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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82화 (82/149)

〈 82화 〉 마법소녀는 언제나 마법소녀니까.

* * *

"그럼 저 재앙은 네 동생인 거네."

"재앙이라니 그 정도까진..."

"아니긴. 놔두면 세계 소멸하게 생겼는데."

"..."

허공에 회색빛 거울을 띄운 채로 루루의 행보를 보던 루카가 말하자, 루리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며 가만히 그 광경을 바라본다.

원래 루카가 있던 거점을 완전히 다 작살내고 그녀가 향하는 곳은 이질적인 장소.

언데드 왕을 잡기 위해 움직이던 그녀가 끼긱하며 기계처럼 이동하기 시작한 방향은 북쪽이었다.

남쪽에 있는 네크로폴리스와는 전혀 반대되는 방향.

뭔가 노림수가 있어 보이는 움직임에 붉은 눈으로 허공에 선을 그리던 루카는 뒤에서 인형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크샨에게 말했다.

"크샨, 이 위치 뭐 있는 지 알아?"

­ 음... 동굴이 있었지. 이형계와 연결돼있는 곳이다.

"이형계...?"

"여기선 던전이라고 하던데?"

루카의 말에 루리에는 고민의 기색을 보이다가, 점점 눈을 크게 뜨기 시작한다.

파괴자가 본능적으로 던전을 찾아다닌다.

현재 사이네는 전용 던전에 자신의 무구를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막아야 돼."

"막을 순 있고?"

"...해봐야지."

장담할 수 없다고 루리에는 생각했다.

스노우의 마법과 정면승부로 무승부를 얻어낸 루루의 마법이다.

얼음 계통의 전용 무기를 얻고 제법 마법이 강화되긴 했지만, 아직 스노우랑 부딪히긴 어려운 수준.

100이면 100 패배할 거라고, 그녀 자신부터 생각해버리고 만다.

"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아이의 언니니까, 포기할 수 없는 거야. 애초에 루루 역시 원래 저런 성격은 아니었는걸. 저것도 전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닐 거야."

"그러다가 네가 죽으면 저 아이는 더 괴로워할 텐데?"

"그러려나? 죽진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

이미 죽음을 각오한 눈동자로 말해봤자 설득력 없다고, 루카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킨다.

크샨이 어깨를 잡았던 것도 있지만, 그런 말을 해봤자 결심이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만 될 말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으니까.

"하여간 마법 소녀라는 녀석들은 하나 같이 나사 빠졌다니까."

"본인도 포함된 이야기네."

"내가 나사 빠진 거야 잘 알고 있지."

푸흐. 하고 웃은 루카가 손을 젓자 루리에의 앞에 검은 팔찌 하나가 떨어진다.

고급스러운 문양과 붉은 보석이 새겨진 아이템을 루리에가 반사적으로 받아내자, 자연스럽게 빛나는 모습.

잠시 고민의 눈동자로 그걸 바라보던 루카는 한숨을 푹 내쉬곤 말했다.

"돌아오면 돌려줘."

"이건...?"

"능력은 '사망 복원'이야. 소유자가 죽으면 30분 뒤에 부활시키는 물건. 나도 하나밖에 없는 건데... 쿨타임 1년짜리니까 평생 감사해."

"...예비 목숨이네."

"손님을 언데드로 만드는 건 좀 찜찜하거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죽으면 언데드로 만들 거야'라고 선언하는 모습에 루리에는 조용히 감사를 표한다.

팔찌를 차고 자신의 디바이스인 삼지창을 붙잡자, 딸랑­ 하면서 어디선가 들려오는 방울 소리.

루카는 루리에의 전용기 소리라는 걸 알아차렸지만, 어째서인지 삼도천이 떠오르는 걸 애써 가라앉히듯 눈을 감는다.

"먼저 갈게."

그렇게 말하고 루리에가 문을 통해 비행해 사라지고, 남은 건 세 사람.

씻고 나와 뒤쪽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세연을 보며, 루카가 말했다.

"동료인 거 같은데, 안 가도 돼?"

"저는 영웅이 아니라서요. 죽을 자리로 가진 않아요."

"선 진영 마법 소녀랑 잘도 다녔네?"

"길잡이라서요."

그렇게 딱 잘라 말하면서도 걱정의 기색이 희미하게 있다는 걸 알아채곤 피식 웃는 루카.

그 행동에 뭐냐는 얼굴로 세연이 바라보지만, 영원한 밤의 마법 소녀는 그저 계속 웃을 따름이었다.

­­­­

예상대로라면 예상대로.

던전 앞에 도착하자 당연하다는 것처럼 게이트를 통과하는 사이네를 마주한다.

전용 무기는 어떤 거려나.

마력량, 움직임 등 그런 점은 조금씩 변한 게 눈에 띄지만, 딱히 무구가 추가된 느낌은 아니다.

"뭐야, 기다리고 있었어?"

"잠시 둘러보고 왔어. 타이밍이 좋았네."

"그래? 다행이구만."

"준비는?"

"세연이한테 줄 식량만 챙기면 되는 거 아니었어?"

"...그건 그렇네."

지금 네크로폴리스에 있다곤 하지만, 식량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물건이다.

네크로폴리스에 식량 자판기가 있을 거 같기도... 뭐,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겠지.

"현지 상황은 어떻데?"

"루리에한테 메세지 보냈는데, 응답이 없어."

"바쁜가 보네."

"응, 빨리 가야 해."

"쩝... 인사는 다녀와서 할까."

내 말에 사이네는 투덜거림조차 없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미미하게 미소를 짓는 나.

아무래도 뭔가 변하긴 한 모양이다.

"뭔데, 표정 적은 애가 웃으니까 좀 무서운데."

"미국으로 가자."

"엉? 엉, 그래."

이미 나는 다른 사람과 인사를 끝냈고, 사이네는 다음에 하겠다고 마음먹은 상황.

그렇다면 하루빨리 돌아가서 루루를 막아야 한다.

문득 유지에게서 들었던 '루루를 늦게 구해 벌어지는 재앙을 막을 수 없다'라는 발언이 생각나지만 글쎄.

해보지 않고선 모르는 일이다.

원래 공략 불가능한 게임이란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

"후우..."

"어째서 쓰러지지 않는 거야? 어째서 막아서는 거야?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거야?"

온 사방이 얼음으로 뒤덮인 공간.

루리에가 입으로 뜨거운 숨을 내뱉자 허공에 뿌연 숨결이 퍼져 나가지만, 눈앞에 있는 소녀, 루루는 서리조차 닿지 않은 채 고장 난 상태였다.

흐릿한 눈빛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루리에를 바라보는 모습.

당연했다.

전력 차는 명백했으니까.

얼음 하나 닿지 않은 루루에 비해 루리에의 상태는 대단히 나쁜 상황이었다.

큰 부상은 보이지 않지만, 입가에서 지속해서 흘러내리다가 사라지는 핏물.

마력에 이상이 생겼는지 제대로 제어되지 못하고 흘러넘치는 한기.

여기저기 보글보글 피어오르는 물덩이가 제어 받지 않고 방울방울 사방에 퍼져있는 모습이 마치 이 공간을 다른 세계인 것처럼 꾸며내고 있었다.

"아파, 아파... 내 앞에 있지 마, 죽어."

"루루, 기억나니?"

"...난 네가 누군지 몰라."

"난 알아, 나랑 같은 파도 빛 머리칼인 상냥한 아이를 난 기억하고 있어."

"몰라! 모른다고! 나의 수족이여!"

"넌 항상 외로움을 많이 타던 아이였어."

자신에게로 날아드는 빛의 괴수들을 허공에 방울들을 움직여 적시고, 그대로 얼려간다.

물량이어도 단수여도 여지없이 얼어서 가루로 변해버리는 모습.

그럴수록 한기는 더욱더 짙어지고, 루리에는 점점 죽어간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일 때마다 묵묵히 집을 지키고, 올 때마다 웃으면서 다녀왔어? 라고 말했었지."

루리에를 겨냥한 빛의 화살 다발이 사방에 나타난다.

파괴자는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있었다.

루리에의 회로는 이미 과부하 되고 있단 사실을.

약한 물량이라도 맞추기만 하면 그녀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그런데도 왜였을까.

평소에는 없을 조금의 망설임이 계속해서 마법의 적중률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루루는 확신했다.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상대의 마법인가 고민했지만, 계속해서 나오는 답은 '스스로 마법을 빗맞히려고 하고 있다.'라는 사실 뿐.

무의식에서 발현되는 감각이라 물량을 아무리 만들어도 적중률이 낮아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걸 알기 때문에 루리에 역시 자신에게 닿지 않는 마법은 그대로 방치해 지나치게 만들 뿐.

그래도 완전히 변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루리에의 눈동자에는 희미한 희망이 싹튼 상태였다.

"네가 마법 소녀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납득해버렸어. 나 같은 거보다 루루 네가 마법 소녀에 더 어울리는 아이였거든. 내가 죽고 나서야 된 이유도 언니 기 세워주려고 였을까? 같이 각성했어도 언닌 기뻤을 거 같은데."

"...언...니...?"

루루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또다시 고통스럽다는 것처럼 한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는 모습에 루리에는 손에 물의 마력과 서리의 마력을 동시에 일으킨다.

이미 회로도 한계치, 체력도, 정신력도 한계치.

조금 더 시간을 끌고 싶었지만, 이 이상은 무리.

루리에는 스노우가 올 때까지조차 버티지 못하는 자신을 자조하며, 생명력을 한계까지 짜낸다.

빈틈이 생긴 소녀를 봉인하고, 자신은 죽는다.

부활이라는 리스크를 줄이는 팔찌가 있어서 하는 행동이긴 하지만, 그것 외에도 순수하게 언니로서 동생이 삐뚤어지는 걸 막고 싶다는 욕심.

그런 욕심과 희망이 루리에의 온 마력에 담긴다.

쩌저적.

자신의 마력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서서히 몸이 얼어가는 모습.

루루의 눈동자가 떨리며 다른 손을 앞으로 내민다.

만들어지는 건, 극대 포격 마법.

빛의 마력이 루리에의 마법을 상회할 정도로 모여들기 시작하는 걸 보며,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입에 담고 만다.

"루루는 잘못한 거 없어. 전부 다 언니인 내가 못 나서 이렇게 된 거야. 루루가 당한 일, 루루가 힘들었던 일... 전부 마법 소녀로서 제대로 싸우지 못한 언니 탓이니까..."

"세븐즈 라이트."

"잠깐만이라도 여기 가만히 있어 줘, 내 사랑하는 동생."

하늘에서 6개의 빛기둥이 떨어져 내리고, 루루의 손에서 새하얀 레이저가 모든 걸 소멸시키려는 것처럼 날아간다.

목표는 당연히 루리에.

아무리 적중률이 이상해졌다고 하더라도 날아오는 건 극대 포격.

정중앙이 아니라도 맞을 수밖에 없는 위치로 7개의 빛이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그런 빛기둥에 맞서든 만들어지는 얼음 조형물.

거대한 얼음의 성벽과 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전자와 대상자를 노리듯 바닥부터 순식간에 날아오르는 물줄기와 그걸 얼리는 서리.

대상 지정형 마법이라는 걸 깨달은 루루가 움직이려 했지만, 허공에서 쏟아지는 '수해'를 보며 눈을 크게 뜬다.

말 그대로 회피 불가의 봉인 마법.

모든 변수를 차단하고 상대가 공격하는 틈을 노려 필중하는 봉인에 루루는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한 바퀴 홱! 하고 회전시킨다.

스­겅!

파도가 갈라진다.

자신을 노리던 물의 마력을 전부 소멸시킨다.

필중이여도 상관없다.

자신을 노리는 봉인 자체를 박살 내버리면 그만.

그녀가 휘두른 빛의 검이 봉인 마법을 파훼하고 동시에 루리에가 봉인된 얼음의 성까지 닿는다.

그리고 그 순간.

까아아앙!

빛의 마력도 서리의 마력도 둘 다 얼음이 아닌데도 철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진로가 멈춘다.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눈을 크게 뜨는 루루.

그녀의 눈앞에 제대로 인식조차 불가능했던 푸른 창 하나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 수해의 마법 소녀 루리에의 '아이시클 실'은 파괴 불가 오브젝트입니다.]

"어째서...?"

캉! 카앙! 캉!

계속해서 마력을 늘려가며 내리꽂지만, 흠집 정도만 날 뿐 파괴되지 않는 얼음의 성.

그 한 가운데 홀로 눈을 감고 있는 루리에를 보며, 루루의 손은 더더욱 빨라진다.

"5성인데, 파괴 불가...?"

말도 안 되는 일.

실제로 그녀를 가두려고 했던 마력은 한 번의 휘두름으로 전부 소멸했기 때문에 더더욱 이상함을 가속한다.

맞봉인하려고 했던 대상을 가두는 감옥은 깔끔하게 파괴될 정도로 약했으면서 본인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봉인은 그 어떤 것보다 단단하게 만들어진 모습.

마치 '페널티를 강화해 마법을 강화한다'라는 것처럼, 초월자를 넘은 루루의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안 돼."

빛의 검을 없애고 무수한 빛의 괴물들을 소환해 얼음 성을 타격하지만, 갉아먹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한다.

온갖 빛의 마법을 펼쳐보지만, 아름다운 얼음 성은 형상을 그대로 유지할 뿐.

심지어 그 범위엔 루루가 들어가려던 동굴까지 포함되어 있어 그녀는 어떻게든 마법을 파괴하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이대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마법을... 어째서? 왜?"

혼란 가득 찬 얼굴과 증폭되기 시작하는 마력.

그리고 잠시 후 루루의 마력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허공에 나타나는 태양의 문양과 그 문양을 돌아가는 시계의 분, 초침.

철컥. 하고 초침이 반 시계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지만, 얼음의 성은 원 상태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말도... 안 돼."

세계를 회색으로 물들이다가 마력 회로가 과부화된 건지, 그녀의 입가에 핏물이 흘러내린다.

잠시 얼음의 성을 바라보다가, 떨리는 눈동자로 자리에서 사라지는 루루.

그렇게 그녀들의 전투는 끝을 맺었다.

­­­­

[마스터.]

"..."

[마스터, 마스터?]

[어이, 주인. 제정신 맞아?]

"스노우! 정신 차려! 야! 우왓!?"

두근.

비행을 가속한다.

불길한 감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전생을 살면서 이런 감각을 느낀 것은 딱 한 번.

ㅡ소중한 사람이 죽었을 때 느꼈던 감각이 온몸을 때린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혹시나 해 사이네를 통해 친구 창을 확인했지만, 루리에와 세연이는 멀쩡했다.

한국에 있는 모두도 멀쩡했다.

그런데도 나는 불길한 감각을 느끼고 마력을 때려 박는다.

비행 속도가 최대라는 걸 알면서도 마력을 더 때려 박는다.

눈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워진다.

순환시를 켜지 않았음에도 눈이 뜨겁고 조금씩 아파져 오는 걸 느끼며 후우. 하고 마력을 조금 풀어낸다.

어떤 상태인지는 알고 있었다.

누군가를 죽었을 때 분노하면서 일어난 마력 폭주 현상.

눈이 빛나고 등에 있던 마력의 날개가 점점 커졌던 그 현상.

실제로 마력도 증폭되는 효과가 있었지만, 냉정을 잃기 직전이라는 의미다.

아직 무엇 하나 확인된 건 없었다.

무슨 일이 생겼다는 확신도 없었다.

그런데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별의 마력이 왜 그러냐는 것처럼 가볍게 내 뺨을 쓰다듬는다.

렌과 세르칸, 사이네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야! 멈추라고!"

"..."

"야발, 비행에 마력 다 꼬라박고 실제 전투에선 뒤질 생각이야!? 정신 안 차려!?"

[마스터, 진정하시길. 무사할 겁니다.]

[뭐야, 동료 때문에 폭주하려고 한 거라고? 동료 멀쩡하다며?]

[모르겠습니다만, 마스터는 미래시에 가까운 직감을 가지고 있었죠. 뭔가 느낀 걸지도 모릅니다.]

"뭐?"

렌의 말에 사이네가 받고 얼굴을 찌푸리며 비행하는 상태로 메세지를 보낸다.

잠시 기다리지만 아무런 대답도 받지 못했는지, 얼굴에 새겨지는 불안감.

죽었을 리는 없지만, 그대로 무슨 일이 생긴 건 확실해 보였다.

"설마 그 변태 녀석한테 잡힌 건가!? 아니면 루루한테 당한...!?"

"어느 쪽이든 문제야. 더 빨리 가야 해."

"우리가 그렇게 말한다고 가지냐? 순간이동이라도 없으면..."

"순간 이동..."

순간이동?

그녀의 말에 나는 바람의 마력을 끌어올린다.

있잖아, 순간이동.

바람의 마력으로 공간을 밟으면 된다.

이 마법은 공기가 이어져 있는 한,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는 마법.

거리에 따라 마력량이 어마어마하게 들기 시작한다는 게 문제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애초에 외부 마력만으로 마법을 발동하는 게 가능해진 나에겐 문제없기도 하고.

전력은 좀 떨어지겠지만.

[마스터, 불허합니다.]

"..."

[마력이 0에 수렴한 상태로 파괴자를 이기는 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사이네도 같이 가야 합니다.]

"렌."

[안 됩니다. 좌표를 드릴 수 없습니다.]

[어이, 주인. 아무리 그래도...]

"렌."

[안... 됩니다.]

내가 고집을 부리지만, 렌 역시 고집을 부리는 건 마찬가지.

서로 고집쟁이라고 생각하며 합의점을 찾으려고 하지만, 렌은 요지부동이었다.

역시 문제는 사이네가 따라올 수 없다는 점이다.

한 파괴자에게 한 수호자가 생겨나는 건, 그 이유가 있어서.

그 수호자가 아니라면 대상 파괴자를 잡아내기 힘들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게 수호자다.

심지어 이번 수호자는 세계 전체의 수호자로 추측되는 내가 있는데도 만들어진 수호자.

즉, 사이네가 없으면 잡을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사이네."

"앙?"

"안에서 뭐 배웠어."

"마력 컨트롤이랑 별의 마력 늘리는 정도? 아, 별의 마력이랑 전격의 마력 합치는 것도."

"..."

나도 할 수 있는 건데.

하지만 세계는 사이네가 무조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아마 이유가 있겠지.

그럼 이대로 비행할 수밖에 없다는 건데...

ㅡ늦으면 안 될 거 같다는 감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네크로폴리스 위치가 어디였어."

"엉? 지도상으론 이쪽 아니었나?"

"..."

내 말에 답한 사이네의 말.

지도의 남쪽에 위치한 지역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내 불길한 감각이 말하고 있는 방향은 북쪽이었다.

"사이네."

"어."

"넌 일단 네크로폴리스로 합류해. 나는 잠깐 갈 데가 있어."

"어딜 가는데?"

"뭔가 계속 신경 쓰여. 그것만 확인하고 올게."

"...혼자 괜찮고?"

"응."

혼자서도 괜찮을 거다.

딱히 나에게 위험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으니까.

그냥 '바로 가지 않으면 뭔가 위험한 일이 생긴다.'라는 감각만 머리를 어지럽힐 뿐이었다.

확인하기만 하면 된다.

거기에 뭐가 있는지, 확인만 하면...

"그래, 네 말대로 하자."

"고마워."

"내 목적지는 그대론데 뭐. 그럼 여기서?"

"응."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비행 방향을 북쪽으로 바꿔 움직이기 시작하는 나였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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