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마법소녀는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아!
* * *
일단 간단하게 나름 외관은 멀쩡해보이는 건물 옥상에 도착했다.
유리가 이런 건 다 날아가고, 시멘트만 보일 수준이었지만... 이런 건물이 아직까지 무너지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좋게 생각하기로 하자.
나와 루리에는 옥상을 확실하게 청소하고, 사이네는 옥상문을 전기지짐이로 개조, 세연이는 콘크리트 바닥에 꾸욱하고 텐트를 고정할 못을 박는 등 서로 역할 분담으로 야영할 준비를 시작한다.
식사는 가방에서 꺼내든 보존 식품들. 세연이가 초코바 같은 걸 꺼내들다가 슬쩍 눈치보는 기색을 보여 내가 먹을 양의 절반을 그릇에 담아준다.
그릇은 어디서 났냐고? 왠진 몰라도 루리에가 들고 있더라.
"가, 감사합니다..."
"응."
사실 마법소녀들은 안 먹어도 된다는 말이 있어서 식량을 그리 많이 챙겨온 건 아니니, 식량을 세연이한테 지속적으로 주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필드 보스 잡아서 영토라도 먹을까.
"혹시 주변에 영토같은 곳이 있어?"
"영토... 제가 지나온 곳에는 없었어요. 예전에는 식량 배급소가 있었던 거 같은데, 좀비 아포칼립스가 추가로 터지고 사라졌거든요."
"흐음..."
냥.(주인, 결계 다 쳤다옹.)
"잘했어."
세연이의 말에 수긍하다가 다가온 테나의 말에 가볍게 안아드는 나. 그러자 테나는 냐앙 하면서 내 가슴에 얼굴을 부비적대기 시작했고, 그걸 빤히 보던 세연이가 눈을 반짝인다.
아, 이런 아포칼립스에서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원래 동물을 좋아하던 아이인지, 쓰다듬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데리고 다니고 있었는데, 이제 깨달은 것도 제법 웃기네.
"저, 저도 안아봐도 돼요!?"
"그렇다는데, 테나야."
냐앙? 냐앙...(굳이? 뭐 상관없다옹...)
내 말에 순간적으로 테나가 나와 세연이를... 시선이 좀 이상한 위치지만 번갈아가며 보다가, 폴짝하고 세연이쪽에 달려든다.
그러자 놀라면서 팔로 테나를 황급히 껴안아주는 모습이다.
캬하하학!?(숨..막..힌..다..냐...)
"걔 죽으려하는데."
"앗, 죄송해요."
정확히 가슴 중앙에 들어가버린 테나가 바둥거리는 모습에 내가 말하자, 자연스럽게 몸을 앞으로 돌려주는 모습이다.
아니, 그게 아니잖아.
물론 숨 막히는 거야 풀리겠지만...
냐앙...(편하다옹...)
"..."
이쯤되면 테나가 진짜 변태인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나였다.
우리가 결계를 펼치고 입구를 전기구이대로 만들자, 정말 많은 치이이익 하는 소리를 듣게 됐다.
옥상 문을 열려고 하면 좀비들의 무게 때문에 안 열리는 게 아닐까 싶을 수준으로 전기구이되는 소리가 많이 들리고, 어떻게 벽을 타고 올라온 언데드들이 결계를 만지고 그대로 떨어지는 것도 예사.
시끌시끌해서 잠이나 잘 수 있을지 의문인 환경이었지만, 나 외의 인원들은 편안하게 잘 자는 모양이다.
치익!
그어어어어!
또 다시 결계에 손을 댔다가 떨어지는 좀비의 비명 소리가 울려퍼진다.
아니, 이번 비명은 좀 크네. 변종일지도?
제법 높은 건물인데 자꾸 좀비들이 타고 올라오다니, 어떻게 되먹은 좀비들인지...
나는 슬쩍 일어나 잠시 텐트 밖으로 나서 주변을 살핀다.
"..."
결계 밑을 보자마자 보이는 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좀비가 좀비를 밟고 옥상에 도착하는 모습들.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방금 죽은 걸로 보이는 탱커가 보이고, 좀비가 몰려있자 아까 해변에서 본 뚱땡이 좀비가 좀비들을 열심히 먹고 있는 장면도 눈에 띈다.
...저거 진짜로 먹어서 저렇게 되는 거였어?
제법 징그러운 광경인데도 안정된 정신이 자연스럽게 내 뇌를 안정시키며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준다.
아까 봤던 인간에 가까운 변종 좀비는 보이지 않는다.
마력을 감지하는 좀비는 저 좀비를 포식하는 녀석밖에 없을 터.
결계를 펼쳤다고 우리에게 전부 몰려오기엔 이상한 상황이다.
한 마디로 '눈'이 있다.
"음..."
뭐, 사실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아까 본 것처럼 변종 좀비조차 결계에 닿으면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죽어버린다.
테나의 속성은 빛과 소리.
빛 속성의 마법은 당연히 언데드인 좀비에게 천적이니까.
그래서 사실 소리만 차단하면 편하게 잘 수 있...
"...?"
아니, 테나야. 너 속성 소리도 있잖아. 왜 소리 차단 기능 안 넣어둔 건데.
조금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지만, 뭐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까 넘어가기로 하자.
아무튼 이 사태를 종료하려면 '눈'을 잡아야한다.
예상가는 녀석이 있긴 한데, 딱히 보이질 않네.
"렌."
[음, 마력을 사용하면 다른 사람이 전부 깨어날 거라고 짐작합니다.]
"아..."
생각해보니 그렇네.
잠시 엄청 꼬운 표정으로 쌓여있는 좀비들을 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쓸어버리는 것을 포기하는 나.
마음 같아선 싹 청소해버리고 싶은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결계는 못 뚫는 게 확실해보이니까 소리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늘 하는 생각이지만, 본인 스펙을 잘 사용하지 못하시는 걸로 보입니다.]
"?"
[테나의 능력은 곧, 스노우 님의 능력입니다. 소리 차단 정도는 스노우님 스스로에게 걸 수 있겠죠. 결계에 속성 부여를 추가로 해도 될 거고요."
"...?"
그건 또 몬소리에요?
내가 눈을 깜박이고 있자, 렌의 한숨소리가 들리더니 지팡이가 손을 벗어나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곤 결계에 다가가서 톡. 하고 건드리는 렌의 모습.
그러자 구웍. 소리가 들려오던 게 전부 사라지며, 주변은 단숨에 고요한 숨소리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모예요, 어떻게 했소요.
[...역시 마스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가는 기간동안 가진 기술이랑 속성을 연습하는 시간을 가져보죠.]
"음... 확실히 그게 좋을지도."
렌이 할 수 있는 일을 마스터인 내가 할 수 없다는 건, 문제가 있는 일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이 워낙 많아졌다곤 하지만, 그걸 하나하나 파악해놓고 사용하는 건 당연한 일.
숫자가 많으면 외우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노력이 부족한 사람일 뿐이다.
아니라고? 그럴 리가.
적어도 한국인들에게 유명했던 'ROL'이라는 게임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100명이 넘는 레전드의 스킬을 전부 기억하는 게, 게이머라는 족속이니까.
"일단 그럼 마법소녀 별 스킬로만 움직이면서 연습해보자. 가장 처음 얻은게 루리에니까, 내일 루리에부터."
[알겠습니다.]
내 말에 렌이 수긍하는 기색을 보이고, 나는 물의 마나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들을 하나하나 체크하기 시작한다.
루리에가 쓰는 기술 중에 '수해'라는 기술은 사용 불가라고 떠있네.
조건을 보니 '수해의 마법소녀' 전용이라고 쓰여있는 걸로 봐선, 내 스타라이트 브레이커처럼 필살기 류인 모양이다.
하긴 평균이라고 치기에도 엄청 큰 빅웨이브가 솟아오르는 기술이니까, 그걸 별무리의 마법소녀가 쓸 수 있는 것도 이상하지.
[별무리의 마법소녀가 모든 종류의 마나를 사용하는 것도 이질적입니다만.]
조용히 하세요!
렌의 태클을 가볍게 넘겨주고는 간만에 보는 스킬창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내가 잠이 들게 된 건 제법 늦은 밤이었다.
"어이, 일어나. 어이~"
"음...?"
"나참, 우리 팀 에이스란 자식이 대기실에서 잠이나 쳐 자고 있냐. 일어나라고."
"..."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최근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던 천장의 모습.
리그 경기장에 올 때마다 흔히 봐왔던 천장의 모습에, 나는 눈을 부비적대며 몸을 일으킨다.
"짜식, 그러다가 딴 애들이 욕정해서 뭔 짓해도 모른다. 여자애인 걸 자각해 임마."
"...?"
"아무튼 시작까지 20분 남았어. 준비하고 있어."
흐리멍텅한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자 보이는 건, 내가 여자가 되기 전에 같은 팀이었던 라이너인 '성 시혁'의 모습.
잠시 머릿속을 가볍게 정리하면서 현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머리카락을 만진다.
새하얀 색이다.
옷을 바라본다.
스노우는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평범한 흰색 반팔티에 청색 반바지를 입고 있다.
일어난 곳 옆에 있는 밀짚모자가 눈에 띈다.
밀짚모자라니, 무슨 대회장에 이런 걸...
"아, 음."
목소리도 스노우의 목소리다.
응, 상황 정리 끝.
지금 이 상황은 꿈이다.
그것도 스노우인 상태로 내가 프로게이머가 됐을 때를 망상하는 꿈.
자각몽이라고 하던가, 이런 걸.
그런 생각을 하며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킨다.
"..."
말이 적은 여자애 포지션이라.
이쪽 세계는 어떤 설정이 잡혔을까.
원래 세계의 나는 초반에는 말이 적다가, 결국 모두를 돕기 위해 훈수를 시작하고... 점점 사람들과 떨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부모님도 떠나고 남은 건... 그저 기계적으로 나를 대하는 팀원 뿐이었지.
그래도 희소식인 건, 시혁이 녀석이 나에게 대하는 태도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시혁이는 신경질적인 아이였으니까.
아무튼 20분 정도 남았다고 했지? 꿈이어도 준비하기로 할까.
나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손가락을 풀어본다.
스노우가 되면서 얻은 건 몸의 유연성, 마력의 흐름.
민첩성이나 동체 시력같은 것도 나름 올라간 상태니까, 오히려 전성기 때보다도 더 좋은 실력을 낼 수 있을지도.
그런 생각을 하며 마력을 움직이려 하지만, 전혀 움직이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꿈이니까 라기 보단, 여기는 현실이니까 마나가 없다는 설정이려나.
그런 거치곤 몸이 엄청 쌩쌩한데. 유지는 원래부터 몸 상태가 좋았나보다.
그렇게 잠시 몸을 푼 후, 대기실을 나와 천천히 이동했다.
Side 루리에
"스노우? 스노우야? 스노우 양? 스노우 쨩?"
"..."
엄청 여러가지 방법으로 불러보지만, 스노우는 깊게 잠든 것처럼 묵묵부답.
숨소리가 고른 걸로 볼 때, 뭔가 당하고 있는 건 아니다.
아니, 아니다.
ㅡ몸 안에 새겨진 침식이 스노우에게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다.
"그냥 늦게 잔 거 아냐? 어제 꽤 시끌시끌했잖아. 결계 건드린 거 같던데."
"그러게요, 엄청 조용해졌어요. 아직도 밖에는 좀비들 많아 보이는데..."
"그렇, 긴 한데."
이건 나와 동류라고? 넌 또 지킬 수 없을 거 같은데?
닥쳐.
간만에 발악하듯 속삭이는 침식의 마력을 다시 잠재우면서 잠시 스노우의 손을 잡는다.
물의 마력으로 타고 들어가려하자, 파직. 하면서 전격의 마력이 생성돼 튕겨내는 모습.
정상적인 반응이다.
원래 몸에 다른 사람의 마력이 나타나면 자연적으로 거부감이 일어나기 때문에 튕겨나가는게 정상.
그럼 침식의 마력이 스며 들었다면, 저런 식으로 튕겨나갔을 텐데?
영문을 모르겠다.
아무튼 중요한 건, 이상한 마력이 스며 들어가서 스노우를 재우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든 깨워야한다.
"깨워야 돼."
"점심까지 안 일어나면 깨우는 게 좋지 않겠어? 뭔가 작용으로 못 일어나는 거여도, 지금 당장 깨울 방법은 없어 보이는데."
[마스터라면 알아서 털고 일어날 테니, 자제해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물의 마력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려하자, 스노우의 옆에 가만히 있던 지팡이가 혼자서 일어나며 그렇게 말한다.
분명 렌이라고 했던가.
렌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을까?
"무슨 일인지, 알아?"
[네, 말씀드리긴 힘듭니다만, 제 마스터라면 평범하게 조금 후에 깨어나실테니 걱정마시길.]
"..."
영지 업무부터 시작해서 몸 상태 체크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마법소녀의 지팡이.
마스터에게 이상이 생겼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딱히 위험한 게 없다는 건, 확실한 이야기였다.
불안한 이유는 '침식'과 비슷한 힘인 무언가가 작용하고 있다는 점 뿐.
그 부분도 해결할 수 있으니까, 이 스태프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거겠지.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알겠어, 믿을게. 하지만 우리한테 남은 시간이 길진 않다는거, 너도 알지?"
[이동할 시간은 충분히 있을겁니다.]
"그래."
렌의 확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그저 침묵한다.
가능하면 빨리 일어나야 움직일 수 있으니까...
스노우, 걱정시키지 말고 빨리 움직여줬으면 좋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주변에 쌓여있는 좀비들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