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마법소녀는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아!
* * *
텐트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
차마 결계를 나가진 못하고 끝자락에서 바위에 걸터앉는다.
사이네랑 상담이라니, 정말 안 어울린다고 생각은 하지만... 사실 상담 같은 건 루리에랑 어울린단 말이지.
"무슨 일이야."
"그..."
조금 말하기 꺼려진다는 얼굴을 하며 손을 얹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몸을 푹 숙이는 사이네.
하지만 이내 눈을 진지하게 뜬 그녀는 주먹에 전기를 살짝 뿜으면서 말했다.
"3성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3성."
"어, 너랑 루리에는 3성이 됐잖아? 이제 3단계가 됐으니까, 나도 슬슬 위험하지 않나 싶어서."
"음..."
사이네의 말에 나는 잠시 곰곰이 생각에 빠진다.
전에도 생각한 적이 있긴 하지만... 사이네는 마법소녀라 지금 살아남아 있는 거지, 확실히 2성으로 2~3단계를 사는 건 힘들다.
현재 있는 멤버에서 사이네가 최약체일 가능성이 있을 정도.
사이네랑 세연이가 실제로 붙으면, 우리 전격의 마법소녀씨가 질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3성은 나도 몰라."
"음..."
"깨달음을 얻는다, 위기에서 각성한다, 자신의 능력을 깨닫는다... 정도라고 생각해."
나와 루리에는 둘 다 위기에서 각성한 케이스다.
그렇다는 건 사이네 역시 위험에 처해야한다는 소린데... 솔직히 무리지.
...어라.
"그러고 보면, 위험에 처한 적이 있지 않았어."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다.
영토전에서 사망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을 텐데, 왜 사이네는 3성이 되지 않은 거지?
"앙? 아, 그때 아르멘이랑 싸울 때 이야기지?"
"응."
"그러게, 왜 각성하지 않았을까."
사이네가 각성하는 방법은... 위험에 처하는 쪽이 아니다?
조금 생각해볼 일이다.
"네 각성 조건은 위험에 처하는 게 아닌 모양이네."
"씁... 사람마다 조건이 다르다는 건가."
잠시 턱을 괴고 고민에 빠지기 시작하는 사이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사이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없어졌다.
우리는 위험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각성한...
"..."
어떻게든 해야 한다...였나?
아니, 틀리다.
결국 본질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각성한 쪽이다.
설마 마법소녀의 3성 각성 조건은...
"사이네, 너는 각성할 때 외에 누군가를 절실하게 지키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
"앙? 음... 글쎄? 기억나는 건 없는데?"
"..."
우리의 싸움과 사이네의 싸움이 달랐던 이유.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남'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마법 소녀를 각성시키는 조건이다.
어렵네.
그런 건 조건을 안다고 해서 충족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각성하기 위해가 아니라 지키기 위해 움직여야 하니까.
...알아내도 말해주지 않는 편이 더 좋은 쪽일 지도.
"조건은 알 거 같아. 하지만, 말해줄 수 없어."
"어째서?"
"말하지 않는 편이 각성하기 좋기 때문이야."
"각성하기... 좋다고?"
내 말에 사이네가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잠시 후, 하아. 하면서 한숨을 한 번 내쉰 그녀는 엉덩이를 탁탁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좋아, 스노우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응,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
"아냐, 뭐. 나도 답답해서 한 말이니까. 난 좀 수련해볼게. 먼저 가."
그렇게 말하면서 사이네는 자리에 서서 눈을 감고 자세를 잡는다.
처음 보는 진중한 자세.
그 모습을 본 내가 조심스럽게 텐트로 돌아오자, 루리에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무슨 이야기 하고 왔어?"
"인생 상담."
"인생 상담...?"
뜬금없는 걸 들었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멀리서 명상중인 소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루리에. 뭘 깨달은 건지 쓰게 웃은 푸른 소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뒤처지고 있다는 감각이려나."
"..."
난 말 안 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정확하게 상황을 읽어낸 루리에의 발언.
내가 침묵하자 불을 피워내는 것에 성공한 세연이 우리에게 말했다.
"3성 이야기인 거죠? 마법소녀의 3성 진입 조건은 제법 어려울 거 같긴 하네요."
"...?"
"그야 진입 조건이 '인류애'와 관련 있잖아요? 두 사람은 용케도 진입했다 싶어요."
당연하다는 얼굴로 말하는 세연이의 발언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인류애와 관련 있다라고 말한다는 건...
"설마 각성 조건과 첫 클래스 선정은..."
"설마고 뭐고, 맞아요. 두 가지는 연관돼있는 걸요. 히어로는 정의를 관철하기 위한 힘을 위해. 빌런은 자신의 정의를 어떤 방식으로든 이루기 위한 힘을 위해니까... 마법소녀는 다른 사람을 지키기 위한 힘을 위해. 겠네요. 정말 이타적인 클래스라서..."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닫으며 그 후 발언을 담지 않는 소녀.
무슨 말을 하려했는지는 알 거 같지만, 우리 둘은 그 점을 지적하진 않는다.
3성 조건이 그에 연관돼있다면, 분명 4성도...
"제법 중요한 정보일 텐데, 알려줘서 고마워."
"아뇨, 뭐... 굳이 알려주지 않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어찌됐든 아군이 된 사람들은 강해지는 게 좋은 걸요."
조금 쑥쓰러운 것처럼 슬그머니 텐트로 들어가면서 세연이가 말하고, 그걸 보며 루리에가 살짝 미소를 보인다.
근본이 나쁜 아이는 아니다.
자기 자신을 챙기기 위해 위험을 자처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고.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빌런이라고 할 지라도,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닌 거겠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 힘쓰지 않는다.
누군가를 경계하며 움직인다.
다른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게 나쁘다고 말할 순 없다.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루리에."
"응?"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만 사는데, 후회하지 않는 걸까?"
"...우리가 없으면, 그 사람들은 위험해질 테니까.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그래."
당연한 이야기...인가.
루리에가 마법 소녀인 이유를 엿본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ㅡ
Side 사이네
마음을 가다듬는다.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무의식을 따라 정확한 동작을 따른다.
할아버지에게 배웠던 실전 무술.
무수한 경우의 수에 대한 대처법을 담은 그런 무술.
하면 할 수록 정신이 집중되기 시작한다.
지금 나에게 부족한 건 뭘까.
무술가가 아닌 '마법 소녀'로서 내가 부족한 것.
무술가로서도 완성되지 못했지만, 지금 당장 스노우와 다른 이들을 따라가기 위해선 마법소녀로서의 힘이 필요하다.
스노우는 내 움직임을 보고, 여러가지를 익혔다.
직접적으로 무술을 사용하진 않았지만, 마법을 어딘가에 담아 사용하는 방식을 보자마자 익히고, 응용했다.
나는 스노우에게 배워야할 점이 뭐지?
루리에와 스노우.
두 사람과 다른 점이 분명 있을 터다.
루리에는 서포팅에 주력하면서도 본인 스스로도 적을 지연시키고 묶는 전술.
스노우는 여러 마법소녀의 마법을 다루면서 그 마법소녀의 전투 방식을 익혀 그대로 적용하는 방식.
나는... 뭐지?
나름대로 마법 소녀의 기술과 내가 가진 무술을 합쳐 보려고 했지만, 그건 무술가로서 강화된 거지 마법소녀로서 강해진 게 아니다.
그렇다면 마법 소녀로서 강해지려면...
"마법을 써야한다. 인가."
순수하게 마법소녀로서 마법만으로 싸운다.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무술로 전투하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마법 소녀의 마법으로 전투한다.
억지로 변형하지 않는다.
"...마법소녀의 마법은 어떤 걸까."
마법 소녀는 어떻게 탄생하지?
루리에는 인류애라고 말했다.
나 역시 가까이 있는 사람을 지키고, 스스로 살기 위해서 각성했다.
그렇다면.
마법 소녀의 마법은 지키기 위한 마법이다.
ㅡ전격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지키기 위해선 적을 쓰러뜨릴 수밖에 없는가?
오래 전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는 만화들을 기억해낸다.
주인공인 사람 중 번개를 다루는 자는 분명 그런 성향이 있었지.
전격은 파괴의 신으로서 움직였다.
하지만 전격을 쓰는 사람이 주인공이 아닐 때도 그렇게 움직였나?
"아니."
전격으로 마비시키거나, 전격으로 적의 경로를 막는 등의 다양한 일을 했었지.
나처럼 튀어나가는 전격을 갈무리하는 게 아니다.
제멋대로인 전기의 흐름은 인정한다.
결계의 바깥으로 날아오른다.
전격의 마나가 사방으로 뛰쳐나간다.
갈무리 하지 않는다.
날뛰도록 내버려둔다.
파지지직!
마나의 흐름을 따라 마법을 움직인다.
형태를 만들어내지 않지만, 과정을 따른다.
제대로 된 형상은 아니지만, 목적을 위해서는 확실하게 움직이게 만든다.
"일렉트릭 웨이브!"
사방으로 퍼져 나가야 할 전격.
하지만 전격의 제멋대로의 흐름의 범위를 정하자, 그 쪽 방향으로 더 넓게 나아간다.
단순히 생각해도 원래 범위의 2배.
그런가.
너는 제어할 이유가 없었던 거구나.
너는 제멋대로지만, 내 말을 들어주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었구나.
그렇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보지 않을래?
"뇌령폭주!"
온 몸에 전격의 마나가 휘감긴다.
육체를 강화시키는 게 아니라 풀어놓자, 마력은 내 몸을 지키는 게 아니라 온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의 의지에 따라 뒤에 있는 결계에 타격을 입히진 않는다.
내 의지를 따라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 그대로 행한다.
아군을 지켜내면서 동시에 공격적인 모습을 잔뜩 뽐낸다.
나는 '전자의 마법소녀' 사이네.
인류를 수호하면서, 동시에 심판을 행하는 자.
"이런 간단한 걸... 왜 이제껏 생각하지 않은 거야, 난."
[ㅡ현 플레이어 'Saine'에게 적합한 흐름을 확인합니다.]
[각성 방향 확정 '수호자']
[심판자가 아닌 수호자로 각성한 점에 찬사를 표합니다.]
[스킬 '썬더 웨이브'를 얻었습니다.]
[스킬 '전자력'을 얻었습니다.]
[스킬 '자기 이해'를 얻었습니다.]
[당신의 아이디어와 무수한 발전을 기대하겠습니다.]
['Saine'는 더 이상 NPC가 아닙니다.]
[세계의 수호자가 2명이 됐습니다. 추가 파괴자를 확인합니다.]
[확정, 파괴자 인자를 발견. 파괴자로 설정합니다.]
[파괴자로서의 기연을 부과합니다.]
[수호자 'Saine'에게 기연을 부과합니다.]
[당신의 전용 무기를 찾아내십시오. 그 것은 당신이 가야할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
3성으로 각성했다는 증거인 플레이어의 이름.
그와 함께 내 깨달음에 맞는 스킬을 익힌 것까진 좋았지만.
ㅡ파괴자라는 알 수 없는 녀석이 추가됐다는 건,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뭔가 난리치고 있는데.
밖에서 열심히 마법을 쓰면서 날뛰고 있는 사이네를 보며, 나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의 스킬은 원래 쓰던 스킬을 변형시킨 것.
점점 화력이 세지고, 여러가지 효용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걸로 볼 때...
"깨달음으로도 각성할 수 있는 거 맞지...?"
"그, 글쎄요...?"
사이네가 실시간으로 3성으로 진심하는 과정을 보며 내가 말하자, 세연이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걸 바라보면서 뺨을 긁적인다.
뭐, 요컨대 그거다.
위기 상황에 처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할 일에 대해 확실하게 인지했다.
그리고 그걸 해내기 위해 고민한 결과 그게 각성으로 이어졌다는 거겠지.
각성이 저런 느낌으로 보이는 구나.
실시간으로 주변의 마력을 쭈욱 하고 흡수하고, 그걸 전격의 마력으로서 호흡한다.
그리고 그 마력을 활용해 마법을 증폭하고,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거지.
"..."
근데 별의 마력이 좀 섞인 거 같은데요?
별 생각없이 그걸 바라보다가, 나는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하고 만다.
왜 전격의 마력 사이사이에 별의 마력이 보이는 걸까.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결과라 의문을 가지자, 렌이 고요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호자군요.]
"수호자."
[네, 별의 마력을 사용하는 자들은 '수호자'의 운명을 가지게 된 사람들입니다. 객체 '상혁'과 같은 느낌이죠.]
"상혁."
[루시에르를 말합니다.]
"아."
생각해보면 루시에르도 별의 마력이었지?
그렇다는 건... 지금 각성으로 사이네가 수호자가 됐다는 뜻?
"수호자가 여러 명일 수도 있는 거야."
[드문 케이스입니다만, 그렇습니다. 다만...]
"다만?"
[수호자로 후천적 각성이 일어났다는 건, 후천적 파괴자도 선택됐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각성할 재료는 스스로 찾아내야 하죠.]
"으음..."
그건 귀찮네.
렌이랑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사이네가 다시 결계 안으로 들어온다.
그런 그녀를 반기며 식사 준비를 마치는 루리에.
...사실 안 먹어도 되긴 한데, 세연이도 있고 받았으니까 먹는 거에 가깝다.
보존 식품이라 맛은 보장 못하지만.
"파괴자라는 게 새로 생겼데."
"파괴자인가..."
원래 파괴자는 한국에 있는 그 아이지?
미류의 마스터인 미연이.
어쩌다가 파괴자가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멤버로서 미류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그걸로 볼 때 파괴자가 실제로 파괴를 일으킬지 어떨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기억은 해두자.
"일단 기억은 해두자. 그래도 우리 목표는 변하지 않았어."
"어, 루루를 구하는 거지?"
"그래."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네. 우리의 대화를 들은 루리에가 미소를 보여준 것은 덤이었다.
파괴자가 누구로 된 건진 모르겠지만, 미류의 사례를 볼 때 만나서 설득하면 되겠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며, 우리는 오늘도 하루를 보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