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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75화 (75/149)

〈 75화 〉 마법소녀는 언제나 마법소녀니까

* * *

"오또케 그래..."

"..."

"나도, 나도 이동하면서 캐스팅하고 싶어!"

들어온 지 30일.

아린이 알려준 마법들을 하나하나 얻어내기 시작하며, 동시에 마력 회로를 늘려간다.

마법 이해는 여전히 발동하고 있는지, 마법이 만들어지는 방식과 사용하는 방식은 보면 얼추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사용할 때는 딱히 이동 페널티가 없다는 점.

그걸 안 아린이 매번 툴툴거리면서 삐진 기색으로 나한테 말하는 게 피곤하다.

"어린애도 아니고, 애 앞에서 뭐 하는 거야?"

"그치만그치만...! 난 마법 쓸 때 마법진 그리기에 집중한다고 고정 포댄데! 제자가 허공에서 회피 기동하면서 쓰잖아!"

"너보다 뛰어난 건 어쩔 수 없잖아."

"그걸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여전히 서로 투닥거리며 사이좋게 말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나는 가만히 명상하며 마력을 모은다.

마력 회로가 많이 넓어져서 마력이 들어차는 속도가 빠르다.

게다가 슬슬 안티 매직 필드의 마력도 위태로운지, 마력 운용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는 모습.

조만간 원래의 마력 수치를 되찾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우와, 쟤 이제 마력 운용도 안 하고 걍 변신한다? 저게 사람이야 괴물이야?"

"차원 2개 먹어 치운 괴물 퇴치를 솔로로 한 녀석이 할 소린 아니지 않냐?"

"그치만 마력만 베니까 알아서 죽었는걸."

"네가 그러니까 레이드 당한 거다. 누가 폭주하래?"

"오~ 아픈 부분 찌르는데!"

세르칸의말에 의하면 여기 있는 아린이는 죽기 전에 자신에게 부여된 의식이라고 한다.

본체는 이미 죽었고, 남은 거라곤 잔재의식.

잔재 의식으로만 저 스펙이라니, 어떻게 돼먹은 인간인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배울 부분이 많았다.

별의 마력을 양껏, 고속으로 끌어올리는 방법.

몇몇 내가 사용하지 못하던 큰 마법들.

그리고... 내가 순환시로 '불완전하게' 쓰던 전투법.

"마법 베기는 어때? 익숙해졌어?"

"...대마법 파괴에는 모자라."

"대마법의 핵은 보통 시전자 근처에 잡혀 있으니까? 너 정도면 슬슬 속도 강화도 가능하지 않아?"

"부족해."

"그래?"

이상하다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하는 아린이.

잠시 후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가 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파괴자가 된 빛의 마법 소녀를 막아야 한다던가?"

"응."

"파괴자 핵이 순환시에 보이진 않을 테니까... 음..."

"다른 차원을 돌아다녔으면, 파괴자도 만나지 않았어?"

"아하하, 내 클론이랑 세계 삼키는 용가리랑 많았지."

클론 선 넘네.

저 스펙을 가진 사람의 클론까지 만들 수 있는 세계관이라니, 전 차원 파괴라도 하려는 건가 싶었지만 그녀가 '레이드' 당한 시점에서 그 사건은 이미 막을 내린 사건이겠지.

세계를 삼키는 용가리는 또 뭔데. 혼자 스케일 너무 크지 않아?

"아무튼 파괴자라는 건, 어차피 수호자한테 쓰러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거야. 가끔 파괴자가 이기는 경우가 있긴 한데, 8:2 정도 비율일걸?"

"그럼..."

"그 세계 수호자 2 파괴자 2라면서? 가장 간단한 방법은 수호자 둘 다 데려가서 잡으면 돼."

"아군에 파괴자가 있다면."

"그걸 아군으로 만든 게 용하긴 한데... 걔도 조심해야 해. 애초에 '파괴자'라는 건 자의든 타의든 세계를 파괴한다는 거거든."

"..."

저 조언에 대해선 생각해두자.

"내가 의외인 건 네가 수호자가 아니란 건데..."

"...?"

"아니, 별의 마력은 수호의 마력이거든. 말이 안 돼."

"수호의 마력..."

그러고 보면 렌도 그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수호의 마력이란 건, 무슨 의미야?"

"으으음... 이걸 뭐라 설명해야..."

"어려운 거 없잖아? 정확히 '세계 수호'의 목적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마력이니까."

"그렇...지? 스타 스트림이 목적을 가지고 주는 마력이니까...?"

"스타 스트림...?"

뭔가 전문 용어가 잔뜩 나오는 기분이다.

"별의 의지. 세계의 의지. 세계 자체가 자신의 생명이 종말을 맞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내리는 게 별의 의지야. 세계에 따라선 신의 의지라고도 하고."

"음..."

"확실한 건, 네가 별의 마력을 잔뜩 들고 있다는 건 현실적이지 못하단 소리지. 그것도 수호자가 둘인 상황에서."

"유지 유미카가 수호자인 건...?"

"회귀자가 수호자인 경우는 제법 되는 게 맞긴 해. 근데 말했잖아? 그 세계에 이미 수호자가 둘이나 된다고."

"...응."

수호자가 둘, 파괴자가 둘인 상황.

혹시나 내가 수호자라면, 수호자가 셋이니까... 마찬가지로 파괴자가 한 명 더 있다는 의미가 되겠지.

하지만 파괴자를 알아채기엔 증거도 징조도 없다.

게다가 나한테 수호자라는 메세지가 따로 떨어진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난 수호자가 아니다.

"뭐, 징조라면 있잖냐."

"...?"

"아포칼립스."

"!"

세르칸의 말에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자각한다.

맞는 말이다.

징조라는 거 자체는 대놓고 존재했다.

이 게임의 세계관.

내가 빙의되자마자 벌어진 '아포칼립스'라는 세계관 자체가 그 징조라고 한다면...

"네가 수호자라면, 파괴자가 관리자인 녀석이겠지."

­­­­

스노우가 던전에 들어간 직후.

아직 전쟁을 끝내지 못한 루시에르 일행에겐 이변이 발생했다.

하늘에 무수한 포탈이 열린다.

땅에서도 무수한 포탈이 열린다.

무언가가 봉인에서 풀려나듯 이곳저곳에서 지진이 시작된다.

"...젠장."

루시에르는 상황을 판단하고 각 도시에 있는 비상 프로토콜을 발동시킨다.

도시 전체를 뒤덮는 결계.

지하에 있는 봉인이 강화되고, 유린이와 함께 생각해낸 수호 결계를 일제히 가동한다.

유린이의 활로 만들어낸 '신성불가침' 결계와 '악마불허' 결계.

원래 유린이의 활에 들어간 기술은 '마법 봉인 결계'일 텐데,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낸 건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그녀가 용사로서 뭔가 했다는 사실 하나만 알 수 있었을 뿐.

"상황은?"

"3성인 사람들한테 정보 다 받았는데, 일단 우리가 장악한 지역에서 나온 레이드 보스는 2마리. 나머지는 봉인을 못 풀었데. 한쪽은 아예 도시 버리고 피신했고, 다른 쪽은 피신 실패로 전투 중. 버티기에 들어갔어."

"하늘에서 천족들이 속속 튀어나오고 있다. 유린이가 만든 결계가 제대로 가동해서 우리측 도시를 들어오지 못하니, 라크헬름 측과 미점령 도시를 노리고 있더군. 우리 지역 외에 모든 곳의 레이드 보스가 깨어났다. 마족과 천족들의 전투가 관측되는 모양이야."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모양이네☆ 루리에랑 같이 있던 일행 전체가 도주 중이래★ 빛의 마법 소녀도 풀려났어☆ 대신 그쪽에 나온 천족과 마족은 어디로 이동 중이라고 해☆!"

"북쪽에서부터 레이드 보스가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어. 쳐들어오진 않는데, 거기도 전쟁 난 것처럼 시끌시끌하다고 철원에서 보고가 들어왔어."

3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이 동시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노우가 들어가자마자 일어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얼굴을 찌푸리지만,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던 건 알고 있던 터.

일단 당장은 레이드 보스가 날뛰는 2곳을 제압하는 게 시급하다.

"샤브린, 네가 전투 중인 곳으로 가. 나는 버려진 도시로 갈게."

"음."

"유레하, 파이렌은 여기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라크헬름이 레이드 실패하면 알려줘. 금방 처리해야 하니까."

"좋아☆"

"응."

"유린이 넌 북쪽에서 레이드 보스가 몰려와도 막을 수 있도록 방어벽을 설치해줘. 미안하다. 이런 걸 시켜서."

"괜찮아."

"그럼 전부 움직여!"

루시에르의 말에 각자 가야 할 길로 비행하기 시작한다.

유린이는 잠깐 유레하가 신속 이동시키기로 했고, 샤브린은 지상을 주파하면서 동시에 한두 명씩 길가에 나타나는 마족을 베어 가르면서 움직인다.

파이렌은 실시간으로 전투 중인 라크헬름 측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허공에 인공 태양을 만들어 유지.

전부 확인하고 나서야 루시에르는 별의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해 뛰어가기 시작한다.

"...우연인가."

스노우가 들어가고 기다렸다는 것처럼 생겨나기 시작한 사건들. 이게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건 아포칼립스를 일으킨 당사자만이 알 일이었다.

­­­­

"필드 보스들 전부 자기 영역을 벗어나서 움직이고 있어!"

한국과는 다르게 미국은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루리에와 밤의 하수인, 그리고 세연이.

필드 보스들이 파괴자인 루루를 향해 쳐들어오기 시작하는 순간, 세 사람은 결국 자리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제법 거리가 떨어졌을 때, 빛으로 이뤄진 무언가가 폭발하는 게 관측된다.

그게 루루가 깨어났다는 신호라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

"루루..."

루리에가 불안한 눈빛으로 그녀가 있던 방향을 바라보지만, 안겨있던 세연인가 툭. 하고 그녀의 어깨를 친다.

...지금은 루루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곤란하군.

"어떤...?"

­ 그대가 원한다면, 우리 거점으로 초대하지. 상황 설명은 거기서 들을 수 있을 터.

"...좋아요, 그럼 이름이라도 가르쳐주세요."

루리에의 말에 은빛 남자는 음... 하면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 내 이름은 크샨이라네, 순수한 영혼이여. 위대한 달빛의 가호를 대행하는 사람이지.

"달빛..."

­ 우리의 소개 의례 같은 거니, 신경 쓰지 말게.

"돌려 말하는 게 취민가 보네요."

­ 그럴 수도 있겠지, 회색 영혼아.

"회, 회색인가..."

크샨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담는 세연이. 루리에는 대충 어떤 느낌으로 한 말인지 깨닫곤 쓴 미소만 입가에 담는다.

하지만 잠시 후 지금 일어난 이상 사태에 대해 유레하에게 정보를 전달받는 푸른 마법 소녀.

잠시 후,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곧바로 입을 연다.

"스노우가 토굴에 들어가자마자 일어난 일이래. 뭔가 관련 있는 걸 지도."

­ 흐음... 역시 그런가.

"역시?"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다는 것처럼 중얼거리는 그의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자, 크샨은 턱을 한 번 쓸면서 말했다.

­ 역시, 그 영혼도 수호자의 영혼이었구나.

"...수호자? 스노우가요?"

­ 몰랐는가? 별의 마력을 사용하는 자는 전부 수호자거늘.

"그걸 알 리가... 수호자라면 파괴자가 있다는 의미죠?"

­ 자네는 아포칼립스라는 상황을 누가 일으켰다고 생각하나?

"설마..."

크샨의 말에 먼저 알아들은 세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기 시작한다.

세연이의 반응에 잠시 인상을 찌푸리던 루리에 역시 잠깐 눈을 감았다 뜨곤 한숨.

아포칼립스를 일으킨 존재.

그 존재 자체가 파괴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는 입술을 깨문다.

"하지만 그건... 이상하지 않나요? 스노우가 수호자라면 파괴자가 만든 시스템을 사용할 리가..."

­ 무슨 소릴 하는 겐가. 그 영혼은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는다네.

"...?"

­ 별의 마력은 선천적인 기운이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나? 그녀만이 유일하게 모든 마법 소녀를 통합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건..."

모든 마법 소녀 중에 가장 강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루리에는 차분하게 초창기의 스노우를 떠올린다.

그녀에게 들었던 기술 중에 유일하게 위화감이 있는 스킬이 하나 있었다.

ㅡ별에게 소원을

분명 마법 소녀 퀘스트로 받은 스킬이지만, 그 어떤 마법 소녀도 가지고 있지 않은 기술.

물론 마법의 이해라는 선천 스킬도 말도 안 되는 기술이다.

하지만 별에게 소원을 이라는 스킬은 궤를 달리했다.

무려 '모든 플레이어'에게서 '힘의 정수'를 얻어올 수 있는 권한.

마법 소녀 공용 스킬이라면 그러려니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스노우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스킬이었다.

­ 그녀는 이 세계가 가진 3명의 희망 중 하나겠지.

"...그렇죠, 파괴자도 아군으로 포섭했고요."

­ 파괴자가 아군이라고?

"네, 일단은..."

­ 그거참, 자네들은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군. 제정신인가?

"...?"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말하는 크샨의 말에 루리에는 불길함을 감지한다.

첫 파괴자인 창월의 서는 아군.

그 전제가 깨질 거라는 불안감.

그런 불안감 속에서 메세지가 떠오르는 것과 크샨의 말이 내뱉어진 건, 거의 동시였다.

­ 미안하지만 파괴자는 '어떤 형태로든 세계를 파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에 파괴자라네. 그 운명은 어지간한 일로는 바뀌지 않지.

[BMS : 미안...합니다. 폭주를... 막아내지 못했... 모두... 피해...]

미류가 스노우 진영에 쏘아 올린 전체 메시지가 화면에 나타나고 있었다.

­­­­

푸른 소녀가 있었다.

하나의 세계를 멸망시킨 푸른 도서관이 있었다.

그녀는 어느 대마도사들의 기억을 압축한 기억체였고.

그녀는 어떤 마왕의 손에 탄생한 마도서였다.

마왕은 악한 의도로 그녀를 만들어내지 않았지만, 세계는 그녀가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에 공포를 느꼈다.

타 차원을 멸망시킨 마도사의 기억.

그런 기억을 가진 수십의 마도사의 지식의 종체.

그 존재가 세계를 멸망시킬 거로 생각하는 건, 필연에 가까운 일이었으리라.

"조소, 인간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요."

버려진 도시에는 '마스터'가 있었다.

인간들이 마스터를 데리고 떠나려고 했지만, 그녀는 확률 산출 결과 마스터를 살릴 수 없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

직접 튀어나와 눈앞에 나타난 괴물을 제거했다.

히드라.

극독을 가진 덧없는 뱀.

발악했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멍청한 인간들은 마스터에게 무한한 마력을 공급했고, 창월의서는 사실상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충만한 마력을 가지게 됐으니까.

괴물이 가진 마력 덩어리를 삼키며, 개체 명칭 '하 서연'은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댄 헤리어스를 가만히 바라본다.

"...의문, 무슨 의도입니까? 헤리어스."

"너는... 무슨 짓을 하는 거냐."

"해답, 마력을 보충했습니다."

"내가 묻는 건 왜 도시 사람들을 전멸시켰냔 거다! 너라면 전부 죽이지 않아도 문제없었을 터! 어째서 도망가는 사람들까지...!"

"의문, 쓸모없는 자원은 당연히 모아두는 게 상식입니다."

"너는...!"

"고로, 당신도 회수하겠습니다."

푸욱.

"컥...!?"

타앙!

그녀의 말과 동시에 튀어나온 푸른 조각이 헤리어스를 두 동강 내며, 동시에 헤리어스의 방아쇠가 당겨진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그녀의 몸에는 정령탄의 흔적조차 닿지 않고 소멸.

헤리어스는 마력으로 화해 그녀에게 삼켜지고, 맛있는 걸 먹었다는 것처럼 입맛을 다신 그녀가 잠들어있는 마스터를 바라본다.

"한동안, 바빠지겠습니다. 마스터."

"그렇군, 역시... 파괴자는 파괴자인가."

"의문, 다른 세계의 파괴자입니까."

검은 마력이 몰아친다.

마치 세상을 뒤덮을 듯 퍼져나가는 강대한 마력.

더는 제약이 없다는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마력이 섞인 죽음이 서연에게 다가온다.

헤리어스에게 날아갔던 마력 조각이 날아가지만, 물 흐르듯 빗겨나가는 모습.

그 모습에 서연은 입가에 싸한 미소를 담으며 말했다.

"의문, 저와 싸울 이유가 있습니까, 파괴자."

"물론, 이 세계는 루시에르의 세계니까. 파괴자."

"조소, 당신은 이 세계의 파괴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네가 나를 이길 거라고 생각하나?"

양손에 회색과 검붉은 검이 잡히고, 검붉은 검에서 붉은 액체 같은 게 전부 튕겨 나가며 에메랄드 색 검신이 드러난다.

잠시 그 정체를 꿰뚫어 보듯 바라보는 서연의 모습.

이내 조금 어이없다는 것처럼, 그녀는 헛웃음과 함께 말했다.

"그 정도면 당황스럽습니다. 파괴자. '정령의 가호'를 받은 게 아니라, 아예 '정령의 신검'을 들고 있군요."

"그 세계의 정령들은 나를 굉장히 좋아하는 아이들이었지."

"유그드라실... 세계수 그 자체입니까."

"어쩌다 보니 이어받게 됐다."

"허탈, 당신에게 그런 게 있는 줄 알았다면, 진작 제거했습니다."

"그런가."

그 말을 기점으로 서로의 마력이 팽창하기 시작한다.

서로를 죽이기 위해서 몰아치는 마력.

그렇게 두 파괴자는 서로 다른 이념 하에 충돌하기 시작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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