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마법소녀는 언제나 마법소녀니까
* * *
목포.
포탈을 타고 도착하자 보인 건 열심히 배를 정비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배 정비는 갑자기 왜 하고 있대?
[아마 지원군을 보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원군?
[아마 이들이 마지막으로 본 건, 마스터가 좀비 떼와 싸우고 있는 모습이겠죠.]
"아아..."
그건 진짜 끝도 없긴 했지.
중간쯤에 '눈'이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면, 며칠은 싸웠을 거로 생각한다.
"아마가 아니라 렌은 이런 상황도 다 보고 있던 거 아냐?"
[얼추는 알고 있었습니다만... 빛의 마법 소녀 일이 끝난 후 미국 쪽에 영토를 늘리려면, 어차피 병력 충원은 필요하니까요.]
"...흐응."
맞는 말이다.
딱히 미국을 점령한다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진 않지만, 분명 필드 보스 제거나 그런 일들을 하다 보면 몇몇 영토가 내 영토로 변하겠지.
미국엔 관리할 사람이 없으니 한국에서 인원을 데려와야 할 거고, 당장 지원군으로 활동하지 않는다고 해도 배는 필요해진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정비하도록 놔두는 게 합리적이다.
"우리는 공중 전함이 있으니까, 그걸로 오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이는데..."
"미국이 전부 저희 땅이 된다면 모르겠습니다만, 그전에는 습격당하거나 공격해오는 몬스터가 있을 것 같군요. 레이디."
"...마현이구나."
내가 어느 건물 지붕에 도착해 중얼거리자, 아래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국과는 좀 다른 이질적인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마현이 사는 집이었던 모양이다.
"레이디가 하시던 일은 잘되셨습니까?"
"아직."
"그렇습니까..."
"응, 지원군은 괜찮아. 물량이 필요하진 않아."
루리에의 근황 보고에 따르면 현재 영원한 밤의 마법 소녀와 협력 관계가 된 상황.
...정~말 마음에 안 들지만, 루루를 잡을 때까지는 동맹이라는 모양이다.
살릴 수 없다고 판단되는 생명은 자신의 장기말로 쓰고, 살릴 수 있는 것만 살린다.
빌런 같은 마인드의 마법 소녀라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아인데... 루리에가 동맹을 했다는 건 필요하단 의미겠지.
피오레, 루루와 적대 관계인 세력이라 어쩔 수 없다는 느낌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적의 적은 아군이니까.
"그렇다면 저희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레이디가 뜻하는 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일단 그 레이디부터 어떻게 해줘."
자꾸 레이디 레이디 하니까 소름 끼치잖아.
이제는 스노우인 게 자연스러워서 여자 취급받는 거야 그냥저냥이지만, 그냥 남자로서도 여자로서도 레이디 타령하는 건 끔찍하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판타지 쪽에서 넘어온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음... 그럼 아가씨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
거기서 거기 같은데 뭔가 묘하게 달라진 느낌이다.
레이디는 느끼한데 아가씨라고 하니까 뭔가 집사 같은 분위기네.
어라? 이거 영어가 문제인 게...
"...응, 아무튼 지금 당장은 배 수리만 완료해줘. 필요하면 바로 부를 테니까."
"필요하실 때 렌을 통해 전달해주시면, 바로 보내겠습니다."
"응."
"미경 씨도 보고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미경인 미경 씨라고 하는구나."
"전에 질색하시더군요."
아무래도 미경이는 바로 티낸 모양이다.
"어디 있어."
"아, 이쪽입니다. 내려오시지요."
마현의 말에 테라스에 내려와 들어가자, 곧바로 허공에 몇 가지 물품을 띄우고 서류 작업 중인 미경이가 눈에 띈다.
전과는 다르게 눈에 띄게 피로해진 모습으로 보라색 베레모 같은 걸 쓰고 있는 모습.
왠지 군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베레모는 왜 쓰고 있는 거야.
"마현 씨, 왔으면 저쪽 서류 정리해주세요. 무슨 공기를 그렇게 오래..."
한창 서류 작업을 하면서 퀭한 얼굴로 말하던 미경이는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 내 쪽을 바라보곤 얼어붙는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 마현이 그녀의 눈앞에 손을 흔들기 시작하자, 그제야 점점 떨리기 시작하는 미경이의 모습.
"스노우 님!"
"오랜만."
"진짜 진짜 오랜만이네요!"
아까의 퀭한 모습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환한 웃음을 보이면서 소리치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어린애처럼 달려오더니 확! 하고 껴안는 모습.
...지금 마인드 리딩 통하고 있지 않아?
"맞아요! 어라? 전에는 안 통했던 거 같은..."
"미경이는 적이 아니니까."
"넹?"
저번에 통하다가 안 통했던 이유는 '공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딱히 미경이가 적인 것도 아니고, 읽혀도 문제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제대로 통하고 있는 거겠지.
"그렇군요!"
"..."
아니, 역시 좀 느낌이...
"아하하... 패, 패시브라서요..."
"속으로만 이야기하시면 전 못 듣습니다, 아가씨."
"안 들어도 되는 이야기야."
"맞아요! 여자들끼리의 대화예요!"
"성격 많이 밝아졌네."
"네! 그렇죠?"
전에 봤을 때는 소심하고 망설임이 많은 성격으로 보였는데, 오랜만에 보니 제법 활기차고 감정 표현을 잘하는 아이가 됐다.
좋은 현상이긴 하지만 아까 봤던 상황도 그렇게 아직 서류 작업할 사람이 별로 없는 모양인데...
"괜찮아요, 조금씩 늘고는 있거든요."
"도와줄게."
"넷!? 아, 아뇨! 스노우 님께서 도와주실 것까진?!"
"숨 막혀."
"죄, 죄송합니다! 불경했네요!"
"난 신이 아냐..."
놀라서 팔에 강하게 힘을 주는 그녀의 행동에 내가 말하자, 미경이는 놀라면서 떨어지곤 고개를 푹 숙인다.
...불경이라니, 내가 무슨 신도 아니고.
"신인걸요?"
"아가씨는 굳이 따지면 한국 최후의 보루쯤 되지 않을까요."
"아니죠! 수호신님이죠!"
"..."
얘들 지금 뭐라는 거야.
둘 다 말도 안 되는 거로 투닥이기 시작한 걸 보며 내가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 렌이 말했다
[어느 쪽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한국 최후의 보루은 샤브린이고, 수호신은 루시에르잖아?"
[...네?]
"난 지금 외국에서 움직이고 있으니까. 두 사람이 한국을 지키는 최종 병기지."
[...그, 그렇군요.]
모예요, 뭘 그렇게 당황해요.
나는 해외 활동 중인 데다가 루루 건이 해결되면 곧바로 탑에 올라갈 예정인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아예 시작부터 초월자였던 샤브린이랑 루시에르가 좀 더 그 칭호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럼 마스터가 생각하는 마스터의 칭호는 뭐죠?]
"...?"
엄청 뻔한 걸 물어보는 렌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별 무리의 마법 소녀잖아?"
[음...]
화려한 수식언은 필요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별 무리의 마법 소녀였고, 이 세계가 끝날 때, 혹은 내가 할 일이 전부 끝날 때까진 계속 별 무리의 마법 소녀일 예정이다.
물론 세계 멸망이라는 이상한 전제만 막으면, 유지한테 다 넘기고 떠나겠지만...
"네?"
"...?"
"어디로 떠나시는데요?"
아.
Side 사이네
"충분히 쉬었느냐?"
"별의 마력은 아직 덜 찼다고, 젠장."
1시간 정도 명상하며 쉬고 있는데, 빌어먹을 주황빛 기사가 나에게 물어온다.
전격의 마력은 넘치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은 별의 마력을 수집하는 건 난관이다.
대부분의 마력이 전격으로 치환되고, 정말 소수만이 별의 마력으로 치환되고 있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저 오렌지 같은 사람이 원하는 게 별의 마력이란 거지. 빌어먹을.
"수호자로서 막 각성했다곤 하지만 별의 마력이 너무 미약하구나. 파괴자라는 아이는 빛의 마법 소녀라고 들었다만, 그래서야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느냐?"
"전격의 마력으로 싸우면 되잖아!"
"전격의 마력은 지연, 마비, 방화 등의 효과지 딱히 수호의 효과를 가지고 있진 않아 무리구나."
"빌어먹을."
이럴 거였으면 사람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니 뭐니 하면서 각성하지 말 걸 그랬다.
별의 마력을 가진 스노우에게 도움을 받을까 싶었지만, 스노우 역시 자신처럼 던전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왠지 시스템도 먹통인 게 쓸모없고.
결국 여기서 혼자 별의 마력을 늘려야 한단 건데, 어느 세월에 그걸 다 늘린단 말인가.
"가능하노라."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고 말하던가!"
"현실의 하루가 여기선 30일이지. 딱 180일 정도만 수련하면, 별의 마력 자체는 어느 정도 늘릴 수 있을 터."
"..."
수련이 답이라고 말하는 그 모습이 어쩐지 묘하게 할아버지와 겹친다.
모든 일에는 지름길이 없다.
정석이 있는 이유는 그 길이 가장 빠르기 때문에 있는 것.
요령이나 그런 걸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분명 있긴 하겠지만, 적어도 마력을 늘리는 일은 꾸준함이 생명이다.
"밖의 상황이 급한 것 자체는 알고 있노라. 허나 그리 조급하게 행동했다간, 오히려 하려는 일을 그르칠 수도 있음을 명심하거라."
"...그래서 결국 댁은 뭐 하는 사람이었는데? 당신도 전격이랑 별 마력 쓰는 거지?"
내 말에 주황빛 기사는 의외라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하, 그것도 눈치 못 챘을까 봐.
눈앞에 있는 기사는 나와 같은 전격 관련 마법 소녀일 확률이 높았다.
머리색과 눈 색이 동시에 주황빛인 모습.
나와는 조금 다르지만, 드레스형으로 만들어진 갑옷.
아마 내 무기가 검이었다면, 저 여자처럼 옷이 만들어졌겠지.
그러니까 전대다.
마법 소녀 클래스가 언제 만들어진 건진 몰라도 이 사람은 분명 나보다 먼저 마법 소녀가 된 사람이니까.
"내가 궁금하느냐?"
"당연한 거 아냐? 일단 스승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잖아."
"흠, 그렇구나. 허나 그 점은 말해줄 수 없는 일이로고."
"왜?"
"수련이 끝나야만 말해줄 수 있는 제약이니라. 그러니 알고 싶다면 얼른 끝내도록 하여라."
"...칫, 알겠다고."
그렇게 말한 나는 다시 정신을 집중해 허공에 둥실 떠다니는 마력들을 몸으로 당겨온다.
내부의 마력을 다루는 거야 기를 움직이는 것과 같아 능숙하지만, 역시 이 방법은 쉽지 않단 말이지.
기와는 다르게 별의 마력은 도도한 녀석이다.
하늘에서 조금씩 쏟아져 오는 분홍빛 마력.
내가 와주길 원하면 고민하듯 톡톡 찌르다가도 빨아당길 때 도망가고, 마치 농락하는 것처럼 올 듯 말듯 간을 재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이런 녀석들이랑 어떻게 잘 지내는 건지 원.
새삼 스노우에게 감탄하고 만다.
"..."
하지만 해야만 했다.
루루를 구하기 위해서.
친구가 힘들어하는 걸 끝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국 나를 위해서.
모든 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좀 더 깊게 들어간다.
전격의 마력이 화려하게 자신을 어필한다.
어차피 나면 충분하잖아.
별의 마력 같은 건 신경 쓰지 마.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나를 유혹해온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분명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전력이 약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별의 마력을 써야 한다 같은 느낌은 아니다.
지금의 나라도 충분히 스노우에겐 도움이 될 거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ㅡ그럴 거였으면 여기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스노우가 나를 필요로 했고, 돕기 위해선 수호자로서 각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해질 이유로는 그걸로 충분하다.
그 아이의 뒤를 쫓는다.
그 아이가 원하는 게 뭔지, 그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같이 있다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ㅡ그 녀석은 그 누구의 배드 엔딩도 원하지 않는다.
적어도 눈에 닿는 곳, 손에 닿는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무너질 거 같으면 자신이 구해낸다.
구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그 길을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성공해낸다.
그런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그 녀석은 별 무리의 마법 소녀인 거겠지.
그런 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 녀석은 별의 마나와 항상 함께하고 있는 거겠지.
...아, 그렇구나?
별의 마나와 함께 하기 위해선 따라간다고만 생각하면 안 되는구나?
뒤를 쫓는 게 아니다.
나는...
"도와달라고."
그 녀석 옆에서 같이 싸우고 싶을 뿐이야.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별의 마나 들이 나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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