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마법소녀는 언제나 마법소녀니까
* * *
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느껴진 건 온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체온 유지 패시브가 있어서 딱히 춥다거나 하진 않지만, 현저하게 낮아진 온도 자체는 느낄 수 있었다.
불안감이 강해진다.
서리와 낮은 온도는 루리에가 미국에 오기 전에 새롭게 익힌 마력이니까.
멀리서 희미하게 푸른 건물이 보인다.
처음 보이는 건 얼음으로 된 지붕과 깃발.
아래로 내려올수록 선명하게 조형되기 시작한 중세의 성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비행을 멈추고 멍청하게 그걸 바라본다.
눈으로 읽어낸 마법의 흐름을 살핀다.
봉인 계열 마법.
효과는 반영구적.
대상 지정 마법.
본인은 영구 봉인, 대상은 반영구 봉인.
득보다 실이 좀 더 많지만, 어지간한 생명은 전부 봉인할 수 있는 마법이다.
루루가 파괴자라서 부수고 가버린 거 같지만, 영구 봉인은 깨뜨리지 못한 듯, 루리에는 평온한 모습으로 봉인 당해 있었다.
...파괴자도 파괴하지 못하는 봉인이라니, 굉장한 걸 만들었네.
"..."
그게 다 무슨 소용이라고.
결국 봉인은 실패했고, 본인만 봉인 당해 버리는 상황이다.
루리에가 마력이 좀만 더 높았더라면, 가지고 있던 생명의 힘이 좀만 더 강대했더라면.
아마 봉인은 성공했겠지.
문제는 그게 그저 시간 끌기용이라는 것이다.
루리에는 봉인에 실패했지만, 현재 루루의 움직임이 없는 거로 봐선 시간 벌이는 성공적이다.
현재 파괴자의 정신은 어지러운 상태니까, 스스로 봉인 당한 루리에를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졌겠지.
이유를 알 거나 자신의 기억이 돌아오거나, 혹은 관계없는 일로 치부하거나.
어느 쪽이든 성공시켜야만 루루가 다시 움직일 터.
...하지만 고작 그 정도다.
고작 그 정도 시간을 끌기 위해 루리에는 자기 목숨을 버릴 준비를 마쳤다.
ㅡ납득될 리가 없잖아.
"렌, 세르칸."
[알겠습니다, 분석을 시작합니다.]
"응, 도와줄게."
내 말에 렌이 마력 분석을 시작하고, 세르칸이 아린이로 변해 별의 마력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내가 일으킨 건 서리의 마력.
같은 마력으로 움직이며, 순환시로 그 마력을 해제할 방법을 찾아낸다.
어떤 마법이든 핵이 있다.
그 핵을 파괴하면 마법은 무효화하고, 그대로 파괴된다.
굳이 마법을 역순으로 해제할 필요가 없다.
본능적 계산이 타임 리미트를 알려준다.
해제해야 하는 부분은 총 7군데.
2시간 안에 해제하지 못하면, 루리에를 살리긴 요원하다.
이 봉인은 대상의 힘을 약화하는 게 주력인데, 루리에는 애초에 약화한 상태로 봉인 당해 생명력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
순환시로 푸른 세계를 바라본다.
루리에의 힘 그대로를 표현하듯 모든 게 푸르게 보이는 아름다운 모습.
이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을 보낼 순 없다.
내 최초의 마법 소녀 동료를 이대로 보낼 순 없다.
계산해라.
내 예측은 이미지에 기반한다.
이런 마법 설계도를 풀어나가는 건, 기본 중의 기본.
나라면 풀 수 있다.
보이는 대로 역산하고, 세르칸을 통해 하나하나 마력의 중요 포인트를 잘라내기 시작한다.
뇌가 깨질 것 같이 과부하 되려고 하지만, 인간은 뇌를 100% 사용하지 못하는 생물.
이 정도로 뇌가 과부하가 걸릴 리가 없다.
아직 내가 사용하지 못한 부분이 자극돼서 아픈 것뿐이다.
알아내라.
눈과 머리에 찌르는 듯한 고통이 풀려나기 시작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온몸이 고열을 일으키는 것처럼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서리의 마력을 몸에 회전 시켜 과부하를 어느 정도 달랜다.
회로의 과부하가 아닌 육신의 과부하.
현재 내 육체로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 소모량에 육체가 견디지 못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강제로 육체를 개변시킨다.
우드득 소리와 함께 끔찍한 고통이 느껴지지만, 원래 몸보다 조금 성장해나가는 게 느껴진다.
"잠깐, 강제로 성장하면..."
"성장이 아냐, 임시적 변모야."
"아니, 누가 폴리모프를 그렇게 무식하게 해?!"
아린이 내 상태를 깨닫곤 나에게 별의 마력을 뿌려 내 마법이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그 길을 따라 마법을 발동하자, 고통 없이 변해가는 모습.
나름대로 버틸만한 육신이 되자, 나는 변신을 멈추고 그대로 역산을 계속 이어나간다.
파직. 파직하고 별의 마력과 전격의 마력이 온몸을 감싼다.
마치 내가 하는 일을 돕겠다는 것처럼, 멋대로 움직이는 모습.
...서리의 마력에 전격을 쓰면 위험하지 않을까 했는데, 딱히 루리에에게 피해가 가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면 좋다.
전기 신호를 기반으로 마법을 데이터화하기 시작한다.
어딜 누르면 어떻게 반응하고, 어딘가를 발동시키면 멋대로 얼음이 추가로 솟아나고.
모든 걸 기록하고, 그 반응을 역산한다.
[해제 경로를 찾았습니다.]
"...빠르네."
렌이 그려내는 경로를 확인하자, 핵이 루리에라는 걸 깨닫는다.
마법 파괴는 무리.
그녀가 만들어진 해제도를 기반으로 아린이와 동시에 마법을 해제해야 한다.
"도와줘."
"알겠어."
내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곤 그녀가 내 반대편에 선다.
별의 마력이 피어오른다.
반대편에서도 마찬가지로 피어오른다.
동시에 같은 작업을 해서 0.01초 이상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루리에에게 도착해야 한다.
대단한 녀석이라니까.
녀석이 만든 설계도를 눈으로 바라보면서 나는 허공에 별의 마력으로 숫자를 그려낸 후, 0이 되는 순간 그대로 따라가기 시작한다.
한 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해제 작업.
내가 신호를 시작한 만큼, 아린이의 속도에 맞춘다.
실제 아린이가 나온 건지, 나보다 능숙하게 마력을 조절하는 모습에 걱정 없이 경로를 따른다.
철컥. 철컥. 하고 단계별로 얼음 걸쇠가 풀려가는 게 느껴진다.
남은 시간은 30분.
해제하는 데는 3분이면 충분하다.
순환시를 해제하고 좀 더 집중한다.
이제 루리에의 근처까지 도착했다.
아린이가 속도를 늦추며 나와 속도를 맞추기 시작한다.
마력 조절은 좀 더 노력해야겠네.
속도에서 밀렸다는 사실에 나는 후. 하고 좀 더 가속하고, 아린이 역시 좀 더 가속한다.
그리고 루리에에게 마력이 도달하는 순간.
쨍강!
얼음의 성이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급하게 비행해 떨어지는 루리에를 안아 들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한숨을 내쉰다.
치료 마법을 사용하자, 서서히 그녀의 몸에 마력과 생명력이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깨어날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후우..."
"다행이네, 소중한 동료로 보이는데."
"...루리에는 내 첫 마법 소녀 동료야."
"흐응~ 그렇구나? 혹시 그쪽은 아니지?"
"그쪽은 무슨 말이야."
"아닌가 보네. 바라보는 게 꼭 연인 보는 거 같아서."
"연애에 관심 없어."
이제는 희미한 감각이지만, 일단은 남자였으니까... 여자애를 좋아할 수도 있다곤 생각하지만 아직은 관심 없다.
연애 같은 걸 하기엔 이 세계는 너무 인간에게 불합리하니까.
나 혼자 살아가려면 쉽지만, 다른 사람들도 살려야 하는 입장에선 그런 걸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내가 세상 살아보니까... 사람은 연애도 하고, 이별도 하면서 살아야 하더라? 세계를 위해서 힘쓰기만 한다고, 보답받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참고만 할게."
선배 수호자의 말이지만, 왠지 나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렇게 말한다.
그러자 그저 쓰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아마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챈 모양이다.
"마음에 드는 남자애도 없어?"
"없어."
"마음에 드는 여자애는?"
"...도대체 그걸 왜 묻는 거야."
"아하하, 의외로 우리 쪽에는 그쪽도 제법 있었거든."
"없어."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그녀는 놀리는 걸 멈추더니 잠시 스윽 하고 주변을 바라본다.
여기저기 얼음덩어리가 떨어져 있고, 왠 큰 동굴 하나만이 있는 흙으로 된 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걸 바라보면서 아린이는 천천히 몸을 없애면서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아무도 지키지 않는 땅이 있다니, 평화로운 곳이네 여긴."
"...어딜 봐서."
"미국은 좀비 아포칼립스. 한국은 몬스터로 현대 문명이 부서졌지만 복구 중. 파괴자랑 침략자들만 물리치면 어떻게든 세계는 굴러갈 수 있는 곳이야. 모든 게 끝나면, 나름대로 평화로운 곳이 되겠지."
"..."
"그때가 되면 스노우, 너는 모든 사람의 영웅이자 아이돌, 마법 소녀로서 칭송받게 될 거야. 모든 걸 해결하고 나서 어떻게 할지, 곰곰이 생각해봐."
"...응."
그렇게 말하고 검의 형태가 된 세르칸이 쓸데없는 소릴 하고 나자빠졌네. 하면서 투덜거린다.
...모든 게 끝나고 나서인가.
그녀의 말이 뭘 의미하는 건진 알고 있다.
아린은 분명 자신의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겠지.
모든 사람을 구해내고 칭송받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모두의 의사로 죽게 된 사람.
힘이 강대했기에 모두를 구했지만, 구한 이후 두려움을 사 모두에 의해 죽어버린 사람.
나는 같은 결말에 닿지 않았으면 해서 저런 말을 꺼낸 게 분명했다.
...걱정할 필요는 없는데.
ㅡ어차피 모든 게 끝나면 사라질 사람이니까.
유지 유미카와의 계약.
계약이 전부 끝나면 나는 그녀에게 몸을 돌려준다.
아마 나와 친해졌던 사람들은 모두 위화감을 느끼겠지.
유지는 그 점을 알고 있었지만 내 조건이 순순히 응해주었고, 모든 게 끝나면 나는 돌아갈 예정이었다.
받아내는 보상은 자그마한 것 뿐.
그래, 그 자그마한 것 하나를 위해 나는 이 세계를 구하려고 하고 있었다.
세계를 구한 뒤의 일은 유지가 할 일.
나와는 관계없다.
[그렇습니까.]
"렌, 마음대로 읽지 마."
[사실은 제가 읽어주길 바라신 게 아닌지요.]
"..."
그런... 걸까?
렌의 말에 나는 가만히 루리에의 몸을 열기로 따뜻하게 만들면서 고민한다.
내가 생각하는 건 대부분 렌이 읽어낸다.
그걸 알면서도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한 건, 렌이 읽어주길 바라서였을까.
...어차피 렌도 결국 유지의 디바이스라 여기에 남을 아이다.
[가능하면 마스터의 세계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만...]
"굳이...?"
내 세계라고 해봐야 평범한 현대 세계다.
게다가 마법 소녀의 디바이스인 렌이 따라와봤자 남자인 나에겐 무용지물.
마력이 없는 세계니까, 렌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결국 렌은 마력이 없어져 정지하겠지.
그런 결말, 보고 싶지 않아.
[혹시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쪽 세계에도 별의 마력이 있고, 마스터도 사실 마력을 품고 있는 사람인 거죠. 남>여 TS 마법 소녀는 소설에서 흔한 클리셰입니다.]
아니, 흔하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불확실한 이야기다. 애초에 그 세계에 마력이 있고, 마법이 있었다면 아예 안 알려질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돌아가는 방법을 아는 건 유지뿐.
유지도 아마 본인의 힘을 전부 사용해서 돌려보내는 걸 테니까, 추가로 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다만 내가 정말로 렌이 들어주길 원하고, 바랬다면...
"이쪽 세계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은 렌 뿐이니까."
[나도 있다고?]
[세르칸, 당신은 마스터를 본 지 얼마 안 됐을뿐더러 종속된 존재죠. 마스터가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면, 잃어버린 유산으로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기억 못 하는 건 아니잖냐. 나 참, 뭔 이야기 중인가 했더니. 그래, 주인은 빙의자라고 했었지.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건 다행으로 생각한다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잘 생각해보라고. 이곳 사람들을 주인이 두고 갈 수 있는지에 대해.]
"..."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두고 갈 수 있는가.
그건 이미 결정을 내렸다.
내가 나름대로 정이 들어있는 건 사실이지만, 나는 놓아줄 생각이었다.
유지에게서 행복을 뺏을 순 없으니까.
그녀와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그 이야기 중에는 루프 하면서 일어났던 과거 일들, 즐거웠던 일들과 슬펐던 일들, 아쉬웠던 일들, 분노했던 일들...
사실 진작에 미쳤거나 감정을 잃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많은 루프를 지나쳤다.
그런 그녀에게 '행복해하는 모습만 봐.'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보다도 모두를 구하기 위해 헌신하고.
누구보다도 모두를 구하기 위해 발악하고.
누구보다도 모두를 아끼던 아이였으니까.
유지는 말했다.
모두를 구할 수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가져가도 상관없다고.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이 가여운 순례자는 보상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설령 그 보상이 조금 어긋난다고 하더라도, 유지 성격이라면 분명 다시 친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 세계에 정이 들었다고 해서 이 세계에 남아있겠다는 헛소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돌아갈 생각이었다.
내가 살던 지구는 결국 이 세계의 특정 분기점을 지난 세계였다.
침공받지 않았을 때의 세계.
마법이 생겨나지 않는 세계.
...그 말은 다시 말해, 내 원래 세계에도 이쪽의 애들처럼, 같지만 다른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루리에 같이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쪽에도 동일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러니까, 나는 돌아가면 그 애들부터 만나볼 생각이었다.
물론 경계하겠지.
물론 친해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런데도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으니까.
다행히도 나는 원래 세계에서 유명인이었다.
친해지기는 다소 편한 포지션이란 거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원래 육체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원래 육체를 여기로 소환하고 분리하는 건 어떻습니까?]
"...?"
포기하며 돌아갈 준비를 하는 나에게 렌이 썩 괜찮아 보이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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