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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48화 (48/149)

〈 48화 〉 마법소녀는 희망을 잃어선 안 돼!

* * *

제대로 옷을 입은 후 도망간 마현을 붙잡아오자, 그는 여전히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로 내 시선을 피하며 맞은편에 앉는다.

요즘 시대에 이런 사람이 있다니, 천연기념물 수준이다.

귀여움과 역함의 경계선에 서있다.

"무슨 일이야."

"크, 크흠. 사, 사안이 더 중요하니까, 빨리 말씀드리겠습니다. 레이디."

"응. 진정하고 말해."

내가 물컵을 테이블에 놓자 곧바로 벌컥벌컥하면서 원샷해버리는 마현. 그 모습에 물의 마력을 이용해 다시 쪼르륵하고 컵을 채워주자, 그는 어... 하면서 잠깐 그걸 바라본다.

그러다 잠시 후 세수하듯 얼굴을 한 번 쓸더니, 이내 쉼호흡을 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 지급한 약, 누가 만든 겁니까?"

"약... 이거?"

"네, 약에서 마력이 느껴지는 게 신기해서 조사해봤는데... 한 번 확인해보시겠습니까?"

"?"

그가 건네는 종이 한 장을 받아 확인하자, 마치 감정한 것처럼 약의 성분이 적혀있었다.

[치유환(마)]

제작자 : 서 미령

성능 : HP를 20% 회복한다. 소량의 중독성 마력이 들어가 있어 많이 먹지 않는 걸 추천. 너무 많이 먹을 경우, 제작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게 된다.

"..."

마약?

약에 대한 설명을 읽자마자 떠오른 것은 마약.

잠깐 현대에 있을 때도 특정 약들에는 마약성 성분이 들어가있다는 사실이 떠오르지만, 이 마약은 좀 다르다.

많이 먹을 경우 제작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그 말은 즉 체력 부족으로 먹으면 먹을수록 제작자가 없이 살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자기 약을 최대한 퍼뜨려서 반란이라도 일으키려고 했겠지요. 아직 먹어도 되는 수준이긴 하지만, 한 알 이상 먹기는 좀 껄끄러운 약입니다."

"그렇네."

들어가있는 건 소량의 마력이니까, 한두알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겠지.

하지만 그 발상 자체가 제법 위험한 발상이다.

한 알이 두 알이 되고, 두 알이 네 알이 되고.

그렇게 괜찮겠지. 하면서 먹다보면, 결국 중독당하게 되는 건 똑같으니까.

일단 약을 지급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정보 전달은 필요해보인다.

"고마워."

"아뇨아뇨, 천만에요. 제가 영지에서 할 일이라고는 이런 사무적인 거 뿐이니까요."

"..."

생각해보니 영지로 마현 데려와놓고 정작 뭐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네.

말하는 걸 보아하니 가만히 앉아서 놀고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렌한테 지시받아서 뭔가 하고 있는 걸까.

좀 있다가 혼자가 되면 물어보자.

"영토는 살만해."

"음... 전쟁이 났다는 거치곤 큰일이 없어서 마음만 조금 불편합니다. 레이디가 그리 걱정하실 필요는 없죠. 할 일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서 살만합니다."

"응."

"다만... 누님이 좀 걱정이네요. 영웅이 누님을 괴롭히진 않는지 걱정됩니다."

"..."

그건 왠지 걱정 안 되는데 난.

저번 영토전 때 마이가 라크헬름과 별 부딪힘없이 조용히 사라진 걸로 봐선, 아마 그렇게까지 사이가 나쁜 건 아닐 게 분명하다.

...생각해보니 마법소녀 퀘스트 마이가 우리 진영에 들어오면 완료되는구나?

"문제는 없을 거야."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아무튼 제작자한테 한 번 알아봐주시길 바랍니다. 제작자가 모르는 걸지도 모릅니다. 이 세계에서 감정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으니까요."

"응."

좀 생각해보도록 하자. 라크헬름에게 정면으로 부딪히게 되는 셈이니까.

아무튼 그렇게 마현을 배웅한 뒤, 나는 곧바로 마법소녀 폼으로 변신해 하늘을 날아오른다.

그와 함께 렌을 호출. 그러자 그녀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말했다.

[마현은 제가 영주관에서 서류 처리를 시키고 있습니다. 미령의 위치는... 영주관 쪽 침실이군요. 루리에와 같이 자고 있습니다.]

"?"

물어보기도 전에 답해주는 렌의 모습에 쓰게 웃다가, 루리에와 미령이 같이 침실에 자고 있다는 소리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피어오른다.

미령이야 내가 그쪽에 임시로 방을 내준 케이스지만, 루리에는 왜 거기서 자고 있는 거야...

[계속 지켜보진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둘 다 평범하게 자고 있을 뿐이라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응. 자고 있으면, 다음에 갈게."

그렇게 날아가던 걸 멈추고는 어떤 폐허 건물 옥상에 사뿐하게 내려앉는다.

원래 백화점이었는지 굉장히 높은 건물.

올라올 수 있는 계단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가운데 부분이 무너져내려 바닥에는 돌덩이가 넘쳐흐른다.

가운데가 무너졌는데 사이드부분들이 전부 살아있는 건 나름대로 기적이네.

"..."

생각해보니 좀 이상한 거 아닌가 이거.

그냥 아포칼립스구나~ 하고 넘기기엔 좀 이상한 부분이다.

1단계에 등장하는 적은 고블린과 오크들.

기껏해야 인간에 가까운 녀석들이고, 딱히 마법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끽해야 주술사지.

그럼 높은 건물들을 전부 파괴한 건 뭐지?

알만한 녀석이...

[Snow : 현성.]

[Ryuhyeon : 응? 왜. 또 뭔 일 있어? 지금 좀 바쁜데.]

[Snow : 큰 건물들 파괴한 건 어떤 몬스터야.]

[Ryuhyeon : 그거? 아, 하긴 아직 중대형은 안 나오긴 했지. 각 지역마다 진 보스같은 게 하나씩 나와. 이 나라는 아마 도마다 하나씩 나올 건데... 등장 몬스터까진 잘 모르겠네. 보통은 대형 레이드 몬스터로 나오거든.]

[Snow : 그럼 봉인돼있는 거야?]

[Ryuhyeon : 그렇지? 뭐, 굳이 깨우려면 깨울 순 있는데, 어지간해선 안 깨. 깨우는 조건이 복잡하거든. 일단 마력 수치로 따지면 대충... 80레벨? 즈음 되는 마력을 부어야하고, 봉인석 위치를 찾아서 전부 깨부숴야 돼. 우리 차원에서 3단계에 깨운 미친놈이 있긴 있었는데, 그 도시 아예 멸망해버렸으니까 깨우는 건 비추. 애초에 그 녀석들 깨어나는 건 4단계부터야. 대충 5성은 되야 잡을 수 있거든. 보상도 나름 짭짤하고.]

[Snow : 마력 80레벨...]

그거 마법소녀 한 명만 있으면 깨울 수 있단 소리네.

현성은 잘 모르겠지만 마법소녀의 마력 레벨은 99레벨.

그냥 마법소녀 한 명이 각 잡고 깨우려고 하면 깨울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다.

뭐, 마법소녀에 그런 트롤러가 있을 리가 없지만...

[Ryuhyeon : 근데 그건 왜?]

[Snow : 큰 건물만 파괴당한 게 이상해서.]

[Ryuhyeon : 그렇구만. 암튼 바빠서 이제 끊는다.]

[Snow : 응.]

정보 감샤합니다, 고갱님.

아무튼 그럼 내가 5성 근처즈음 되면 깨우면 된단 의미군.

보상이 뭔진 모르겠지만, 위험 요소가 있다면 미리미리 처리해두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일단 위치 정도는 알아놔두자.

­­­­

Side 루루

"..."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죽을 거 같아."

하리의 말에 나는 넘어오려는 구토감을 억지로 삼키며 마력을 움직여 몸을 안정화한다.

피오레 미친놈.

녀석이 하고 있는 실험은 마법소녀의 뇌를 어떻게 만져야 효율적으로 세뇌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었다.

마법소녀 패시브로 내장을 직접 만질 수 없으니, 머리에 보랏빛 마력으로 손 형태를 만들어 만진다.

멀쩡히 살아서 깨어있는데 뇌가 만져지는 느낌은... 최악이다.

그 끔찍한 감각에 내가 참아내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몸은 당연히 움직이지 않음.

뇌가 만져지는 탓에 기껏 차오른 HP가 떨어지는 걸 보며 식은땀을 흘리지만, 피오레는 그저 확인 작업을 거칠 뿐이었다.

어떤 부분을 만졌을 때는 기억이 날아간 것처럼 백지 상태였다.

어떤 부분을 만졌을 때는 몸에 힘이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뇌가 만져질때마다 느껴지는 고통과 하나하나 반응하는 몸의 감각.

어느 순간에 나는 정신을 잃었다가 지금에야 다시 눈을 뜨는데 성공했다.

"..."

대체 그 후로 또 뭘 당했을지 두렵다.

마법소녀가 가진 육체의 힘으로 어떤 더러움도 존재하지 않는 몸이었기에 오히려 공포가 더했다.

몸에서 일어난 반응이 전부 지워졌을 테니까.

다행인건 마력은 오히려 회복됐단 사실일까.

HP는 회복량보다 깎인 양이 더 많았지만.

"하리."

[네, 마스터]

"내 마력 다 써도 좋으니까, 탐색할 수 있어?"

[어떤 걸 찾습니까?]

"레이드 보스."

[...마스터, 설마하지만 깨울 생각입니까?]

"그래야 탈출할 수 있어."

[안 됩니다.]

"하리."

[...그러다 죽습니다.]

"그런 게 깨어나면 피오레도 이 구속복을 풀 수 밖에 없어. 아직 내가 침식당한 상태라고 생각할 테니까, 분명 날 전투에 보내려고 할 거야."

[서치 마법을 쓰면 그에게 걸릴 테니, 알아차릴 겁니다.]

"하리가 쓰는 거지, 내가 쓰는 게 아닌데?"

[마스터의 마력으로 쓰는 거지 않습니까.]

"마법소녀의 지팡이가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마력을 사용해서 주인을 구할 사람을 찾아내고 사라졌다. 라는 건 어때?"

[...]

내 말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하리가 침묵한다.

방금 내 발언은 지금처럼 근처에도 있으면 안 된다는 의미와 동일.

나는 몸 안의 마력을 억지로 얼굴로 뭉치며 입을 통해 서서히 빛의 마력을 흘려가기 시작한다.

스멀스멀 연기처럼 공간을 채우기 시작하는 빛의 마력.

하리는 흡수하지 않고 있다가, 이내 냅둬도 들키는 건 똑같다고 판단했는지 그대로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한다.

[서치는 다른 지역에서 사용하겠습니다.]

"응, 미안해. 이런 걸 시켜서."

[...가보겠습니다.]

내 마력의 90%를 흡수해간 하리가 빛의 마법을 사용해 사라지고, 나는 스스로에게 수면 마법을 걸어 천천히 잠에 빠져들어간다.

하리가... 잘해야하는데...

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내 의식은 수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

괴물의 발톱이 춤추자 그나마 멀쩡히 세워졌던 건물들이 전부 박살난다.

괴물의 전갈 꼬리같은 꼬리가 휘저어지자, 꼬리 끝부분에 당한 것들은 꼬챙이에 당한 것처럼 꿰어지고, 꼬리 부분에 닿은 것들은 전부 박살난다.

그런 식으로 주변을 전부 치워버린 괴물은 자기 주변 범위가 전부 치워지고 나서야, 사자의 머리를 움직이며 주변을 살핀다.

그러자 보이는 건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사람들.

괴물에게 그들이 손을 뻗자, 검은 마력이 다발로 무언가 괴물에게 쏟아지기 시작하고, 그걸 본 괴물의 발이 움직인다.

파앙!

날아오던 검은 마력을 한번의 발짓으로 전부 튕겨버린 괴물.

그 모습에 흑마법사들은 단체로 당황하며 허둥대기 시작하고, 괴물은 사자 머리로 포효하며 흑마법사들을 순식간에 갈아버린다.

크아아아아앙!

그리고 승리의 포효.

포효의 충격파로 좀 멀리 떨어져있던 건물들까지 휘청일 때였다.

촤르르륵!

괴물의 주변에 생겨나는 거대한 푸른빛 마법진 5개.

거기서 날아든 푸른 사슬들이 괴물의 온 몸을 묶어 속박하자, 녀석은 사자의 이빨로 사슬을 물어뜯으려 들다가 실패한다.

그러자 머리에 달린 하나의 뿔에 점점 모여들기 시작하는 전격.

그 순간, 타앙! 하고 하나의 총성이 울려퍼진다.

키엨?

쩌저적! 콰아아아앙!

괴물의 눈을 노리고 쏘아진 탄환이 결계에 막혀 그대로 폭발하고, 탄이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는 사자 형상의 괴물.

잠깐 누굴 공격할까 고민의 기색을 보이던 괴물이 곧바로 마법진의 주인이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건물에 번개를 떨어뜨린다!

"세이프티 드라이브."

"부탁하지, 실페리온."

그 공격에 미류의 다른 쪽 손이 움직이고, 동시에 카진이 검을 뽑아든다.

휘몰아치는 바람과 그 바람의 뒤로 겹겹으로 만들어지는 푸른 마법 장벽.

번개가 박히는 순간, 미류의 입가에 곧바로 핏물이 흐르기 시작하며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

"괜찮나, 아가씨?"

"능력이 제한당한 상태로는... 힘드네요..."

공격을 힘들게 막았지만 그것뿐.

사슬을 유지하는데 힘을 거의 다 쓰고 있어 슬슬 버티기 힘들었는지, 번개를 빗겨내며 다른 팔로 왼팔을 붙잡고 몸을 떨기 시작하는 미류.

그 때였다.

"회수 완료. 마스터는 무사."

"다행이로군. 아가씨, 후퇴하지."

"..."

"이런."

미류의 상태를 보자마자 바람으로 모두를 감싸는 카진. 그 순간, 콰드득! 하고 마력의 사슬이 전부 박살나며 괴물이 미류 일행이 있던 방향으로 쇄도하기 시작한다!

콰앙!

발톱이 휘둘러 그들이 있던 건물을 완전히 작살내는 괴물.

하지만 이미 투명화로 숨어 날아가던 카진 일행은 무사히 그 자리를 벗어났고, 남은 건 떨어져있던 헤리어스 뿐이었다.

그르르르르...

눈 앞에서 먹이(?)가 사라진 것에 경계하며 헤리어스가 저격한 방향을 바라보는 괴물.

이미 방향은 이동한 건지 위치에 없는 헤리어스를 보며, 괴물은 킁킁하고 냄새를 맡기 시작.

하지만 고양잇과라서인지,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고 성질만 내며 주변 건물을 파괴한다.

헤리어스의 현재 위치는...

"흠."

냄새까지 완벽하게 지운 채로 수풀 사이에 숨어 그 광경을 바라보는 헤리어스.

아무래도 재저격할 생각인지 곧바로 총구에 눈을 가져다대는 그 모습에 미류가 마력 통신으로 말했다.

­ 돌아와요. 재정비하고 싸우죠. 마법소녀들이 도와줄 지도 몰라요.

"확인."

미류의 말에 잠시 미련이 남은듯 도시를 둘러보다가, 느릿한 포복으로 숲을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잠시 후 포항에 남은 건, 날뛰고 있는 괴물 하나 뿐이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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