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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69화 (69/149)

〈 69화 〉 마법소녀는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아!

* * *

차갑다.

뜨겁다.

아니, 모르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모르겠다.

난 뭘하고 있었...

"아..."

피투성이.

둘러본 주위에 넘실거리는 검노란 기운을 보며 나는 몸을 살짝 까딱인다.

응, 죽었네.

[파괴자의 인자를 발견했습니다.]

약 3명의 소녀가 죽어있는 광경.

비현실적인 광경이지만, 어째서인지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다.

얘들은 뭘까.

원래 인간의 몸은 저렇게 갈기갈기 찢어지지 않는데, 이상하다.

아, 인간이 아닌 걸지도.

사방에 있는 이상한 촉수들을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어째서인지 여기저기 피가 묻어있는 옷이 자연스럽게 수복되고, 깔끔해진다.

잠시 손에 빛의 마력을 모으려고 하자, 어째서인지 잘되지 않는다.

아, 그렇지.

빛의 마력은 이렇게 모으는 거였지.

검노란빛이 모이며 하나의 거울을 만들고, 내 얼굴을 비춘다.

잿노란빛 곱슬 머리카락.

잿노란빛 눈동자.

눈동자에는 희미한 초점.

조금 위화감을 느끼지만, 크게 이상하진 않다.

치지직­ 솨아아...

"윽..."

어딘가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인지 조금 불쾌해지면서도 동시에 따뜻해지는 느낌.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

"나는... 누구야?"

[당신은 파괴자로서 선택됐습니다.]

모르겠다.

기억하는 건, 내가 '마법 소녀'라는 사실.

마법 소녀로서 수식언 같은 게 있다는 걸 지식으로 알고 있는데, 그 부분이 기억나지 않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어.

그런 생각을 할 때, 왠 여성스러운 화장을 한 미중년이 걸어오는 게 눈에 띄었다.

"무슨 일이 있나 했더니, 이건 생각 이상으로 걸작 됐구나!"

"...누구?"

보는 순간 느낀 건 희미한 위화감과 불쾌감.

검노란 빛이 주변을 맴돌며 적대 의사를 표한다.

무의식적인 적대.

이 사람과는 얽히면 안 된다고, 빛의 마력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의 기연을 찾아내십시오, 파괴자.]

"어머어머, 얜? 당연히 네 동료 피오레잖니! 우린 서로 의지하면서..."

"나이트메어...네. 동료가 침식 마법을 사용하는 건, 이상해."

[당신의 운명을 찾아내십시오, 파괴자.]

스멀스멀 다가오는 침식의 마력을 보며,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걸 받아낸다.

검노란 마력이 침식의 마력을 완벽하게 먹어 치운다.

그 모습에 표정이 굳어가는 광대 같은 남자.

잠시 후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더 강한 마력을 주입하려는 모습에 내가 손을 한 번 휘젓는다.

"나의 수족이여, 나의 적을 삼켜라."

내 발언과 동시에 검노란색 무언가가 남자를 습격하고, 그의 뒤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메이드 복의 여자가 이상한 녹색 판을 소환해 그걸 막아냈다.

콰드득.

"...나의 수족이여, 나를 감싸라."

그와 함께 날아드는 폭탄에 마력으로 몸을 감싸자, 쾅! 하고 폭발.

사방으로 퍼뜨려놓은 마력에 무언가 닿는 걸 느끼자마자, 그 지역에 손을 움켜쥔다.

까드득! 콰앙!

이쪽도 수류탄.

연기가 걷히자 그을린 복도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

도망쳤어.

[당신의 무구를 찾아내십시오, 파괴자.]

방금 본 소녀는... 마법 소녀인가, 아닌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마법'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소환뿐이었으니까.

복도를 터덜터덜 걸어 바깥이 보이자, 비행으로 날아오른다.

거대한 성...이구나.

성 밖에서 보이는 무수한 언데드들.

그걸 보며 잠깐 고개를 한 번 까딱한 나는 손을 뻗는다.

ㅡ언데드는 불쾌하니까.

"나의 수족이여, 찢어라."

[당신의 기억을 찾아내십시오, 파괴자.]

내 손에 있던 검노란 빛이 폭주하듯 성 바깥쪽에 있는 언데드들을 전부 삼켜간다.

힘의 족쇄를 깨뜨린다.

무언가가 막고 있던 둑을 박살 낸다.

본래의 마력, 그 이상을 얻어낸다.

모든 언데드를 흡수하고, 그걸 마력으로 변환시킨다.

그래, 너희는 누군가의 수족이구나.

내 목표가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언데드의 주인은 죽어 마땅하다.

그걸 먼저 하도록 하자.

그렇게 나는 동쪽으로 이동했다.

­­­­

Side ???

"뭐야 저건!"

예상을 뛰어넘은 사태에 밤의 마법 소녀가 인상을 찡그린다.

그녀와 연결돼있던 대군 중 절반이 한 번에 소실됐다.

주력군의 전멸.

엄지손가락을 까득. 하고 씹어대며 여러 창을 펼쳐 상황을 파악하던 검은 소녀는 이내 한숨을 푹하고 내쉬며 의자에 기대 머리를 벅벅 긁어댄다.

"아~ 진짜! 되는 일 하나도 없네! 이쪽으로 오는 거 같은데... 거점 옮겨야 하나?"

단 한 번도 공방을 빠져나간 적이 없던 소녀의 말에 묵묵히 뒤에서 지키듯 서 있던 검은 갑주의 거인 기사가 움직인다.

앉아있는 소녀를 그대로 한쪽 팔로 안아 들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습.

워낙 조그마한 소녀였던 터라, 팔의 절반조차 공간을 차지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퍄레, 1번 거점으로."

­ 우음.

쿵. 쿵. 콰앙!

소녀의 말에 거인 기사는 공방의 한쪽 벽을 부수며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 역시 그런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1번 거점은 은빛 소녀가 처음으로 이 장소에 도착했을 때 만들어낸 네크로폴리스.

그만큼 소녀가 상대해야 할 적이 강력하단 의미이리라.

그걸 깨달은 내가 잘 움직이지 않는 목울대를 울리며 말했다.

­ 미네.

"응? 뭐야?"

­ 오는 적은, 강한가.

내 말에 미네는 잠깐 얼굴을 찡그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 네크로폴리스에서도 빡빡하지 않으려나? 초월자의 격이랑은 다른 뭔가가 있어. 분명 본인은 초월자가 아닌 거 같은데..."

­ 그럼, 시간을 벌지.

"안 돼."

­ 부정은 받지 않는다.

"안 돼!"

내 말에 떼쓰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미네. 눈에 담긴 강렬한 두려움을 보며, 나는 오히려 미소를 입가에 담는다.

아아,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소녀인가.

이미 죽은 나를 잃는 것이 두렵다니.

"가지 마."

­ 이만 가보마.

"가지 말라...!"

그녀의 부름에도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공간을 넘는다.

상대해야 할 것은 괴물.

괴물 사냥은 내 전문이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

다음 날.

풀어놓은 결계를 해제하고 다시 이동하기 시작한 우리는 어째서인지 사납게 날뛰기 시작하는 좀비들을 보며, 위험한 녀석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면서 움직인다.

...그 영원한 밤의 마법 소녀? 걔랑 가까운 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흐느적거리기만 하더니, 역동적으로 움직이니까 제법 귀찮네.

"그냥 내려가서 쓸어버리면 안 돼? 근질거리는데!"

"폭격으로 만족해. 우린 빨리 움직여야 하니까."

사이네의 투정에 내가 말하자, 루리에의 품에 안겨 있던 세연이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무언가를 사이네에게 건넨다.

그러자 ?하면서 그걸 받아드는 사이네.

"그거 바닥에 던져버리세요."

"뭔데?"

"일명 불바다 폭탄이라고 불리는 물건이에요."

"섬뜩한 이름인데."

"제가 지은 거예요."

그렇게 싱긋 웃으면서 말하는 세연이. 잠시 바닥을 바라보던 사이네는 잠깐 그걸 바라보다가 다시 돌려준다.

그러자 멀뚱거리며 사이네를 바라보는 세연의 모습.

그 시선에 전격의 마법 소녀는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됐어, 다 쓸어버리는 폭격 같은 건 필요 없다고."

"그러고 싶은 거 아니었어요?"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1이라도 있으면, 그래선 안 되잖냐."

사이네의 말에 세연이가 얼빠진 표정으로 그걸 다시 받아들고,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는 모습.

아무래도 사이네가 거절할 거로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사이네도 일단 마법 소녀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마스터.]

"응."

[굉장히 먼 거리입니다만... 현재 가는 방향에서 마력 폭발이 느껴졌습니다. 여기서 감지됐다는 사실조차 믿기지 않는 거리군요.]

"?"

그건 또 몬 소리예영?

렌의 말에 내가 눈을 깜박이다가, 이내 무슨 말인지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인다.

한 마디로 스타라이트 브레이커 급 마법이 먼 곳에서 터졌다는 소리지?

[그 이상입니다.]

"..."

에반데?

스타라이트 브레이커급 보다 높은 수치의 마법을 한 번에 터뜨렸다는 건, 앞에서 일어난 전투는 적어도 필드 보스급 이상이 마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소리.

렌이 감지됐다는 게 믿기 힘들 정도라고까지 했다면 거리는 상상 이상으로 멀다는 의미다.

그 말은 즉 나보다 훨씬 강한 무언가가 가는 방향에 날뛰고 있단 의민데... 가도 되는 거 맞아?

[솔직히 비추천입니다.]

"...유지한테 이런 게 있단 소리 들은 기억이 없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오신 건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군요. 그렇다는 건 새로 이레귤러가 생겼거나 '있어서는 안 되는 일'로 지정된 무언가가 벌어진 거겠죠.]

"있어서 안 되는 일?"

[순례의 마법 소녀가 말한 것 중에 가장 중요시한 사건이 이미 터졌을 가능성입니다.]

그건 위험한데.

유지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 짚은 것에 대해 떠올린다.

1. 루루 구원에 너무 늦는다. 이 점은 3단계가 진행되고도 좀 뒤에 일어나니까 안심해도 된다고 했다.

2. 필드 보스들을 미리 잡지 못한다. 피해가 좀 커질 예정이라고 했다.

3. 기간 안에 시련의 탑을 깨지 못한다. 이건 그냥 루프 확정이라고 했었지.

"...루루 구원에 늦는다?"

지금도 분명 루루 구원에 늦었다고 생각하고 있긴 하다.

다만, 유지가 분명 3단계가 진행되고 나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는데... 3단계가 예정보다 빨리 와버렸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늦었다고 하기엔 이르지 않나?

[3단계가 예정보다 빨랐으니, 자연스럽게 빨라졌거나... 3단계가 조건이 아니라 다른 원인이었다던가 그렇겠죠.]

"다른 원인..."

이제껏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에서 다른 원인이라고 꼽는다면, 영원한 밤의 마법 소녀, 피오레 지연, 사이네 각성...

"파괴자...?"

설마 루루가 파괴자로서 각성한다고?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녀의 이명은 분명 '빛과 희망의 마법 소녀'다.

유지가 말했던 늦어선 안 된다는 의미는 희망이 완벽하게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피오레 진영을 집어삼키고 마왕 같은 걸로 각성한다는 의미였다.

결코 세계를 완전히 박살 내기 위해 움직이는 녀석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렇군요, 확실히 새로운 파괴자가 탄생할 조건을 만족한 게 원인이겠네요.]

렌의 말에 나는 고요한 눈동자로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다가, 지금까지의 이야기 중에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렌."

[네.]

"너는 유지에 대해 알고 있어?"

[네? 네. 순례의 마법 소녀는 제법 유명한 이야기죠.]

"?"

저기, 그, 그걸 알고 계시면 이상한데요 선생님.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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