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86화 (86/149)

〈 86화 〉 나라 전복

* * *

Side 루루

모르겠다.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

ㅡ세계를 멸망시켜야 한다.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건, 세계를 멸망시켜야 한다는 사실.

하지만 다른 쪽 의식에선 인류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힌다.

"..."

인류를 구한다와 세계를 멸망시킨다가 공존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전제야.

어째서 내 목적이 상충하는 거야.

누가 인류를 구한다는 목적을 심었지?

누가 세계를 멸망시켜야 한다는 목적을 심었지?

모르겠어.

어째서 난 세계를 멸망시켜야 해?

"윽..."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킨다.

건물을 나서자 폐허가 된 도시와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들이 보인다.

몬스터, 인간, 동물들의 사체들이 썩은 채 흩어진 장소.

모르...겠어...

"...언니."

어제 만났던 푸른 마법 소녀를 떠올린다.

나를 봉인하기 위해 움직이다가 실패하고 자기 자신을 봉인한 마법 소녀.

자신을 언니라고 말했다.

...언니?

머리가 찡­하고 울리는 느낌이다.

­ 루루는 나 같은 거보다 훨씬 상냥한 아이네? 역시 수해의 마법 소녀는 내가 아니라 루루가 돼야 했는데.

나는 수해의 마법 소녀가 아니다.

­ 우리는 바닷가에서 태어났잖아? 그러니까 아무리 위험해도 바다에서 오는 위협은 우리가 막을 수밖에 없어.

내가 있던 곳은 바다가 아니다.

­ 너도, 나도 푸른 머리칼을 가지고 태어났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착각할 수도 있지. 이 도시에 푸른 머리칼은 우리뿐이니까.

내 머리칼은 푸른색이 아니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전부 답하며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먹구름.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오고, 땅에서 마족들이 올라온다.

비가 쏟아진다.

모든 걸 씻어내는 비가 쏟아진다.

그리고...

"..."

나는 모든 걸 삼킨다.

손을 뻗자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던 천사들이 기겁하며 도망치지만, 늦다.

내 모든 수족이 하늘과 땅을 먹어 치우듯 퍼져 나간다.

도시를 먹어 치운다.

시체를 먹어 치운다.

폐허를 무로 돌린다.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땅에 있던 마족.

하늘에 있던 천족.

인간들이 만들어낸 모든 것.

전부 먹어 치우고, 마력으로 화해 신성 지대를 선포한다.

이곳은 나의 성.

이곳은 나의 성역.

"디바우링 생츄어리."

그리고 이 성역의 모든 것은 나의 것.

그러니까...

"언니."

이 나라를 전부 먹어 치우겠다.

자신을 언니라고 칭한 자의 봉인까지 먹어 치우겠다.

계속해서 마력을 사용해 영역을 늘린다.

이 나라를 전부 먹어 치울 때까지, 앞으로 7일.

­­­­

Side 루리에

"윽!?"

끔찍한 통증과 함께 눈을 뜬다.

눈을 깜박이지만 흐릿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알아챈 건 뼛속까지 들어오는 고통과 어두운 공간이라는 것.

불이 없어 들어오지 못한 걸까 생각하지만, 그런 건 아닌 모양.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거야?

봉인은 영구 봉인.

봉인이 풀렸다는 건, 누군가가 봉인을 풀었단 의미다.

무슨 일이 있었지?

알 수 없다.

알 수 있었던 건 그저 지금 내가 깨어나면 이상한 일이라는 점.

루루의 봉인에 실패했었다는 기억.

결국, 세계는 멸망했을까?

알 수 없다.

스노우가 있었으니까, 어떻게든 막아냈을 거로 생각한다.

봉인을 푼 사람이 있으니까, 아직 인류는 생존했을 거로 생각한다.

"아, 이제 일어났네! 나 참, 내가 드래곤 잡으랬지 언제 거기서 봉인 당하랬어!? 게다가 생환 반지도 줬는데 뭔 짓이야. 잃어버리면 책임질 거야!?"

"...어...?"

눈을 지속해서 깜박이자 보이는 건, 내가 나서기 전에 본 풍경.

전혀 변하지 않은 풍경에 전혀 자라지 않은 루카의 모습.

크샨도 여전히 그대로.

눈에 마력을 불어넣어 억지로 시야를 회복해 날짜를 보자, 하루조차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어떻게...?

­ 음, 순수한 영혼이여. 별의 아이가 그대를 데려다줬다네.

"별의 아이... 스노우?"

"그래, 내가 얼마나 황당했는지 알아? 갑자기 영구 봉인 마법 해석해서 풀어내더니 우리한테 던져주고 갔다니까?"

"..."

스노우는 대단하네.

내가 목숨까지 바치며 만들어낸 술식을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풀어내고 나를 구했다.

게다가 몸 상태도 끔찍하게 통증이 심할 뿐, 생존에는 지장 없는 수준까지 회복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 루루는."

"파괴자라면 네 봉인 공격하다가 안 깨져서 실패하곤 도망가버렸는데."

"..."

다행히 동굴에 진입하진 못한 모양이다.

거기까지 진입하면 돌이킬 수 없을 거 같다고, 그렇게 생각해서 한 판단이었는데 옳은 판단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뭐라더라? 수호자랑 같이 루루 직접 잡으라 하고 피오레 잡으러 떠났어. 내가 생포해달라고 했는데 들었나 몰라..."

"수호자...?"

"쟤."

루카의 말에 시선을 옮기자,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는 사이네의 모습이 보인다.

그렇네, 스노우가 왔으면 사이네도 왔겠구나.

아무래도 수호자로서 제대로 각성하고 온 건지, 가기 전보다 별의 마력이 강렬해진 느낌이 든다.

"...사이네랑 나, 둘이서 잡을 수 있단 의민가...?"

루루와 전투해본 입장에선 영 믿음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스노우는 아마 가능하다고 판단한 거겠지.

...사이네가 많이 강해졌나 보다.

"난 아무것도 못했는데..."

"으엥? 크샨, 얘 뭔 소리 하는 거래?"

­ 순수한 영혼은 자신이 제대로 해낸 게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로군.

"실제로 버티기만 했으니까요. 전용 무기를 얻어도... 저는 약하네요.

내가 쓴 미소와 함께 말하자, 루카는 으이이잉? 하면서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실제로 루루를 구하지도 못했고, 기껏해야 자기희생 마법으로 전용 무기 획득만 실패하게 했다.

그 정도만 해도 성과라고 하면, 성과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호기롭게 찾아간 값도 못 한 거나 마찬가지다.

"우와, 루리에 너 바보야?"

­ 루카,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

"아니, 그렇잖아! 스펙 차이가 3배 이상에 파괴자여서 세계의 지원까지 받는 존재 상대로 그렇게 오랜 시간 버티고! 목적까지 틀어막아 놓고, 뭐? 아무것도 못 했다고? 야, 지금 그게 말이야?

"..."

그녀가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반응을 보이며 화내는 모습에 내가 눈을 크게 뜨곤 바라보자, 루카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네 마력 분배 실력이랑 컨트롤 실력은 스노우? 걔보다 떨어지지 않아. 그 녀석은 세밀 컨트롤에 뭔가 직감적인 예측 같은 것도 있어서 그런 거지, 너랑 실력 똑같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그리고 물의 마력이랑 얼음의 마력, 듀얼로 쓰는 사람이 뭐 흔한 줄 아나 보네?"

"하지만 다른 사람에 비해 약한 건..."

"이 세계에 너보다 강한 사람 몇 없거든!? 초월자 직전까지 성장해놓고 지가 약하다고 하는 애는 또 처음 보네!"

황당하단 얼굴로 소리치는 루카의 모습에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지금 이 검은 마법 소녀는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내가 강해졌다니, 체감이 들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게, 나는...

­ 루카.

"알아!"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다급하게 루카를 부르는 크샨과 눈을 붉게 물들이는 루카.

그리고 동시에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 먼 거리에서 느껴지고, 네크로폴리스 전체에 거대한 마력이 감싸진다.

쿠우우우웅!

"치잇!"

"응?! 뭐야!?"

거대한 폭음과 곧바로 변신하며 몸을 일으키는 사이네.

내가 변신하며 삼지창을 쥐자, 온 마력 회로가 비명을 지른다.

아직 휴식해야 한다.

아직 움직여선 안 된다.

그렇게 말하는 마력 회로를 무시하고 비행하려 하자, 루카가 소리쳤다.

"멍청아! 지금 나가서 아무것도 못 해! 회복에나 집중해! 크샨! 빌어먹을 괴물들 전부 소탕해줘!"

­ 그러마.

루카가 소리치자 크샨이 어둠으로 변해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밖에서 퍼지기 시작하는 폭음.

내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무는 중, 루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파괴자 녀석, 귀찮은 걸 만들었잖아!"

"뭔데 그래?"

"나의 하수인이 뭐니 하더니 진짜 하수인들을 양산해서 미국 전토에 퍼뜨렸어. 젠장, 상성이 나쁘잖아!"

"나도 나가서 막을게!"

"그러든가!"

사이네의 말에 루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곧바로 전자의 마법 소녀는 하늘로 날아오른다.

내가 나갈까 봐 감시하는 듯 계속해서 나를 힐끗 바라보면서 붉은 눈으로 허공을 조작하고 있는 루카의 모습.

...방해해선 안 돼.

내가 소파에 앉아 가만히 대기하자 그제야 그녀는 능력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루루... 뭘하고 있는 거야.

변신까지 푼 채로 몸을 쉬게 하며, 나는 눈을 감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

[마스터.]

"알아."

심상치 않은 파동에 마족이 있는 방향의 반대편을 바라본다.

...루루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루루만 가능한 수치의 마력량에 나는 잠깐 고민의 기색으로 그 방향을 바라본다.

루리에와 사이네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루리에가 회복할 시간은 필요한 상황.

내가 자신을 보지 않고 다른 방향을 바라보자, 눈앞에 있던 메이드인 메어리가 얼굴을 슬쩍 찌푸린다.

"뭐지? 무슨 일 있나?"

"파괴자가 움직여서."

"파괴자? 아, 빛과 희망의 마법 소녀 이야긴가?"

"...희망?"

"그래, 그 마법 소녀는 희망의 마법 소녀라고 피오레 님이 말했다."

우와... 희망이래.

루루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젓는다.

납치당한 희망이라니, 이러니까 이쪽 세계 상황이 개판이지.

반대로 생각하면 루루를 되찾으면 이 세계는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세계가 된다는 이야기가 되는 건가.

"아직 피오레님인 거야."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을 터다."

"네가 있던 세계도 분명 피오레가 멸망시켰겠지."

"...아니다."

"맞아."

"내가 있던 세계에선 피오레 님이 세 축 중 하나였지만, 결국 다른 세력에 밀려남은 마법 소녀들만 추슬러서 넘어오셨지. 감사하게도 나 역시 같이 넘어온 거뿐이다."

아, 져서 왔구나.

그러면 아마 주력이었던 마법 소녀들을 전부 잃었을 테니 납득가는 이야기다.

주력을 잃고도 5성급이 2명이나 있었단 게 좀 흥미롭긴 하지만, 뭐 그건 그쪽 세계 사정이니까.

"신뢰할 수 있든 없든 지금 루루가 저렇게 된 건, 너희가 만든 결과야."

"흥, 마법 소녀는 언제고 저렇게 변할 녀석들이라고 말했을 텐데?"

"...넌 좀 더 생각이라는 걸 할 필요가 있어."

말이 안 통하는 메어리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곤 비행으로 날아오르면서 말했다.

"마법 소녀들 세뇌는 다 풀려있어. 이제까지 있던 일을 말하고 사과라도 해둬."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안 그러면 넌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일 테니까."

직접 죽이겠다는 말을 돌려 말하자,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본다.

뭐, 어쩌라고.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분명 이해시킬 수 있겠지만, 시간이 너무 걸리는 일.

원래 마족 쪽을 지속해서 습격하는 식으로 피오레를 사냥하려 했는데, 루루가 하는 일이 감당될 수준이 아니라서 안 되겠다.

모든 지역을 영토화시키는 대마법으로 보이는데... 무슨 괴물 같은 짓을 하는 건지.

아마 파괴자로서 얻은 힘이 저런 힘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고 생각하며, 마력이 지속해서 느껴지는 방향으로 비행하기 시작한다.

­­­­

한참 비행하던 중 밤이 되어 잠시 근처 건물에 안착해 휴식을 취한다.

...혼자 밖에서 쉬는 건 오랜만이네.

매번 집 안에서 누구랑 같이 쉬거나 밖에서도 혼자 다닌 적이 없던 기억이 있다.

마법으로 가볍게 텐트를 펼치려다가 어느 건물 안에서 먼지만 쌓인 멀쩡한 매트릭스를 발견하곤 물의 마력으로 깔끔하게 세척한다.

그리곤 불과 바람의 마력으로 그대로 건조, 만져보니 푹신한 감촉이 그대로 살아있는 걸 보며 그곳에 얼굴을 파묻는다.

마법수들도 전부 다른 곳에 흩어져있고, 같이 있는 거라곤 렌과 세르칸 뿐.

물론 둘로도 충분하지만, 그래도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마스터치곤 감성적인 생각이군요.]

"...내 이미지가 이상하네."

[뭔 생각했는데?]

[쉬는 시간에 혼자 있는 게 낯설다고 합니다.]

[음? 비행도 그렇고 혼자 다닐 때 많지 않았냐?]

세르칸은 합류한 지 얼마 안 되서 그런지, 이상하게 여기는 모습이지만 실제로 이 세계에 떨어진 뒤 혼자 쉰 적이 거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쉰 시간이라고 해봐야 자는 시간 정도일까.

생각해보니 그런 시간대에 누구랑 같이 있을 필요는 없네.

[생각보다 마스터가 혼자 있던 시간은 적습니다. 그만큼 많이 돌아다니시기도 했지만 말이죠.]

[많이 돌아다녔냐고. 그렇군. 내가 잘 모르는 건가.]

"..."

어떤 상황이든 렌이랑 세르칸은 같이 있게 될 확률이 높으니까...

어떤 상황이든...?

"렌."

[네, 말씀하시길.]

"내가 만약 모두 끝내고 유지가 돌아오면, 렌이랑 세르칸은 누구 소속이 되는 거야?"

[...음, 어려운 문제군요.]

[난 쉽다고? 너랑은 영혼 계약에 가까운 거다. 전용 무기란 건 그 대상한테 맞춰지는 거니까. 육체가 옮겨지면 옮겨진 육체랑 계약될걸?]

세르칸은 가볍게 그렇게 말하지만, 렌은 다르다.

이때까지 회귀하던 유지 유미카의 파트너도 렌이었다고 들었다.

그렇다는 건 렌은 그저 '유지 유미카'의 육신에 종속된 디바이스일 터.

내 생각이 맞다면...

[그렇습니다. 아마 유지 유미카에게 소유권이 옮겨질 겁니다.]

[이야~ 충성스러운 척하더니 배신 확정이냐?]

[닥치시길. 단순한 소유권 이야기입니다. 그런 식으로 계약이 갈린다면, 저는 현 마스터의 손을 들겠죠.]

"렌."

[네.]

"만약 그때가 되면, 유지를 부탁해."

[...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대답인 건지, 렌이 드물게 놀란 목소리로 되묻는다.

유지와 렌은 무수히 많은 루프를 경험하던 서로의 파트너다.

유지가 루프 중 하나를 나에게 넘겨 바꾸려고 하고 있다곤 하지만, 두 사람의 궁합이 잘 맞는 건 변함 없겠지.

괜히 나 때문에 그 관계가 깨지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마스터와 함께한 렌입니다. 그 점을 생각해서 그 명령은 재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마스터!]

"아직 유지를 보지 못했잖아, 렌. 유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인물인지 정도는 파악하고 돌아와도 괜찮은걸."

[...]

내 말에 렌이 침묵하자 세르칸 역시 덩달아 눈치 보며 침묵한다.

아무래도 수긍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상관없다.

모든 게 끝나면 어차피 선택지는 똑같이 드러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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