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42화 (42/149)

〈 42화 〉 마법소녀는 희망을 잃어선 안 돼!

* * *

Side 루루

눈을 뜨면 또다시 어두운 공간.

얼마나 있었던 걸까.

알 수 없지만 아직도 몸에 남아있는 '봉사'에 흔적으로 볼 때, 잠들었을 때도 뭔가 당한 모양이다. 그것도 엄청 최근이라 아직 사라지지 않은 모양. 아, 사라졌네.

"..."

마법소녀를 해제하면 굶어죽을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루리에 언니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단 사실도 알고 있다.

애초에 변신 풀면 다시 변신할 때까지 계속해서 고통을 주는데, 버티기 힘들고...

멍청한 과거의 나.

아포칼리스 세계에서 교회에 좋은 사람만 있을 거라고 생각한 멍청이를 다시금 때리고 싶어진다.

콰아앙!

그 때 위에서 폭발음과 함께 땅이 흔들린다.

하루에 몇 번은 들려오는 폭발음.

또 내 마력 가지고 뭔가 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덜컥!

"제기랄!"

"...?"

초점이 잘 잡히지 않은 눈으로 문을 바라보자, 그쪽에 있는 건 피투성이인 목사의 모습.

한 쪽 팔이 날아간 채로 내 마력을 두르고 있는 그의 모습에 느릿하게 머리를 굴린다.

내 마력은 빛의 마력.

회복이나 방어, 축복에 특화된 마력이라 저런 상처쯤 금방 나을 텐데...

파지직.

그런 생각을 할 때, 목사의 팔에서 스파크가 튀는게 보인다.

보랏빛 스파크.

그걸 본 순간, 나는 눈이 커지기 시작한다.

"침식...?"

"마력 더 내놔!"

"웁!?"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내 입을 덮는 목사의 행동에 구역질이 올라옴을 느끼지만, 먹은 게 없어 올라오는 것도 없다.

강제로 혀를 섞는 그의 행동.

계약으로 완전히 노예로 떨어진 나에게 그 일에 대한 거부권은 없었다.

다만... 나한테 마력을 안 남긴 건 너잖아. 멍청이.

[마스터, HP가...]

아. 그렇구나.

안 그래도 신체에 기운이 없는데, 점점 감각도 희미해져간다.

보이는 건 목사의 팔이 강제로 재생되고 있는 모습.

아무래도 MP가 아니라 내 HP를 빨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목사라는 작자가 뱀파이어 같은 짓을 하다니, 우습네.

그래, 차라리 이대로 죽으면...

"쏴라."

"네."

픽!

"커어..."

그런 생각을 할 때, 목사의 목에 카드가 박히며 그대로 절반 이상 갈려나간다.

목에 카드를 박은 채로 내 입 안에 피를 뱉어내며 서서히 쓰러지는 목사.

그와 함께 나는 마력이 조금씩 회복되감을 느낀다.

퉷.

입 안에 고인 피를 뱉어내며 피부에 붙어있던 핏자국이 전부 사라진다. 조금 회복된 마력으로 쇠사슬을 모두 잘라내지만, 알고 있다.

이런 생각이 가능한 것도 다시 끝날 거라는 사실을.

"흐음흐음~ 역시 멀리 가진 못했구나, 루루?"

"...피오레."

몸에 축복을 내린다.

단순한 신체 강화의 축복.

억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어떻게든 움직이려는 발악.

하지만 당연스럽게도 그런 내 발악은 무의미했다.

그의 손에 맺히는 보랏빛 마력.

침식의 마력에 저항하려면 많은 마력과 정신력이 필요한데, 남은 마력도 없고 정신도 반쯤 죽은 상태니까.

"얼마나 더럽혀진 건지 모르겠다만... 뭐, 너는 상징적이니까 용서해줄까~? 빛과 희망의 마법소녀는 타락시키는 거 자체만으로 짜릿하거든!"

"하리..."

[말씀하시길]

"이만 죽고 싶어."

[안 됩니다.]

"..."

"멋대로 죽는 건 안 된단다? 모든 마법소녀는 내 것이니까 말야."

"웃기고... 있네..."

피투성이인 목사 시체의 멱살을 잡아 내 마력을 돌려받는다.

그 행동에 빠르게 카드를 날리는 피오레의 수하.

아니, '침식당한 마법소녀'인가.

어거지로 흡수한 마력으로 방패를 생성해 막아낸 후, 그대로 비행.

빛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마법을 발현하려는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히고 만다.

"아...으으으윽..."

"흐음흐음, 확실히 침식이 잘 안 통하긴 한단 말이지? 목사 녀석이 한 행동도 이해 못할 건 아니야."

"커으..."

어느새 내 목에서 숨을 쉴 수 없도록 짓누르는 보랏빛 손길.

내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떨쳐내기위해 마력을 끌어올리지만, 조금씩 물들기 시작하는 침식을 보며 입술을 살짝 깨문다.

어쩔 수 없어.

넌 잡혀있던 마법소녀잖아?

침식에 당하는 건 당연한 거야.

자, 받아들이렴.

제법 포근할 거란다?

닥쳐!

"크으으..."

정신에 말을 걸 듯 들려오는 속삭임에 속으로 소리치지만, 슬슬 숨이 부족해 정신이 멍해지며 파고들기 시작한다.

루리에... 언니...

보고 싶어...

그 생각을 끝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

단양 시.

단양 시에 존재하는 유일한 영주관의 앞에서 20개가 넘는 책을 허공에 띄운 유린이와 머리카락으로 제법 많은 숫자의 검을 만들어낸 리시안셔스가 대치하고 있었다.

"비켜."

"단양을 지키라고, 명 받았습니다. 그 대답은 기각합니다."

"...그래."

그녀의 말에 여러개의 책에서 쿠쿵! 하면서 10여개의 마력대포가 생성된다.

이미 불이 붙어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려섬과 동시에 쏘아지는 포탄들.

리시안셔스는 눈을 푸르게 빛내며 그 대포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두동강내고, 동시에 유린이에게 달려든다.

"...!"

그러자 뭔가 꺼내들더니 그 자리에 곧바로 사라지는 그녀.

리시안셔스가 놀라며 그 자리를 베어 들어가지만, 그곳에 남은 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신기한 아이템입니다."

모습, 기척, 냄새까지 전부 차단됐다는 걸 확인해 마력시로 주위를 둘러보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

마력이 느껴지는 건 허공에 떠오른 책들뿐.

책을 띄우는 시전자의 마력이 느껴져야 정상임에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괴상한 현상에 그녀는 머리카락을 합쳐 거대한 메스를 만들어낸다.

후웅! 후웅!

계속해서 원형으로 돌아가는 거대한 메스.

찾아내지 못한다면 갈아버리겠다.

그런 의사가 담긴 행동이었으나, 덕분에 그녀는 쭈그려앉은 유린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거의 코앞까지 걸어갈 뿐이었다.

"가동, 세이비어."

"...!"

코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새하얀 빛의 검이 자신의 몸에 닿고 있단 사실을 깨닫는다.

인공이라고는 하나, 마족에게 상극인 신성력.

검에서 발휘되는 신성력에 리시안셔스는 순간 판단한다.

만들어내는 건 마갑.

가슴 부분에 찔러지는 검을 보곤 마력으로 가슴 부분을 마갑으로 변형, 마력을 불어넣어 강도를 강하게 만든다.

카앙!

"칫."

그와 동시에 반격. 양 팔에 있는 검으로 연격을 가하려고 하자, 그녀가 신고 있던 신발에서 드르릉! 하는 소리과 함께 부스터가 가동돼 몸이 휙하고 뒤로 물러나진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만들어지는 손대포.

손에 대포를 장착한다는 말도 안 되는 발상이었지만, 구조를 파악한 리시안셔스의 손에 똑같은 대포가 만들어진다.

타앙! 피칭!

양 측 대포에서 쏘아진 마도 탄환이 서로 부딪혀 튕겨나간다.

이미 막힐 걸 예측했다는 것처럼 곧바로 땅에서 솟아오르는 흙으로 된 드래곤.

메스로 서걱! 하고 두동강 내지만, 떨어졌던 흙이 다시 붙으며 그녀를 물어뜯기 위해 달려든다.

"아쿠아 웨이브."

판단은 빨랐다.

오른손을 푸른 창으로 바꾸며 물의 파동으로 흙을 적셔 무겁게 만들고, 그대로 다리를 망치로 바꿔 퍽! 하고 용의 머리를 분쇄.

바닥에 착지한 그녀는 날아드는 몇 발의 화살을 보며, 손을 대포로 만들어 전부 격추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러자 투다다다! 하는 소리와 함께 탄이 날아들고 리시안셔스는 몸 앞부분 전체를 갑주로 만들어 튕겨내는데 성공한다.

"..."

"..."

서로 귀찮은 상대라는 걸 확실하게 알아채고, 두 사람은 그저 대치하기 시작한다.

공격이 서로 통하지 않는다.

기습에도 평범하게 전부 반응한다.

게다가 무구를 만들어내면 그걸 복사해서 그 무구의 능력을 전부 활용하는게 신경 쓰여 유린이 측도 무구에 신경쓸 수 밖에 없다.

자신과 싸울 때만 그 무구를 쓰면 모를까, 아까 보였던 루리에의 무구를 볼 때 일단 한번 배낀 무기의 능력은 전부 쓸 수 있는 걸로 보였으니까.

이쯤되면 더 이상 무구를 보여선 안 된다는 사실 정도는 유린이도 알 수 있었다.

"귀찮아..."

그걸 깨닫는 순간, 그녀는 곧바로 머리핀을 뽑아든다.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머리카락 정리용 머리핀에서 순식간에 수상한 철제 날개가 되는 머리핀.

그걸 타고 날아오르는 유린이를 보며, 리시안셔스는 무구 복제를 시전하다가 실패한다.

"...?"

"이건 복제 불가능해."

리시안셔스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유린이를 바라보자, 그녀는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다.

어지간한 무구를 전부 복제할 수 있는 리시안셔스에게 복사가 불가능한 장비라니, 있을 리가 없다고 그녀가 생각했지만, 눈 앞에 놓인 걸 부정할 수 없는 노릇.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예의 대포를 손에 만들어내고, 그걸 본 유린이가 말했다.

"신기에 전용 무기, 그리고 대상자 외 사용하려고 할 경우, 강제로 해제. 같은 기능이 많아."

"강제 해제. 확인했습니다. 그 기능이 있다면, 불가능하겠죠."

그녀의 신체 변형으로 이뤄지는 무구 복제.

'타인이 쓸 경우 강제로 해제'라는 장비를 복제할 경우 그녀의 신체가 바로 떨어져내려 버릴 테니, 당연히 복제는 불가능해진다.

굳이 알려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무기도 있구나­ 하며 리시안셔스가 납득하고, 유린이는 잠깐 그녀가 생각하는 사이 그대로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한다.

퍼엉!

그런 그녀에게 정확히 대포를 쏘지만, 날개에 있는 기능인지 실드 마법이 발동하면서 격추는 실패.

리시안셔스는 그대로 후퇴하는 유린이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전투 종료. 다시 수비 모드에 들어갑니다."

­­­­

"거... 아가씨, 그 수녀, 믿어도 돼나?"

"그녀는 용병같은 존재예요. 보수가 적절하다면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이죠."

"영 껄끄럽구만, 안 그런가? 형씨."

"...조용히."

카진의 말에 입가에 손을 대며 말하는 헤리어스. 그러자 그는 에잉. 하고 입을 닫았고 잠시 후 그들의 근처에 각성자 몇 명이 지나친다.

현재 그들의 위치는 해남과 성남의 경계선.

딱히 누군가의 영토이거나 그런 지역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걸리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지금 성남에 들어간다고 해서 좋은 일이 생길지 모르겠군."

"헤리어스가 본 사람은 인간 초월자였죠?"

"그렇다."

"그렇다면 확인해볼만한 일입니다."

헤리어스의 대답에 고요하게 답하는 미류. 그 말에 그가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자, 푸른 소녀가 말했다.

"인간 초월자들은 대개 초월적인 마력의 소유자거나, 초월적인 오러의 소유자, 그도 아니면 막대한 신성력의 소유자입니다. 오러 외에 다른 두 가지는 에너지 코어랑 거의 비슷한 수준의 힘을 낼 수 있겠죠."

"...설마하지만, 기습해서 뺏자는 소린가?"

"아뇨, 거기까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초월자라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려면 많은 희생이 필요할 테니까요. 그저 부탁하는 거죠. '만약 초월자를 잡게 된다면 에너지 핵을 양도해달라'라고."

"음... 그럼 대가가 필요할 텐데?"

"네, 저는 저의 전부를 바쳐볼 생각입니다."

"...흠?"

"다른 분들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저 대리인. 다른 영웅 분들은 마스터에게 종속된..."

"아니, 기다려. 그게 문제가 아니잖나. 아가씨."

미류의 말에 어이없다는 것처럼 자르는 카진. 뭐가 문제냐는 얼굴로 그녀가 그를 바라보자, 방랑무사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첫째로 상대가 아가씨를 필요로 한다는 보장이 없어. 초월자의 시체와 아가씨가 거래 저울이 맞다고 장담을 못하지."

"그렇군요, 아직 보여준게 없어서 그럴까요. 그렇다면 이번 전쟁에서..."

"아니, 기다려. 둘째는 성남시 영주가 마법소녀라는 거지. 뭐하는 애들인지 나도 확실하게 모르겠다만... 적어도 정의를 외치는 녀석들 아닌가. 그런 녀석들이 인신매매 거래 조건을 받아들일 리가 없어."

"...그 점은 걱정 마시길. 저는 물건이니까요."

"허?"

"저는 창월의 서의 시스템입니다. 제가 창월의서에 들어가고 창월의 서를 준다고 하면, 거래가 성립되는 거죠."

"그건, 안 돼. 우리도, 창월의 서, 소속."

"아뇨, 영웅분들은 순수하게 마스터의 '능력'으로 소환됐습니다. 그러니까 창월의 서가 넘어가도 안심하셔도 됩니다."

"마스터가 그걸 받아들이긴 하고?"

"..."

카진의 말에 가만히 침묵하는 미류. 몸을 팔아서라도 자신의 주인을 지키겠다는 그 고결한 의지 자체는 대단한 일이었다.

다만, 그게 소환주를 위한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카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이봐, 그냥 두고두고 갚는 거면 몰라도, 네 몸을 가지고 거래하는 포기하는게 좋을 거야. 마스터까지 넘어가는 꼴 보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건..."

"뭐, 생각해보면 세력째로 넘어가는 거 자체는 나쁘지 않겠군."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왜 말이 안 되나? 어차피 우리도 사람들을 죽여가며 무언가 하는 놈들을 도와주고 싶지 않잖나. 녀석들은 사랑과 정의를 외치는 마법소녀들이지. 서로 성향은 충분히 맞아. 나는 그냥 나라째로 넘어가는 걸 추천하지."

"...안 됩니다. 저희 땅들은 마스터를 위한 겁니다."

"그럼 거래가 안 될 가능성이 높겠군."

"..."

카진의 말에 미류는 침묵하며 한숨만 폭 하고 내쉰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방금 말은 그저 고집에 가까운 일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그저 마스터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아무런 걱정없는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살아왔고, 그러기 위해 존재한다.

ㅡ다만, 문제가 있었다.

"분명 마법소녀 세력에 수호자가 있습니다. 스노우가 가장 유력해보입니다만... 수호자와 파괴자가 만나면, 그 관계는 파탄나는 게 정상입니다."

"우리가 공격하지 않으면 괜찮지 않겠나."

"글쎄요... 공격적으로 세력을 먹고 있는 페리아 측을 보면 모르겠군요."

"흠."

"...거의 다 왔다."

이야기하는 사이 성남으로 진입한 세 사람.

미류는 진입하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성벽을 보며 혀를 차고, 카진은 휘유. 하면서 휘파람을 분다.

현대에서는 유적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의 대단히 높은 성벽.

저걸 어떻게 들어가나 고심하고 있을 때, 성에서 누군가 날아오른다.

"...스노우."

"저 사람이군요."

물론, 그건 렌의 발언으로 그들을 관측해낸 스노우였다.

­­­­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