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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64화 (64/149)

〈 64화 〉 마법소녀는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아!

* * *

워싱턴D.C.

며칠 동안 좀비들을 넘어뜨리며 도착한 우리는 지도상으로 워싱턴이라고 적혀있는 지역에 도착했다.

"..."

"어..."

그곳에서 본 건, 거대한 쇠로 된 원형 돔과 그 위에 만들어진 거대한 포대.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우리 측에 있는 초월자들이 기갑 군단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초월자가 워싱턴에 자리를 잡은 걸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의외로 많은 인원이 살 게 되고, 여차여차해서 원래 있었던 사람들과 공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대체...?

크롸롸롸롸!

거대한 드래곤이 하늘에서 울부짖는다.

땅에서는 거대한 소 형상을 한 9꼬리의 괴물이 날뛰고 있다.

거대한 철돔는 이미 녹거나 여기저기가 찢어지고, 부숴진 지 오래.

내부에는 임시로 만들었을 거라고 예상되는 천막들이 모두 찢겨나가거나 불타고, 여기저기에 사람들의 시신이 넘실거린다.

유일하게 남은 곳은 돔 가장 안쪽에 남아 있는 레이저 포대와 각종 무구로 포장된 건물 하나.

거기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건지, 한 눈으로 봐도 사람들이 많다는 게 눈에 띄고 있었다.

이것저것 결계나 하늘에서 계속해서 나타나는 철판이 용과 베히모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오래 유지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돕자."

"미쳤어요?"

"저 사람들, 지금 안 도와주면 죽어. 그리고 공격 중인 건 필드 보스들이야. 이미 우리는 녀석들의 공격 범위 안으로 들어왔겠지."

"전 빠질 거예요."

"응."

루리에의 말에 질색하는 표정으로 내려달라는 의사를 표하는 세연.

내가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건물에 내려주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면서 잠시 도시를 바라본다.

음... 역시 세연이는 히어로가 아닌 거겠지?

히어로 클래스는 기본적으로 위기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는 성향이니까.

"스노우 씨."

"응."

"마법 소녀는 인류애로서 정해지는 클래스라고 들었어요."

"그럴지도."

"하지만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는 구별해야 해요. 필드 보스는 재앙이에요. 한 마리라면 모를까, 두 마리의 사이에서 사람들을 구해낼 순 없다고요."

"...응."

"듣고 있는 거 맞아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물러나야 할 때도 알아야 한다는 거지."

"...맞아요. 지금 저기 가면 모두 개죽음이에요. 잘 생각해서 행동하는 게 좋을 텐데요."

세연이의 말에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다.

대놓고 마법 소녀에게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하란 소릴 하다니, 굉장하네.

그래도 그녀의 말은 틀린 점이 하나도 없었다.

한국에 있을 당시 필드 보스 하나를 잡겠다고 별짓을 다했었지.

여러 초월자가 현 단계 한계치까지 힘을 끌어올려 방해하고, 공격했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억지로 루시에르를 각성시키고, 단계의 한계를 한 단계 넘게 만들었다.

그 상태로도 딜링이 모자라서 내가 마력 회로를 망가뜨리면서 겨우겨우 쓰러뜨렸었지.

지금 보이는 필드 보스는 그때의 필드 보스 수준이거나 그 이상인 수준.

2마리를 상대라면, 100% 사망이다.

"하지만 괜찮아."

"괜찮기는...!"

"우리는 저 녀석들을 잡기 위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잖아."

"네?"

내 말에 세연이가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필드 보스를 잡는 게 아니다.

세연이라면 이 말의 뜻을 이해할 거로 생각하지만...

"떠드는 데 미안하지만, 먼저 간다고! 이대로는 정말로 다 죽어!"

"응."

"먼저 다녀올게. 사이네, 네가 드래곤 쪽을."

"켁, 귀찮겠구만. 알겠다고."

루리에의 말에 투덜거리면서도 사이네는 전격의 마력을 흩뿌리며 고속으로 날아간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ㅡ모든 인간들이 피난할 때까지 어그로를 끈다.

"너는 날지 못하니까, 어차피 불가능했어."

"제정신인가요? 저런 걸 상대로 어떻게...!"

"일단 우린 한국에서도 필드 보스를 잡고 온 사람들이야. 피하는 것만 하는 정도는 간단해."

"네에...?"

놀란 표정을 짓는 세연이에게 시스템 창을 열어 잠시 로그를 살펴 한 메세지 창을 보여준다.

레이드에서 기여도 1위 했다는 걸 증명하는 로그.

보여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선 확신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세연이한테도 로그가 보인 건지, 이제껏 없을 정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레이드 보스를 잡은 건 이쪽 세계에선 우리가 최초일 테니까...

"마법 소녀라는 건 만용의 대가를 뜻하는 거였군요."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거야."

"2단계면 초월자들도 필드 보스들을 피한다구요."

"어떻게든 됐어."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고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하자, 세연이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다.

아무튼 슬슬 나도 준비해야 한다.

지상의 루리에야 베히모스를 자극한 뒤 필드를 만들어 노련하게 공격을 피해내고 있지만, 사이네는 위험하다.

멤버 중에 회피 관련으로는 가장 빠르겠지만, 상대는 드래곤.

애초에 속도와 덩치부터 다른 적이니까.

드래곤 같은 게 몬스터로 나오다니, 밸런스는 어떻게 된 거야.

"하긴 원래 밸런스 같은 건 없었지."

하나 같이 악의 가득 찬 녀석들뿐이었어.

마법 소녀들이 아니라면 많은 사람을 죽였을 녀석들.

고블린들은 기본적으로 떼로 다니기에 파티를 강요했다.

오크는 잡을 정도는 됐지만, 첫 각성을 진행한 사람들을 학살할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다른 세계에서 넘어왔다는 초월자들은 능력이 제한된 상태였지만, 기본적으로 엄청 하이 스펙인 사람들이었다.

'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 모든 녀석은 그 세계의 원주민들이 감당할 수준을 하고 있지 않았다.

불합리한 적들.

그런 적들을 상대로 버틸 수 있었던 건, 인간들의 끈질김과 몇몇 뛰어난 인간들, 그리고 마법 소녀들 덕분이었을 뿐이다.

최소한 한국은 그랬다.

미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사이네, 공격은 거슬릴 정도만. 회피에 집중해."

"알고... 있다고...!"

용의 몸통 박치기를 간신히 피해내면서 사이네가 소리치곤 스킬조차 발동하지 않고 전력으로 비행에 집중한다.

가끔 용의 시선이 이상한 곳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전격의 마력만 살짝 일으켜 모기처럼 간지럽힐 뿐.

하지만 공격받았다는 것 자체에 성질이 난 건지, 연신 울부짖으며 달려들던 용이 이내 허공에 뚝. 하고 몸을 멈춘다.

그와 동시에 감지되는 거대한 마력.

"브레스야."

콰아아아­!

원뿔 범위로 사방으로 퍼져나오는 브레스를 보며, 사이네는 미끄러지듯 뒤로 쭈욱 전격을 밟고 물러난다.

나는 윈드 스텝으로 허공을 밟고 브레스의 공격 범위를 회피.

도시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쏘아지게 된 공격에 나는 안도의 한숨만 내쉬며 곧바로 슈팅 스타를 발동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티티팅!

물리력을 가진 탄막이 맥없이 튕겨 나가는 모습에 혀를 한 번 차고 그대로 꼬리 공격을 회피.

슬쩍 하고 땅을 바라보자, 루리에가 마치 투우하듯 적을 약 올리며 공격을 피해내는 것이 눈에 띈다.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사이네, 가서 피난 권고 날려. 내가 어그로 끌게."

"뭐? 우왓! 무슨 소리... 저 바보들이!"

자신을 물어뜯기 위해 입을 벌린 용의 이빨을 고도를 낮춰 피해낸 사이네가 저공비행을 개시하자, 나는 곧바로 물의 마력을 일으켜 녀석의 눈을 향해 공격을 날린다.

도시 사람들이 우리를 돕기 위해 뭔가 준비하려고 하고 있다.

방해다.

시간을 끌어줄 때, 제발 빨리 피해줬으면 한다.

나름대로 초월자가 껴있는 거 같지만, 제작계 초월자가 생산시설이 망가진 현장에서 도움이 될 리가 없잖아.

사이네가 급하게 사람들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하고, 나는 용의 눈앞에서 물의 마력과 전격의 마력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러자 나에게 뭔가 위험을 느낀 듯 크르릉. 하면서 고도를 높여 비행하기 시작하는 용의 모습.

붉은 비늘을 가진 드래곤이 하늘에서 잠깐 멈추자, 그 주변에 거대한 화염구 10개가 나타나 나에게 쏘아지기 시작한다.

마법 대전 요청이야?

"..."

소위 판타지에 나오는 드래곤은 마법의 종주라고 불리는 종족이다.

상성 차이가 나도 서로 마법이 부딪힌다면, 분명 필패.

괜히 마법끼리 부딪치기 보단 여기선...

"윈드 스..."

[나는 그 마법을 거절한다.]

[매직 카운팅으로 대항합니다... 대항 성공!]

내가 마법을 쓰려는 순간, 어디선가 묵직한 목소리와 함께 마법이 캔슬되려다가, 간신히 발동에 성공한다.

어...라?

방금 무슨 일이 일었던 거지?

순환시를 펼치진 않았기 때문에 상황을 확실하게 본 건 아니지만, 방금 마력의 움직임은 분명 '디스펠'에 관련된 종류.

실제로 오른쪽에 '디스펠'과 '매직 카운팅'이라는 스킬이 등록됐다고 떴으니, 틀림없다.

방금 나는 렌이 반응하지 않았다면 확실하게 죽었다.

"렌...?"

[지성이 없는 척하다가 디스펠을 하면 제가 못 알아챌 줄 알았나 보군요. 같잖습니다.]

내가 멍하니 그녀를 부르자, 렌은 묘하게 들뜬 목소리로 그렇게 답한다.

그러자 허공에서 움직임을 멈추는 붉은 용의 모습. 잠시 후 좀 전에 들려온 묵직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나에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스터 피스이자 잃어버린 유산. 그대가 어찌하여 이곳에 있는가.]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군요.]

[시치미 떼지 말거라. 너는...]

[저는 별무리의 마법 소녀 '스노우'의 에고 웨폰, '렌'입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잘 모르겠군요, '라덴.']

"...."

아니, 방금 스스로 발언했지?

방금 라덴이라고 상대를 알고 있다고 대놓고 말했지!?

내가 마음속으로 태클을 걸며 그녀를 바라보지만, 렌은 나에게 아무런 응답도 내지 않는다.

너 지금 말하는 거 내 마력으로 말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제 기능 쓸 필요가 없으신가요?]

"미안."

너무하네 진짜.

렌의 말에 나는 약간 뚱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밀고, 라덴이라 불린 붉은 용은 잠시 우리 둘의 케미를 보면서 침음성을 흘린다.

잠깐의 소강상태.

아래를 바라보니 베히모스를점점 도시에서 멀어지게 하는 루리에와 시민 피난에 힘쓰는 사이네의 모습이 잡힌다.

상대에겐 지성이 있다.

대화로 해결할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그런가. 그럼 '렌'. 미안하지만, 나는 현재 종속된 몸이지. 서로 굳이 지체할 필요는 없겠군.]

[네, 분명 저의 마스터는 현재 당신보다 상당히 약한 측이기 때문에 지금은 저희가 물러날 수밖에 없어 보이는군요.]

[나는 필사적으로 네 녀석을 따라갈 생각이다만.]

[따라올 수 있다면야.]

마치 사인을 맞추듯 의미심장한 발언이 연속해서 들려온다.

그 말을 끝으로 다시 고속 비행 태세를 취하는 드래곤의 모습.

그 모습에 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회피 기동을 준비하자, 렌이 나에게 말했다.

[마스터, 일단 일자로 고속 이동입니다. 서쪽으로 2km 정도 가면 나오는 공원이 좋겠군요. 그곳에 안착하고, 곧바로 테나가 생성 가능한 결계 '세인트 가든'과 '아쿠아 실드'를 겹치고, '사일런스 필드'까지 중첩해서 발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응...?"

[드래곤은 싸우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말을 따라주시길.]

"알겠어."

렌의 말대로 해서 손해 본 적은 없으니까.

분명 드래곤의 비행이 나보다 빠를 거로 생각했는데, 내가 일자로 고속 비행하기 시작하자 의외로 속도는 동급.

생각해보면 비행스킬, 마스터였지.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 미숙했을지언정, 일자로 이동하는 비행 속도가 그리 느릴 리가 없었다.

비행 스킬이 마스터라는 건, 활용도는 몰라도 비행 자체 숙련도는 최대치라는 거니까.

단순한 고속 이동에서 비행을 따라오려면, 똑같이 비행을 마스터해야 한다는 의미다.

...마법소녀 사기쟝.

"저기."

[네, 저쪽입니다.]

렌의 말에 나는 비행하면서 그녀가 말했던 마법을 동시 시전하기 시작한다.

약간의 딜레이가 필요한 스킬.

이동 비행 중에는 불가능한 기술이지만, 방향이나 그런 걸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일자 비행하는 동안에는 이 정도는 할 만했다.

거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풍압에도 나는 평온하게 마법을 발동하기 시작한다.

첫 결계가 펼쳐지는 순간, 귀신같이 드래곤의 움직임이 멈춘다.

두 번째로 아쿠아 실드가 뒤덮자, 서서히 지상으로 착륙하기 시작하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결계가 펼쳐지자, 드래곤은 쿵. 하고 바닥으로 착지에 성공한다.

그리고 붉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점점 몸이 작아지기 시작하는 모습.

명백하게 싸움을 거부하는 드래곤의 모습에 나는 눈을 깜박이면서도 가만히 공원에 착륙했다.

[지금이라면 간섭이 없겠습니까?]

"음... 종속 계약 자체는 아직 붙어있다만, 시선은 차단된 모양이군. 딱히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좋습니다, 그럼 이야기할 여건은 마련됐군요.]

드래곤의 머리 형상을 한 붉은 투구.

어깨 너머까지 내려오는 남성치고는 약간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는 모습.

그리고 붉은 풀 플레이트 메일로 전신을 무장한 남자가 내 눈앞에 서있었다.

이때까지와는 다르게 확연하게 다른 장르에서 온 것 같은 모습에 잠깐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나.

그러자 인간 형상을 한 드래곤은 흠? 하면서 나를 가리키곤 말했다.

"네 녀석의 마스터, 드래곤은 처음 보나?"

[이 세계는 평화로운 세계였던 모양입니다. 드래곤 같은 생물이 살았을 리가 없겠죠.]

"그렇군. 뭐, 좋다. 그렇다면 렌, 네 녀석이 나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었는지, 한 번 들어보도록 하마."

[좋은 판단입니다, 라덴.]

그렇게 의기투합하듯 말하는 두 사람의 모습.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잠깐 렌과 라덴을 번갈아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러니까 무슨 상황인 고예요?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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