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마법소녀는 희망을 잃어선 안 돼!
* * *
"그러니까, 그냥 전술 폭격 한 번에 쓸어버리면 끝난다니까?"
"거기에도 민간인은 분명 있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게다가 원래 너희 팀이잖아!"
"자, 진정진정..."
"틀린 말은 아니다. 전쟁에서 민간인을 배려하고 있었다간, 좋은 꼴로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아냐, 샤브린. 그래도 최소한의 피해로 끝내야지. 애초에 지금 걔네 땅에 안 그래도 실험때문에 인구 감소가 있었을 테니까."
"..."
"..."
어쩌다 이렇게 개판이 났지?
처음 모였을 때는 서로 그냥 평범하게 이야기 하면서 건전한 회의가 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분기점은 마릴다의 발언.
미류의 땅을 그냥 지나칠 수 있다는 걸 들은 마릴다가 고민도 없이 내뱉은 발언에 모두의 의견이 갈리고 말았다.
"뭐야, 소환주 땅 지나칠 수 있어? 그럼 내 전투수송선 수리해서 일제 폭격하면 간단히 끝나는데?"
"전투 수송선이라면, 저번에 나한테 레이저 쏜 그거?"
"맞아! 그 때 터진 부분만 떼우면 어떻게든 굴러가거든! 프레이트에 생각 이상으로 재료가 많이 남았더라고! 안드로이드들이랑 얼른 수리했찌!"
"그럼 일제 폭격이란건?"
"뭐긴 뭐야, 폐허를 가루로 만들자는 이야기지!"
모든 원인은 마릴다에게 있다.
보통 이런 소릴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거나 꺼름직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생각보다 전쟁에 익숙한 사람들이 모여서 생기는 논란이다.
샤브린과 마릴다는 좀 민간 피해가 생기더라도 전쟁을 빨리 끝내는게 피해를 가장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쪽.
루시에르와 루리에는 민간 피해를 축소시키면서 천천히 가야 한다는 쪽.
유린이와 현성 쪽은 중립이다.
나? 일단 의견을 종합해서 결정을 내릴 예정이었는데, 2:2:2라서 어느 한 쪽 손을 들어주기 껄끄럽다.
말 그대로 내 한 표로 모든 게 결정되는 상황.
...어떤 게 좋을까.
게임으로 볼 때 전자는 상대 병력을 줄이기 편한 대신에 지역 발전도와 치안을 떨어뜨리는 방식.
후자는 치안과 민심을 잡고, 발전도 손상을 최소화시키는 대신에 상대를 쓰러뜨리기 쉽지 않은 방식이다.
어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냐에 따라 갈리는 상황이군.
그저 단순히 점령만 해야 하는 게임이라면 전자.
병력이 제법 필요하거나 문화 관련도 필요한 게임이라면 후자.
장수 위주인 이 게임이라면 어떨까.
사실 전자가 확실한 방법이라고, 머릿속에선 판단이 선다.
ㅡ물론 전쟁은 머릿속 생각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지만.
"후자로 하자."
"아니, 내 말 못 들었어? 전쟁을 빨리 끝내려면..."
"아니, 확실하게 들었어. 전자의 방법도 쓸 거야."
"뭐?"
내가 한 결정은 '둘 다 사용한다.'였다.
설명이 필요하다는 얼굴로 바라보는 모두들.
간단한 이야긴데, 다들 흥분해서 제대로 판단이 안 되는 모양이다.
"'우리가 누구랑 싸우고 있는가.'라는 전제가 틀려."
"누구라니, 당연히 빌런 연합이랑..."
"그렇네, 그건 괜찮을지도."
"?"
중립을 표명하던 현성이 내 이야기에 한 표를 올리자, 가만히 생각하고 있던 유린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쪽에 표를 얹는다.
그러자 루리에도 뒤늦게 자신의 발언을 곱씹다가 깨달은듯 아? 하는 기색.
"그렇네, 우리 적은 '빌런 연합'이지?"
"전쟁이 걸려있는 건, '빌런 연합' 뿐이야. 페리아는 어벤져랑도 걸려있는 거 같긴 한데..."
"무얼, 그건 쳐들어오는 것에 대한 보복이었지. 이름값대로 덤빈다면 쓸어버리겠지만, 쳐들어오지 않는다면 더 공격할 생각은 없다."
"흐흥, 다시 말해 우리가 공격할 건..."
"그래."
한국 지도를 펼치면서 한 지역을 가리키는 나. 가리키는 곳은 당연히 빌런 연합의 유일한 영토.
"전투수송선이 수리되는 대로 포항을 폭격해서 전멸시키자. 포항에 시민들이 남아있으면 최대한 구출. 아마 미트 골렘이라는 걸 쓰는 걸로 봐선 살아남은 사람이 적을 거 같지만... 선발대로 먼저 보호 마법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이 들어간 후에 방어 준비가 완료되면 폭격하자."
"결국 사람은 살리면서 건물 발전도는 떨어뜨리겠단 이야기지?"
"맞아. 우리한테는 목포라는 빈 영토가 있거든."
"흐응, 빈 영토인가~ 나중에 가봐도 돼?"
"너 아직 우리 진영 아니거든...?"
"왜 뭐, 회의도 했다며. 되겠지 뭐."
"진영에 들어오면, 그렇게 할게."
루리에의 말에 가볍게 넘기면서 말하는 마릴다. 제멋대로인 성격이다.
그래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기에 수긍해준다. 아군이 되면 가는 것정도야 뭐...
"수리는 얼마나 걸려."
"글쎄? 안 불렀으면 이틀이면 됐겠지만, 휴머노이드들이 얼마나 해놨냐에 달렸지."
"그럼 3일 정도인가."
"맞아~ 그것도 다 이 슈퍼 천재 발명가께서 손 보고 있어서다? 재료가 있다고 그만한 함선 수리가 짧게 끝나는 경우는 없거든."
"수리 실력은 감탄하고 있는데, 자뻑하면 오히려 마이너스야."
"내가 잘 보여서 어따 써. 스트레스 받으면 일 못 해."
"그래그래..."
마릴다의 말에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주는 현성. 몬가, 몬가 저번보다 많이 가까워진 모습이다.
"두 사람 사겨?"
"어? 아니, 그건 아닌데."
"오~ 나랑 사귀고 싶어? 하긴, 현성이 너 정도면 나랑 죽이 잘 맞긴 하겠네!"
루리에의 발언에 깜짝 놀라며 부정하는 현성과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하는 마릴다. 음... 반응을 보니 아직 그런 느낌까진 아닌 모양이다.
그도 그럴게, 저번 반응을 볼 때 마릴다는 제멋대로인데다가 츤데레 속성까지 있으니까.
저 말에 츤츤대지 않는 시점에서 아직 현성을 좋아한다는 자각은 없다.
"그럼 그걸로 하는 거지? 나 빨리 돌아가서 수리하고 싶은데."
"사람들을 지킬 수 있으면 나도 상관은 없어."
둘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자, 그 정도로 만족하기로 한 듯 수긍의 의사를 표하는 사람들.
그렇게 좀 더 세부적인 걸 이야기한 우리는 잠시 후 회의가 끝나고 흩어졌다.
Side 루루
"아... 윽..."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예 온 몸이 묶인 상태로 어느 침대에 눕혀져 있었다.
온 몸을 뒤덮고 있는 침식의 마력.
하지만 마력이 어느 정도 돌아온 내가 억지로 마력 전환을 사용하자, 파지직. 하면서 침식의 마력이 조금 밀려난다.
"하, 흐..."
또, 성공했네.
차라리 침식에 아예 먹혀버렸으면 좋았을텐데.
빛의 마력은 매번 이랬다.
침식도가 100%가 되서 완벽하게 침식되면, 제법 기간이 흐른 뒤 천천히 정화돼 침식도를 낮춰버리고 만다.
현재 침식도는 80%.
언제 먹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어째서인지 침식의 정신 공격이 들어오지 않는다.
빛의 마력 자체가 이 보랏빛 마력의 카운터라도 되는 걸지도.
아까 침식당할 때는 마력이 없었으니까.
"하아..."
답답하다.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답답했다.
몸 안에서 마력을 움직이는 건 괜찮지만, 어째서인지 방출은 불가능.
아마 나를 묶고 있는 이 천의 기능이겠지.
잠시 입술을 살짝 깨물다가 이내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바라본다.
버려진 실험실과 같은 분위기.
벽에는 여러가지 빛깔 물약이 전시되있고, 실험관과 각종 도구가 책상에 널부러져있다.
솔직히 전혀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내용이지만, 내 주변에도 날카롭거나 드릴같은 것들이 잔뜩 보이는 상황.
마법소녀를 실험체로 쓰기라도 하고 싶은 걸까.
육체 손상이 빠르게 회복돼버리는 우리들에게는 의미없는 도구들이다.
"..."
HP가 50% 이상 깎여있다.
내가 침식으로 복종당하는 사이 뭔가 당하기라도 한 걸까.
나도 모르는 내가 뭔가 행동하고, 모르는 것을 당했다는 게 두렵다.
심지어 체력이 깎일 정도면 이런저런 걸 다 당했다는 건데... 하리라면 무슨 짓을 당했는지 알까.
"하리..."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
말하기 힘들 정도로 심한 짓을 당한 모양이다.
실험이라던가 고문이라던가 이것저것 했겠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마력도 생각보단 적게 남아있는 게 수상하기 짝이 없다.
"하아..."
얼마나 이렇게 더 생활해야 할까.
빛과 희망의 마법소녀인데, 당하는 거라고는 납치, 강간, 착취, 침식...
원래 세계에서 살았을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솔직하게 정신을 놓지 않고 있는 것 자체가 괴롭다.
모든 걸 놓은 채로 그냥 인형이 돼버리고 싶다.
더 이상 고통스럽고 싶지 않아.
하지만...
"언니."
가족이 살아있다.
나의 유일한 가족인 언니가 살아있다.
그것도 침식에서 벗어나 평범한 마법소녀로서 활동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끔찍한 피오레는 내 근처에 계속 루리에 언니를 두었을테니까.
침식당한 루리에 언니를 계속 내 눈앞에 두고, 루리에 언니를 조종해서 나를 농락하려고 했겠지.
침식당한 두 인형을 다루고 인형극이라도 했을지도 모른다.
"하리."
[말씀하십시오.]
"내가 빠져나가려면 마력이 얼마나 필요할까."
[침식을 해제하려면 2주 이상 걸릴 겁니다. 몸에 두르고 있는 건...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템 효과군요.]
"그럼 침식 해제 먼저... 안 들키면서 진행하면 되겠지?"
[...]
"힘내보자."
[...네, 마스터.]
그렇다면 어떻게든 빠져나가고 말겠어.
홀로 남겨져있는 실험실 속에서 나는 조용히 의지를 불태웠다.
포항.
아침이 되고 나서야 포항 끝자락에 도착한 헤리어스는 은폐한 상태로 포항 시의 상황을 주시한다.
평소와는 다른 십자 모양의 동공을 한 상태로 그저 멀리서 도시 상황을 관측하는 헤리어스. 잠시 후, 그의 근처에 바람 한 줄기가 휘잉. 하고 불어닥치고, 그는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마스터는 있는 건가."
이 세계의 언어가 아닌 알 수 없는 언어로 그렇게 중얼거리자, 그의 어깨에 바람이 뭉치며 녹색 요정 하나가 그곳에 자리한다.
그리고 그의 오른편에 화륵. 하고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나타나는 붉은 요정.
양측 어깨에 요정이 한 명씩 자리하자, 그는 등에 있던 자신의 스나이퍼 라이플을 들고 철컥. 하고 자세를 잡는다.
"그렇군, 거리는... 대략 2.35km인가."
보통이라면 절대로 저격할 수 없는 거리.
하지만 그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이는 파이톤의 모습을 관측하며, 헤리어스는 조심스럽게 숨을 고른다.
내가 도와주면 되잖아.
"너희의 도움을 받으면 파이톤이 눈치채겠지. 저래뵈도 마도사니까."
헹. 마법사 따위가 그 몇 초 사이에 우리를 눈치채고 방어한다고?
"가능하다."
그렇게 말하며 조용하게 철컥. 하고 탄환을 장전하는 헤리어스. 그로서도 이 거리를 보정없이 쏜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조종간을 당기는데 제법 망설임이 느껴진다.
그렇다곤 하더라도 그는 프로 스나이퍼.
미류 일행이 오기 전에 파이톤을 탈락시키는데 성공한다면, 그 메리트가 어마어마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기에 시도한다.
정조준.
상대가 움직임을 멈추고 재료를 둘러보고 있을 때, 방아쇠가 느릿하게 당겨지기 시작한다.
발사까지 5초.
상대가 움직이면 빗나가는 저격.
그 부담감에 그는 방아쇠를 당기던 걸 다시 원 상태로 돌린다.
오히려 언제 움직일지 모르는 지금 상황보다 움직이며 집중하는 상황이 더 저격하기 쉬운 환경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다.
"...?"
저격을 잠시 대기할 때, 파이톤의 뒤에 나타난 한 푸른 소녀.
파이톤과 빌런 연합의 인물이 뒤를 돌아보며 전투 준비를 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그는 스나이핑 자세를 유지한다.
전투 중.
그 상황은 그 누구보다 저격하기 좋은 상황이 될 테니까.
특히나 파이톤의 전투 중 움직임은 매우 정적이다.
분명 스나이핑 타이밍이 나오리라.
그는 그렇게 가만히 그들의 전투를 관망할 따름이었다.
푸른 소녀, 서연과 파이톤의 대치.
파이톤이 능숙하게 기사 골렘을 일으키고, 옆에 있던 남자는 무언가 마법을 사용하려는 것처럼 영창을 시작한다.
"흐음... 그렇구먼. 자네가 메인 시스템인가?"
"파이톤, 소환주의 몸을 함부로 하려하는 건 무례한 행동입니다. 그만두시길."
"허허, 나는 그저 소환주의 육신이 나약한 것이 걱정됐을 뿐이라네. 그리고 마력 코어도 준비돼있으니, 오히려 소환주한테 이로운 일을 하는 게 아닌가?"
"부정, 당신이 소환주를 조종할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흐음...? 그런 기억은 없네만?"
"확인, 당신이 찾는 재료 '유크리만'은 주로 복종이나 세뇌하는 저주의 재료입니다. 부정해도 소용없습니다."
"끌끌. 과연, 그걸 알고 있는가?"
자신의 연기를 들킨 순간 파이톤은 손을 까닥여 기사 골렘을 움직인다.
실제 기사의 움직임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푸른 소녀를 찔러 들어가는 골렘의 검.
푸른 소녀가 그 움직임을 시선을 따라가고 그녀에게 닿으려는 순간, 허공에서 파지직. 하고 푸른 막이 만들어져 그 검을 막아낸다.
"...다중 결속 결계라고?"
"조소, 당신의 전력이 나와도 저에겐 티끌 하나 건드릴 수 없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저는 마왕 루크벨트의 마도서이자 어느 대마도사들의 기억 총체. 어줍잖게 골렘술사의 길에서 흑마법사까지 건드린 당신으로서는 저에게 닿을 수 없죠."
"마력 충전도 안 되는 계집 주제에 건방진 소릴..."
"그거 아십니까. 파이톤."
"뭐냐."
"제가 예언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살짝 손을 까딱하는 소녀. 그러자 기사 골렘은 갑작스럽게 움직임을 멈추더니 그대로 두동강이 나며 양쪽으로 갈라진다.
그와 동시에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빌런 연합의 남자.
그 광경을 보는 파이톤의 눈에는 두려움이 아닌 분노만이 차오를 따름이었다.
"네 녀석..."
"당신은 다른 사람의 손에 2초 후에 죽습니다."
"무슨 개같은 소릴 하는 거냐!"
그의 말과 동시에 그의 주변에 솟아나는 5기의 아이언 골렘.
그리고 그 순간.
픽!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언 골렘들이 전부 허물어지며 파이톤의 몸이 옆으로 튕겨나간다.
그리고 붉은 빛의 마나를 흩뿌리며 사라지기 시작하는 그.
잠시 먼 곳에 있는 언덕을 주시하던 소녀는 잠시 눈을 감는다.
"상황 종료. 마력 잔량 확인. 남은 마력 10%. 위험 요소, 확인. 빌런 연합 소유 괴수가 제작 완성 단계. 마스터에게 위험한 상황인지 산출... 확률 0%. 괴수가 날뛰기 전 미류가 도착. 괴수는 마법소녀들에게 처리를 맡길 것. 메인 시스템 '하 서연', 위험이 없다고 판단. 작동 종료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푸른 빛으로 화하기 시작하는 서연.
그리고 잠시 눈을 떠 하늘을 바라보던 그녀는 아무런 감정 없는 눈동자로 그렇게 자리에서 사라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