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70화 (70/149)

〈 70화 〉 마법소녀는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아!

* * *

순례의 마법 소녀를 알고 있다.

그 말은 즉, 아티팩트로서 유지가 해왔던 일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럼 조금 이상한 전제가 깔리는데.

왜 렌은 나한테 아무런 조언도 해주지 않았지?

"그럼 묻겠는데... 렌, 너는 '유지 유미카'를 알아?"

[마스터의 이름이 '유지 유미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군요. 실제 이름은 달랐죠.]

"..."

아니, 그걸 묻고 싶은 게 아닌데.

나는 한숨을 작게 내쉰 후, 다시 한번 물었다.

"정정할게. 순례의 마법 소녀인 유지 유미카가 했던 일이 뭔지 알아?"

[마스터가 알고 싶어 하는 의문은 NO입니다. 했던 일을 아냐는 이야기는 애매하군요. 얼추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넌 유지 유미카의 디바이스가 아니었던 거야?"

[아니요, 맞습니다.]

"...?"

어느 쪽이야.

[저는 유지 유미카의 디바이스였던 렌입니다. 하지만 유지 유미카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건, 관리자 M이 알고 있던 기억과 동일합니다.]

"아..."

그런 이야기였다.

렌은 '순례의 마법 소녀'가 유명하다고 말했고, 시스템은 그녀가 루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루프 하는 마법 소녀가 주인이었다. 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녀가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대해서는 렌도 자세히는 알 수 없었던 모양이다.

[굳이 따지자면, 제 스펙이 혼자 월등해진 건 분명 유지 유미카라는 전 마스터의 위업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

[네, 저 혼자 출력이 뛰어난 사태는 이상하거든요. 저 역시 평범하게 다른 디바이스들과 비슷한 스펙이었을 겁니다. 마법 소녀의 무구들은 전부 ★★니까요. 필터링에 걸리네요.]

"..."

무언가 말하는 도중, 삐­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목소리가 묻힌다.

본인도 그걸 인지한 건지, 차분하게 중얼거리는 렌.

잠깐 침묵하던 그녀는 곧이어 말을 이었다.

[어떤 수단을 쓴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디바이스에 봉인된 존재들과 제격은 원래 비슷합니다. 그들이 낮은 출력만 낼 수 있다면, 저 역시 마찬가지여야 정상이겠죠.]

"그렇구나."

렌만 엄청 유능했던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한창 렌이랑 대화하던 중,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불길한 마력을 느낀다.

이걸 지나쳐? 이걸 지나칠 거야? 하는 강렬한 마나의 방출.

효율 따위 전혀 생각하지 않은 방출에 내가 시선을 아래로 옮기자, 왠 검은 로브를 입은 누군가가 거만한 자세로 턱을 괴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

혹시 쟤가 밤의 마법 소녀인가?

일행과 시선을 맞추자, 모두 역시 그쪽으로 신경이 쏠려있다.

...어쩌지.

솔직히 지금도 루루를 구하러 갈 예정 시간에서 많이 늦은 상황이다.

하지만... 마법 소녀로서는 저런 불길한 기운을 뿌리는 녀석을 방치하는 게 너무 찝찝하지.

"루리에."

"...알아."

루리에 역시 생각이 깊어진 건지, 인상을 한참이고 찌푸리다가 결국 비행을 멈추고 만다.

그러자 품에 안겨 있던 세연 역시 폭. 하고 한숨.

그리곤 아까 말한 불바다 폭탄이라는걸 여러 개 꺼내더니, 그대로 땅으로 떨어뜨려 버린다.

"어?"

콰아앙! 콰아앙!

마치 기름을 두른 곳에 화염병을 던진 것처럼 건물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공간에 화염의 비가 떨어져 내린다.

허공에서 폭발해서 화염을 온 사방에 터뜨리는 폭탄이라니, 뭐 하는 폭탄이야.

멍청한 표정으로 그걸 바라보는 우리들을 보며, 세연이 입을 열었다.

"사람 좋은 것도 정도껏 해야죠. 빨리 가요."

"아니, 안 끝났..."

"아니까 빨리 가라구요!"

반론은 받지 않겠다는 것처럼 그녀가 말하는 순간, 땅에서 검은 기운이 폭사하며 우리 쪽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그걸 보자마자 가장 먼저 날아간 건 사이네.

정면으로 그 기운에 부딪히기 위해 전격의 마력을 일으킨 그녀는 그대로 낙하하면서 소리쳤다.

"먼저 가! 상대하고 갈게!"

"아니, 그건...!"

"됐다고! 나 사이네야!"

루리에가 뭐라 소리치려 하지만, 그녀는 사나운 미소와 함께 그렇게 말하곤 그대로 충돌한다.

쿠우웅!

그걸 보며 갈팡질팡하는 루리에를 보며, 그녀의 뺨을 당기는 세연.

눈이 떨리던 수해의 마법소녀는 그 행동에 입술을 살짝 깨물다가,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스노우, 너도 도와줘. 루루를 보러 가는 건 나 혼자라도..."

"아니, 같이 가자."

"뭐? 사이네가 저걸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건 모르는 일이야."

콰앙! 파지지직!

거대한 검은 손의 공격을 전격을 일으켜 파훼시킨 뒤, 거대한 전기 그물로 감싸버리는 모습.

생각보다 마법 활용도가 높아진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고요한 눈동자로 그렇게 말한다.

사이네가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다.

피루의 능력을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그녀의 어깨에 달린 피루가 전격의 마력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안착해있다.

저건 사실상 2:1이라는 소리다.

"가자."

"하지만... 동료를 놓고 가는 건..."

"루리에. 냉정하게 판단해. 너도 알잖아."

"..."

내 말에 루리에가 눈을 감는다.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정면으로 비행하기 시작하는 모습.

나는 조용히 그 뒤를 따를 뿐이었다.

ㅡ아까 느낀 폭주하는 마력이 이쪽으로 일직선으로 날아오고 있는 게 느껴진다.

최대한, 사이네의 전투와 우리의 전투가 다른 곳에서 벌어져야만 한다.

­­­­

Side 사이네

전력으로 주먹을 쳐내지만, 공격을 파훼시키는 것에 그친다.

분명 스펙이 올라갔는데 귀찮기도 하지.

한 번 혀를 차며 또다시 생성된 검은 기운의 무언가를 피해내며, 상대의 얼굴을 바라본다.

검은색에 붉은 눈동자인가.

마치 애니메이션 속 악령들을 연상시킨다.

­ 눈부시구나.

"앙? 무슨 소리야?"

잠깐 허공에서 대치 상태가 되자, 녀석은 영문 모를 소릴 하는 모습.

내가 인상을 슬쩍 찌푸리며 묻자, 붉은 눈동자가 약간 진하게 일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 너는 마법 소녀인가.

"당연한 소릴 하네."

­ 그런가, 마법 소녀는 순수한 존재로군.

"...뭔 소리래."

다시 전격의 마력을 일으키자, 녀석은 허공에서 스르륵 미끄러지듯 나에게 돌진해온다.

동시에 느껴지는 검은 기운의 파동.

...자폭 공격!?

"전자력!"

­ 데스 퍼레이드

자기장을 일으켜 상대에게서 튀어나오려는 기운을 강제로 지연시킨다.

내가 만들어낸 자기의 안쪽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

아직 미숙한 실력이지만, 어째서인지 이 기술을 어떻게 써야 할지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기묘한 감각.

마나가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스스로 알려주고 있었다.

투두두두둑.

자기장을 뚫어내려는 것처럼 바늘 같은 검은 마력이 사방으로 퍼지지만, 위험하지 않은 몇 개를 자기장은 내보내주는 것으로 자신에게 오는 피해를 급감시킨다.

한동안 지연시키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저걸 어떻게 해야...

­ 피루가 도울게!

"피루? 뭐야, 너도 쟤네 따라갔어야지."

무게감이 전혀 없어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나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꼬마를 바라본다.

그러자 내 뺨을 한 번 핥더니, 곧바로 눈을 푸르게 빛내며 꼬리를 세우는 피루.

그러자 자기장이 푸른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하며, 적을 완벽하게 옮아내는 것에 성공한다.

"뭐야, 뭐한 거야?"

­ 피루는 강화 마법을 쓸 수 있어! 마법 강화는 ★★★의 기본이야!

"?"

뭔가 방금 삐 소리가 났는데.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건지, 하품하는 것처럼 잠깐 입을 벌렸다가 닫는 피루.

잠시 후 난동을 피우던 상대가 움직임을 멈추더니, 다시 입을 연다.

­ 상냥한 마법이로군.

"상냥함은 얼어 죽을."

­ 대상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공격은 공격이라고 할 수 없다. 설령 그게 구속이라고 하더라도.

"알아. 그래도 이젠 나도 안다고. 당신, 나보다 강하잖아. 심지어 빠져나올 수도 있고."

­ 음...

내 눈에 보이는 마력만 봐도 상대의 스펙 정도는 알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마법 소녀의 마력은 그저 클래스로 인한 뻥튀기지만, 다른 이들은 다를 테니까.

도리어 왜 약한 척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내가 인상을 쓰자, 로브의 사내는 붉은 눈을 흉흉하게 빛내다가, 이내 아예 사라지게 만든다.

큰 적대 의사가 없어 보이는 모습.

나는 전자력을 유지하기만 할 뿐, 추가로 공격하기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뭐 하는 녀석이야, 이거.

­ 순수한 영혼이여, 나는 그대를 상대하기 위해 힘을 보이던 게 아니다.

"앙? 그럼 왜 그러고 있던 거야? 게다가 마력도 엄청 불길해 보였는데."

­ 그건 마력 속성이니 어쩔 수 없지. 내가 기다리는 건...

로브의 사내가 채 말하기 전에 제법 먼 거리에서 마력 폭발이 감지된 탓에 시선을 휙 하고 돌린다.

느껴지는 건 꺼림칙한 감각과 짙은 별과 빛의 마력.

...별의 마력을 내가 어떻게 알아?

어째서 이 마력의 속성을 읽어낼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째서인지 '감각적'으로 알 수 있다.

저기서 격돌한 마력은 무언가가 섞인 빛의 마력과 별의 마력이라고.

­ 음... 그대의 동료와 먼저 부딪힌 모양이군. 지금 여깄을 때가 아니다. 함께 가지.

"...내가 당신의 뭘 믿고 보내야 하는데?"

­ 나를 믿기보단, 동료들이 위험에 처했다고 판단한 그대의 생각을 믿게.

"쯧."

남자의 말에 나는 혀를 차면서도 속박을 풀어낸다.

적대 의사도 없고, 굳이 싸우기 전에 힘을 뺄 이유도 없다.

게다가 억지로 강하게 나선 것도 아니고, 그저 담담하게 현 상황을 풀어 말해줬을 뿐.

마법 소녀로서, 수호자로서의 감각이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꾸물대지 말고 가자고! 위험하다며!"

­ 허, 재밌는 영혼이군.

"시끄러!"

­­­­

빛이 있었다.

노란빛의 기운과 이질적인 검은빛의 기운.

두 가지가 섞여 만들어낸 빛나는 검노란빛 마력.

잿노란빛 곱슬 머리카락을 가진 마법 소녀가 그곳에 있었다.

"...혹시나 하지만, 루리에."

"루루...?"

"하아."

일났군.

누가 봐도 전투태세인 상태로 느긋한 비행으로 날고 있는 소녀.

루리에도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리고 있지만,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는 모양이다.

아니, 무슨 자맨데 머리카락 색부터 다르냐.

[마법 소녀는 자신이 상징하는 색의 머리칼과 눈동자를 가지게 됩니다.]

내 머리카락은 은색인데?

[그 점은 저도 이상하게 여깁니다만... 눈동자가 연분홍이잖아요?]

...그건 그래.

아무튼 잿노란빛이라는 점에서 상징색은 아마도 노란색. 파괴자가 되면서 조금 변한 걸까.

물어보면 알겠지.

"루루, 루루... 맞지? 응? 맞지, 우리 루루...?"

루리에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인다.

반응을 보아하니 거의 확신에 가까운 상태다.

그렇다는 건 루루의 반응은...

"...당신에게, 내 물건이 있어?"

"...나?"

루리에의 반응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꺼내는 루루. 울먹이며 다가가려던 푸른 마법 소녀의 움직임이 멈추고, 나는 희미하게 느낀 감각을 확신하며 렌을 부여잡는다.

렌, 마력이 좋지 않은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기분이야.

[네, 이번 파괴자는 다소 특이한 기운을 들고 있군요.]

특이한 기운?

[파괴 속성에 정화 속성, 그리고 감정 몇 가지가 섞였습니다. 희망, 기도, 절망, 혼란...]

"...너, 스스로에 대한 기억은 있어."

"스스로에 대한 기억. 희미하게... 아니, 없어."

"루루! 나야, 네 언니 루리에라고! 나 기억 못 하는 거야!?"

나와 루루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루리에가 빠르게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소리친다.

그러자 검노란기운이 루리에를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움직이려는 걸 보곤 내가 바로 보호 마법을 걸어주고, 푸른 소녀의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노란 소녀가 공격을 멈추며 고개를 갸웃한다.

"언...니?"

"그래! 언니야! 우리 매일 같이 살았잖아. 계속 웃으면서, 지키면서... 그렇게 살았잖아.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

루리에의 다급한 외침에 루루의 눈동자와 이마가 꿈틀거린다.

그리고 푸른 소녀의 팔을 쳐내면서 동시에 이마를 부여잡는 모습.

잠시 후, 잿노란빛 눈을 검은빛이 감싸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입에서 기이한 소리가 울린다.

"그으으...!"

"루루!?"

"파도...소리... 아파...!"

"루리에!"

[프로텍션]

"세인트 가든!"

루리에를 향해 고속으로 날아드는 공격을 앞을 가로막아 간신히 막아내지만, 그대로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충격은 생각보다 적다. 제대로 된 공격이 아니라, 그저 밀어내기 위한 일격.

루리에를 붙잡고 떨어져 내리며 바닥을 보자, 이미 폐허가 된 땅이 보인다.

"루리에, 싸울 준비..."

"루루, 루루? 왜, 어째서, 왜?"

"..."

루리에는 전력으로 칠 수 없나.

"테나! 루리에를 보호해!"

­ 냥!(알겠다냐!)

내 말에 세인트 가든을 펼치며 가볍게 땅에 착지하는 테나.

누가 고양이 아니랄까 봐 충격 방지는 완벽한 모양이네.

루리에를 땅에 내려놓자, 멍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루루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

일단 지금 당장 루루를 막아낼 필요가 있다.

어디로 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지를 일이 제대로 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루루."

"오지 마, 오지 마, 아파, 파도 소리, 아파. 싫어. 죽어."

내가 다시 날아올라 그녀의 앞에 서자, 그녀는 이마를 붙잡으며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상태로 한 손을 앞으로 내민다.

순식간에 몰려드는 빛의 마력.

절대로 방어할 수 없을 포격을 바라보며, 나는 인상을 찌푸리곤 별의 마력을 모은다.

"별...빛?"

"그래, 별이야."

스타라이트 브레이커는 늦는다.

그렇다면 당연히...

"스타더스트 스트라이크!"

"나의 수족이여, 별을 삼켜라."

손가락을 내리긋자, 하늘에서 거대한 별빛의 포격이 떨어져 내린다.

그대로 루루를 직격하기 직전, 그녀의 손에 모이던 마력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

검노란색 불길한 빛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분홍빛 마력을 전부 먹어 치우고 하늘로 치솟는 모습에 나는 곧바로 슈팅 스타를 다발로 소환한다.

"별빛... 별빛... 몰라, 별빛이 왜 적인 거야. 몰라. 모르겠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이상해. 모르겠어."

"슈팅 스타!"

별 탄막을 사방에서 쏟아내자, 루루가 원을 그린다.

그러자 사방으로 촉수처럼 검노란 마력이 튀어 나가더니, 그대로 별 탄막을 붙잡고 먹어 치우는 모습.

스타라이트 브레이커를 빠르게 그리고 싶은데, 하는 행동이 전부 흡수라서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앞에 탱커도 없어서 할 수 있는 게 너무 제한된다.

[지금 상황에서 1대1로는 상대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됩니다. 기회를 봐서 도주할 준비를 하시길.]

"...렌, 혹시 상황을 타파할 마법이 있을까?"

"나의 수족이여, 별을 삼켜라."

내 물음에 렌이 대답하기 전에 이미 나에게 손을 뻗어 검은 광선을 날리는 루루.

나는 간신히 공간을 넘어 피해낸 뒤, 곧이어 일렉트릭 웨이브를 펼친다.

파지직!

"나의 수족이여, 나를 감싸라."

전격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그런지 곧바로 보호로 전환, 퍼진 부분 외의 부분을 전부 먹어 치우는 모습이 보인다.

그 사이 순환시를 키자, 완전하게 검은빛으로 물드는 모습을 포착.

...빛의 마력이 아예 잠겨있다.

색은 검노란색이지만, 아무래도 파괴자의 힘이 너무 강해서 먹혀버린 모양이다.

[탈출의 기준은 테나와 루리에, 두 사람을 모두 살리는 조건이겠죠?]

"당연한 소리 하지 마."

[그럼 없습니다.]

"..."

렌이 단호하게 없다고 말하는 건 또 처음이네.

아마 내가 사망하지 않는 선에서는 없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검은 장막이 사라지고, 다시 루루에게 마력이 모인다.

아까보다도 빠른 응집을 보며 공간을 접어 아예 그녀에게 근접하는 나.

그러자 루루는 초점의 흐릿한 눈동자로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곧바로 시동어를 입에 담는다.

"나의 수족..."

"아쿠아 커터!"

손을 가볍게 저어 조그마한 수압 커터를 목으로 휘두르자, 모이던 검노란 마력이 자연스럽게 방어막을 형성, 공격을 막는다.

그사이 내 손에 흘러들어오는 기운.

[별에게 소원을 발동.]

[플레이어의 빛을 모집합니다.]

[...도움을 주는 플레이어 1465454명을 확인.]

[무작위 플레이어의 힘을 받습니다.]

[칭호 '마지막 파괴자'인 'Airo Shavrin'의 힘을 받아들입니다.]

"...?"

무지 익숙한 이름인데.

"그런가, 그 스킬을 발동한 네 몸으로는 전력을 사용할 수 있겠군. 스노우."

"...!?"

온몸에 순식간에 검은 갑주가 생성된다.

그와 함께 렌이 플레이어의 의사에 따라 형태를 변형.

거무튀튀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활이 내 손에 잡힌 것을 보며, 나는 눈을 크게 뜬다.

"미안하지만, 결계 없이는 이게 최대 화력이다. 상황을 타파할 정도는 되겠지. 디스트로이 월드!"

소리가 사라진다.

마력이 모인다는 감각 이전에 마력 탈진이 느껴질 정도로 쭈욱 마력이 빨려 들어간다.

주변 마력조차 사용하지 않고, 내 마력으로만 사용하는 극대 기술.

루루도 대응책으로 모든 검노란 마력을 집중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잠깐이지만, 서로 무력화될 거라고.

미친놈아, 영거리에서 극대 화력포를 쏘는 놈이 어딨어!

삐­

시야가 뒤집힌다.

계속해서 돌아가는 시야와 현실적이지 못한 방향으로 순간적으로 꺾인 양팔.

다행인 건, 내가 마법 소녀라 팔은 곧바로 정상적으로 돌아왔다는 점일까.

울컥.

입으로 피가 강제로 토해진다.

속이 울렁거린다.

마력 회로 전체가 뒤집힌 듯이 아프다.

움직이기 힘들다.

억지로 비행을 유지하려 하지만, 머리가 어지러워 집중이 깨져나간다.

아, 큰일...이다.

­ 내가 도와줄게! 별빛아!

"...?"

점점 흐릿해져 가는 감각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잡힌다.

귀에서는 여전히 삐­하는 이명이 들리고 있으니, 이건 머릿속으로 소리를 낸 개념일까.

모르겠다.

지금 당장은 기절할 거 같다는 점이 문제지.

­ 말할 수 없는 상태구나! 알겠어! 일단 거기서 구할게!

[마스터, 눈을 감고 마력을 안정화하는 것에 집중하십시오. 지금 당장은 괜찮을 겁니다.]

누군가의 목소리와 렌의 말에 나는 곧바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의식이 가라앉는다.

내가 떨어져 내리고 있다는 감각보다는 어째서인지, 폭신거리는 감각이 느껴진다.

다행인 건 별의 마력이 아직 남아있다는 점.

'지금 상황을 타파할 정도는 되겠지.'라고 해놓고 80% 가까이 마력을 먹어 치우다니, 샤브린은 미쳤어.

강제로 마력 회로를 천천히 돌리면서 피를 토해내고는 회복시켜가기 시작한다.

과부하랑은 다르게 조금 찢어져서 조심스럽다.

다행인 건 테나가 도와주고 있는 건지, 회복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점일까.

...지금 내가 날고 있는 건 맞는지 의심스럽지만, 충격은 없으니까 날고 있겠지.

일단은 회복에 집중한다.

"ㅡ우! 스노우!"

"..."

"스노우! 정신 차려!"

소리가 돌아온다.

느껴지는 건 어깨에 얹어진 손.

계속 나를 부르는 건... 루리에인가?

간신히 마력 회로를 전부 이은 상태가 되자, 나는 천천히 눈을 뜬다.

"...?"

하늘에는 검은 로브의 남자와 사이네.

땅에는 테나와 루리에, 그리고 왠 토끼 한 마리.

나는 어느새 땅에 누워있었던 모양이다.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광경에 순간 멍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토끼를 바라본다.

...넌 또 뭐예요?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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