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마법소녀는 희망을 잃어선 안 돼!
* * *
여긴, 헤리어스. 파이톤, 죽었다.
"파이톤 사망, 확인했습니다. 특이사항은 없었나요?"
...대리인, 쌍둥이, 있나?
"네? 아니요."
대리인, 비슷한 사람, 파이톤, 밀어냈다.
"아..."
헤리어스의 통신에 의미를 파악하곤 고개를 끄덕이는 미류. 아무래도 짚이는 구석이 있던 건지, 잠깐 턱을 잡고 고민하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연다.
"그럼 마스터를 데리고 돌아올 수 있나요?"
가는 중, 다만, 수상함, 느껴짐.
"수상한 거...?"
정령들, 거부한다. 순리, 부정체, 있다.
"정령이 부정한다는 건..."
"흠, 죽은 자가 움직인다던가 그런 생명체겠지. 정령들이 질색하는 녀석이야."
카진 역시 상대해본 경험이 있는지, 미류에게 그렇게 답해준다.
주의한다, 회수함, 후퇴.
"회수가 됐나요?"
간다.
"아, 지금 가고 있군요. 알겠습니다. 저희도 곧 포항에 도착합니다."
확인.
"저기 보이는군."
"네, 헤리어스도 이동중이니, 그의 마력에 따라 위치를 이동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포항시에 희미한 수치의 마력을 퍼뜨리기 시작하는 미류. 헤리어스의 현재 위치와 마스터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퍼져나간 푸른 물결을 보며, 카진이 감탄사를 보낸다.
잠시 후.
눈을 감고 마력 감지를 진행하던 미류의 얼굴이 찌푸려지더니, 홱하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마스터 위치 발견했습니다만... 이게 뭐죠?"
"음? 말로는 모르겠다만."
"서치로 뿌린 마력을 자기 마력으로 치환해서 먹어 치우는 녀석이 있습니다."
"허? 위치는 어디지?"
"...마스터가 있는 곳 지하입니다."
"...큰일이잖나."
"일단 최대한 빨리 가보죠. 저쪽입니다."
쿠르릉!
그렇게 미류가 말하는 순간.
갑작스럽게 땅으로부터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느릿한 속도로 땅을 전부 부수면서 천천히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무언가의 형체.
마스터가 있던 건물로부터 시작된 거대한 무언가의 등장에 미류의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하고.
카진은 얼굴을 굳히며 날아가는 속도를 더더욱 높인다.
크아아아아아앙!
"읏?!"
마치 소리에 물리력이 있는 것처럼 괴물의 괴성에 몸에 큰 압박감을 느끼는 두 사람.
잠시 후 나타난 괴물의 형상을 보며, 미류는 눈을 크게 뜨고 만다.
"저건...!"
평소대로의 집.
모두가 각자의 영지 보수를 마치며 전투수송함의 수리를 기다릴 때, 갑작스럽게 렌이 나에게 물어온다.
[마스터, 최근 이상한 점은 없습니까?]
"이상한 점... 딱히 없는데."
그 갑작스런 질문에 의아해하면서도 순순히 답하는 나. 그러자 렌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더니, 이내 내 눈 앞에 무언가 화면을 띄운다.
보이는 건...
"잠깐만, 목포 시때 영상은 왜...?"
딱히 그녀가 가지고 있는 거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냥 미튜브만 들어가도 넘치는 게 내 영상이니까.
응? 미튜브가 어떻게 아직도 살아있냐고?
최근에 올라온 공지에 의하면 많은 능력자들이 거기서 수성전을 벌여서 성공했다고 하던데, 잘은 모르겠다.
그래서 이건 왜 보여주는데.
[영상 때 상황을 계속 리플레이해봤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스터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일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잠시 점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흐응."
확실히 저 떄의 나는 좀 이상하긴 했지.
안정된 정신이 폭주하듯 발동하면서 동시에 마치 마력이 증폭된 것처럼 주변에 분홍색 스파크가 튀고 있다.
머리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거대한 마력의 날개가 활짝 펼쳐지고, 눈에는 분홍색 불꽃과도 같은 빛이 일렁인다.
허리 부분에서도 날개가 펼쳐지고, 신발에 달려있던 조그마한 날개도 부스터처럼 활활 타오르는 형상.
평소랑 비교하면 누가봐도 정상이 아닌 상태로 보인다.
[스킬로 새겨지진 않았습니까?]
"딱히 그런 메세지는 못 봤어."
[그렇다면 몸에 영향을 끼쳤을 확률이 높습니다. 잠시 체크가 필요합니다.]
"그래? 어떻게 하는데?"
[일단 다 벗어주십시오.]
"...응?"
결론이 이상한데.
하긴 몸 상태를 점검하는 거니까, 가능하면 옷 같은 부분이 적은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렌의 말에 자연스럽게 원피스를 휙하고 던지듯 침대에 놓자, 새하얀 색의 심플한 속옷이 보인다.
속옷까지 벗으란 소린가 싶어 잠깐 렌을 바라보자, 거기까진 바라지 않는지 침대에 누워 달라고 한다.
[잠시 스캔하겠습니다. 느낌이 이상해도 참아주시길]
"응."
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머리에서부터 누군가 어루만지는 듯한 이상한 감각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한다.
"흐읏..."
소름돋는 감각과 함께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소리에 깜짝 놀라며 입을 막는 나. 그러든지 말든지 가슴을 지나쳐 배에서 다리로 향하는 마력광을 보며 순간적으로 몸을 떤다.
...이런 거 보면, 여자애가 된 게 좀 더 체감된단 말이지.
기분이 나쁜 건지 좋은 건지 모를 이상한 감각이 발까지 전부 지나가고, 잠시 렌이 침묵.
상태가 궁금해 허공에 떠있는 렌을 잡자, 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상하군요.]
"왜."
[전형적인 마력 폭주를 하루 안에 2~3번 진행했음에도 마력 신경의 손상이 없습니다.]
"좋은 거 아냐?"
[그렇긴 합니다만... 그 후로 마법을 사용할 때 아프다던가 그런 감각은 없었던 게 맞습니까?]
"아팠으면 이야기 했겠지."
[그렇군요. 루리에와는 상황이 많이 다른 모양입니다.]
"응? 루리에는 왜?"
[사실 이번 데이터를 체크한 이유가 루리에의 마력 회로를 보고 나서입니다. 어떻게 싸웠는지 모르겠지만, 7일 이상 휴식을 취해야 통증없이 마력을 사용할 상태였습니다.]
"..."
그거 위험한 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들지만, 위험하다면 렌이 이렇게 평탄하게 말하진 않았겠지.
체력도 많이 회복된 상태니까 괜찮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띵동
"?'
누가 왔네.
벨을 누르는 걸로 봐선 마법소녀들은 아니다.
루시에르 쪽 애들인가?
곧바로 방을 나서며 인터폰을 확인하자, 보이는 건 마현의 모습.
정말 의외의 인선이 아닐 수 없다.
"안 계십니까?"
"있어."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곧바로 문을 열어주는 나. 그러자 깔끔한 흰색 와이셔츠에 갈색 조끼를 입은 깔끔한 복장의 마현이 눈에 띈다.
특유의 안경이 학자와 같은 느낌을 연출하는 모습. 노린 거라면 훌륭한 복장이라고 생각했다.
복장?
"어... 그, 어?"
"..."
아, 나 지금 속옷 차림이지.
솔직하게 약간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 외엔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한다.
수치심이 아예 없진 않지만, 일단 원래는 남자였으니까 남자한테 몸을 보이는 것 정도는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지.
문제는...
"죄, 죄송합니다!?"
마현이 그대로 도망쳐버렸다는 정도려나.
뭣 때문에 온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뇌가 정지됐던 모양인지 약간의 딜레이 후에 도망가는 모습이다.
"마~스터...어어어!? 드디어 저랑 할 생각이 든 건가요♥! 너무 좋아요! 마스터! 사랑해요♥"
"시끄러."
마현이 도망가는 모습을 의아하게 보면서 들어온 유레하가 폭주하기 시작한 건, 별 거 아닌 이야기였다.
성남시의 영주관.
혹시나 손님이 올 것을 대비해 만들어진 방의 침대 위에서 루리에가 피곤한 얼굴로 물의 마력을 지속적으로 순환시키고 있었다.
마력을 구체화시켰다가 되돌리기의 반복.
주변에 함께 있던 미령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약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언니, 괜찮아요?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
"3일이나 있으니까, 회복시키는 건 충분히 가능할 거야."
"그만큼 아플 텐데요."
"괜찮아. 익숙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루리에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면서도 계속해서 마력을 순환시킨다.
조금씩 입으로 튀어나오려는 토혈을 계속해서 그대로 삼켜버리며 작업을 반복하는 그녀.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미령이 환을 하나 내밀자, 루리에는 곧바로 그걸 삼키고 행동을 계속한다.
"언니, 조금씩 쉬면서 해야 돼요. 안 적혀있는 내용인데, 같은 종류 약을 계속 복용하면 효과가 감소하거든요."
"...그렇구나."
미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연스럽게 깎여나갔던 체력 정도까지만 마력을 순환시키다 멈추는 루리에. 잠깐 침대에 풀썩. 하고 누워버린 그녀는 옆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굳이 옆에서 작업 안 해도 되는데, 괜히 나 때문에 시간 쓰고 있는 거지?"
"아니예요, 언니. 스노우님도 좋지만 저는 언니의 팬인걸요."
"그건 좀 쑥스럽네."
당연하단 것처럼 말하는 미령의 발언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루리에. 하지만 이내 조금 어두운 표정을 지어보인 그녀는 자신의 자켓 끝자락을 슬며시 잡으며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그 모습에 살짝 얼굴을 찌푸리는 미령.
"왜 그래요, 언니. 많이 힘들어요?"
"으응, 그냥 피로감이 좀..."
"아항, 그럼 좀 주무세요. 어차피 행동 자체도 3일 후 잖아요?"
"응... 그럼 좀 잘까나..."
미령의 말에 루리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상태 그대로 잠들기 시작한다.
천천히 수마에 가라앉으며 잠시 후, 고른 숨소리와 함께 완벽하게 잠드는 푸른 마법소녀.
그걸 확인한 미령이 잠시 그녀의 눈앞에 손을 젓더니, 이내 웃으면서 말했다.
"잠드는 속도가 생각보다 느리네요, 언니."
조용히 이불을 들어 덮어준 뒤 방을 살펴보는 미령.
손님방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가구만 갖춰진 방의 모습을 보며, 미령은 잠시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그녀의 앞에 나타나는 몇 가지 제약 용품들.
"미안해요, 언니. 그렇지만... 마법소녀에게도 테스트 해보고 싶어서요."
그렇게 말하며 몇 가지 실험관에 있는 액체를 섞기 시작하는 미령.
잠시 후 완성된 건지 보랏빛 연기가 한 번 퐁. 하고 솟아오른 액체를 스킬로 환 형태로 굳히는데 성공.
효과를 살핀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입으로 환을 씹으며 루리에에게 입을 맞춘다.
그런 후 물을 먹이는 소녀.
잠시 후 루리에의 표정이 살짝 변하면서 몸이 꿈틀대기 시작하자, 미령은 입가에 미소를 담는다.
"그렇구나, 응, 그렇구나. 마법소녀여도 약에 대한 저항력은 전혀 없는 거네."
키득거리면서 루리에의 상태를 확인한 그녀는 곧바로 휴대폰으로 어딘가에 연락을 넣기 시작한다.
잠시 후, 연결됐다는 알림이 들려오자 미령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 주인님, 확인했어요. 마법소녀도 약은 제대로 통하더라구요."
"네, 지금 옆에 루리에가 있어요."
"네? 물론이죠. 절대로, 뺏길 생각은 없으니까요."
"루리에는 제 거예요. 루루같은 동생이 없는... 저만의 마법소녀니까요."
"네~ 저는 이제 이쪽 편에 설 거예요? 배신감 느끼시진 않으시죠?"
"네, 연락은 이걸로 끝입니다. 다시는 보지 말아요~?"
그렇게 말한 후 루리에가 누워있는 침대에 풀썩. 하고 자신도 눕더니 몸을 밀착시키는 미령.
그 행동에 루리에의 몸이 움찔하자, 그녀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면서 루리에에게 입을 맞추곤 말했다.
"사랑해, 언니. 이제, 다른 사람은 절대 볼 수 없도록 만들 테니까... 나만 바라봐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