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마법소녀는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아!
* * *
마법소녀.
절망의 마법소녀라는 게 나왔을 때, 조금 의심이 가긴 했었지.
...확신했다.
마법소녀는 '악'과 '선'으로 나뉜 모양이다.
한국에서 악의 마법소녀가 없던 게 다행인가.
아니, 다르다.
생각해보면 피오레한테 침식당한 마법소녀들도 '악' 성향의 마법소녀라고 할 수 있겠지.
지금 말하고 있는 이 좀비 아포칼립스를 일으킨 아이도 침식당한 걸까...?
"영원한 밤의 마법소녀..."
"그래! 너 유아틱한 게 마법소녀지? 말해봐!"
"별무리의 마법소녀, 스노우야."
유아틱하다는 말을 흘리며 답하자, 조금 불만스런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건, 이 녀석이 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냐는 점이지.
"그럼 물을게, 미국을 좀비 아포칼립스로 만든 이유가 뭐야."
"응? 그야 내가 조절 못하는 녀석들보다 조절할 수 있는 녀석들이 편하니까."
"..."
"피오레한테 엿먹이려면 이 정도는 해야한다구. 군단 숫자가 너무 많단 말야~"
"피오레..."
피오레와 적대 관계인가.
침식당해서 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냥 이 아이는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행했단 소리가 된다.
"넌 피오레와 적대 관계라는 거지."
"응, 그렇지? 지금도 실시간으로 공격 중이야~"
"묻겠어, 무슨 이유로 좀비 아포칼립스를 일으킨 거야."
"방금 말했지만 물량 딸려서?"
"협력한다는 방향도 있었을 텐데."
"협력? 협력은 무슨. 나 볼 때마다 매혹 걸려서 이상한 짓 하려는 녀석들이랑 어떻게 협력을 해? 바보 아냐?"
내 말에 비웃듯 키득거리면서 말하는 모습에 나는 별의 마력을 일으킨다.
우리의 목적은 피오레에게서 루루를 구하는 것.
그런 관점으로 볼 때 적의 적인 이 마법소녀는 아군이겠지.
하지만...
"나는 너를 인정할 수 없어."
"누가 인정하래?"
"나는 피오레의 적이지만, 너도 적대할 생각이야."
"흐응, 미국 거의 전토를 잡고 있는 나한테 적대할 생각이라고? 진심이야?"
...그거까진 몰랐는데.
아마 좀비 아포칼립스를 일으키며 필드 보스인 녀석들을 싹 쓸어먹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법소녀로서 이 아이와 아군이 될 순 없다.
피오레를 적대하기 위해서 미국인들을 전부 희생하고, 그걸 자신의 종복으로 써먹는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실제로 실행한 미친 녀석과는 할 말이 없다.
"...너는 피오레의 전력을 늘려줬을 거야."
"응? 그건 어째서?"
"선한 마법소녀는 인류애에서 탄생하는 클래스야. 인류가 멸망당하고, 계속해서 공격당하는 상황에서는 쉽게 나올 수 있는 클래스지."
"흐응, '선한' 측인가..."
"피오레는 '선' 측에 속한 마법소녀를 침식으로 타락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아항? 그래서 피오레가 마법소녀가 그렇게 많았구나?"
내 말의 의미를 깨닫고도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그런 말을 내뱉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력을 끌어올리는 나.
그리고 괴물이 반응하기도 전에 오버 히트 버스터를 손에 장전한 내가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면서 입을 열었다.
"좀비들로는 나를 막을 수 없어. 명심해, 마법소녀. 나는 네 적이 될 거니까."
퍼엉!
오버 히트 버스터로 좀비의 머리를 날려버리자, 더 이상 녀석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느껴지는 건 좀비들이 점점 이 건물을 타고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 하나 뿐.
내가 아쿠아 실드로 아예 몸에 묻지 않도록 했지만, 그래도 터진 자리가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 자리로 몰려들고 있는 게 분명했다.
[Snow : 루리에.]
[Rurie : 스노우, 지금...]
[Snow : 알아, 빠져나갈 거야. 눈을 죽였어. 가면서 설명할 테니까, 탈출 준비.]
[Rurie : 알겠어.]
그렇게 나는 건물을 탈출했다.
Side ???
"아, 재밌는 애네. 우리 나라 소속은 아닌 거 같은데."
어느 어두운 석실.
석실이긴 해도 있을 거 없을 거 전부 있는 공간에 은빛 머리칼을 지닌 한 소녀 의자에 앉아있었다.
스노우와 같은 은빛 장발.
초점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회색 눈동자.
머리에는 보랏빛 마녀 모자를 쓰고 있고, 몸에는 붉은 원피스 하나가 입혀져 있는 소녀였다.
"확실히 좀비들이 아무리 난리쳐도 잡기는 힘들겠네. 아직 변종 트리 덜 탔단 말이지."
허공에 떠있는 시스템 창을 보며 이것저것 조작하기 시작하는 소녀. 그러자 소녀의 화면에 있던 43라는 포인트가 단숨에 3으로 변환되고, 화면에 있던 육각형 하나가 붉은 빛으로 변화한다.
동시에 왼쪽에 있는 지도 창에 몇몇 점이 찍히는 모습.
그걸 본 소녀의 눈이 붉게 물들자, 그 붉은 점은 조금씩 서쪽에 있는 워싱턴으로 몰려가기 시작한다.
"피오레도 귀찮은 사람이라니까, 그냥 함락당해서 나랑 같이 살면 될 텐데~"
그렇게 말하면서 싱긋하고 웃는 소녀의 모습. 사랑의 빠진 소녀를 연출하고 있었지만, 주변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각종 시체들이 그녀의 기괴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것저것을 기워 균형이 어긋난 시체.
팔만 여러개 달린 괴생명체.
호리호리한 몸체에 거대한 근육이 달린 팔.
인간에게 인간이 아닌 무언가를 달아놓은 모습.
마치 변종 좀비들을 연상시키는 시체들이 즐비한 곳에서 그녀는 웃고 있었다.
"시체 조작도 참 힘든 작업이야, 아무리 내가 '초월자'가 됐다곤 해도, 결국 변종을 만들려면 내가 해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계속해서 시스템창을 만지는 소녀. 그러다가 소녀가 잠깐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는 사이, 화면에 있던 회색 마크가 훅. 하고 줄어든다.
다시 시선을 되돌리다가 응? 하면서 그걸 바라보는 소녀.
그리고 다시 그녀의 눈이 붉게 빛나고, 상황을 바라본 그녀는 우와? 하면서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진짜 재밌네!?"
눈 앞에 있던 모든 좀비가 그대로 시체가 돼 떨어져내리는 걸 보며, 일행들은 머리에 물음표를 피워올린다.
나 역시 이 정도로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던 탓에 감탄하고 있지만, 얼굴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는 모습.
역시 스노우야, 감정 변화가 적지.
[시체 조작] Lv 8
눈 앞에 있는 시체들을 일으켜 세웁니다. 이미 소환주가 있는 시체의 경우, 레벨에 따라서 강탈할 수 있습니다.
사실 될 지 안 될 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실제로 사용해보니 주도권을 강탈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대의 시체 조작 레벨이 낮은 거거나, 아니면...
[아무래도 거리가 워낙 떨어져있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상대는 시체 조작 스킬을 마스터한 상태로 추측됩니다.]
뭐, 아무래도 그렇겠지?
미국 전체에 있는 모든 시체를 조작할 수 있는 네크로맨서니까, 시체 조작은 당연히 마스터일 확률이 높다.
낮은 레벨이 강탈 당하는 건 그저 주도권이 매우 약해진 상태기 때문일 뿐.
실제로 녀석은 여기에 아직도 시체들이 자기 명령을 따르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아마 시체 조작하는 방식 자체도 나랑은 다를 확률이 높다.
아무튼 지금 내가 한 일은 시체들의 주도권을 전부 강탈하고, 그대로 소환을 해제해버리는 작업.
이걸로 녀석이 가깝지 않은 이상, 나를 노리는 시체는 전부 해제해버리는 게 가능해졌다.
필드 보스만 문제네 이제.
"그런 능력이 생겼으면 이제 아무 문제 없겠네요! 빨리 수도로 가봐요!"
"응, 필드 보스만 조심하면 돼."
기뻐하는 세연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좀비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해야 하는 일은 워싱턴에 먼저 도착하는 것.
다만 좀 걸리는 부분은... 그 마법소녀와 피오레가 적대하고 있다는 정도려나.
"적대 중이라는 건, 분명 워싱턴 근처에 좀비들이 잔뜩 쌓여있을 확률이 높아. 그리고 본인도 근처일 확률이 높고."
"흥, 전부 뚫어버리고 가면 되는 거 아냐? 어차피 그 고양이 녀석의 힘이면 접근도 못하는 거잖아."
테나의 결계는 강력하다냐!
피루도 마력 파동같은 거 할 수 있어!
"테나의 결계는 고정형이야. 그리고 피루 마력 파동은 어그로잖아."
"어? 두 명 합치면 좀비들 막아내긴 쉽겠네요."
"..."
그건 맞는 말이긴 하지.
우리가 결계에서 안 나간다는 전제 하에.
게다가 소환주가 근처에 있다는 건 강화 버프라던가 그런 걸 받을 확률이 높단 소린데, 그런 경우 결계가 버틴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다지 좋은 판단으로 보이진 않는다.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하네."
"앙? 뭐가?"
"워싱턴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데, 워싱턴과 가까운 도시에 있는 좀비들을 방치하고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되서."
"...확실히 그래."
루리에의 말에 나는 비행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조금은 거리가 있었지만, 우리가 머물고 있던 곳은 충분히 병력을 끌어오기 좋은 장소였다.
그런 장소에 있는 좀비떼를 아예 방치하다 못해 방관하고 있었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렇게 무능한 마법소녀로 보이진 않았는데.
"그, 잠깐 이야기 들어보니 확실하게 이상해서 그런데..."
"응."
"이쪽 말고 다른 워싱턴은 아니죠...? 수도 워싱턴이 맞나요?"
"?"
넹?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세연이는 뺨을 긁적거리면서 지도를 펼친다.
우리가 향하는 곳은 수도인 워싱턴 D.C.
지금 우리가 가진 정보는 워싱턴에 루루가 있다는 정보 뿐.
루루의 지팡이를 꺼내 집어들지만, 그녀는 언젠가부터 전혀 기동하지 않는다.
아마 루루의 마력이 더 이상 공급되지 않아서가 아닐까.
외부로 말하려면 마나가 필요하다고 들었으니까.
"..."
불길하다.
굉장히 불길한 감각이 뇌리를 스친다.
"혹시나 해서 묻지만."
"네."
"또 다른 워싱턴 방향은 어디야?"
"대륙 반대편이예요."
"..."
"..."
아니, 무슨 나라 반대편에 같은 이름인 곳이 있어?
그녀의 말에 우리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가, 이내 불길한 감각이 모두의 몸을 타고 흐르는 걸 느끼고 만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생각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일단 수도 쪽으로 가고 나서 생각하는 게 나아. 혹시 수도 쪽 정보 있어?"
"수도인가요... 굳이 갈 생각은 안 해서 잘 모르겠지만, 거기 주인은 피오레가 아닌 걸로 알고 있어요. 보자..."
그렇게 말하면서 지도 창을 연 건지, 허공을 누르기 시작하는 모습. 나 역시 허공을 눌러 데이터를 확인하자, 영주 이름이 6글자의 물음표로 적혀있는 게 눈에 띈다.
...어라? 나는 누르면 바로바로 영주명으로 뜨던데?
[그건 일부러 공개해둔겁니다.]
"일단 미국인은 맞나 보네요."
내 의문에 렌이 답하고, 세연이가 가벼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다.
...일부러 해뒀어?
[스노우님의 칭호와 이름을 공개해두는게, 나중을 위해서 편합니다.]
"앞 이름이 3글자인거에 희망을 가져보자."
"피오레..."
정말 바늘같은 희망이네.
루리에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왜 나중에 편한데?
[ㅡ비밀입니다.]
"?"
[마법소녀가 알아서는 안 되는 게 있는 법이거든요.]
그건 좀 섬뜩한 발언이지 않아?
렌의 말에 내가 무슨 말이냐는 것처럼 그녀를 바라보지만, 그에 대해 아무런 답도 주지 않는다.
렌은 치사하다니까. 이럴 때만 입 닫고 있고.
[저는 질문에 대해 전부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반대로 질문 안 하면 안 말해주고?
[안 물어봤으니까요.]
"..."
언젠가 진지하게 토론할 필요가 있겠다.
아무튼 워싱턴에 도착부터 해야겠네.
도착하면 피오레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를 알 수 있을 거로 생각된다.
다른 사람이면 오히려 좋다.
우리는 사람의 편이니까, 지원군을 받을 수 있을 지도 모르는 노릇이고.
이런저런 걸 생각해 볼 때, 이득일 테니까.
"그래, 일단 가보자."
그렇게 우리들은 얼마 남지 않은 워싱턴을 향해 계속해서 비행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