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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73화 (73/149)

〈 73화 〉 마법소녀는 언제나 마법소녀니까

* * *

손을 쥐어보지만, 렌은 존재하지 않는다.

변신 스킬을 사용하겠다고 생각하지만, 마법 소녀로 변신이 불가능하다.

마력을 움직이면 평소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마력은 움직인다.

평소에 있던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상태로 가만히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을 본다.

둘 다 뭔가 멋들어진 갑주를 입고 있다.

기사들의 옷이라기엔 화려하고, 경갑옷이라고 하기엔 투구 외엔 전신을 보호하고 있는 붉은 갑주와 푸른 갑주.

내가 멍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자, 당장이라도 검을 꺼낼 기세로 준비하고 있던 붉은 갑주의 짧은 트윈테일 소녀가 말했다.

"세라, 이상해. 변신도 안 하는데?"

"시라, 쟤 뭔가 마법 도구로 변신하는 애였어."

"왜 그걸 이제... 믿어도 되는 거 맞아?"

"뭐, 일단 믿어보라고? 너처럼 별의 마력 소유자니까."

그렇게 말하며 붉은 갑주의 소녀가 하얀빛으로 변하더니, 이내 은발의 소녀로 모습을 바꾼다.

은발을 허리까지 늘린 생머리에 렌과 비슷한 짙은 적안.

어쩐지 얌전해 보이는 얼굴과 갈색에 흰색이 섞인 교복 셔츠와 갈색 교복 치마.

검은 스타킹을 신고 갈색 구두, 하얀 모자를 쓴 중학생 남짓해 보이는 소녀가 그곳에 있었다.

"안녕, 난 유미카와 사쿠라... 보단 얘 한국인이랬지? 안 어울리지만."

"본질은 그런 거 같던데."

"본질은 그런 건 또 뭐야... 응, 그럼 다시 소개할게. 난 서 아린. 전생 전 이름이 서 아린, 전생 후 이름이 유미카와 사쿠라. 지금은... 현재 내가 뭐 하고 있을 지 잘 모르겠네. 전생을 많이 하다 보니."

"뭐, 잔재라고 생각해라."

어느새 푸른 갑주의 소녀는 아까 봤던 검의 형태로 변해 허공에서 말하고 있었다.

형태 변형 무기...?

렌과는 조금 다르지만, 마치 형태가 없는 도플갱어를 보는 기분이다.

"...전생 전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 지금 이름은 유지 유미카. 마법 소녀 명은 스노우."

"유지 유미카...?"

"오우... 한국인 아니었냐고 묻지 말라고? 누가 봐도 한국인이었으니까."

"아니, 그보다 저거 내 가명이잖아. 유미카와 유우지."

"엉? 듣고 보니 그렇구만?"

이건 또 뭔 이야기지.

내가 영문 모를 이야기에 눈을 깜박이자, 소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아무튼 사쿠라라고 불러도 되고, 아린이라고 불러도 돼."

"아까 세라, 시라라고 부른 건."

"아, 그건 우리가 변신했던 애들 이름이야. 신경 쓰지 마."

역할 몰입이라도 하는 건가?

그녀의 말에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지만, 아무래도 좋다는 쪽이 더 강해졌다.

그래서 대체 여기는 뭐 하는 곳이야.

"여긴 시련의 공간...인데, 일단 넌 네 힘부터 깨울 필요가 있겠네."

"...?"

"아무리 안티 매직 필드로 공간을 막아놨어도 변신조차 못 하는 건 말이 안 돼. 평소엔 어떻게 변신하는 거야?"

"변신 스킬로."

"스킬?"

내 말에 오히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모습.

하지만 이내 아! 하면서 양손을 짝. 하고 마주친 아린이 웃으면서 말했다.

"혹시 게임 같은?"

"응."

"아, 그럼 확실히 모를 수도 있겠네. 마력을 자기가 움직여서 변신하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눈은 좋아 보이니까... 내가 변신하는 법 보여줄게. 잘 봐?"

그녀의 말과 동시에 그녀의 온몸에서 분홍빛 마력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양손, 양발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몸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하는 마력의 흐름.

마력이 부위를 완전히 지나갈 때마다 하나씩 옷이 변경되기 시작하다가, 이윽고 온몸을 덮고 팟! 하고 변하는 모습.

변신한 그녀는 여자라기보단 남자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화려하게 휘날리는 은발.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을 가진 전형적인 미남자.

조금 부풀어 올라 있던 가슴은 오히려 조금 가라앉은 느낌이 들고, 복장 역시 활동하기 편해 보이는 남성형 제복으로 바뀐 채, 등에는 무릎까지 휘말리는 망토가 휘날리고 있었다.

...어라, 조금 익숙한데.

"너도 해볼래?"

"응."

그녀가 보여준 흐름을 따라 마력을 움직인다.

마법 소녀로서의 복장은 당연히 평소에 입던 복장 그대로.

치마만 조금 길게 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쓰다가 망칠 거 같다는 생각에 그만둔다.

분홍빛이 온몸을 감싸고 팟! 하고 터져나가자 보이는 건 내가 평소에 있던 마법 소녀 복장.

...신발에 있는 날개와 허리춤에 있는 날개까지 잠깐 점검하다가, 마력의 움직임이 조금 뻑뻑하다는 걸 느낀다.

"세르칸, 네 추천치곤 마력량이 조금 모자라 보이는데?"

"엉? 앙, 쟤 디바이스가 처음 보는 녀석이었거든. 같이 있어야 마력량이 높아지나 본 던데?"

"아니, 그러면 같이 데려왔어야지. 측정이 안 되잖아."

"무생물은 못 먹는다고, 주인."

난생처음 듣는 '마력이 부족해 보인다.'라는 말에 나는 가만히 내 앞에 서 있는 미남자를 바라보며 마력의 흐름을 읽어낸다.

...확실히 그렇게 말할 정도로 강대한 마력량이다.

마법 소녀 급, 아니면 그 이상.

거의 무한에 가까운 마력이 그녀와 함께하고 있단 게 느껴진다.

"음... 근데 복장도 비슷하네. 그게 네가 싸울 때 복장이지?"

"응."

"내가 '유미카와 사쿠라'로서 움직일 때의 복장이랑 가터벨트 유무밖에 차이 안 나는 거 같은데..."

"...?"

무슨 이야긴지 모르겠다.

"응, 아무것도 아냐. 그냥 슬슬 네가 내 전생자가 아닐까 생각해서. 기억이 없으면 아니겠지."

"난 다른 쪽에서 왔어."

"응, 그렇다고 했었지. 아무튼 좋아. 현실이랑 시간 비율은 어차피 엄청 늘려놨으니까, 오늘은 네가 평소에 쓰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만 연습해보자."

"...슈팅 스타."

그녀의 말에 내가 갸웃하다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별 탄막들이 생겨나 투두둑. 하고 떨어져 내린다.

그러자 멍청한 표정으로 그걸 바라보는 아린이.

이내 눈만 깜빡이던 바보 모드를 멈춘 그녀가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한테 말했다.

"호에... 마력 치환 가성비는 그렇다 치고, 마력으로 변신도 못 하면서 왜 이렇게 능숙해...?"

"마법은 항상 썼는걸."

변신이야 스킬 효과로 써왔던 거라 안 익숙하지만, 마법은 다르다.

마법을 새롭게 만들어낸 적도 있고, 필요할 때 필요한 속성 마법을 스스로 만들어서 뽑아 쓴 적도 흔하다.

말 그대로 못 쓰면 이상한 거지.

마력 회로에 흐르는 마력량이 조금 부족하다는 점 빼곤, 평소랑 다를 게 없다.

...광선류는 자제해야겠네.

스타라이트 브레이커, 오버 히트 버스터 등의 스킬은 마력을 너무 빨리 잡아먹을 거 같다.

스타더스트 스트라이크도 어려울지도.

"그럼 마법 사용은 가능하다 치고, 평소에 쓰던 마법들 하나씩 다 써볼래?"

"...무너지지 않을까."

"어지간한 마법으론 안 무너져. 괜찮아."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거대한 광역 보호 마법이 생성돼 우리를 감싼다.

눈을 크게 뜨며 마력의 흐름을 관찰해 읽어내자, 내가 뭘 하는 건지 깨닫고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린이의 모습.

하지만 잠시 후 장난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담은 그녀가 말했다.

"자, 그럼 시작!"

­­­­

"..."

"마력량만 늘리면 내가 살던 곳에서도 현역이었겠는데?"

내가 변신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바닥에 뻗어있자, 세르칸이라고 불리는 무구와 간식을 먹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아린이.

...중간에 얄미워서 정면으로 마법을 갈겼지만, 아린이의 변신 전 모습을 하고 있던 세르칸이 가볍게 손을 뻗어 실드로 막아내는 걸 보곤 자신감을 잃었다.

저 두 사람, 괴물이다.

안티 매직 필드라는 환경 때문에 어떤 마법을 쓰든 마력 소모량이 늘어나 있다.

아마 변신 스킬을 쓰고 마법을 쓰는 나도 마력 회로에 좀 부담이 갔을 거라고, 그렇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저 두 사람은 그런 부담조차 느끼지 않고, 숨 쉬듯 마법을 발동하는 모습.

...부담을 가지지 않고 마법을 사용할 방법이 있다­ 라는 건 아니겠지.

"세르칸...이었지."

"응? 응, 맞아."

아린의 교복 상태로 변신하자, 성격까지 그대로 따라가는지 상냥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내가 가만히 생각하다가 슈팅 스타를 하늘로 띄워 올리고, 세르칸은 ? 하면서 자연스럽게 실드를 만들어 내 공격을 막아낸다.

ㅡ마력을 읽는다.

세르칸이 짜올리는 술식을 읽는다.

그녀가 사용하는 마법은 분명 아린이 변신하지 않고 사용할 때와 동일한 마법.

나 역시 변신하지 않아도 저 정도는 사용할 수 있어야 저 두 사람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스킬 '@!#%#!%!@#'가 진@$ 앞두#@!&니다.]

시스템이 창이 나타나 영문을 모를 메세지를 띄우다가, 이내 사라진다.

스킬이 아니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스킬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시스템에 없는 기술.

그녀들은 시스템 바깥세상의 존재...인 걸까?

술식을 읽어.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기술을 보고, 그대로 복사하는 능력.

내가 '각성자'가 됐을 때 얻어낸 능력이다.

ㅡ각성은 그 사람의 가능성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뇌가 조금 과부하 되는 걸 느끼지만, 계속해서 슈팅 스타의 술식을 짜올리며 그녀의 실드를 관찰한다.

실드는 프로텍션과 비슷한 구성이지만, 조금 다르다.

마력이 움직이는 방식이 '내부'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도 일어난다.

그래, 마치 스타라이트 브레이커를 사용할 때 일어나는 현상처럼.

스타라이트 브레이커는 내가 쏘아냈던 별의 마력을 재응집하며, 동시에 내부 마력을 순환 시켜 그만큼의 화력을 끌어올리는 기술이다.

거기서 중요한 건 재응집.

저 실드는 내부에서 마력이 퍼져 나와서 만드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끌어온 마력을 그대로 활용해 자신의 마력은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맞아, 그런 거였어.

안티 매직 필드는 사용자 내부에서 움직이는 마력이 밖으로 나오는 회로를 절단한다.

내가 쓰는 마법의 대부분은 내 마력으로 구성된 마법.

내가 해왔던 것들 역시 내 마력으로 구성된 마법.

언제나 마력은 무한정이었으니까.

언제나 마력이 부족한 일은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렇게 마법을 써왔고, 안티 매직 필드에 제대로 영향을 받았던 거다.

세르칸이 만들던 방식으로 마법을 재구성해낸다.

슈팅 스타가 수월하게 만들어진다.

스타더스트 스트라이크를 준비한다.

이번엔 내 마법이 제대로 만들어져 가는 걸 느끼지만, 어딘가 불안정하다.

고민한다.

잘못된 점이... 존재한다.

"우와, 엄청 재능러네."

"그러게."

"..."

"별의 마력으로 마력을 치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만 고민하면 될 거야."

내 고민이 뭔지 알 거 같다는 것처럼, 아린이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한다.

별의 마력으로 마력을 치환하는 방식.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해왔던 일을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나는 일반적인 외부 마력을 응집시키려 노력한다.

...감각만으로 마력이 모여든다.

하지만 그뿐.

이것저것 뒤섞인 마력 중에 별의 마력은 극소수.

이런 마력으로 스타더스트 스트라이크를 만들려고 하고 있으니, 잘 안 되는 게 당연하다.

슈팅 스타야 극소량의 별의 마력이면 충분하지만, 스타더스트 스트라이크는 말 그대로 별의 마력을 퍼붓는 스킬이니까.

바람의 마력, 불의 마력, 전격의 마력, 물의 마력, 그리고 별의 마력.

마력을 각 속성으로 치환시키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안 돼, 내가 쓰던 방식으론 안 된다.

내가 쓰던 방식은 그저 몸을 통해 마력을 치환해서 내뿜는 방식.

...몸 안에서 마력이 치환된다?

"기본 마법부터."

순차적으로 내가 아는 마법을 나열하려다가, 기본이 되는 탄막들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구성해본다.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마력을 쓰는 탓에 마력 회로가 조금 욱신거리는 걸 느끼지만, 워낙 약한 마법이라 지장은 없음.

마력이 들어와서 내부를 한 바퀴 돌고, 내가 원하는 속성으로 변형...

기점은 배 아랫부분과 심장을 지날 때.

거기서 일어나는 작업을 관조한다.

이 작업을 외부에서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연적으로 걸러지며 갈라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외부의 마력을 그런 형식으로 치환하려 애쓰지만, 불가능.

이건 내부에서만 가능한 방식이다.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

"응, 그럴까."

그 사이 두 사람이 뭔가 속닥이는가 싶더니, 아린이가 다가와 내 눈앞에 선다.

그와 동시에 잠깐 마력을 이모저모 움직이는가 싶더니, 허공에 만들어내는 탄막.

...슈팅 스타?

별 모양이 아니라 동그란 탄막이었지만, 그건 분명히 슈팅 스타와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마법이었다.

"너는 직접 보는 게 훨씬 빨리 배우는 거 같으니까... 자, 치환으로 할 땐 이렇게야."

그렇게 말하며 묘수풀이를 하듯 별의 마력으로 치환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잡다한 마력이 주변을 타고 흐르는 별의 마력을 따라 움직이다가, 서서히 별의 마력으로 치환되기 시작한다.

등가교환의 법칙 같은 게 아니라, 마치 별의 마력이 가장 상위의 물질인 것처럼, 그대로 물들어 모든 마력이 별의 마력으로 변해간다.

아름답다.

공간 전체를 수놓듯 가득 채워지는 별 무리를 보며 나는 눈을 반짝인다.

그와 동시에 손을 뻗어 허공을 쥐자, 자연스럽게 내 손으로 뭉치기 시작하는 별의 마력.

동시에 주변의 마력이 전체적으로 치환되기 시작하고, 나는 입가에 미소를 담는다.

"우와, 얘 마력 지배는 나보다 높아."

내가 자연스럽게 마력을 연결해 주도권을 얻어내자, 울상이 돼서 말하는 모습.

그 모습에 내가 방금 만들어진 별의 마력을 가만히 갈무리해 흡수하자, 조금 삐진 기색이던 아린이 말했다.

"이제 시작 선에 섰네. 싸울 수 있겠어?"

그렇게 말하며 변하는 모습은 예의 붉은 갑주와 푸른 갑주의 소녀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허공을 쥐자, 자연스럽게 렌의 형상을 한 지팡이가 내 손에 잡힌다.

응, 가능할 거 같다.

"그래, 준비된 거 같으니까... 시작한다?"

그렇게 말하며, 어느새 검을 든 아린이 나에게 쏘아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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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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