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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71화 (71/149)

〈 71화 〉 마법소녀는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아!

* * *

내가 멀뚱거리면서 토끼를 바라보자, 토끼도 붉은 눈을 깜박이며 나를 바라본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고 있자, 그대로 토끼를 쓰다듬어 주는 루리에의 모습.

그리고 잠시 후 내가 깨어난 걸 보자마자, 테나와 토끼의 몸이 빛나며 내 몸에 뭔가를 불어넣는다.

치유의 힘.

힐링 계열 마법을 사용했다는 걸 알아채고 나는 동시에 두 동물을 쓰다듬어준다.

­ 냐아­(조아­)

­ 고양이 흉내내는 이상한 마법수!

­ 토깽이 주제에 뭐라는 거냥.

같이 치료하고 있지만 별로 사이는 안 좋은지 투닥이는 모습이 썩 재밌다.

몸 안에 들어온 치유의 힘을 느끼며, 나 역시 치유 마법을 걸면서 루리에를 바라본다.

그러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

마력 연결이 희미하게 루리에에게 연결된 걸로 봐선, 루리에와 연동된 마법수인 거 같은데...

"왠지 갑자기 찾아와서 계약해달라고 했어. 별빛이를 구하려면 도와달라고 하더라, 나한테."

"별빛이...?"

그러고 보니 추락할 때 그런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구나, 쟤가 그 별빛이 어쩌고 한 아이인가.

뭐하는 앤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스터께서는 전에 만난 적이 있습니다.]

"...?"

[마스터를 꿈 속 세계로 데려갔던 마법수네요.]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애가 있었지.

적습인지 뭔지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렌이 딱히 적대해서 한 건 아니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평화로운 분위기가 맞나?

"루루는..."

"라이브러리라고 말한 토끼가 환상? 같은 거에 빠뜨렸다나 봐. 건드리면 깨져서 지금은 아직 보류중인데... 어떻게 되돌릴 지 감이 안 잡혀."

"...그렇네."

아마 루루가 저렇게 변한 건, 파괴자로서 각성했기 때문이다.

환상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건... 아마 나오고 싶지 않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루리에와의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던가, 없어진 기억을 다시 보고 있다던가...

어느 쪽이든 나올 때까지 시간이 제법 걸리겠지.

기억을 잃은 그녀에겐, 별로 빠져나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저건 왜 아군이야."

"그건 나도 모르겠어, 사이네한테 물어보는 게 어때?"

열심히 하늘에서 봉쇄결계 비스무리한 걸 형성하고 있는 사이네와 검은 로브의 사내를 보며, 루리에도 제법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걸 바라보고 있다.

분명히 서로 싸우려고 사이네가 남았던 거 아니었어? 어째서 아군으로 여기에?

"신경 쓰지 말고 회복에 집중해."

"루리에."

"...루루는 환상에 들어가 있을 뿐이니까, 괜찮을 거야."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 모를 이야기를 중얼거리며, 루리에는 계속해서 마력을 모아, 나를 회복 시키는데 힘쓴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이내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면서 루루를 바라보는 나.

어느 새 검은 구체와 같은 결계에 자기장같은 무언가가 파직거리는 거대한 원형 결계가 완성되고, 사이네와 남자는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온다.

"스노우 상태는?"

"멀...쩡?"

­ 멀쩡하다는 말은 이런 상태에 쓰이지 않는다네.

그렇게 말하며 불길한 마력을 끌어올리는 남자.

그 모습에 모두가 긴장하지만, 유일하게 두려워하지 않고 그에게 다가간 라이브러리가 머리에 딸린 뿔로 콕. 하고 찌르면서 말했다.

­ 달빛아, 일부러 그렇게 쓰지마.

­ ...호오.

라이브러리의 말에 감탄사를 내뱉더니, 이내 불길한 기운을 완전히 걸러내고 순수한 검정 마력만을 손에 남기는 모습.

...더 이상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느껴지는 건, 어쩐지 동질감이 느껴지는 기운.

달빛... 이라고 했지.

"영원의 밤의 마법소녀는 아닌 거 같은데, 누구야."

­ 그 마법소녀의 하수인...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언데드?"

내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하자, 그는 자신의 로브를 뒤로 넘긴다.

마치 은색으로 치장한 것과도 같이 은빛으로 빛나는 해골 머리.

그 두개골에는 여러가지 문양이 이리저리 그려져있고, 그의 안광에서는 붉은 빛이 흉흉하게 불타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그렇게까지 무섭게 느껴지진 않았다.

­ 굳이 따지자면, 언데드에 가깝겠지. 딱히 신성력을 받아도 아무렇지는 않겠다만은.

"마법 소녀에는 딱히 신성 마법이 없으니까..."

­ 흠? 저 루루라는 마법 소녀는 신성 계열 마법 소녀다만.

"...?"

그의 말에 루리에와 내 시선이 동시에 검은 구체를 향한다.

신성 마법을 쓰는 마법 소녀라니, 어떻게 돼먹은...

"...아르멘?"

"엉, 아마 루루라는 애한테서 힘을 받았던 모양인데."

문득 떠오른 이름을 중얼거리자, 사이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한다.

직접 싸웠던 사이네니까 잘 알겠네.

"아르멘이랑은 조금 다른 기운이긴 했는데... 그래도 근본은 같아. 기도하고, 내림받고, 사용한다. 마법소녀 같은 느낌이 아니라, 마치..."

"성녀 같은."

"어, 그런 느낌이야."

기도인가.

'나의 종속이여'라고 했던 거 같은데, 사실 그게 기도에서 변형 당한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기도해야 하는 신을 잡아 먹고 각성해버렸다든지, 그런 케이스 일지도.

"사이네, 혹시 수호자로서 얻은 거 뭐 없어?"

"...얻은 건 그냥 각성으로 얻은 거 같은데, 그보단 전용 무기를 찾으라고 했어."

"전용 무기인가."

수호자로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전용 무기가 필요하단 의미.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잡아야 할 목표는 '사이네'의 전용 무기를 찾는 것이 되겠네.

"사이네, 전용 무기 지도 조각 몇 개 있어?"

"4개...?"

"..."

마법 소녀 퀘스트로만 얻을 수 있는 지도 조각 숫자가 얼마 안 되긴 했지.

문제는 그 지도 조각이 가리키는 곳이 어디냐는 거다.

그녀가 인벤토리에서 지도 조각을 펼치자, 아직 부족한 부분이 5개 정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큰 일이네.

전부 모서리 부분이라 정확한 위치를 모르겠다.

"이 부분..."

그걸 잠시 바라보던 루리에가 인벤토리에서 지도 조각을 꺼내더니, 오른쪽과 왼쪽에 붙이는 모습.

그러자 왠진 몰라도 겹치는 부분이 생기는 지도를 보며,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내 지도 조각도 꺼내든다.

혹시...

"여기...?"

"...이거 한국이야."

지도 조각을 붙이자 놀랍게도 사이네의 전용 무기 위치와 내 전용 무기 위치가 남쪽과 동쪽으로 나뉜, 이어진 지도의 모습.

루리에의 지도 조각 위치를 근거로 잠깐 위치를 생각해내던 그녀는 허탈한 미소를 입가에 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스노우."

"응."

"여기 성남이야."

"...응?"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

[Rusie­r : 그래서 지금 돌아온다고? 루루는 찾았으니까?]

[Snow : 응.]

[Rusie­r : 그러다가 결계가 먼저 깨지면 어쩌려고.]

[Snow : ...어떻게 하지.]

이 녀석도 대책 없는 녀석이라니까.

루크헬름이 보내오는 병사들을 광범위 공격으로 처분하며 나는 한숨을 내쉰다.

그러니까 지금 루루라는 애를 구하려면 사이네의 전용 무기가 필요하고, 전용 무기를 얻으려면 반 봉인 상태인 애를 냅두고 한국으로 넘어와야 한다는 거지?

[Rusie­r : 그럼 사이네랑 너만 넘어오면 되는 거 아냐? 다른 애들은 지키고.]

[Snow : 그러다가 전부 죽을 거 같아.]

[Rusie­r : 지키는 애 또 있다면서.]

[Snow : 그건 그렇지만...]

걱정도 많은 녀석이네.

뭐, 이해 못할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저 멤버는 스노우 외엔 스펙이 조금 달리니까.

가기 전에 루리에가 제법 강해진 상태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스펙 낮은 파티였으니까.

들어보니 추가 파티원이 생긴 모양이긴 한데... 모르겠구만.

[Rusie­r : 이쪽은 거의다 정리되고 있어. 그냥 평범하게 길드 만든 애들은 거의다 끝냈고, 남은 건 라크헬름이야.]

[Snow : 라크헬름...]

[Rusie­r : 어, 엄청 귀찮은 능력 가지고 있더라고.]

[Snow : ?]

[Rusie­r : 뭐였지? 특정 하수인들 불사였나? 소환주가 죽지 않는 이상 죽지 않는다는 괴상한 기능을 들고 왔어. 재생은 덤이고.]

[Snow : 그건... 힘들겠네.]

불사 + 재생이라서 최대한 버티곤 있지만, 육체를 보살피지 않는 무지성 돌격에 제법 골치를 앓고 있다.

숫자가 많은 건 아니라서 샤브린과 리시안셔스가 협력해서 막아내고는 있는데... 솔직히 어찌해야 할 지 감도 안 잡힌다.

[Rusie­r : 라크헬름만 어떻게든 하면 모두 해결되긴 한데... 뭐, 그건 우리 측에서 알아서 할게. 너희는 던전에 집중해.]

"상혁아."

"응? 아, 슬슬 제대로 싸워야하는 거지?"

"...아니."

유린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나에게 다가오더니, 폭 하고 가볍게 몸을 기대온다.

...지친 건가.

하긴 유린이한테는 너무 많이 고생시키긴 했다.

일시적으로 사용할 성을 하루 아침에 만드는 작업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니까.

점령 속도도 엄청 빠른 상황이라 유린이가 하나를 만들고 다음날 쉬고 일어나서 다시 하나.

그걸 몇 주 동안 반복하고 있으니, 지칠 만도 하지.

"..."

전장은 소강 상탠가.

샤브린과 불사인들이 서로 부딪히다 못해 물러나고, 리시안셔스는 힘이 떨어진 건지 위태로운 걸음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었다.

...다음 번은 내가 나가야겠군.

역시 아직 4성인 소녀에겐 부담이 큰 일인 모양이다.

"돌아왔어."

"어서와."

샤브린이 그렇게 말하며 집으로 먼저 향하다가, 잠깐 유린이를 힐끗 보고는 내 등을 툭. 하고 치고 간다.

...잘 달래고 오란 의미인가.

요즘 이런 접촉이 많이 늘어난 기분이 드는데.

그런 생각이 문득 들지만, 일단은 기분 탓으로 생각하자.

"본 성이라 그런가 회복이 너무 빨라... 여기만 처리하면 되는데..."

"스노우 네는 어떻데?"

"돌아오고 있다곤 하는데, 거기도 위태위태한 모양이야."

"그래... 빨리 와야 융단 폭격이라도 날리는데..."

"그건 파이렌이 열심히 하고 있잖아?"

매번 하늘로 날아올라 파이렌이 화염계 마법을 날리고, 날아오는 공격은 유레하가 전부 튕겨낸다.

그걸 막기 위해 다른 마법소녀가 날아올라 공격해온 전적이 있었지만, 그 기색을 나한테 읽혀 막힌 적도 제법 되는 상황.

성만 무너뜨리면 어떻게든 해결될 거 같은데, 그 성이 무너질 생각을 안 하는 게 단점이군.

역시 불사자들을 처리해야...

"상대가 농성만 해."

"나올 생각이 없다는 소리지."

"보급로까지 다 끊었는데."

"영토에 기본적으로 음식 제작이 되니까."

투정 부리듯 말해오는 유린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나는 성벽에서 내려간다.

샤브린도 상대편도 전부 빠졌으니, 오늘 전투는 여기까지군.

추가로 더 공격하러 들어갔다간, 우리 측 손해만 극심할 터.

어차피 식량이 나오고 있다곤 해도 양이 부족할 테니까, 이대로 말려죽이기만 해도 문제없다.

"봉인 몬스터 건은 어때?"

"...그거 마법소녀 정도면 충분히 해제할 거 같아. 검사해봤는데, 마력만 넘치면 풀 수는 있게 되있어."

내 물음에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하는 유린이. 그런가, 3단계도 시작됐겠다 슬슬 나타나도 이상하진 않겠는데.

"그래도 봉인이 풀릴 기색은 아직 없어. 문제는..."

"천계랑 마계."

"리시안셔스 말이 맞으면, 조금씩 나올 애들도 자기보다 세다고 했어."

인공 마족인 리시안셔스의 말에 의하면, 마족과 천족은 기본 스펙이 5성.

좀 많이 약화되면 4성까지 떨어진다곤 하지만, 필드보스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 괴물이랑 비슷한 수준을 3단계에 내보내다니, 제정신인가 싶긴 하지만 아마 초월자들도 같이 싸우란 의미겠지.

초월자의 스펙도 5성까지 풀렸으니까.

"..."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계속해서 시스템을 만든 존재에게 끌려 다니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언제나 시스템이 만들어낸 시련 자체에는 방어하기 급급하다.

역공을 넣어야지 승산이 있을텐데, 어디로 넣어야 하는 지조차 알 수 없다.

역시 시련의 탑인가 뭔가가 답인 거 같은데.

빨리 한국의 상황이 종료돼야 방법이 마련될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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