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마법소녀는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아!
* * *
잠시간의 대치.
하지만 그 대치조차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 건지, 라덴이라 불린 남자는 투구를 벗으며 나에게 다가온다.
'타오른다'라는 감상밖에 남기지 않는 붉은 머리카락.
허리까지 머리칼이 오고 있음에도 남자답다는 감각을 지울 수 없는 모습을 한 미남자의 모습에 나는 잠깐 렌을 바라본다.
...무슨 사이인 거야.
[마스터.]
"응?"
[잠시 간소 실체화해도 괜찮겠습니까?]
"...?"
그건 몬데요.
[지팡이가 아니라 요정으로 변하는 겁니다.]
"그런 거 할 수 있다고 들은 적 없어."
[안 물어봤으니까요.]
"..."
맨날 그걸로 넘기려는 거지 아주?
"나한테 손해가 있으니까 물어보는 거지."
[지속시간 동안 마나 소모는 페널티가 아니니까 넘어가겠습니다. 다만, 저를 통하지 않으니 마법의 순도나 위력이 감소하겠죠."
"이미 설치된 건."
[결계는 괜찮습니다.]
"응, 그럼 알겠어."
어차피 지금 서로 알아보고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이다. 딱히 싸울 일은 없겠지.
내 말에 렌이 알아서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지팡이의 형상에서 서서히 조그마한 인간의 형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렌의 말대로 아주 작은 요정의 형상이었다.
인형 같다고 해야 할까.
무릎까지 오는 길고 검은 생머리.
보는 사람에게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붉은 눈동자.
그런 외모와 상반된 흔히 잠자리 날개라 부르는 요정의 날개.
밤하늘과 같은 색의 검은 원피스.
...마족이라고 생각되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이 모습은 제법 오랜만이네요."
"그렇군."
"요정형으로 당신 앞에 선 건 처음입니다만."
"..."
뭘 아는 척하냐는 것처럼 렌이 말하자, 라덴은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회피한다.
저거 나한테만 하는 거 아니었구나.
"애초에 당신들의 종족은 그게 문제입니다. 뭐든 아는 척하려고 하는 버릇, 늘 고치라고 했을 텐데요."
"아니, 그..."
"그리고 제가 언제 아는 척하라고 했습니까. 제가 지팡이 형태면, 딱 봐도 어떤 상황인지 모릅니까? 드래곤이라는 종족은 지능이 제법 뛰어난 것으로 기억했는데, 오늘 라덴을 보니 생각이 바뀌는군요. 데이터를 수정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그러니까 당신이 그런 멍청한 자들한테 조종당하는 겁니다. 드래곤이 몬스터로서 부려진다니, 수치스럽지도 않습니까?"
"시끄럽다! 나라고 해서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닌 건 너도 알고 있을 터!"
속사포처럼 쏘아지는 렌의 매도에 불같이 화를 내며 인상을 팍 찌푸리는 미남자. 화를 참지 못해 마력 제어가 되지 않는 건지, 순간적으로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렬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자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손을 한 번 휘젓는 렌.
잠시 후 주변 위압감이 완벽하게 사라지며, 드래곤에게 푸른 마력 링 같은 게 걸려있는 걸 확인한다.
[마나 컨트롤 링]
자신보다 급이 낮은 상대의 마력을 봉인합니다. 숙련도에 따라 상대가 빨리 풀려날 수도 있습니다.
"제정신이 아니군요, 누가 저한테 화내도 된다고 말했습니까."
"히끅."
렌이 표정 하나 없이 말하며 다가오자, 드래곤은 덩칫값도 못하고 딸꾹질을 하며 몸을 서서히 물리기 시작한다.
아니, 그보다 저 마법은 또 모예요. 저런 개사기 마법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 정상은 아닌 거 같은데.
아이템인 줄 알았더니 마법 취급이라 내 마법 리스트에도 등록된 상황이다.
...유용하게 쓰자. 애초부터 줬었으면 좀 편했겠지만.
"자, 라덴. 말해보시죠, 당신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저, 그..."
"또 말을 늘리는군요."
"아니, 아니다! 네 주인이 손가락으로 툭 치면 죽을 수준인데, 마력을 뿜어서 미안하다!"
"또."
"화, 화내서 미안하다."
"또."
"아, 아는 척해서 미안하다?"
"또."
"어..."
모지, 가만있는데 묘하게 까인 거 같은데.
렌이 드래곤을 완전히 압도한 채로 쩔쩔매게 만드는 모습에 나는 그저 멍하니 그 광경을 관전한다.
...이거 슬슬 내가 끼어들어도 되는 거 맞죠?
나 나름대로 주인공... 어라, 방금 내가 무슨 생각 했지. 아무튼 렌 마스턴데 물어봐도 되는 거 맞지?
"렌."
"네, 마스터."
"그래서 무슨 상황이야."
"음... 곤란하네요."
내 말에 렌은 잠시 턱에 손을 얹으며 고민의 기색을 보인다.
...요정 형태라 그런지 엄청 귀엽다는 건, 말하지 말자.
"말 안 해도 들립니다."
"그 상태여도 들리는구나."
내 속마음을 읽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렌을 보며,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마치 확인 작업을 했다는 것처럼 보이는 내 반응에 렌은 쪼르르 내 앞까지 날아오더니, 이내 톡. 하고 이마를 치면서 말했다.
"제 전생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신경 쓸 일은 없겠죠."
"..."
그거 엄청 궁금한 소잰데요.
그리고 지팡이의 형태인데 전생이 있다니, 그건 그거대로 신기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요즘 검이나 온천으로도 전생하던걸요."
"...그 이야기가 아냐."
"마스터의 짐작이 맞습니다. 그냥 마법 지팡이에 영혼을 이식한 거뿐이죠."
"그럼 다른 마법 소녀들 무기도?"
"마스터는 대체 마법 소녀가 얼마나 적을 거로 생각하는 겁니까?"
"어..."
세력이 생길 정도면 어느 정도 있다는 이야기긴 하겠지?
저번에 악의 세력 측 마법 소녀도 있다는 걸 알았으니, 숫자는 더 늘어날 확률이 높겠지.
과연, 그렇네.
그런 숫자의 마법 소녀에게 전부 영혼을 가진 무기를 줬다간, 아예 마법 소녀 무기 군단이 완성돼버릴지도.
렌만 해도 가진 기능이 어마어마해 보이니까, 틀림없다. 마스터가 따로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상한 생각을 하시는 거 같지만, 얼추는 맞습니다."
"이봐, 대체 무슨 대화를 하는 거야?"
"...그리고 저 생명체는 제가 지팡이가 되기 전에 저와 함께 지냈던 몬스터입니다."
"그렇구나, 함께 지냈던 몬스터... 응?"
함께 지냈던 몬스터라는 단어가 성립되나?
"누가 몬스터라는 거냐! 나는 위대한 레드 드래곤 일족의..."
"망나니죠."
"망나... 아니야!?"
자기를 소개하려는 라덴의 말에 자연스럽게 렌이 침투하자, 그대로 말하려던 그가 급하게 부정한다.
하지만 이미 망나니라고 소개 당한 시점에서...
"인간, 나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제 마스터입니다."
"...보지 마..."
"귀먹었습니까, 드래곤?"
"아, 좀! 아무리 그래도 나도 드래곤이란 말이다! 고작 해봐야 인간에게...!"
"고작?"
"쓰벌..."
아, 못 참고 욕했다.
렌에게 계속해서 구박받다가 결국 욕을 하고 마는 라덴. 그러자 렌의 무표정이 아주 살짝, 미소가 담기는 것을 나는 볼 수 있었다.
...즐기고 있어!?
생각하는 것처럼 입을 손으로 살짝 가리고 있지만, 내 각도에서는 너무나도 잘 보이는 그 모습에 렌이 잠깐 나를 바라보고는 쉿. 하는 손가락을 보이는 모습.
저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라덴, 저는 당신을 그렇게 교육한 적이 없습니다."
"애초에 너한테 교육받은 적은 없어!"
"...그래서 무슨 관곈데."
"라덴이 헤츨링일 때, 제가 잠시 맡은 적이 있습니다."
"잠시라면?"
"50년 정도."
"그럼 렌 나이는..."
"마스터."
"..."
꿀꺽.
내가 렌의 나이를 가늠해보려는 순간, 그녀에게서 들려온 무감정한 목소리에 침을 꿀꺽 삼키고 만다.
그래도 내가 마스턴데, 나 죽일 생각은 아니지...?
내 생각을 읽은 렌이 그저 싱긋. 하고 한 번 웃어 보이는 걸 보며, 나는 그대로 입을 닫는다.
응, 나이 관련으로 물어보진 말자.
"그럼 다른 세계 사람이구나."
"예, 애초에 영혼까지 소멸할 예정이었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이렇게 됐군요."
"...응. 그럼 그건 그렇다 치고, 저 라덴이라는 사람을 데려온 이유가 뭐야."
"무례하군."
"무례한 건 당신입니다."
"..."
그런 티키타카는 됐으니까.
"몇 가지 이점이 있죠."
"이점?"
"이 세계의 관리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현 관리자가 무슨 생각으로 필드 보스들을 움직이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몬스터인 척하던 그만이 알 수 있는 추가 정보도 있을 거고요."
"...그걸 보통 본인 앞에서 말하나?"
"마스터가 궁금해하셨으니까요."
"그놈의 마스터..."
"답변해주실 거죠, 라덴? 언젠가 마스터 랭크가 올라가면 그 정도 계약은 풀어드릴 수 있습니다만."
"...하아, 뭐 좋다. 이야기해주마."
그렇게 라덴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어이! 루리에! 슬슬 도망가자!"
"후우..."
계속해서 얼음으로 된 거대 인간 형상 인형을 만들어 베히모스의 방향을 유도하던 루리에.
사이네의 말에 땀을 삐질 흘리면서도 피난민들이 간 방향과 정반대 방향으로 얼음 인형들을 수십 개 세워내기 시작한다.
"와, 마법 쓰는 거 많이 늘었쟝."
"...그보다, 드래곤은?"
"몰라, 아까 스노우가 유인해서 멀리 가버리던데."
"?"
아예 도시를 벗어날 정도로 멀리 갔다는 발언에 루리에는 눈을 깜박이다가 하늘로 날아올라 주변을 둘러본다.
피난민들이 제법 먼 곳으로 이동한 것 외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
마법 소녀의 비행 속도를 떠올린 루리에는 으음... 하더고 신음성을 내더니, 곧바로 채팅창을 연다.
[Rurie : 스노우, 어디야? 괜찮아?]
[Snow : ...괜찮아.]
[Rurie : 지금 합류할게.]
[Snow : 응, 현재 위치가...]
루리에의 채팅에 곧바로 자신의 좌표를 찍어주는 스노우. 하지만 이내 좌표를 받은 루리에가 그 방향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다시 그녀에게서 메세지가 도착한다.
[Snow : 지금 당장 오면 공격받을 거야.]
[Rurie : 괜찮아, 유도는 같이하는 게 편하니까.]
[Snow : 렌이랑 아는 사이라서 싸우고 있진 않아. 그런데, 다른 마법소녀가 오면 그쪽으로 공격할 수밖에 없데.]
[Rurie : ???]
스노우의 채팅에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고 마는 루리에. 그 반응에 사이네도 궁금해진 건지, 보채는 것처럼 루리에에게 물었다.
"스노우가 뭐래?"
"그... 스노우 디바이스 이름이 렌이거든?"
"어, 알고 있어."
"걔랑 그 드래곤이랑 아는 사이래."
"???"
루리에의 말에 사이네 역시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한 얼굴로 변하고, 두 사람은 허공에 멈춰선다.
그러자 땅에서 SOS를 보내는 조난민처럼 푸른 마력으로 빛나는 기둥을 흔들기 시작하는 세연이.
잠깐 서로를 바라본 두 사람은 이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땅으로 내려서 고민했다.
...이거 기다려야 하는 거 맞지? 라고.
대충 라덴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1. 현재 이 세계에 종말을 일으킨 관리자는 1명이고, 그 관리자의 휘하에 몇몇 초월자와 초월체가 있다.
2. 최근 마법 소녀 클래스를 만든 이상한 관리자가 추가됐다.
3. 이번에 3단계로 빠르게 올라간 이유는 멸망을 가속하기 위해서 기도 하지만, 누군가 씨가 필드 보스를 잔뜩 풀어놔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고 한다.
"..."
3단계가 된 건 우리 빛의 마법 소녀 스태프 씨가 원인이군.
필드 보스들이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가 깨어나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린 모양이다.
마법 소녀 클래스를 만든 관리자야 당연히 M의 이야기일 거고.
몇몇 초월자와 초월체도 짚이는 부분이 없진 않다.
"피오레가 관리자 측 초월자겠네."
"흠? 잘 아는군. 이번에 좀비 아포칼립스를 일으킨 녀석도 나쁘지 않아. 머리가 좋은 녀석이야. 초월자가 된 지 얼마나 된 건진 몰라도 피오레가 있다는 걸 알자마자 빠르게 일으켜서 전력을 양산했더군. 그래서 미국은 3분할 돼버렸지."
"3분할."
"좀비 아포칼립스를 일으킨 마법 소녀, 피오레, 그리고 좀비를 막아낸 생존자 연합."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것치곤 정보가 많았군요, 라덴."
"음? 아니, 나는 관리자 휘하 초월체니까."
"..."
"지금 죽이면 편하겠군요."
"혹시 아까 종속 풀어준다고 했던 약속은 벌써 잊어버렸나?"
렌의 말에 당혹스러운 얼굴로 말하는 라덴의 모습. 생각해보면 렌 지금 스펙 나랑 똑같은 거 아냐? 왜 필드 보스인 드래곤이 저렇게 쫄아...?
"제가 스노우님 스펙이면, 정확히 6성까지 죽일 수 있습니다."
"?"
넹? 모라구요?
렌의 말에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라덴을 바라보자, 그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의 의사를 표한다.
3성 스펙으로 초월자급 스펙을 낼 수 있다니, 얼마나 고스펙인 거야.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갑작스럽게 드는 의문.
그럼 평소에 내가 아니라 렌이 싸우면 됐던 게?
"음... 그랬다간 스노우님이 말라 죽지 않을까요. 회로가 깨질 염려도 있고요."
"...?!"
"조절할 자신은 있습니다만... 그렇네요, 만티코어라던가 라덴 같은 사람이랑 싸우면 스노우님이 죽는다는 전제하에 이길 수 있겠군요."
"내가 싸울게."
렌의 말에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한다.
그렇구나, 딱 그런 의미네.
죽일 스펙은 되지만, 소유주의 마력 회로가 감당 못 하니까 자제하고 있단 의미다.
"잘 아시는군요."
"..."
렌 성격이 이렇게 나빴나?
어쩐지 디바이스 상태일 때보다 좀 더 성격이 나빠진 렌을 뚱한 얼굴로 바라보지만,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이 미미한 미소만을 담을 뿐이었다.
에휴, 렌한테 이기려고 들 바에야 내가 앓아눕지.
...어라, 잠깐.
"싸울 때마다 깨져나가는 프로텍션..."
"그건 현 스노우님 스펙에 맞춰서 쓰는 거라 어쩔 수 없습니다. 몸을 보호하기 위한 마법으로 몸을 망치면 안 되니까요."
"..."
"강해지시길 바랍니다, 마스터."
"네."
"흐음, 슬슬 위험할 거 같다만, 어떻게 할 거지? 내가 너희를 놓쳤다는 이야기만 했다간 믿어줄 리가 없지."
"제가 있었다는 걸 직접적으로 언급하셔도 됩니다."
"...호, 그럼 괜찮겠지."
렌의 말에 라덴은 수긍의 의사를 표하며 다시 드래곤의 형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요정 모습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고 디바이스로 돌아가는 렌.
잠시 후 서로 비행하기 시작하고, 나는 재빠르게 결계를 해제하며 도망치듯 날아간다!
스노우. 라고 했나. 너에게서 톱니바퀴가 보이는군. 실수 없이 해야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거다.
"?"
라덴의 말에 나는 뒤를 슬쩍 바라보지만, 그는 나와 정반대로 비행하기 시작한다.
이건 또 무슨 떡밥이야.
렌을 보며 아냐는 눈빛으로 바라보지만, 나 마나 없어요~ 하는 느낌으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쩐지 심통이 나 마력을 크게 불어넣자, 귓가에 들려오는 가벼운 한숨.
[마스터, 그러다가 진짜 마력 탈진 걸립니다.]
"...미안."
나는 평생 렌을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