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3단계 세력
* * *
사건이 어떻게 굴러간 건진 알아챘지만, 당장 쳐들어가서 공격하기엔 정보가 부족했다.
불안정한 마계와 불안정한 천계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했으니까.
"렌, 마계는 어떤 곳이야."
[마계입니까? 음... 그렇군요. 쓰레기통이죠.]
"신랄한 표현이네요."
[음식도 맛없고, 힘만 숭상하는 무식한 염소 떼에 발정 난 녀석들이 넘치는 곳입니다.]
"..."
[그런 주제에 태생에 가진 힘이 강대한 탓에 인간을 괴롭히는 걸 즐기는 녀석들도 많죠. 특히 마왕급은 절반이 쓰레기입니다.]
그거, 네 고향 이야긴데 그렇게 막말하는 거 맞아?
드물게 짜증 내듯 말하기 시작하는 렌을 보며 나는 입을 다문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마계가 좀 더 더러운 곳인 모양이다.
다른 소설들 보면 마계도 그냥 힘만 숭상하지 괜찮은 곳이 많았던 거 같은데...
[그건 소설이니까요. 실제 마계는 유희 거리만 찾는 괴물들이 모인 곳이라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그렇네요, 마스터의 지식 상으로는 죽음의 공책에 나오는 사신들보다 조금 더 쓰레깁니다.]
"응, 이해했어."
엄청 쓰레기들이구나.
렌의 말에 곧바로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는 건 침식의 마력을 쓰는 피오레와는 잘 맞는 녀석들이다.
그것도 제법 힘이 강한.
[마스터 스펙이면 평범한 녀석들은 충분히 죽일 수 있습니다. 다만... 불안정한 곳에서 왔다면 한 마왕이 세력을 끌고 나왔겠죠. 마왕급이랑 1대1은 할만하지만, 수하가 있다면 쉽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이길 순 있구나."
[마스터가 마족 나부랭이한테 질 정도로 약하진 않으니까요.]
그건 다행이네.
그렇다는 건 마족 무리를 조금씩 깎아내면서 피오레를 유도하는 게 베스트다.
완성하지 못한 영창 역시 만들어내야 할 거고.
영창을 완성했을 때 나올 고유 결계도 조금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기대된다.
...사람 구하려고 행동하고 있지만, 이 정도 두근거림은 괜찮겠지?
나만의 심상 결계라는 것 자체가 제법 로망에 가까운 일이니까.
[마도사 다 되셨군요.]
"...모르겠는데."
[자신만의 마법을 연구하고 기뻐하는 영역은 마도사의 영역입니다. 마스터가 이제까지 해왔던 게 있어서 그렇게 되신 거겠죠.]
"그렇구나."
내 마법을 연구하고 기뻐하는 영역...인가.
사실 굳이 따지자면 체감이 되지 않는다.
확실하게 내가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세이크리드 브레이커뿐이니까.
마력 활용도가 높아져서 그런 감각이 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렌, 세르칸."
[네.]
"네?"
"내가 어떻게 하는 게 베스트일까."
솔직히 말해서 내 머릿속에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선 어느 정도 계산되고 있었다.
녀석들이 움직이는 루트를 차단하고 장거리 포격을 하고 빠지는 식으로 게릴라 공격을 하다 보면, 분명 이길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게 맞을까?
내 생각엔 천계도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거고, 지금 제3세력이 나타난 건 이쪽만이 아니라서 시간이 오래 걸릴만한 전략을 세우는 건 좋지 않다.
역시 한 번에 쓸어버릴 방법을 생각해야...
"근데 말이죠, 스노우 씨"
"응."
"슬슬 도와주지 않을래요?"
"혼자 되잖아."
"오래 걸린다구요...?"
내가 가만있는 사이 모든 공격을 화살로 격추하며 동시에 반격 중인 세르칸의 투정에 나는 한숨을 쉬곤 곧바로 렌을 들어 올린다.
하늘을 무수히 수놓기 시작한 별의 마력.
슈팅 스타가 끝도 없이 생성되는 걸 보며, 모든 마법 소녀들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렌."
[네.]
"솔직히 내가 떨어뜨리면 다 죽일 거 같으니까, 기절시킬 부분으로 유도해줘."
[...마스터의 예측 능력은 적을 죽이는 것에 특화돼있긴 하죠. 알겠습니다.]
내 말에 고민하는 기색과 함께 수긍하는 렌. 그 말에 나는 안심하고 조준 없이 슈팅 스타를 땅으로 떨어뜨렸고, 별 모양의 탄막들은 각자 원하는 마법 소녀를 향해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푸부부북. 하면서 팔다리에 별 탄막을 맞고 추락하는 모습.
비행하고 있던 모든 마법 소녀가 추락하고, 잠시 그걸 바라보던 나는 눈동자에 이채를 띄며 아래를 바라본다.
메이드 복장을 하는 마법 소녀가 날아드는 모든 탄막을 총을 쏴서 격추하거나 회피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아마 나한테 유일하게 제대로 된 공격을 날린 녀석으로 추측된다.
"마법산데 전사...? 아니, 사냥꾼인가...?"
세르칸이 그 움직임을 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그녀도 처음 보는 방식의 무장인 모양.
...현대인인 나로선 서브 컬쳐에서 제법 봤던 모습이다.
[음... 현실에선 못 보는 모습이었겠죠.]
"응."
"무슨 이야기예요?"
"아냐."
쓰게 웃으며 나는 렌을 검 형태로 바꾸고 그대로 돌격한다.
내가 근접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곧바로 허공에 점프한 상태로 정조준하는 모습.
훌륭한 군인의 자세에 제법 놀랐지만, 마력탄 정도는...
타앙! 서걱!
"...!"
"보여."
내 예측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정확하게 날아오는 탄을 두 동강 내곤 그대로 메이드 복의 소녀에게 달려든다.
금발이 휘날리며 착지한 자리에 별무리가 떨어져 내리자, 다시 점프하는 모습.
마법 소녀라면 분명 비행이 가능할 텐데, 왜 굳이 점프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탄환을 예측한다.
...아니, 아니다.
날아오는 건 탄이 아냐.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검을 찔러 들어가자, 그녀는 조준하던 걸 멈추고 다리에서 2개의 단검을 슥하고 들어 올리며 마주친다.
카앙! 하는 소리와 함께 내 힘의 반동으로 땅으로 착지하는 모습.
내가 이어 달려오자, 갑자기 어디선가 꺼내든 기관단총을 꺼내 나에게 난사한다.
"렌."
[프로텍션]
물론 통하지 않는다.
내 마력량이 강대해진 탓에 저 정도 스펙의 연사는 언제까지고 막을 수 있는 수준.
무시하면서 돌진하자 그녀는 금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백스텝을 밟기 시작한다.
움직임에 마력이 담겨 가속하는 모습.
하지만 비행보단 느리... 아, 그렇네.
충돌 위치를 계산하고 딜레이 없이 구조물들을 피해간다.
당연히 지형지물에 시간 딜레이가 생길 거로 생각한 듯 소녀의 눈이 순간 커지지만, 이내 차분한 얼굴로 허공에 무언가를 투척한다.
...섬광탄?
파파팡!
순환시를 가동해 일반적인 빛을 차단한다.
보이는 건 색으로 된 세상.
빛이 좀 더 밝다고 해서 순환시의 세계에서 더 빛난다는 그런 건 없었다.
모든 건 명도로 보일 뿐.
새하얀 색의 허공에 물감처럼 퍼지는 걸 보며, 나는 무시하고 직진한다.
귀가 조금 먹먹하지만, 아쿠아 힐로 바로 회복.
섬광탄 효과가 끝나자마자 순환시를 풀자, 내 눈앞에 10개의 작은 수류탄이 날아들고 있었다.
터지기까지 0.2초.
"아쿠아 실드."
콰과과광!
연쇄 폭발이 일어나며 물 방어막을 두들기지만, 마력량 차이로 뚫고 들어오지 못해 충격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명백한 지연전인데.
아무래도 버티는 게 목적인지, 내가 코앞까지 올 때까지도 주력으로 보이는 걸 꺼내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바로 꺼내 들게 만들어야지.
별의 마력과 검기를 일으킨다.
지금 거리라면 그냥 검의 사거리를 늘리는 수준으로도 닿을 수준이다.
검술은 잘 모르지만, 그냥 후려치는 것 정도는 쉽겠지.
퍼어어억!
"읏...!"
검면으로 상대 이동 경로를 후려치자, 메이드가 허공으로 날려진다.
동시에 보이는 건, 조금 부서진 강철의 방패.
맞을 걸 예측하고 소환한 모양인지, 그녀의 팔에서 방패가 사라지고 동시에 그녀는 부스터 같은 기계로 비행하기 시작한다.
...으으응?
"렌, 마법 소녀가 아닌 걸까."
[모르겠습니다만.]
마법 소녀라기엔 비행 보조체가 달려있고, 아니라기엔 모든 능력에 마력을 달고 있다.
...아니, 빌런이나 히어로면 그럴 수도 있지.
생각해보니 마법을 쓰는 게 마법 소녀만 있진 않다. 피오레가 마법 소녀가 아닌 사람을 데리고 있다는 게 의외일 뿐.
"그럼..."
곧바로 전격의 마력을 피어 올린다.
만들어내는 건 전격의 감옥.
상대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구체 형태로 사방에 전격을 담자, 미처 피하지 못한 그녀가 조금 감전당해 떨어지려다가 간신히 비행을 유지한다.
내가 서서히 다가가자, 허공에서 총을 소환하는 모습.
얼음의 마력을 피어올려 벽을 만들고, 전격의 감옥을 해제함과 동시에 사지를 차가운 족쇄로 묶는다.
"..."
"멈춰."
곧바로 혀를 깨물려는 미친 행동을 발견하고 별의 마력으로 억지로 입을 벌린다.
그러자 날카로운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는 모습.
...내가 얘한테 미움받을 짓을 했던가?
[애초에 성을 공격했지 않습니까.]
"아, 그러네."
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마력을 체크하자, 일반적인 푸른 마력만이 눈에 잡힌다.
딱히 침식당한 사람은 아니다.
"너는 진심으로 피오레를 따르고 있었던 모양이네."
"..."
"피오레가 마법 소녀들을 납치해서 별짓을 다 해도, 아무렇지 않았어."
"...!"
뭔가 말하고 싶은 얼굴을 하는 모습에 내가 입에 담긴 마력을 없애자 그녀는 곧바로 소리쳤다.
"피오레 님은 우리 세계의 마지막 희망이다. 헛수작은 집어치워라. 마법 소녀."
"피오레는 마법 소녀들을 수집하는 사람이지, 딱히 세계를 구하려는 거 같지 않아."
"그건 복수다. 우리 세계를 무너뜨린... 마법 소녀에 대한 복수일 뿐이야."
"..."
그런 건가.
아무래도 이 여자의 세계는 마법 소녀에 의해 망가진 모양이다.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복수하는 건, 그 사람이 타락했다고밖에 볼 수 없어."
"타락? 타락은 너희 마법 소녀가 했겠지. 세계를 구한다고 나선 주제에 세계를 멸망시킨 네 녀석 같은 클래스를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있나? 너도 그렇다. 지금이야 세계를 구하니 뭐니 하지만, 결국 바닥으로 떨어지겠지. 차라리 피오레님에게 침식당하는 게 세계를 위한 일이다!"
"..."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마법 소녀 클래스는 악이든 선이든 '인류애'가 완전히 없어진 녀석들이 아니다.
그런 클래스가 세계를 멸망시켰다면, 그건...
"너희 세계의 인류는 전부 인류가 아니게 된 모양이네."
"무슨 헛소리를...!"
"그 마법 소녀들은 왜 널 살려줬어."
"살려줘? 흥, 별것 아닌 마법 소녀들을 전부 격추했을 뿐이다."
녹안으로 노려보며 그렇게 선언하는 모습에 거짓은 없었다.
아무래도 마법 소녀가 보이자마자 공격해온 모양이다.
"마법 소녀들이 너에게 공격한 적이 있어."
"있다마다. 덕분에 제대로 된 휴식처는 없었지."
"다시 물을게. '피오레'와 함께하지 않을 때, 마법 소녀에게 공격받은 적이 있어."
"...뭘 말하고 싶은 거냐."
내 생각이 맞다면, 마법 소녀들은 이 소녀를 공격한 적이 없다.
그녀는 아직 '인간'이었으니까.
마법 소녀는 '인류애'를 가지고 있다.
그런 마법 소녀들이 악이고 선이고 상관없이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움직였다면, 그건 '인간'이 아닌 존재들로 세상이 가득 차게 됐다는 의미.
피오레는 루리에와 같은 세계에도 나타난 적이 있었다.
루리에가 말했던 기억상 구역을 나누고 생존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ㅡ어째서 구역을 지키기만 할 뿐이었지?
모든 의문은 거기서 시작된다.
루리에라면 합리적으로 구역을 넓히고 더 나아가는 길을 택했을 확률이 높다.
그게 불가능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그건...
"모든 구역에 침식 같은 게 이뤄지고 있었을 거야. 그건 피오레가 한 일이겠지."
"침식은 마법 소녀에게만 적용된다."
"글쎄, 그건 아닐걸."
침식의 마력이 가진 감각을 떠올리자, 불길한 기운이 손에 맺힌다.
내 손에서 펼쳐지는 침식의 마력에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소녀.
내가 손에서 마력을 없애고 이 마력의 데이터를 수집하자, 정확한 결론이 나타난다.
"이 마력은 대상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마력이야. 마법 소녀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냐."
"그럴 리가 없다. 정말 그렇다면 나 역시 꼭두각시가 돼야...!"
"그게 안 되니까, 회유했겠지."
소녀의 마력을 살피면, 거의 모든 마력이 뇌 쪽으로 집중되어있다.
그 말은 즉, 나처럼 정신계 공격에 내성을 가지고 있단 의미일 터.
그걸 깨달은 피오레가 말로서 그녀를 세뇌했겠지.
자신이 하는 일은 세계를 구하고 있는 일이라고.
"네 능력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네 능력에 정신계 내성이 있는 거로 보여."
"나는 그쪽 계열 스킬은 가지고 있지 않아."
"그럼 선천적인 거네."
"뭐...?"
"선천적으로 넌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야."
그렇게 말하곤 속박을 해제한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모습.
순간 왜 풀어줬냐는 눈빛을 보이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저으면서 입을 연다.
"난 몬스터를 죽이는 사람이지,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아냐."
"웃기지 마라, 너는...!"
"나는 별무리의 마법 소녀이자, 수호의 마법 소녀야. 수호해야 할 대상을 착각하진 않거든."
그렇게 말하며 모든 마법 소녀들에게 회복 마법을 사용하자, 쓰러져있던 소녀들이 전부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동시에 모든 마법 소녀에게 침식의 마력을 회수해 소멸시키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보는 모습.
메이드 소녀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는 걸 느끼곤, 나는 조용히 입을 연다.
"피오레를 죽여야 세계가 평안해져."
"...뭘 말하고 싶은 거냐."
"내가 알고 싶은 건 별거 없어."
알고 싶은 건 피오레의 위치와 행적이다.
하지만 나에게 아직 반감이 남은 소녀에게 그런 말을 해봤자 답변해주지 않을 거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단 네 이름부터 알려줘."
이 아이와 좀 더 친해질 필요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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