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마법소녀는 희망을 잃어선 안 돼!
* * *
Side 루리에
눈을 뜨자 하늘에 보이는 건 스노우가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새하얀 별무리와 어두컴컴한 밤의 모습.
또 루루의 꿈을 꿀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꿈도 꾸지 못했는지 기억이 없다.
"루루..."
원래 있던 세계가 멸망한 이상, 역시 동생도 죽었을 터.
스노우를 동생처럼 대하며 밝게 행동하고 있지만, 역시 꿈에서라도 동생을 보니 표정이 어두워지는 건 막을 수가 없다.
루루... 우리 루루.. 다시 보고 싶다.
어떻게 살아갔을까.
역시 내가 침식당하고 죽어버린 걸까.
하지만 영토 끝자락이니까 도망가는데 성공했을지도...
"아, 일어나셨네요! 푹 자시는 건 좋은 일이예요.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드시던데, 죽 드실래요?"
"...아, 네."
감상에 빠져있는 사이 내가 일어난 걸 발견한 미령 씨가 다가오더니, 죽을 가지러 다시 주방을 향한다.
그 모습을 보며 몸 상태를 체크. 돌아다니기엔 충분한 수준이라는 걸 알고 잠시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한다.
역시 밤이야. 그럴 생각도 없었는데, 괜히 감상에 빠지게 하네.
이런 식으로 슬픔에 잠겨있는 건 마법소녀으로서도, 나 자신으로서도 맞지 않는 옷이다.
나는 수해의 마법소녀이자, 희망을 주는 마법소녀.
개인적인 일이 있어도 누구보다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줘야하는 존재니까.
"수해랑 희망은 잘 안 어울리긴 하지만."
파도를 일으키고 물을 다룬다고 해서 붙은 이명 수해.
보통 수해가 뜻하는 건 사람에게 재난을 주는 쓰나미 같은 거니까, 솔직히 안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수해가 일어나는 공간 범위는 내가 지정할 수 있다는 정돈데, 솔직히 도시에서 수해를 일으키면서 싸웠다간 도시가 남아나질 않으니까.
말 그대로 도시 안에서 싸우는 건 적합하지 않은 능력이다.
게다가 그렇게 공격성이 강하지도 않고...
"사이네랑 연계하면 편한데."
화속성 마법사인 파이렌만 아니라면 굉장히 좋은 연계가 가능한 속성.
내가 전에 살아가던 곳에서도 다른 마법소녀가 있었으면 좀 더 편하게 3단계를 막아내지 않았을까.
아니, 아니네.
어차피 정신 공격에 당했구나, 나?
오히려 더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다.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아,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영주님이니까, 존댓말은 안하셔도 돼요."
"영주라도 제가 왕이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이 세계는 그런 세계가 아니었잖아요? 괜찮..."
"제가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서 그래요."
"..."
비겁하네.
왠지 내가 동생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훅하고 들어오며 말하는 미령의 모습.
나는 죽 한 숟가락을 먹으며, 작게 한숨을 내쉰다.
맛있네.
아마 끓인 건 최근인지, 따끈따끈하면서도 이것저것 영양이 가득한 죽.
잠깐 미령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응, 그럼 그렇게 할까."
"네, 언니."
"...원래 그렇게 사람들이랑 빨리 친해지려고 해?"
"어, 어떨까요? 언니는 그냥 좀 친근한 느낌이라서요!"
"그, 렇구나."
과하게 가까운 거리에서 부담스런 눈빛을 하는 미령의 행동에 나는 움찔하며 몸을 살짝 물린다. 저기, 죽 먹으라고 준 거 맞지...?
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자, 그녀는 자신의 실수를 알았는지 크흠. 하면서 몸을 다시 물렸고, 그 모습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죽을 다시 먹기 시작한다.
"죄, 죄송합니다아... 방금 싸우는 걸 엄청 인상 깊게 봐서..."
"아."
아까 일어났을 때 내가 싸웠던 곳이 그대로 보였다는 건, 미령에게도 그 싸움이 보였다는 의미.
게다가 적의 아쿠아 웨이브가 미령이 있는 이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었으니, 당연히 그녀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근처에 쓰러져서 주워왔다는 건 거짓말이겠네.
아마 상대가 도망간 후 내가 쓰러지는 걸 보며 급하게 왔으리라.
아까 사람들을 치료하던 것도 그렇고, 평범하게 착한 아이다.
"죽은 어떠세요?!"
"아, 응. 맛있네."
네 시선이 부담된다는 점이 좀 부담이지만.
뒷 말을 삼키며 전부 먹은 후, 잠시 플레이어 창과 시스템 로그를 연다.
시스템 로그에 적힌 건... 동맹인 '페리아'와 '프레이트'가 전쟁에 추가로 참전했다는 소리였다.
동맹인 건 기계 군단을 다루는 '현성'이라는 사람 뿐일 텐데. 라고 생각하다가, 초월자들 일행을 기억하며 수긍한다.
아랫지방에서 보스들을 격파하면서 올라왔다고 했었지.
그대로 쭉 올라왔으면 당연히 대각선으로 영토를 엄청 많이 가지고 있는 게 정상인 상황이다.
"언니?"
"...응?"
"아, 역시 못 들었구나."
"미안."
"아니예요! 그보다 지금 전쟁중인거죠? 아까 그런 사람들이랑?"
"으응... 그렇네."
"그럼 저를 본진으로 데려가주세요."
"?"
"저 이래뵈도 의무병이예요! 사, 사람들 회복시킬 약도 만들 수 있고, 미약하지만 지속힐도 쓸 수 있는 각성자거든요? 한 손 보태게 해주세요!"
갑자기 자기 어필을 하면서 내 손을 꼭 잡는 미령의 모습에 나는 당황하면서도 의도를 파악한다.
첫번째로 생각한 가능성은 계속 연기중이라는 것.
우리 부대에 들어오기 위해서 나와 친해지려고 했고, 계속해서 나를 부담스럽게 했을 가능성.
생각하자마자 부정의 의사를 표한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고, 필요성을 제대로 아는 애가 굳이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그냥 능력만 보여줘도 데려가고 싶은 인재다.
두번째로 생각한 가능성은 나를 통해 누군가 투영하고 있다는 것.
보자마자 친근함을 느끼고, 언니라고 부르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다는 건 그 친근함을 느낄만한 요소가 있다는 의미다.
내가 '누군가'와 닮았다던지.
거기서 만약 성격까지 비슷한 사람이었다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했다.
음... 그렇네.
"언니가 있었어?"
"네, 네? 어째서 이야기가 그렇게..."
"네 제의에 따른 결론이야."
"아...? 으...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는진 모르겠지만..."
"아는 방법이 있지. 아무튼 네 능력이라면 내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도 받아들이긴 할 거야. 다만, 나는 확실하게 너를 믿진 못하니까... 그래, 그럼 테스트를 하면 되겠네."
"테스트요?"
"음~ 인성 테스트?"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왠지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미령. 그 표정에도 나는 스노우 영지에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조용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어느 병실 안.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침대에 누워서 영양을 공급받고 있는 소녀와 푸른 소녀가 있었다.
안쓰러운 표정으로 누워있는 소녀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미류. 하지만 잠시 후, 병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녀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무슨 일인가요, 헤리어스."
"스노우, 만났다. 수호자, 만났다."
"스노우와 수호자... 그렇겠네요. 헤리어스의 담당은 성남이었을 테니."
"아니, 다르다."
"네?"
"이야기, 나눴다."
"..."
적진으로 들어가 적의 대장급 장수들과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의 의미를 못 알아들을 정도로 미류는 멍청하지 않았다.
"스나이퍼가 모습을 드러내는 건 미련한 짓이예요."
"안다, 하지만, 도움 받는다."
"후... 소환주를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라도 같을 테니까, 딱히 지적하진 않을게요. 그래서 어떤 답변을 받으셨죠?"
"답변, 없다."
"네?"
헤리어스의 답변에 황당하다는 얼굴로 미류가 바라본다.
아무런 답변을 받지 않았지만, 멀쩡하게 살아돌아왔다.
전쟁중인 적이 보일 자비가 아니니까.
"마릴다, 잡혔다. 스노우, 이미 들었다. 됐다."
"뭐가 됐는데요?"
"마릴다, 스노우 아군. 마릴다 아군, 우리 아군된다."
"그건 또 무슨..."
"마릴다, 창월의 서, 말했다. 설명 이미 됐다."
"..."
헤리어스의 말에 대충 어떤 식으로 상황이 돌아가는 지를 깨닫고, 미류는 잠깐 고민에 빠진다.
적은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을 얻었다.'
아마 그 정도의 결과값이겠지.
미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군을 인질로 잡은 건 못 믿겠다는 의미. 하지만 가능성 자체는 열어두겠다로 보이네요."
"그렇다."
"그래도 마릴다는 우리 물량을 생산하던 인원이라 아쉽군요. 이번 전쟁 자체는 대인전으로 끌어야겠..."
"미류니이이이임!"
그렇게 판단을 마친 미류가 뭔가 말하려는 순간, 누군가가 말을 자르고 소리치며 들어온다.
그 모습에 찌릿하고 째려보며 허공에 마법진 3개를 펼치는 미류.
그러자 한 걸음에 달려온 검은 로브의 사내는 히익. 하면서 양팔을 번쩍하고 들어올린다.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분명 말했을 터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사안이 급해서..."
"뭔지에 따라서 당신 목숨이 갈리겠죠. 말해보시길."
"그, 그것이..."
"..."
"빌런 연합의 땅이 포항을 제외하고 전부 점령당했습니다!"
"...네?"
그의 말에 미류는 눈을 크게 뜨며 곧바로 마법으로 뭔가 중얼거리기 시작하더니, 마치 전장에서나 볼 법한 전략 지도가 거대하게 펼쳐진다.
보이는 건 빌런 연합이 가지고 있던 영천, 경주, 울산이 페리아라는 왕국에 잡아먹힌 것.
그리고 추가로 확인한 결과...
"문경과 예천도 먹혔군요."
동맹 길드인 어벤저의 땅까지 먹혀버렸다는 게 확인된다.
다행인 점은 아직 어벤저의 땅에는 단양이라는 접점이 남았다는 것.
아예 길이 끊겨버린 빌런 연합과는 상황이 달랐다.
"제가 청송을 빨리 먹으라고 했을 텐데요."
"하, 하하... 생각보다 전쟁을 빨리 터뜨려서..."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스스로도 말이 안 된다는 건 아는지, 말을 하다 멈추고 고개를 푹 숙이는 남자. 하지만 미류는 그저 한숨을 내쉬며 곧바로 뭔가를 조작해 메세지를 입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후 뭔가 들은 건지 입가에 미소를 담는 남자.
잠시 후, 남자가 만족스런 미소를 입가에 담으며 사라지고, 헤리어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미류를 바라본다.
"분명, 초월자. 3성 스펙이라도, 파이톤, 위험하다."
"괜찮아요. 리시안셔스라면 몰라도, 파이톤은 죽어도 됩니다."
"...괜찮은가?"
"네. 그보다 헤리어스, 부탁이 하나 있어요."
"말해라."
"카진이랑 저를 데리고 성남까지 잠입 시켜주세요."
"위험하다."
"...괜찮아요."
"소환주도 위험하다."
"그건..."
그의 말에 눈이 흔들리며 고민에 빠지는 미류. 그 순간이었다.
"후후후, 호위라면 맡기시길. 의뢰를 확실하게 달성하지 못했으니, 그 정도라도 해야할 터."
"...아르멘."
아르멘이 병실에 등장한 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