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44화 (44/149)

〈 44화 〉 마법소녀는 희망을 잃어선 안 돼!

* * *

원주에 있는 병원.

미류의 마스터가 있는 곳에서 아르멘과 파이톤이 서로 대치한 채로 서있었다.

이미 한 쪽 팔이 날아간 아르멘의 모습과 여유롭게 기사의 형상을 한 골렘을 앞세우고 있는 파이톤.

이상할 정도로 불안정하게 마력의 빛을 띄고 있는 아르멘은 억지로 오른손에 마력을 감고 있는 모습이었다.

"큭..."

"흐음... 소환주를 지키는 게 우리 사람들이 아니라니, 이상한 일이군."

"어째서, 어째서... 마력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수녀여. 르보다 어째서 자네가 우리 소환주를 지키고 있지? 대리인과 카진은?"

"...모릅니다."

"모르면 알 때까진 맞아야겠지."

"주여, 저에게, 재생의 축복을."

다시 기사 형상의 골렘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녀는 억지로 마력을 짜내며 팔을 재생시키려고 하다가, 실패한다.

마력 공급에 차질이 있다는 걸 깨닫고 입술을 깨무는 아르멘.

이대로라면 상황 설명조차 하지 못한 채 죽을 거라는 생각에 그녀는 판단을 마친다.

"허, 도망갈 생각인가?"

"..."

"이래서 용병들은... "

"마음대로 떠드시길."

온 몸이 빛으로 휩싸이는 그녀를 보며 파이톤은 그녀의 판단을 깨닫고 골렘으로 찔러 들어가지만, 아르멘의 육신은 이미 그 자리를 벗어난다.

파이톤과 소환주라 불리는 소녀만 남은 공간.

조심스럽게 스스로의 육신으로 소녀를 들어올린 파이톤은 사이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소환주의 육신을 손에 넣었군. 역시 이런 아무것도 없는 소녀한테 내 육신 유지를 맡기는 건 곤란하단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소녀에게 붙은 영양제 같은 걸 전부 뜯어내곤 소녀를 데리고 사라지는 파이톤.

미류와 다른 파티가 도착할 때즈음엔 이미 상황은 종료된 뒤였다.

­­­­

다음 날 아침.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가 집 비밀번호를 누르면서 들어오려고 하는 소리를 듣고, 나는 눈을 부비적거리면서 몸을 일으킨다.

집 비밀 번호를 아는 건 마법소녀들 뿐인데... 루리엔가...?

"얘는 또 왜 여기서 자고 있어..."

마치 나를 안는 베개처럼 껴안고 자고 있는 유레하를 보며, 조심스럽게 손을 풀고 문으로 다가간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다듬어지는 머리칼과 깔끔해지는 얼굴.

자연스럽게 잠이 깬 내 눈 앞에 루리에와 이름 모를 단발 소녀가 보였다.

...누구?

긴팔에 겨울용 조끼, 검은 스타킹에 무릎까지 오는 치마를 입고 있는 소녀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나.

그러자 루리에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미안, 나 때문에 깬 거야?"

"아니, 일어날 시간이긴 해."

"나 때문에 깼단 소리네. 미안미안. 너무 일찍 출발했나봐."

"..."

그녀의 말에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보자, 현재 시각은 아침 7시.

확실히 일찍 출발했구나 싶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피곤하진 않으니 상관은 없다.

"괜찮아. 그보다 누구...?"

"서, 서 미령입니다! 마, 만나서 반가워요, 천사님!"

"..."

평범한 사람들 만날때마다 이 소리 듣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이지?

이런 사람들은 매번 아니라고 해도 천사님으로 부르는 사람들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도록 하자.

"응."

"저, 그, 그러니까..."

"이 아이, 전쟁중이니까 사람들 치료하고 싶데. 능력은 약을 만드는 거야."

"약?"

"넷! 여기요!"

루리에의 말에 곧바로 동그란 환을 꺼내들어 나에게 주는 미령. 그 모습에 내가 곧바로 렌에게 성능 분석을 요구하자, 잠깐 딜레이 끝에 그녀가 말했다.

[스테미나와 HP가 10% 정도 올라가는 약입니다. 상당하군요.]

"괜찮네."

"그렇지?"

"회복약, 하루에 몇 개 만들 수 있는 거야?"

"에, 지금은 좀 간단한 약초로만 만들어서 5~6개는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재료 공급만 원활하면 20개까진?"

"그래."

"평범하게 좋은 아이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혹시 몰라서 데려왔어. 미경이한테 면접 보게 하려고."

"아, 그렇구나."

좋은 생각이다.

확실히 괜찮은 약사지만 혹시 모르는 상황이니까,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미경이한테 확인시키는게 좋겠지.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간에 찾아가면 방해일 테니까. 밥 먹고 가자."

"아, 뽑아온 거 있어?"

"응."

내 말에 루리에가 자연스럽게 냉장고로 가서 카레를 꺼내들고, 미령이 눈치를 보는듯 힐끗힐끗 나를 쳐다보는 걸 느끼며 곧바로 손을 휘저어 다가오게 만든다.

그러자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깝게 나에게 붙는 미령. 그 행동에 루리에가 푸흡. 하면서 웃기 시작하고, 나는 부담스럽다는 감각에 고개를 뒤로 당긴다.

"천사님, 천사님!"

"...응."

"볼 당겨봐도 돼요?"

"...?"

완전히 얼굴을 가까이 한 채로 눈을 빛내는 그녀를 보며, 식은땀을 삐질 흘리는 나. 유레하랑은 다른 의미로 부담스러운데요.

도움을 요청하는 눈으로 루리에를 바라보지만, 그녀는 그저 웃으면서 식탁에 카레를 놓을 뿐이었다.

"왜? 뺨 닳는 것도 아닌데."

"닳아."

"마법소녀의 뺨을 닳게 만드는 소녀! 이거 히트네."

"...하지마."

"아하하, 스노우가 귀여워서 그래. 그렇지?"

"맞아요! 직접 보니까 영상보다 훨씬 귀여워요! 귀여운 외모로 진지하게 소리치는 것도 갭 모에때문에 엄청 좋았지만, 평소에도 무표정인 거네요! 엄청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하아..."

"어, 으, 응..."

미령이에게서 느껴지는 변태의 기운에 루리에마저 당혹의 기색을 살짝 보이기 시작하고, 내가 그런 그녀에게 딱콩 수준의 마력을 투사하자, 별 모양 탄막에 이마를 통! 하고 맞고 살짝 뒤로 밀려난다.

그리고 이마를 감싸는 미령.

"제가 너무 들이댔나요... 죄송해요, 영상으로만 보던 아이... 아니, 천사님을 봐서..."

"..."

너 방금 아이돌이라고 하려 했지.

그리고 정정도 천사님이라고 했으니까 의미 없잖아.

그녀의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 앉아 카레를 먹기 시작한다.

렌, 영토 지도 좀 열어줘.

[네.]

카레를 씹으며 허공에 지도를 띄우자 보이는 건, 미류의 영토를 제외하곤 5영토가 남았다는 사실.

전쟁이라고 하기엔 전술핵이 2명이나 있어서 영토를 빠르게 먹어치우긴 했네.

어제 하루동안 5영토가 먹힌 것을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상태는 어때."

"응? 아, 멀쩡해. HP가 좀 많이 깎였었는데, 오면서 약 잔뜩 먹었거든."

"비축해둔게 많아서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용케 살아남았네."

"제 능력을 알아챈 분들이 지켜주셨으니까요."

"착한 분들이네."

"그만큼 상처도 많으셨어요. 그래서 항상 치료하고 있었는데..."

"아, 다른 방에 있던 그 사람들?"

"네, 이번엔 과천으로 가서 몬스터 사냥하다가 크게 다치셨던 모양이에요."

"거기 영토도 없는데... 점령하러 간 건가?"

"일반 각성자들은 몬스터를 잡아야 레벨업 하니까요? 아이템도 있고."

생각해보니 레벨 업해야 하는 거였지, 이 게임.

미령의 말에 루리에와 나는 동시에 수긍한다.

마법소녀들은 아이템 의존도가 낮은 편이라 별 생각없었는데, 일반인들은 목숨 걸고 사냥다녀야겠지.

안 그러면 살아남기 힘드니까.

"저는 약 제조만으로 올라가지만요. 아무튼 평소엔 다쳐오지 않으셨는데, 2단계? 가 되면서 몬스터 종류가 필드보스 급들로 변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겨우 살아왔다던데."

"오크 투사나 고블린 주술사같은 애들 말하는 거지."

"맞아요. 이제 고블린들이 좀 있다 싶으면 주술사나 라이더가 껴있고, 오크도 궁수를 데리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더라고요. 기본적으로 무리 단위로 움직여서 위험했데요."

"...다시 말하면, 오크 투사나 그런 애들을 잡을 정도의 실력은 된다는 거네."

"그렇죠? 사실 만나면 잡으려고 움직인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

생각보다 플레이어들의 질이 오른 모양이다.

"모여서 움직여도 3~4마리니까요. 어떻게든 잡는 거예요. 플레이어는 많으니까요."

"...오크 투사의 전투를 보면, 그렇게 쉬운 이야기는 아니야. 전멸당해도 이상하지 않아."

"플레이어들도 나름 레벨이 높아졌으니, 믿어달라구요? 지금 천사님이 투사를 잡으면 어떨거 같아요?"

"..."

그야, 공격도 전에 죽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많이 강해졌다 싶지만, 매번 상대하는 적들도 강해지고 있어서 체감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투사와 주술사가 섞인 파티를 어떻게든 잡다니, 언제 플레이어들이랑 같이 사냥다녀도 문제 없지 않을까? 일방적인 쩔이겠지만.

"다 먹었으면 찾아가보자!"

"...아직 7시 30분인데?"

"솔직히 미경이는 몇 시에 찾아가도 반길걸?"

"?"

루리에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나. 그러자 그녀는 그저 장난스런 미소만 지어보일 뿐, 딱히 내 의문에 답변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뭐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일단 가보면 알아~ 그러니까 가보자?"

"...? 응."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는 루리에의 말에 의문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뭐, 가보면 알겠지.

­­­­

Side 최유린

눈을 떴을 때, 보인 건 소파에 기대 누워있는 상혁이의 모습이었습니다.

...시점이 이상합니다.

어째서 상혁이의 얼굴이 바로 보이는 걸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킨 후, 주변을 살핍니다.

잠들기 전이랑 비슷한 모습.

아무래도 무릎 베개를 해주면서 잠든 모양입니다.

정말 그런 불편한 자세로 사람은 잘 수 없는데...

"..."

제 고백 아닌 고백에 어느정도 신경써줬던 거겠죠.

자신의 마음은 수진 선배에게 가있지만, 그래도 너를 싫어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전생의 기억같은 걸 각성하지 않았다면... 아니, 그랬다면 상혁이는 아포칼립스 상황이 시작됐을 때 제법 위험했겠죠.

그런 전제는 잡지 않습니다.

잠시 잠들어있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옛날부터 바라봐왔던, 그 얼굴 그대로.

저도, 상혁이도 그 때와 달라진 점이 별로 없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버린 걸까요.

샤브린만 없었다면, 제가...

ㅡ그렇지, 샤브린만 없으면 네가 상혁이를 차지할 수 있지 않겠어?

"..."

머리에 속삭이듯 들려오는 목소리에 저는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오리하르콘을 소량 꺼내 던집니다.

그와 함께 크리에이트가 발동하며 집에 사용된 석재들을 전부 오리하르콘 화.

그런 후 주위를 둘러보자,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정신 공격인가요.

잠시 슬쩍 창밖을 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의하는게 좋겠네요.

저에게 정신 공격을 해올 정도라면, 일반인들에게는 확실하게 걸릴 테니까요.

일단 스노우한테 연락해야...

"으음..."

"..."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상혁이에게서 들려온 목소리에 잠시 몸을 멈춥니다.

아무래도 제가 움직여서 잠이 옅은 잠으로 바뀐 모양입니다.

...평소에 무리하고 있는 그를 깨울 생각은 없습니다. 전체에게 정신 공격이 가능했다면, 진작 그렇게 했겠죠.

많이 급한 일은 아니니까, 조금 있다가 연락해도 문제는 없을 겁니다.

"..."

물론 전부 핑계입니다.

그저 자고 있는 그를 보고 싶을 뿐입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상혁이가 옆으로 스르를 넘어지면서 저를 잡아당깁니다.

"...!?"

두근.

얼굴이 가깝습니다.

제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단단한 팔이 저를 감싸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면, 모르지 않을까요.

악마의 유혹처럼 드는 생각에 저는 몇 번이고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흐트립니다.

지금 이건 상혁이 본인 의사가 아닙니다.

자고 있는 사람에게 뭔가를 할 정도로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하는데.

자제심이 실시간으로 떨어집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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