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87화 (87/149)

〈 87화 〉 나라 전복

* * *

꿈을 꾸었다.

내 기억에 없는 또 다른 기억에 대한 꿈을 꾸었다.

유지가 가지고 있던 기억.

모든 대륙이 무너지듯 부서져 간다.

몬스터들도 인간도 평등하게 바다로 가라앉고, 지저로 떨어진다.

살아남은 건 하늘을 날 수 있는 존재들.

마법 소녀, 비행종 몬스터, 마도사, 그리고 그들이 구해낸 적은 인원들 등.

몬스터들과 마법 소녀들은 서로 협력하듯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며 허공에 거대한 얼음의 땅을 만들어냈고, 천족들과 마족들이 그 땅 위로 올라와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대륙 한가운데 서 있는 건, 연분홍빛 눈동자를 가진 은빛 머리칼의 소녀.

뭔가에 당한 건지 배가 뚫린 채로 누워있는 소녀, 유지가 그곳에 있었다.

"회복 마법이 통하지 않아."

"그 '신'에게 당한 상처니까, 쉽게 낫진 않겠지."

"어떡하지? 이대로면 희망이 없어."

"젠장, 스노우가 없으면 누가 붕괴를 막냐고!"

천족과 마족들이 서로 떠들고, 드래곤 역시 회복 마법을 펼치며 떠들어댄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건, 빛과 희망의 마법 소녀인 노란 마법 소녀 루루.

지금의 파괴자 모습이 아닌 원래 모습의 루루가 스노우의 손을 꼭 잡더니, 마력을 일으킨다.

"여러분."

"뭔데?"

"루루, 아무리 너라도 힘들 거다. 더욱 더 강해졌으면 모를까..."

"스노우에게 모든 걸 걸 자신이 있으신가요, 라덴."

"...뭐라?"

루루의 마력광이 점점 커지며 별빛과 화려한 빛의 마력이 점점 스노우에게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 마력에 섞인 붉은 빛과 함께 점점 늙어가기 시작하는 루루.

그 모습을 본 라덴이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설마 스노우에게 수명을 전부 주겠단 건가! 루루!"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스노우에게 모든 걸 맞길 뿐입니다."

"무슨 의미지?"

"스노우에겐 루프 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죽지만 않으면, 돌아갈 수 있죠."

"...!"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루루의 말에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마법 소녀들이 전부 하나하나 모이기 시작하며 스노우에게 마력과 생명력을 건네기 시작하는 모습.

그 모습 사이에는 내가 아는 사람도 있었고, 전혀 모르는 사람도 존재했다.

"윽...!"

서서히 스노우의 상처가 나아가며, 마력이 충만해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천족들과 마족들까지 거들기 시작하는 모습을 혼란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라덴.

잠시 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조금씩 거들기 시작하자, 스노우의 눈이 뜨여진다.

"아...?"

그녀가 눈을 뜰 때 즈음, 마법 소녀들이 하나둘씩 쓰러져간다.

대부분의 마력과 생명력은 상처를 회복하는 것에 사용되고, 천족과 마족들 역시 쓰러진다.

스노우에게 루프 할 수 있는 마력이 모이지만, 부족한 수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쓰러져가는 사람을 멍하니 보고 있는 스노우에게 라덴이 천천히 다가간다.

"일어났군. 루프에 필요한 마력은 모였나?"

"라덴? 잠깐만, 다른 사람들...은... 왜? 어째서? 다들 합치면, 나보다 강할 수 있잖아. 굳이 날 살리지 않아도...! 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우린 너에게 맡겼다."

나와는 다른 제법 감정적인 감정표현을 보이는 모습.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에게 라덴은 담담하게 그렇게 선언한다.

그와 동시에 라덴에게서 들어오기 시작하는 마력.

스노우가 별빛 마력을 일으켜 그에 저항하려 하지만, 공격이 아닌 전달하는 마력을 틀어막으면 내상을 입는단 사실을 깨달은 듯 저항하지 못한다.

"걱정하지 마라. 딱히 널 위해서 다들 움직인 건 아니니. 모든 것은 투자다.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겠지? 스노우."

"이미... 이미 많이 도전했단 말야. 난 못 해. 이미 100번이 넘었어. 100번이나 넘겨놓고도 멸망을 막지도, 신을 쓰러뜨리지도 못했어. 나는... 나는...!"

"그런가, 그래서 순례의 마법 소녀였군."

"왜 다들 자꾸 나한테 맡기는 거야? 나도 이젠 무리란 말야. 내가 지금 너희들이 죽어가는 걸 몇 번이나...!"

[마스터.]

스노우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려는 순간, 렌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의 요정 형태로 실체화한 렌이 날아올라 스노우의 어깨에 앉는다.

잠시 침묵.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렌을 보며 스노우가 말하려는 순간, 그녀의 입이 열린다.

"마스터는 포기해도 됩니다."

"...렌, 모두가 죽었다."

"그게 어떤 일인지, 마스터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알아... 나도 안단 말야..."

렌의 말에 스노우는 손을 피가 나도록 꽉 쥐면서 그렇게 중얼거린다.

이미 발 디딜 곳도 없을 정도로 몰린 심정인 소녀.

그런 소녀의 뺨을 웃으면서 슬며시 만진 렌이 그녀에게서 흐르는 눈물을 바라보면서 입을 연다.

"그렇다면, 대체할 사람이라도 찾아보도록 하죠."

"...대체할 사람...?"

"마스터가 노력한 덕분에 생각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살아남았습니다. 실제로 루프 이상으로 마력을 쓰는 게 가능하실 거고요."

"...응."

"그 잉여 자원을 활용해서 소환 식과 빙의 식을 짜보죠."

"렌, 설마...!"

"마스터에게 짐을 추가로 얹은 얼간이 도마뱀은 조용히 있으십시오."

마치 악마의 속삭임과 같은 말이라고, 그걸 바라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지칠 대로 지친 소녀에게 '너도 짐을 떠넘기자'라고 말하는 렌.

과연 그것이 옳은 걸까 갈등하는 눈동자가 보인다.

아무리 지쳤더라도 스노우는 마법 소녀.

사람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행동이라는 걸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는 눈동자였다.

"이 세계를 게임으로 여길 수 있고, 그런 게임을 확실하게 클리어할 수 있는 사람을 조건으로 강신시키고, 몸을 넘겨주죠."

"..."

"마스터는 몸을 잃겠지만, 세계가 복구되면 어떻게든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모든 게 끝나면 소환된 영혼을 돌려보내고, 몸을 되찾으면 될 일입니다."

"아냐, 렌... 그런 사람을 소환했다 치더라도, 몸을 돌려받을 생각은 버려야지. 이용만 하고 버린다니, 그런 건 나쁜 일이야."

"적당히 보상만 해준다면, 가능하겠지요. 어차피 저희는 세계만 구해내면 끝이니까요."

"...그 사람이 나를 원한다던가, 세계 정복을 원한다던가. 그럴 수도 있잖아."

"그건 운에 맡겨야겠죠. 게다가 세계 정복은 하는 쪽이 좋은 쪽입니다."

렌의 계속된 설득에 스노우는 잠시 침묵한다.

하지만 잠시 후 자기 손에서 뚝뚝하고 흐르는 핏물을 본 그녀는 눈을 한 번 질끈 감더니 갑자기 허공에서 노트북을 꺼내 든다.

"라덴, 시간을 느리게 해줘."

"...음? 뭘하려는 거지?"

"내가 아는 정보, 전부 적어서 노트북을 제외하고 루프 시키겠어. 그리고 내 영혼에 보관될 보관실도 다른 차원에 만들어놔야 돼."

"...맞습니다. 보관실, 소환진, 빙의 진 전부 저와 라덴이 만들도록 하죠. 마스터는 루프와 영혼 해제의 비술을 준비해주시길."

"응. 그리고 루프 되는 시점에서 한 달 정도 후에 일 벌어지니까, 후천적으로 발동해야 해. 내가 기억할게. 빙의 진, 소환진 전부 다 나한테 보여줘."

"알겠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빙의 소환 계획이 시작됐다.

­­­­

"..."

마지막에 왜 그런 결론이 나는 건데 인마.

그런 상황에서 깨어난 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생각하자, 렌이 말했다.

[개꿈이라도 꾸셨습니까?]

"...그러게, 이거 전 회차 기억인가."

[으잉? 전 회차?]

[유지라는 마법 소녀는 회귀하는 능력을 지닌 마법 소녀였습니다.]

[오호.]

"그러고 보니 나 아직 그것도 모르네."

능숙하게 허공을 찢어 아공간을 열고, 그 안에서 노트북과 휴대폰을 꺼내 든다.

1번은 루시에르 일행.

2번과 3번은 누구지?

분명 들었던 거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제는 연결되지 않을까?

한국은 이제 인터넷과 통신이 전부 되니까, 충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생각하며 노트북의 내용을 읽으며 휴대폰으로 연락을 시도한다.

[통화권 이탈 상태입니다.]

"...아."

내가 한국이 아니지.

멍청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노트북에 있는 휴대폰 번호의 의미를 찾아본다.

1번은 루시에르 일행.

2번은...

"...응?"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 내용을 다시 확인하지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익숙한 이름이다.

[1번 상혁이, 유린이, 수진이 셋과 연결됨! 셋 다 초월자급 실력자고, 도와준다고 확실히 약속함!]

[2번은 세연이. 검성이랑 연결되는 아이고, 빌런이긴 해도 혼자서 5성까지 올라가는 애야. 초반에 만나서 같이 크면 좋음! 아포칼립스 첫날 배 타러 가니까, 만날 거면 빨리 만나자!]

[3번은 솔직히 얘가 받을까 모르겠긴 한데... 일단은 넣어놓을게. 자기를 암흑의 여제라고 부르는 애야. 좀 특이한 애긴 한데, 능력이 '상상 구현'이니까... 연락할 수 있는 상황엔 꼭 연락해볼 것!]

[카톡에 있는 애는 내 지인. 어떨 때는 살아있고 어떨 때는 죽어있어. 몇 번 루프 해봐도 랜덤 변수로 사망하는 애라 종잡을 수 없어.]

[모두 동료가 되면 좋은 아이들이야. 필수 조건을 채우기 쉬운 상황이면, 이 아이들을 전부 데리고 가는 게 현명해.]

"...세연이."

어째서인진 모르겠지만, 전화번호엔 세연이의 이름이 적혀있다.

아무래도 세연이와도 돌아오기 전에 만났던 모양인데... 어라? 왜 아는 척 안 한 거지?

"변신 전, 후... 다른 거 없는데."

변신 전에 만났을 테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 자체는 하지만 못 알아볼 정도로 다르진 않을 터.

그렇다면... 마법 소녀로 만난 게 어색해서? 아니면 내 쪽에서 아는 척 안 해서...?

어느 쪽이든 조금 괘씸하니까, 조금 있다가 혼내주도록 하자.

그런 생각을 하며 루루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자 어제보다 확연히 가깝게 다가온 빛의 영역이 보인다.

...넓히는 속도가 대단하네.

딱 봐도 들어오는 모든 걸 마력화시켜서 먹어 치우는 영역화 마법이라 들어가기 껄끄러울 수준이다.

"루루는 중심에 있겠지."

[네, 그렇겠죠.]

"마력화를 내가 버틸 수 있을까."

[마력화 현상은 마스터가 몸에 별의 마력을 두르면 차단할 수 있습니다. 저건 파괴자로서의 힘으로 보이니까요.]

"그렇구나."

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서서히 위로 날아오른다.

날아올라 바라보자 보이는 건, 굉장히 먼 거리에 만들어진 마력으로 이뤄진 신전의 모습.

슬며시 온몸을 별의 마력으로 감싸고, 그대로 슥 하고 영역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한다.

[오우, 위험하다고? 어지간한 녀석들은 뼈도 못 추리고 녹아내리겠구만?]

"세르칸, 너희는 괜찮아."

[괜찮다고~ 마스터의 손에서 떨어지지만 않으면.]

"사람으로 변신은 못 하는 거네."

세르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신전 코앞까지 도달한다.

내가 신전 앞으로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가자 문이 열리며 빛으로 된 벽으로 된 복도가 눈에 띈다.

들어오라는 말을 하는 것과 같은 광경에 조심스럽게 빛으로 된 신전 바닥을 밟아보는 나.

마치 돌처럼 딱딱한 감각이 발에 닿는 걸 느끼며, 나는 비행을 멈추고 신전을 걸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조금 걸어 들어가자 거대한 홀에 소박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빛으로 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마법 소녀가 보인다.

뭔가를 두려워하듯 어떤 사람 형상은 빛의 괴물로 먹어 치우고, 어떤 사람 형상은 손을 잡은 채인 모습.

내가 홀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사람 형상이 사라지며 소녀의 고개가 까딱. 하고 옆으로 약간 기울어진다.

"별무리..."

"응."

내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자, 소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주변에 빛의 괴물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그리곤 혼란스러운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

...전에 봤을 때와는 다르게 눈에 지성이라는 게 제대로 담긴 모습이다.

"기억은 찾은 거야."

내 말에 소녀는 고개를 젓는다.

뭔가 분위기가 바뀐 거 같은데, 뭔지 모르겠다.

"어째서 먹히지 않아?"

"나는 수호자니까."

"나도 수호... 아니, 나는 파괴... 모르겠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확정조차 짓지 못한 채로 그저 살아있기에 살아있다.

아니면 그걸 확정 짓기 위해 살아있는 걸지도 모른다.

...모르겠네.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루루, 당장 침식을 중단해."

"침식? 나는 침식하고 있지 않아. 먹어 치우고 있을 뿐."

"그럼 먹어 치우는 걸 멈춰."

"안 돼, 구해야 해. 이 방법이 아니면 구할 수 없어. 아마? 구할 수? 없어? 왜 구해야?"

"..."

고장 난 기계처럼 그렇게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모습에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한 번 내쉰다.

역시... 가만히 방치할 수 없다.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확실하게 모른 채로, 해야 해서 움직이는 모습.

옳고 그른 걸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서라도 나는 그녀를 막아야만 했다.

적어도 루리에가 회복할 수 있는 시간까지는.

대충... 일주일만 잡아두면 되려나.

"그래선 안 돼, 루루."

렌을 앞으로 세우자 그녀가 고장 난 목소리를 멈추고 나를 바라보며, 동시에 사방에 무수한 빛의 괴물들이 나타난다.

나를 단숨에 먹어 치우겠다는 것처럼 나타나 으르렁거리기 시작하는 모습.

그 모습에 나는 담담히 내가 할 일을 하겠다는 것처럼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사랑과 정의...?"

루루가 이상한 걸 들었다는 것처럼 제법 표정이 이상해지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신경 쓰시지 않습니까.]

조용히 해.

렌의 말에 순간 욱했지만, 무시하고 마력을 집중한다.

오래간만에 말하려니까 조금 껄끄럽네.

"별 무리의 마법 소녀, 스노우. 이곳에 등장!"

몸에서 별의 마력이 사방으로 풀려나간다.

원형의 절대 영역이 만들어지며 모든 빛의 괴물들을 밀어낸다.

점점 넓어지고 있던 빛의 영역이 활동을 중단한다.

마력이 강화된 탓인지 마법 소녀 등장!의 효과가 강해졌다.

밖으로 나가는 마력마저 차단되는 마법 소녀 전용 1대1 필드.

루루의 얼굴이 찌푸려진 걸 보며, 나는 허공에 수백의 별 무리를 불러낸다.

"나랑 딱 일주일만 놀자, 루루."

그렇게 시간 끌기용 전투가 시작됐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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