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54화 (54/149)

〈 54화 〉 마법소녀는 희망을 잃어선 안 돼!

* * *

감각이 없다.

아니, 감각은 있는 건가...?

내 몸을 둘러싸고 있는 완전한 어둠을 느끼며, 나는 몸을 움직인다고 생각해본다.

...움직인다는 느낌은 없다. 감각이 없는 게 확실하다.

"ㅡ."

입을 열어도 제대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삐­같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마력을 움직여본다.

내 몸을 타고 흐르는 별의 마력을 선명하게 느끼면서도 끔찍한 통증을 느끼고 움직이는 것을 그만둔다.

그러니까...

썬더 레이지라는 수상쩍은 필살 기술을 얻었다.

그걸 사용하고... 내가 뭘했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모두 무사한 건가?

다들 괜찮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앞에 푸른 창이 나타난다.

[기여도 1위의 의식불명 상태 확인.]

[사망 가능성 95% 이상]

[ㅡ보상을 대체합니다.]

[기여도 1위 'Snow'의 보상은 '목숨'입니다.]

[육체의 완전 회복을 시행합니다.]

[마력 회로 회복중... 별의 마나 소유자로 확인.]

[마력 회로 회복까지 10시간 남았습니다.]

모예요? 나 죽었었어?

아무래도 시스템 판정상 사망으로 취급됐던 건지, 레이드 보상을 목숨으로 주겠다는 시스템의 발언에 나는 잠깐 혀를 찬다.

아니, 아무리 썬더 레이지라는 신기술을 무리하게 썼어도 그렇지, 그걸로 죽는 게 말이 되냐.

...근데 나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통신 회복 중­]

[플레이어 '2Yuzm2i'와 잠시 연결됩니다.]

[2Yuzm2i : 아, 연결됐다. 다행히 살았네.]

[Snow : ?]

[2Yuzm2i : 아니, 아무리 나랑 비슷한 사람 불러달랬어도 그렇지, 너무한 거 아냐? 어떻게 혼자 이렇게 무리하는 사람을...]

[Snow : 무슨 소리야. 그보다 전대 별무리의 마법소녀였던 거 같은데...]

[2Yuzm2i : 응? 프로게이머 아저씨, 아직도 내가 누군지 짐작 못한 거야?]

[Snow : ...?]

프로게이머 아저씨?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전대 별무리의 마법소녀가 누군지 곧바로 떠올리고 만다.

유지 유미카.

한국이라기엔 너무 낯선 이름인 소녀이자, 이 육신의 주인인 소녀.

그리고 아마... 나를 자기 육신에 불러낸 소녀의 이름.

[Snow : 어떻게 된 거야.]

[2Yuzm2i : 지금 알았어? 노트북에 플레이어 네임을 남겨놓은 적이 없긴 하지만서도...]

[Snow : 노트북?]

[2Yuzm2i : 노트북 안 봤어? 힌트 엄청 쉬운 걸로 해놨는데?]

[Snow : ...네가 잊어서는 안 되는 거. 라고 적어놨던가?]

[2Yuzm2i : 우와, 프로게이머 맞아? 어떻게 그런 간단한 힌트도 못 알아채? 아니, 그보다 노트북 내용도 안 보고 그렇게 플레이한 거라고? 이걸 어떻게 받아 들여야되나...]

[Snow : ...]

유지 유미카가 잊어서는 안 되는 무언가.

그 때 당시에는 그냥 기억이 없는데 이걸 어떻게 알아­라고 넘겼던 기억이 있다.

그 후에 본 노트에서 타 차원 침략이 온다는 메세지를...

[Snow : 혹시 비밀번호 20300301이야?]

[2Yuzm2i : 잘 아네.]

[Snow : 아포칼립스 시작 날짜가 왜 적혀 있지? 라고 생각했으니까.]

[2Yuzm2i : 근데! 왜! 노트북을! 안 본 거야!]

[Snow : ? 중요한 내용이라도 있어?]

[2Yuzm2i : 일어날 사건들이라던가, 휴대폰에 저장된 숫자 사람들이라던가 정보 적어놨단 말야! 공략집도 적어놨고! 그거 안 보고 한국 점령중이던 거 실화야!? 애초에 만티코어는 어떻게 잡았는데!]

[Snow : 네가 궁극기 주고 갔잖아.]

[2Yuzm2i : 아니, 궁극기 하나로 못 잡... 뭐야, 루시에르 왜 제약이 5성까지 풀려있어. 뭔 짓 했어요!?]

[Snow : ??]

어떤 방식으로 보고 있길래 저런 반응을 보이나 싶다.

아무튼 노트북에 이것저것 중요한 정보를 잔뜩 넣어뒀던 모양이다. 나중에 집에 돌아가면 읽어볼까...

...근데 내 생각보다 유지 유미카의 성격이 많이 다르다. 안정된 정신을 가질 정도로 차분한 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채팅을 통해 보이는 모습은... 뭐라고 해야 하지? 그냥 평범한 중~고등학생과 같은 인상이다.

지인이 사고쳐서 한숨 내쉬면서 사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보일 수준이다.

[2Yuzm2i : 하아... 일단 알겠어요. 돌아가면 꼭 봐요. 그리고 지금 1,2,3 중에 1은 만난 거 같은데, 2,3은 만났어요?]

[Snow : 아니.]

[2Yuzm2i : 겍? 뭐야, 그 사람들 뭐하고 있길래... 그럼 루루는요?]

[Snow : 루루?]

[2Yuzm2i : 으아... 지금 타이밍까지 루루를 구하러 못 갔으면... 지금 피오레한테 있겠네.]

[Snow : ?]

유지의 말에 나는 머릿속으로 루루라는 단어에 대해 고민하다가, 이내 루리에와 미령의 입에서 루루라는 사람이 있다는 발언이 나왔단 걸 깨닫는다.

루리에 지인? 이었던가?

정확하게 어떤 대화를 했던 건진 기억나지 않지만, 루리에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는 대화였던 건 기억난다.

...근데 갑자기 공손해지지 않았니?

[2Yuzm2i : 루루없이 잘도 만티코어를 때려잡을 생각을 했네요. 그것만으로도 이미 업적이예요... 근데, 제가 뭐하는 사람인지는 안 궁금한가봐요? 그거부터 물어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Snow : 이미 짐작하고 있어.]

[2Yuzm2i : 응?! 어떻게요!?]

어떻게라고 물어도 말야.

대충 유지 유미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선 어느 정도 감이 잡히는 부분이 있다.

1. 유지 유미카는 전대 별무리의 마법소녀다.

2.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적어놓고, 사전 준비를 했다.

3. 그리고 나한테 그 후의 일을 넘겼다.

[Snow : 세 가지로 밝혀지는 사실은 네가 루프했다는 사실이랑 나를 '소환'하고 어딘가로 잠시 대피해있다는 점이야.]

[2Yuzm2i : ...그, 그렇죠?]

[Snow : 소환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소환주라는 아이가 가진 '영웅 이야기'같은 능력이겠지. 그리고 다음.]

4. 별무리의 마법소녀로서 5성 이상인 것이 확인됐다.

5. 루프한 사유는 세계 멸망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Snow : 너는 스스로 세계 멸망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고, 마법소녀로서 5성 이상... 별이 몇 개까지 있는진 몰라도 최소 6성이겠지. 내 생각이 맞다면, 6성은 초월자랑 동급이라고 봐.]

[2Yuzm2i : 초월자보다 윗줄이긴 하죠.]

[Snow : 그거까진 몰랐네. 아무튼 초월자가 된 후에 세계의 진실이든 뭐든 알아냈겠지. 그래서 너는 루프할 방법을 찾아냈을 거고, 기억을 가진 채로 돌아왔고.]

[2Yuzm2i : 뭔가 전문가스럽네요.]

[Snow : 소설을 많이 봐서.]

[2Yuzm2i : 음... 아무튼 거의 정확하네요. 루프할 방법을 찾아낸 적은 없어요. 그냥 루프할 수 있었을 뿐이니까요.]

[Snow : ?]

[2Yuzm2i : 제 이명은 2개예요. '별무리의 마법소녀', '순례의 마법소녀'. 별무리는 플레이어들이 지은 칭호, 순례는 시스템이 지은 칭호죠. 시스템은 제가 루프한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2Yuzm2i : 제가 아저씨한테 넘긴 이유는 300회의 루프를 해도 실패했기 때문이에요. 저로서는 불가능했어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로 한 거예요.]

[2Yuzm2i : 아저씨라면 할 수 있죠? 전 그렇게 믿고 있어요. 그러니까...]

어쩐지.

[2Yuzm2i : 아저씨, 제발 부탁이예요.]

그저 메세지임에도.

[2Yuzm2i : 제가 사는 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해주세요.]

이 아이가 울고 있는 거 같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Snow : 네가 해줄 수 있는 걸 말해.]

그렇다고해서 그냥 넘길 순 없겠지만.

­­­­

병원.

사실 병원이라기엔 그저 환자들을 모으기 위해 만든 건물을 병원이라 읽는 거지만, 일단 그런 장소를 우리는 병원이라고 부르기로 했으니 빌딩형 병원이다.

응급 환자실이라고 적힌 장소.

그곳에 누워있는 새하얀 소녀의 근처에는 영토 내에 있는 거의 모든 회복 능력자가 들러 붙어있었다.

"상태는 어때요?"

"그게... 어떻게 치료할지 감도 안 잡힙니다. HP가 떨어지는 건 계속 회복 능력을 써서 막고 있는데, 이게 마력 회로라는 게 망가져서 생기는 일이라고 뜨거든요? 이게 뭔지 잘..."

"..."

으득.

회복 능력자의 말에 루리에는 이를 살짝 간다.

그러자 앞에 있던 각성자가 움찔하며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푸른 마법소녀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이마를 꾹 누르면서 한숨을 내쉰다.

"마력 회로는 혈관 근처로 흐르는 또다른 관이예요. 마법소녀 뿐만 아니라 마법사 계열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죠. 당장 당신에게도 있고요."

"그, 그런가요?"

"혹시나 치료할 때 부위 선정이 가능하다면, 혈관 위주로 치료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치료하면..."

루리에게 그렇게 설명하는 순간이었다.

치료실 안에서 새어나오는 분홍빛 마력을 느끼며, 루리에는 눈을 크게 뜨곤 곧바로 문을 열고 병실에 들어선다.

그러자 허공에 뜬 채로 분홍빛 마력이 몸을 하나하나 알아서 회복시키기 시작하는 모습.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그녀가 멍하기 그걸 바라볼 때, 파란 메세지 창이 그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나타났다.

[기여도 1위의 의식불명 상태 확인.]

[사망 가능성 95% 이상]

[ㅡ보상을 대체합니다.]

[기여도 1위 'Snow'의 보상은 '목숨'입니다.]

[육체의 완전 회복을 시행합니다.]

[마력 회로 회복중... 별의 마나 소유자로 확인.]

[마력 회로 회복까지 10시간 남았습니다.]

"시스템..."

어째서인지 시스템이 그녀의 죽음을 거부하는 것처럼, 그런 보상을 내린다.

HP가 100%로 유지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사망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

그 말에 루리에는 안도하면서 추가로 뜨는 메세지 창을 바라본다.

[당신의 기여도는 4위입니다.]

[클래스 확인중... 마법소녀로 확인.]

[당신에게 선택지를 내립니다.]

[1. 레벨]

[2. 새 마법]

[3. 전용 무기 던전 오픈(솔로)]

"..."

레이드 보스를 잡았다고 말하기엔 너무 간단한 선택지.

마치 이걸 안 고를 생각이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대놓고 3번을 고르기를 유도하는 선택지를 보며 루리에는 잠시 망설인다.

사실 그녀로서는 2번을 골라도 큰 문제가 없었다.

전용 무기는 퀘스트를 깨다보면 언젠가 얻게 될 거고, 지금 당장 굳이 얻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전용 무기 던전 오픈(솔로)를 선택했습니다.]

[원하실 때 말씀하시면, 언제든지 열어드리겠습니다.]

루리에는 3번을 선택했다.

매번 싸울때마다 느껴지는 무력감.

이번 전투에서도 그녀는 간신히 공격을 어느정도 막아냈던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기여도가 4위나 찍힌 것도 웃긴 일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루리에는 회복 능력자들에게 인사한 뒤 그 자리를 벗어난다.

동시에 마법소녀 폼으로 변신.

날아서 자신의 영토인 의왕시에 도착한 그녀는 곧바로 주변을 슥. 하고 살펴본 뒤 넓은 공터에서 오픈해달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

쿠구궁.

잠시 진동이 울리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는 거대한 보라색 포탈.

그걸 본 루리에는 앗. 하면서 다시 주변을 살피고 만다.

"...이렇게 큰 거라곤 생각 못했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어디서 허수아비 하나를 뽑아오곤, '영주 확인중, 들어오지 마시오.'라고 써붙이는 루리에.

잠시 후 그녀는 보라색 포탈로 들어가고, 주변에 숨어있던 누군가는 슬며시 그런 그녀를 따라 던전에 들어갔다.

­­­­

"아무튼 우리 '창월의 서'는 스노우네 왕국에 흡수되겠습니다."

"괜찮겠어?"

"스노우가 이미 약속한 게 있습니다. 사람을 지키려고 그렇게까지 열심히인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전제는 생각하기 힘들군요."

미류의 말에 현성과 루시에르는 동시에 서로를 보면서 쓰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이 걱정한 건 '스노우'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는데, 눈 앞에 있는 미류라는 소녀는 그녀가 일어날 걸 확신하고 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

왜인지 모를 침묵이 일어나고, 잠시 그렇게 있던 와중 미류의 뒤에 서있던 카진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나참... 끝났으면 돌아가지, 아가씨. 아가씨 상태도 그렇게 좋진 않다고?"

"...그래, 다들 요양이 필요한 시기야. 너도 슬슬 돌아가서 쉬어."

"알겠습니다. 확실히 스노우가 있을 때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겠죠."

카진과 루시에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서다가, 휘청거리는 걸 사무라이가 잠시 잡아준다.

그러자 슬쩍 그를 보고는 혼자 걸어가기 시작하는 미류. 그 모습을 잠시 보던 현성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자리에 앉는다.

"루시에르... 였죠? 댁은 괜찮아요? 2단계에 5성이라니, 부작용이 있어도 이상하진 않는데."

"아, 네. 생각보단 양호하네요. 걱정 감사합니다."

"걱정은 무슨, 뒤에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예의상 한 말입니다."

"네?"

"인기인은 고생이 많긴 하군요?"

"...너희, 언제 왔어?"

루시에르가 현성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긴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은 샤브린과 역시 마찬가지로 평상복을 입은 유린이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그 표정들에 서늘함이 담긴 느낌인 건 착각일까?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지기 시작하자, 가운데 껴있던 현성은 쓰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세 분이서 할 말이 있어보이니, 전 먼저 갑니다. 수고하셔요."

"어... 혹시 같이 있어주면..."

"제가 여기 껴서 뭐합니까?"

"그렇겠죠..."

"스노우랑 했던 일이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겠군."

"응, 정말로."

"..."

어쩐지 오늘이 길어질 거 같다고, 루시에르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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