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60화 (60/149)

〈 60화 〉 마법소녀는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아!

* * *

가운데 자리에 앉아 조용히 화면을 응시한다.

내가 프로게이머로서 늘 했던 게임의 화면.

다만, 키는 조금 작아진 탓에 조작이 약간 낯설다.

"설아, 오늘 그 카드 쓸 거지?"

"?"

그게 몬데요. 그보다 이름이 설이야? 스노우라 그런가.

JG 유저인 '유 슬하'의 말에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한다.

그러자 옆자리인 TOP 유저 시혁이가 어이없다는 것처럼 나를 보더니, 이마를 한 번 딱. 하고 치면서 말했다.

"아파."

"너 오늘 '루리에' 실전에서 써본다며. 어차피 스노우 밴 당한다고."

"?"

이건 진짜로 뚱딴지같은 소리네.

내가 원래 하든 게임에는 없든 마법 소녀들의 네이밍에 나는 픽창에서 슬쩍 캐릭터 풀을 살펴본다.

원래 하던 게임에서 스노우와 루리에만 추가된 모습.

아포칼립스에서 본 사람들이 추가되다니, 흥미로운데.

일러스트로 그려진 모습을 보니 내가 다 기쁜 느낌이다.

"언제 추가됐었지."

"아니, 랭에서 스노우랑 루리에만 오지게 연습해놓고 뭔... 저번 겨울 대회 우승하고 디자이너가 너보고 영감 얻어서 만든 게 스노우고, 그 후에 수호자 시리즈가 새로 생겨났잖아."

"수호자..."

아무리 그래도 마법 소녀는 좀 그랬나 보다. 뭐, 국제적인 게임이니까 그럴 수 있지.

복장이나 그런 거 보면 영락없이 마법 소년데.

그런 생각을 할 때, 경기가 시작되며 자연스럽게 밴픽이 시작된다.

상대가 후픽인 걸 확인.

일단 팀의 방향은 스노우를 열어놓는 것으로 합의돼있으니까, 상대 픽 저격에 집중한다.

3밴이 끝나고 보이는 건, 스노우와 루리에가 둘 다 열려있는 모습.

예상 못 한 상황인지, 코치님의 얼굴에 당혹이 깃드는 걸 확인한다.

사실 여기서는 스노우가 아니라 원래 세계에서 자주 쓰던 캐릭터를 하고 싶은데.

그런 생각을 하지만, 이건 팀 게임.

OP챔프가 살았다면, 쓰는 게 당연한 일이다.

"스노우 가져오자."

"네."

코치님의 말에 내가 스노우를 픽하자, 밖에서 희미하게 환호성이 들려온다.

스노우의 모티브인 내가 스노우를 픽해서인지, 아니면 이쪽 세계의 나는 주력이 스노우인 건지.

우리 세계에서 나와 같이 신이라고 불린 선수, 라이어 선수가 닌자 캐릭터를 골랐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다.

...괜히 픽했나?

이 세계 설정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제대로 쓸 거라는 생각이 안 드는데.

"역시 루리에인가."

"뭐, 루리에 쓰려고 저랬을 테니까요."

"쯧. 어쩔 수 없네."

거리 조절이 필요한 메이지 픽인 스노우와 AP브루저 포지션인 루리에.

휴대폰으로 잠깐 공략이나 그런 걸 보니, 상성상 루리에가 유리하다는 이야기가 종종 보이고 있었다.

...이 세계의 루리에는 굉장하네!

라이저 vs 갈링과 비슷한 구도인 모양이다.

"할 수 있겠니, 설아?"

"...응."

아마도요?

내가 가볍게 손목을 풀고 있자, 다른 팀원들에게는 자신감으로 비쳤는지, 웃으면서 모든 픽을 마친다.

팀이 이렇게까지 화목했던 적이 있던가.

역시 내가 여자가 돼서 그런 걸까...?

그렇다면 과거의 나는 정말 분할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할 때 즈음, 주변 환경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컴퓨터 앞에 있던 나인 상태에서 마법 소녀인 나로.

대회 경기장에서 근처에 하천이 졸졸 흐르는 숲으로.

그 광경에 헛웃음을 보이면서도 나는 곧바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확인한다.

슈팅 스타, 스피드 스타, 스타더스트 스트라이크, 수호자 등장!

...마법소녀 등장 스킬이지 저거?

패시브는 프로텍션. 이거 완전히 루리에를 처음 만났을 때 가지고 있던 스킬 트리다.

느낌은... 응, 원래 게임의 리메이크 모르데카이랑 비슷한 컨셉인가.

"루리에인가..."

루리에와 싸울 때랑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나에게 별에게 소원을 이라는 스킬이 없다는 것.

한 마디로 이 싸움은... 그때 스펙 그대로, 루리에를 잡아보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꿈치고는 실용적이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라인으로 이동했다.

­­­­

스노우가 열심히 꿈에서 프로게이머 활동을 할 무렵.

어떻게든 몰려들던 좀비를 정리하는 데 성공한 루리에 일행은 잠시 바닥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기 시작한다.

"무슨 주변에 있는 좀비가 다 올라온 것도 아니고..."

"루리에 씨랑 사이네 씨 콤비 마법이 잘 통해서 다행이네요..."

"그러게..."

루리에가 무지성으로 결계 밖 전체에 폭포를 만들어내고, 사이네가 그 모든 폭포에 전격 마법을 뿌리면서 공격.

그 과정에서 예민한 폭식 좀비가 터지고 또 좀비가 추가로 보급되고...

가끔 탱커들이 와서 건물을 흔들 때는 제법 위태했다고, 세연은 생각했다.

그래도 다행히 무너지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에 성공.

안도의 한숨을 내쉰 루리에는 마력 회로를 점검하면서 슬쩍 스노우를 바라본다.

"아직 안 일어났네... 일어나는 건 맞겠지?"

"그 난리를 한 시간 동안 피웠는데도 안 일어나는 거 보면, 뭔가 일이 생긴 건 확실해 보이는데~ 어쩔까?"

"뭐가요?"

"계속 내버려 둬? 아니면 데리고 이동?"

"음..."

사이네의 말에 루리에는 잠시 시계를 확인하며 고민하는 기색을 보인다.

벌써 10시.

9시까지 얼추 정리하고 가기로 했던 상황인데, 생각보다 많이 지체되고 있는 상황.

루리에는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동생이 몇 개월, 아니 그 이상 잡혀서 고통받고 있을 거야."

"그렇겠지."

"그걸 구출하기 위해 우리가 온 거고."

"그렇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그 구출에는 스노우가 필요해."

"..."

"조금 늦었다고 해서 루루가 죽진 않을 거야."

"하, 루리에."

"말하지 마."

사이네가 무언가 추가로 말하려는 순간, 루리에가 손으로 그녀의 입을 아예 막아버리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자 끙. 하면서 고개만 절레절레 젓더니 아래를 보는 전격의 마법 소녀.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세연이 말했다.

"그럼 분위기를 바꿔서­ 지금 좀 이상한 점 있지 않아요?"

"응? 뭐가?"

"이 많은 좀비들이 어떻게 알고 우리를 공격하러 올라왔는가­ 이상하죠? 좀비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을 감지하는 기능이 없을 텐데."

"...그렇네, 잘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야."

세연의 말에 눈동자가 차분하게 돌아온 루리에가 잠시 아래를 살피듯 바라본다.

좀비들로 이루어진 시체의 산.

처음 보는 형태의 변종 좀비들도 있고, 알고 있던 변종 좀비들도 있다.

전부 타죽어버린 형상을 하고 있지만, 마지막 하나가 될 때까지 행동을 멈추지 않고 옥상으로 기어 올라오던 적들.

분명 '눈'의 역할을 한 지휘관 좀비는 살아남은 게 분명했다고, 루리에는 생각했다.

"뭐, 사실 지나가는 곳이라서 굳이 잡을 필요까진 없는데요..."

"아니, 혹시나 생존자가 있다면, 그 '눈' 때문에 사냥당할 거야. 어차피 바로 이동할 수 없으니까, 우리가 죽이고 가자."

"네? 굳이...?"

"헹, 우리는 사람을 돕는 마법 소녀야. 지금 좀비를 이렇게까지 잡은 것도 도움은 됐겠지만, 결국 머리가 남았단 거잖아. 남겨두면 찜찜하다고."

"그야 그렇지만요."

두 사람의 말에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세연이를 보며, 루리에는 창대로 톡. 하고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친다.

그러자 ???하면서 푸른 전사를 바라보는 소녀.

"우리는 마법 소녀야. 우리가 마법 소녀가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어."

"...흐응."

"사람을 구하고 싶다,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 그러기 위한 힘이 필요하다. 그런 조건이 없다면 우리는 마법 소녀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사람 죽어 나가는 거 보기 싫을 때 각성했으니까 나도."

"난 여동생을 지키고 싶다고 소망했지. 신기한 건 보통은 그런 경우 히어로라는 클래스로 각성한다는 점이야. 마법 소녀 클래스가 왜 생겼는지,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아직도 의문이 많아."

"그런가요."

"뭐 아무튼 요는 이거지. '인류애'가 있어야 마법 소녀가 될 수 있어. 아포칼립스에서 가지기엔 쉬운 조건은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며 창을 지지대 삼아 일어나는 루리에. 사이네 역시 바닥에 앉아있다가 옷을 살짝 터는 시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그 모습을 보며 세연 역시 몸을 일으킨다.

"그러니까 마법 소녀겠지?"

"저는 되고 싶지 않네요."

"그래서 네가 마법 소녀가 아닌 게 아닐까."

"그럴 지도요. 그래도 눈을 잡고 가는 건 괜찮은 생각이에요. 도울게요."

"고마워."

"아뇨,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좀비들을 몰살시킨 우리를 놔둘 거 같지 않아서 그런 거니까요."

"그럼 일단 정찰. 최대한 찾아보자."

루리에의 감사에 세연이 시선을 피하며 그렇게 말한다.

살짝 붉어져 있는 얼굴을 보며 그저 피식하고 웃어 보이는 푸른 전사.

그렇게 그들의 방침이 정해졌다.

­­­­

루리에가 이렇게 귀찮았던가?

계속해서 앞으로 나서서 팀을 서포팅함과 동시에 아군을 암살하는 루리에의 모습.

라인전 단계에서는 분명 내가 확실하게 말려놨음에도 갑작스레 물을 타고 나타나 적을 살리거나 아군을 암살한다.

마치 암살자 서폿과 같은 플레이.

내가 한 번도 잘리지 않은 탓에 그럭저럭 게임을 굴러가고 있지만, 아군 멘탈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루리에..."

저런 면모가 있었구나.

항상 파도를 일으켜 서포팅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서 눈치채지 못했다.

아마 화력이 내가 더 강했기 때문에 그랬겠지.

아니면... 루리에 본인도 자기 체질을 눈치채지 못했거나.

생각해보면 추가로 배운 스킬도 많은데 왠지 처음 만났던 루리에만큼 요즘의 루리에는 무서운 느낌은 아니니까.

처음 만난 루리에는 내가 도박 스킬을 사용하지 않으면 위험할 정도로 저돌적인 전사였지.

장거리 전은 위험하니까 달려든다.

혼자서는 잡기 힘드니까, 다른 녀석들을 끌고 와 공격한다.

그런 마법 소녀였어. 분명.

"아쿠아 쓰러스트!"

그렇게 생각하며 움직이던 도중, 물가에 숨어있던 루리에가 숨어있다가 기습을 날린다.

프로텍션으로 막으며 힐끗 보니 인원은 셋.

나는 곧바로 충격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소리쳤다.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아쿠아 필라!"

"별무리의 마법소녀 스노우! 여기에 등장!"

상대가 달려드는 걸 보며 곧바로 회피 기동해 피해내며 루리에와 1대1 상황.

지속 시간이 길지 않으니까, 승부를 내야 한다.

"스피드 스타!"

"아쿠아 드래곤! 아쿠아 브레스!"

제법 가까이 있는 루리에를 타격하기 위해 스피드 스타를 두르지만, 곧바로 아쿠아 드래곤이 솟아올라 위력을 감퇴시킨다.

이어지는 아쿠아 브레스. 나는 곧바로 경로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용의 머리가 휘둘러지듯 움직이며 나를 따라온다.

"슈팅 스타! 스타더스트 스트라이크!"

슈팅 스타로 루리에의 마력 조작을 방해하며 곧바로 별의 폭격.

적중으로 인한 일시적 스턴으로 브레스가 끊어지고, 나는 마력탄을 다수 불러내 루리에에게 쏘아낸다.

물론 바로 회피하며 용을 탄 상태로 그대로 찔러 들어오는 루리에.

"아쿠아 쓰러스트!"

"귀찮게 하지... 마!"

그대로 물줄기와 함께 돌격해오는 루리에의 공격을 한 끗차로 피해내며 별 탄막을 등에 꽂아 버린다.

그러자 아예 돌진을 이용해 반대로 도망가는 푸른 전사.

우와, 엄청 귀찮은 캐릭터다.

만약 여기서 나가게 된다면 꼭 알려주고 싶...

"..."

나...가?

어디로 나가야 하지?

이질감이 느껴진다.

여기는 꿈속 세계가 아닌 건가?

꿈속 세계였다면 내가 루리에에게 알려주고 싶다. 혹은 여기서 나가고 싶다고 판단했을 때 깼어야 정상이다.

물론 안 깨어날 가능성도 있긴 한데, 적어도 현실의 진짜 몸이 인식이라도 돼야 정상이지.

꿈이란 건 그런 거다.

꿈에서 빠져나가고 싶지 않아도 강제로 깨어날 수밖에 없는 그런 일이다.

지금 이 상황은 명백하게 이상해.

­ 설아! 움직여!

"응."

그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슬하가 소리친다.

그에게 가볍게 대답하면서 마력 운용을 시작하는 나.

응, 생각해보니 지금은 마력 운용도 되잖아.

"..."

일단, 이 거짓 꿈부터 부숴보자.

마력을 모은다.

방금까지 싸웠던 탓에 주변에 넘실거리는 별의 마력을 모으자, 순식간에 7개의 마법진이 생겨난다.

하늘을 겨눈다.

그러는 순간, 모든 전장의 아군과 적이 나에게 달려오기 시작한다.

아하~ 그렇구나.

이거 정신 공격이네.

"스타라이트­!"

­ 왜!? 어째서!? 어떻게!?

"브레이커!"

­ 멈춰!

안정된 정신 씨가 왜 발동하지 않았는지는 둘째치고, 일단 나가보도록 하자.

그렇게 내 손에서 쏘아진 별빛 집속포는 허공을 꿰뚫으며 배경을 전부 작살내고는 날아갔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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