.

그 후 결계 자체가 사라지며 처음 보는 회색 여학생과 하늘에서 등장하더니, 급하게 어디론가 날아가는 모습의 스노우.

방향을 가늠해 도착할 위치를 생각하던 루리에는 이윽고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후. 하면서 변신한다.

"루리에?"

"사이네, 빨리 가야 해."

"어딜?"

"루루가 전용 무기 찾으러 갔어."

"?"

루리에의 말에 사이네가 의문을 표하고, 루카 역시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화면을 바꾼다.

얼음의 성이 있던 지역으로 화면을 전환하는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암전되는 거울.

자신의 원시를 눈치챘다는 걸 깨달은 루카가 흐암... 하면서 인상을 찌푸리더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크샨, 같이 가자."

­ 음, 가야겠군.

"...?"

"뭐해? 네가 가자며."

밤새 이것저것 조작하느라 제대로 된 잠도 못 잔 소녀의 말에 루리에가 무슨 말이냐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본다.

지금 전투에 루카가 직접 따라올 이유가 없었다.

굳이 도와준다면, 크샨이 도와줘야겠지.

그녀의 눈엔 루카는 지금 전력 외라고, 그렇게 판단됐다.

"크샨은 나랑 같이 있을 때 더 강해져. 그냥 토템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그런 거구나."

그런 루리에의 의문을 알아차렸는지, 가볍게 말하곤 크샨의 팔 위에 앉아 기대는 루카.

크샨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앉히더니 점점 거대해지기 시작하고, 3m가 넘는 키가 되자 루카가 그의 품에 쏙 안긴다.

그대로 누워서 수면.

...이동하는 동안 자겠다는 모습에 루리에와 사이네가 동시에 어이없다는 얼굴로 바라보지만, 이내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곤 곧바로 비행을 시작한다.

"생각보다 이른데."

"어쩔 수 없어. 전용 무기를 얻으면, 막기 힘들 테니까."

스노우도 전용 무기를 얻고 강대해졌고, 사이네도 강대해졌다.

파괴자인 루루라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라고 모두 판단하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스노우 위치도 우리 위치도 둘다 거기서 좀 멀어."

비행하면서 루리에가 말하자 사이네는 온몸에서 전류를 뿌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더 가속하겠다는 의미.

그리고 그 순간, 크샨에게 앉아있던 루카가 눈을 뜨더니 그대로 입을 열었다.

"너만 가속해서 혼자 당하게? 차라리 내가 시간 끌게."

"...가능하겠어?"

"음... 나는 안 될 거 같긴 한데, 될 거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루카는 허공에 손을 조작한다.

평소의 좀비 조작할 때 붉은 눈이 아니라 시스템을 사용할 때 보이는 모습.

그 모습에 의아한 눈으로 루리에가 바라볼 때 즈음,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어라?"

"무슨 일이야?"

"얘 왜 마족들이랑 같이 있지?"

"...??"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 마법 소녀들은 전부 루카를 바라봤다.

­­­­

"오오~ 그렇군요! 먼저 내려와서 지상을 살피고 있었다니,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으, 음! 그렇고말고! 칠흑의 여제이자 신성한 타천사인 나로서는 더는 이 낙원의 주민들을 방치할 수 없었느니라!"

"그렇군요!"

어느 한 건물 안.

우중충한 건물에 각종 해괴한 약물, 있어 보이는 마법진과 특이한 사역마들이 가득한 공간에 머리에 뿔이 달린 인간들이 의자에 앉은 소녀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전 루루에게 암흑 여제라는 칭호를 밝히면서 싸운 마법 소녀의 모습.

대상이 마법 소녀라는 걸 알았지만, 피오레는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못하고 끙끙 앓으며 그걸 바라볼 뿐이었다.

'아예 안 들키려고 잠깐 봉인돼서 이런 참사를 내다니, 나답지 못하구나.'

상황이 종료되길 기다리기 위해 잠시 마왕에게 봉인을 요청한 피오레.

그렇기 때문에 그가 이 상황에서 의사를 표할 수 있는 부분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 그의 특기인 마법 소녀를 조종하는 것조차도.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질문 하나만 해도 괜찮겠습니까, 루시퍼 님?"

"음! 말해 보거라!"

"최근에 별 무리의 마법 소녀라는 자가 날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혹시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음? 여가 본 건 잿노란 천사가 신의 짐승들과 함께 노니는 것밖엔 보지 못했다만?"

"그렇습니까? 흐음... 그렇군요."

'그래! 이상한 걸 느껴야 정상이지!'

"하긴, 피오레 녀석이 상대할 수준이 그렇겠죠. 루시퍼 님이 신경 쓸 정도는 아니란 거군요."

'그게 아니란 말이다!'

아무래도 별 무리의 마법 소녀를 별거 아닌 취급하는 모습에 분통을 터뜨리는 피오레였지만,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왕조차도 직접적으로 음성을 듣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듣지 못하니, 당연한 일.

"그럼 잿노란 천사를 잡으러 가시는 겁니까?"

"여도 그러고 싶다만... 아무래도 미카엘의 가호를 받는 모양이더군! 심판의 축복을 받은 여에겐 귀찮은 일이니라!"

"아! 미카엘 녀석의 가호군요. 흐음... 확실히 귀찮겠습니다. 그럼, 제가 상대해도 되겠습니까?"

"흐므?"

"저는 색욕의 마왕인지라 아마 심판의 축복은 통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대등하게 싸울 만 하겠죠."

"새, 색욕?"

"예,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니니라. 크흠. 좋다, 나의 마왕이여! 나를 대신해 건방진 미카엘의 하수인을 처단할 수 있도록 하여라!"

"예!"

그런 말과 함께 공간 이동하듯 사라지는 마족들.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족들을 보며, '공상의 마법 소녀'는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닦으며 의자에 축 늘어질 뿐이었다.

"후아... 진짜 마족이라니, 생각도 못 했어."

'...음? 날 놓고 간 건가?'

봉인된 피오레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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