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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72화 (72/149)

〈 72화 〉 마법소녀는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아!

* * *

한국에 도착했을 땐 이미 저녁 시간이었다.

도착했을 때 한국 상황은 거의 모든 지역을 점령했지만, 라크헬름의 영토 3개가 남은 상황.

그가 거점으로 잡았던 성이 너무 수비가 철저한 탓에 뚫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성벽 파괴는."

"가능한데, 왠지 몰라도 파괴할 때마다 다시 재생돼."

"내가 한번 뚫고 갈까."

"아니, 그러다가 네가 불사인들한테 물리면 골치 아파. 시간도 오래 걸릴 거고 전장 유지를 하든 뚫든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네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해."

"...응."

루시에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차라리 루루를 회복시키고 데려오는 게 승률이 높을지도...

"그래서 우릴 도울 수 있다는 게..."

"이 토끼."

"그래?"

­ 나한테 맡겨!

내 소개에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선언하는 토끼의 모습.

내 말을 들어서인지, 루시에르는 딱히 의심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얘만으로도 충분히 도움 되니까, 신경 쓰지 마. 밥은?"

"...마법소녀는 딱히 안 먹어도 된대."

"누가 그러냐. 파이렌이랑 유레하는 열심히 먹더라. 밥이나 먹으러 가자."

파이렌이 그러던데.

그런 생각을 하지만, 굳이 먹지 않을 이유는 없어 고개를 끄덕인다.

식당으로 가자, 보이는 건 열심히 여러 음식을 주워 먹고 있는 파이렌.

제법 오래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고 있는 모습에 내가 멀뚱거리면서 쳐다보자, 파이렌은 반갑다는 것처럼 손을 흔들어 보인다.

"스노우 님~ 오랜만이야!"

"응."

"나 엄청 힘냈어! 유레하도!"

해맑게 웃으면서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헤헤. 하면서 기뻐하는 모습.

매번 같이 있던 유레하가 안 보이는데, 먼저 쉬러 간 건가?

"유레하는."

"먼저 먹고 순찰? 한 바퀴 돈다고 나갔어! 유레하는 빠르니까 금방 올 거야!"

"그렇구나."

음식 자판기에서 음식을 뽑고 자리에 앉자, 주변 시선이 조금 나에게로 모이는 걸 느낀다.

잠시 훑어보자 보이는 건 몇몇을 제외하고는 전부 모르는 사람들.

영토를 먹으면서 많은 사람을 모았구나­ 같은 가벼운 감각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왠지 감격하는 기색으로 나를 바라본다.

...모에요?

[마스터한테 감격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습니까?]

"?"

[전장에서 2성인 마법 소녀들이 활약하는 걸 봐왔을 테니까요.]

"그거랑 나랑 무슨..."

내가 잠시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이내 그러고 보니 내가 영주였지. 같은 생각을 머릿속에 담는다.

마법 소녀들을 모아온 거 자체만으로도 그녀들보다 세다는 소리니까, 현시점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 소녀가 나라는 결론을 내렸을지도.

"...네가 모르는 게 있거든."

"?"

"말하면 안 되는 거라."

또 미튜브에 내 영상들이 퍼지기라도 한 건가.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가만히 스프를 한 숟갈 먹는다.

그러자 식사를 마친 파이렌이 입가를 슥슥 닦더니 말했다.

"스노우 님, 나도 3성 됐어!"

"...응."

"별로 놀라지 않아!?"

아니, 조금 놀라긴 놀랐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뒤에서 폭격하는 파이렌이 3성을 찍었을 줄이야.

무슨 일을 겪어야 각성할까 싶을 정도지만, 사이네의 사례를 볼 때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본인의 깨달음으로도 각성하는 모양이니까.

"파이렌은 어떤 식으로 각성했어."

"음... 지역이 많다보니 나도 한 지역을 맡게 됐었는데­"

그렇게 파이렌이 숟가락을 우물거리면서 설명을 시작한다.

요약하자면 수비 중에 수비군이 전멸당한 위기까지 갔던 모양이다.

불사인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이야기.

어떻게든 모두를 지키려고 발악하다가 각성한 힘으로 불의 장벽을 내성 근처에 원형 결계처럼 세워 공격을 막아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버티기긴 했지만, 후에 샤브린이 달려와서 막아냈다고...

"지금 상대 가능한 거, 샤브린 뿐이야?"

"아니, 여러 명이 가능하긴 하겠지만... 체력이 남아도는 게 샤브린 뿐인 거야. 불사인들이 체력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덤비니까."

"그렇구나."

실력은 고만고만한데 체력이 무한이라는 건가.

...그럼 그냥 귀찮은 수준이라는 소리 아닌가?

"실질적으로 못 뚫을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라크헬름이 문제지."

"역시."

초월자의 격이 풀린 게 큰 모양이다.

"나랑 샤브린이 동시에 덤비면 잡을만해. 문제는 그 불사인들이 같이 끼어들면, 뚫어낼 수 없어."

"게다가 네 녀석한테 힘을 빌려준 적도 있고 말이지. 조금 귀찮다."

"샤브린."

루시에르의 말을 받으며 등장한 샤브린이 음식을 들고 나타나 말한다.

힘을 빌려준 사람도 어느 정도 힘을 쓰는 건가...?

"사용해본 결과 거의 사용하진 않았다만, 아무래도 디스트로이 월드는 내가 쓰는 기술 중에 최고봉이지. 아주 여파가 없진 않더군."

"무슨 이야기야?"

"무얼, 쉬는 타임에 정황 좀 보려고 했더니 한창 밀리는 중이라서 말이다. 도와달라는 신호를 받고 도와줬지."

샤브린의 말에 루시에르가 나를 바라보는 걸 느끼곤, 쓴 미소를 입가에 담으며 말했다.

"나한테는 별에게 소원을이라는 기술이 있어. 나를 보고 있는 플레이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기술이야."

"특이한 기술이네."

"응, 그걸로 샤브린이 당첨돼서 도와줬어."

"...후원 개념인가?"

"비슷해."

후원이랑은 다르게 능력을 한 번쯤 사용해주는 기술이지만, 능력을 복사하는 힘을 가진 나에겐 능력을 주는 거나 마찬가지.

사소한 문제라고 한다면 사용할 스킬은 후원자가 정한다는 건데... 아직 꽝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모두 내가 이쪽 세계의 희망으로 보고 있는 모양이니까.

"아, 그리고 3성으로 올라선 건, 파이렌 뿐만이 아니다."

"유레하도...?"

"마법 소녀들은 전부 각성했고, 일반 플레이어 중에서도 3성인 자들은 제법 있지. 지금 영주 급인 사람들은 전부 3성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

생각보단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아직 누군가가 점령하지 못해서 몬스터가 쌓인 곳이다."

"?"

걔들은 또 모가 문제예요.

내가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자, 샤브린은 빵을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3성급이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아닌 마경이 됐지."

"...?"

"그 종족의 톱급 생물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 녀석들도 영토를 가진 거로 생각해도 무방하겠지."

"음..."

3성으로 감당되지 않는 몬스터인가.

하긴 3단계에서 평균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리시안셔스, 즉 4성부터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조만간 필드 보스들도 등장할 걸 생각하면, 등급은 더더욱 높아야겠지.

저번 싸움에서 4성인 루시에르가 고생했던 걸 떠올리면 레이드가 가능한 최소 등급이 4성일 테니까.

예외로 마법 소녀는 3성부터 가능하겠지만...

"아무튼 라크헬름을 물리치는 대로 필드 보스를 하나씩 깨워서 죽일 생각이다. 그러니까, 그때까진 돌아와라."

"얼마나 걸릴까."

"한 달."

"음..."

"정비하고 시작한다고 쳐도 한 달이다. 더 오래 끌었다가 마족이나 천족이 떨어지면 감당이 안 돼."

한 달 만에 루루를 데려올 수 있을까.

솔직히 조금 회의적이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겠지.

유지도 그렇게 강조했었고.

"알겠어, 할게."

"해볼게가 아니라 할 게여서 다행이군. 믿겠다."

"응."

샤브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식사를 마쳤다.

...어떻게든 할게.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

먼저 사이네의 던전에 도착해 그녀를 들여보낸 뒤, 내가 도착한 곳은 성남의 남쪽.

내가 지도 조각을 들고 가까이 다가가자 보이는 건, 무척이나 진한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는 한 포탈의 모습이었다.

"...디X블로."

어디서 본 거 같다 싶었는데, 디아X로에서 본 기억이 있는 모습이다.

조금 신기한 모습이라 빤히 바라보다가 손을 뻗자, 그대로 쑤욱하고 몸이 들어가더니 빠지지 않는다.

정비 안 하고 왔으면 그대로 시작하는 슬픈 상황이네.

그렇게 쓰게 웃으면서 포탈로 들어서자, 눈을 찌르는 강렬한 빛이 느껴져 잠깐 눈을 감는다.

잠시 후 눈을 뜨자 보인 건, 한 공동의 모습.

하늘에는 하나의 구멍과 그 주변 전체를 밝히는 녹색빛의 은은한 조명석이 있고, 땅에는 오랫동안 누군가 거치지 않았다는 증표처럼 수풀이 여기저기 자라나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꽂혀있는 하나의 검.

...무슨 엑스칼리버도 아니고.

마치 선정의 검을 뽑는 것과 같은 풍경을 보며,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결계로 인해 '변신' 스킬이 해제됩니다.]

"...?"

그리고 뿅. 하면서 내 옆에서 튕겨 나가듯 허공이 둥둥 떠다니는 렌.

딱히 멀리 떨어지지 않는 거로 볼 때, 큰 문제는 아닌 듯싶다.

그저 내가 변신이 풀린 게 문제일 뿐.

"렌."

[음... 읽어낼 수 있으십니까? 혹시나 읽을 수 있으면 굉장히 도움 될 결계입니다만.]

"어떤 건데."

[안티 매직 필드입니다. 그것도 고대에 쓰던 마법이군요.]

"순환시."

결계가 있다는 사실조차 읽히지 않아서인지, 마법의 흐름이 읽히지 않아 곧바로 순환시를 키자, 뇌가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평시에 쓸 스킬은 아냐.

2초 정도 유지한 뒤 해제하자, 따끔거리는 눈의 통증.

그래도 잠시 후 서서히 사라짐을 느끼며, 방금 읽어낸 스킬을 살핀다.

[하이 안티 매직 필드] ­ ?

결계 내 마법을 무효로 하는 필드. 누군가가 사용했는지, 어떤 경위로 사용하게 된 건지 알 수 없지만 시전자를 포함해 모든 생명체가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다만, 완벽한 술식이 아니라 사용할 수 없다.

"...술식이 깨졌어."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처럼 레벨도 나오지 않고, 완벽한 술식이 아니라서 사용할 수 없다는 메세지가 보인다.

아무래도 불안정한 결계인 모양이다.

사용하려고 마력을 움직이자, 그대로 팟. 하면서 마법진이 나타났다가 이내 소멸.

...마법진 군데군데가 지워진 건 확인된다.

[용케 유지하고 있군요.]

"렌이야말로 용케 말하고 있네. 그것도 마법 아냐?"

[그렇군요, 저는 일단 생명체가 아니니까요.]

"아."

그렇네, 렌은 현재 무생물이 자아를 지이고 있는 케이스다.

나는 그것도 생명체지 아닐까­라고 생각하지만, 통상적인 인식에서 렌은 그저 무기 중 하나일 뿐이겠지.

거기까지 이야기를 마치고 나는 제단에 있는 작은 계단을 넘어 검의 앞으로 나선다.

손을 뻗어 검에 닿는 순간, 파지직. 하면서 손을 태우는 검.

통증을 무시하고 무표정하게 잡으려 하자,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목소리.

[흐암... 잘 자고 있는데 뭐야? 누가 깨워?]

"...난, 스노우야."

[으잉? 흐음흐음... 전 주인이랑 똑같은 별의 마력이구만? 그래도 일없수. 전 주인처럼 마법 창조자가 아니면, 날 제대로 다룰 수 없다고?]

"...?"

에고 무기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나는 방금 익힌 마법진을 순간 펼쳐 보인다.

하지만 그뿐. 금방 깨져나가는 마법진을 잠깐 바라보다가, 그대로 말했다.

"혹시 이 마법 완성형 알아?"

[마스터?]

[엉? 뭐야. 에고 웨폰이 하나 더 있네?]

[반갑습니다, 잃어버린 유산 '■■■'씨.]

[...야발? 넌 또 뭐야. 아무튼 완성형? 그건 쉽지. 네가 날 다룰 수 있다는 전제하에 가르쳐줄 수 있다고?]

삐음으로 이름이 처리된 걸 아는지 모르는지, 조금 당황스러운 기세를 보이다가 수긍의 의사를 표한다.

혹시나 이 아이를 못 얻어가더라도 이 마법만큼은 얻어가야 하니까.

"어떻게 다루는데."

[시험에 통과하면 돼.]

그 말과 함께 내 손을 태우던 미묘한 결계가 사라지며, 검이 내 손에 잡힌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뭔가 말랑한 감촉.

절대 검에서 느껴질 감촉이 아니란 생각에 내가 살짝 눈을 크게 뜨자, 녀석은 웃으면서 말했다.

[흐음흐음, 별빛인가. 게다가 희망 속성도 있고.]

"...?"

[그럼 시작한다. 아, 여기 그래도 안티 매직 필드니까 조심해라. 평소보다 마력 소비가 심할 거다.]

검의 말고 동시에 형태가 무너지며 은빛 거대 슬라임 같은 무언가가 되며 나를 덮쳐온다.

본능적으로 렌을 바라보며 아쿠아 실드를 펼치려 하지만, 프로텍션을 발동하지 않는 그녀.

물론, 아쿠아 실드 역시 발동하지 않는다.

[다녀오시길.]

순간 눈을 질끔 감았다가 떴을 때, 나는 허공에서 붉은색, 푸른색의 두 갑주를 입은 소녀와 대치하고 있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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