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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40화 (40/149)

〈 40화 〉 마법소녀는 희망을 잃어선 안 돼!

* * *

"스나이퍼로군."

"..."

"말하지 않을 셈이야?"

"아니, 그렇...않다."

"?"

머리에 검은 두건을 두르고 마치 흙먼지와 같은 진흙색 옷을 입은 남자.

누가 봐도 사나워보이는 눈매와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스나이퍼가 자신의 스나이퍼 라이플을 뒤로 한 채, 검을 겨눈 루시에르에게 양손을 들어 항복의 의사를 표한다.

"아직, 익숙, 않다."

저런 모습으로 말을 끊어서, 그것도 완성되지 않는 문장으로 말하니 좀 깨네.

아무튼 렌의 말대로 적대하는 모습으로 보이진 않아 비행 고도를 낮춰 바닥에 안착하는 나.

그걸 잠깐 슥하고 루시가 보곤 잠시 내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는다.

"?"

얜 또 갑자기 왜 이래.

"일단, 먹여. 녹색, 꼬마."

"...이게 뭔데?"

"렌, 검사해줘."

[즉효성 마비 해제 물약으로 보입니다.]

"마비?"

"녹색 꼬마, 마비. 기절은, 모른다."

"애초에 죽이려고 머리를 맞춘 거잖아. 이걸 주는 이유는?"

"안 죽인다. 내가 쏜 건, 마비탄."

"네가 사람 셋을 죽인 건 변함없는데."

"...그건, 말 없다. 노린 건, 귀."

"...죽어?"

"아니, 그..."

루시에르의 말에 내가 무슨 의미냐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자, 우리 새하얀 기사님은 잠시 말을 아끼다가 이내 한숨을 내쉰다.

자신이 지키지 못한 자들.

그런 사람이 있다고, 우리 가디언께서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미안, 마력을 숨기고 와서 눈치채는 게 늦었어. 사망자는 셋이야."

"..."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방금 이야기로 들어볼 때, 죽인 건 눈앞에 있는 스나이퍼.

자기가 잘못했다는 건 아는지 내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지만, 그런다고 그가 지은 죄가 사라지진 않는다.

물론 지금 일어나는 건 전쟁이다.

장수들만으로 싸우고 있는 전쟁터.

장수 급, 2성 이상이 아닌 일반적인 1성 각성자들이 죽어나가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납득이 가는 것과는 별개로.

적장에게 '너는 내 병사를 죽였어! 너도 죽어야 돼!'같은 소릴 할 이유는 없지.

"변명, 한다. 병사들, 귀를 노림. 그런데, 무언가 탄환을 조종."

"?"

"파이톤, 내가 죽이지 않는다, 알고 있다. 조작한 걸로, 확신."

"그 흑마법사가 그 정도의 정밀 컨트롤이 된다...?"

"내 탄환, 흑마법사가 준 것. 병사 죽은 후, 바꾼 마비탄, 내 것."

"..."

"2명은, 할 말 없음. 의심받아서, 제대로 쏜 것."

다시 말해 정조준이 아니라 병사들에게 쏜 경고 탄환에 사람이 죽은 걸 깨닫고, 의심받고 있단 사실을 눈치채 정확하게 쐈다.

...그 말은 다시 말해 그가 빌런 연합의 아군이 아니라는 걸 뜻했다.

다만 이 말 역시 아까 봤던 마릴다라는 사람과 똑같은 변명.

열이 살짝 오르지만, 이 정도는 진정할 수 있었다.

...죽은 사람들은, 내가 직접 장례하자.

"그 말은 빌런 연합도 전부 같은 편이 아니라는 소리네."

"그렇다. 내 소환주, 대리인, 임시 협력."

"마릴다와 같은 '창월의 서' 소속."

"맞다. 별, 어떻게 아나?"

"마릴다를 만났으니까. 마릴다는 지금 내 동맹과 이야기중."

"그런가. 포획 당함."

"응."

"나는, 포획 당하지 않음. 대리인, 전달."

"..."

"다만, 우리는, 목적 달성 후, 별, 아군됨."

"목적인가... 정확히 어떤 거지?"

"무한 동력 에너지 코어."

처음으로 나오는 정확한 발음.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했다는 것처럼 말한 그의 눈동자에 스산한 기운이 담기며, 동쪽을 바라본다.

무언가를 용서할 수 없다는 눈동자.

이런 눈동자를 가지고 싸우는 사람은 보통... '영웅'이라고 칭해지는 자들이었다.

"소환주를 살리고, 전부 죽인다."

"..."

"그러니까, 그때 다시, 속죄한다."

그렇게 말하며 더 할 말이 없다는 것처럼 등을 돌리는 남자.

마치 지금 공격받아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가려는 스나이퍼의 모습에 나는 마력을 올리다가, 한숨을 내쉬며 그냥 별 하나를 퐁. 하고 띄워 손가락에 올린다.

"이름은?"

"헤리어스. 정령 스나이퍼."

내 모습을 잠깐 보다가 루시에르가 질문하고, 그에 헤리어스는 뒤를 보지 않고 손만 흔들며 답변.

정령 스나이퍼와의 첫 대담은 그렇게 끝이 났다.

­­­­

이야기가 마무리된 후.

자연스럽게 집무실­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와 변신을 해제한 나는 뒤따라온 루시에르에 의해 소파에 강제로 앉힌다.

그러다가 움찔하면서 집 환경을 보는 새하얀 기사님.

...피가 말라붙은 자국이 눈에 띄는 모양이다.

"집에 애착이 있어?"

"...일단."

"음... 그래, 그럼 그건 나중에 청소해보기로 하자."

"?"

순간적으로 안타깝다는 감정이 눈동자를 스쳐지나간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그냥 청소가 하기 귀찮았을 뿐인데... 뭐, 이 정도는 물의 마력으로 전부 충분하게 세척 가능할 테니, 루시 말대로 하자.

나를 소파에 앉히고 잠깐 주변을 보다가 그냥 서있는 루시.

그 모습에 내가 옆자리를 팡팡. 하고 치자, 그는 조금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인다.

아니, 뭐하러 서서 있어.

누가 옆에 앉는다고 부담스럽진 않다.

"하아, 그래. 그럼 일단 앉을게."

"응."

"자, 그럼 오늘 일 말인데."

"적이 도망간 거 말하는 거구나."

"아니, 네가 말을 안 들은 점 말이야."

"?"

꾸욱.

"아파."

"아프라고 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뺨을 꼬집는 루시의 행동에 나는 평범하게 말하지만, 눈동자를 마주치자 걱정이라는 감정이 눈에 가득 들어찬 것을 확인한다.

오늘 있었던 일에 나를 걱정할 일이 있었던가?

나보다는 지금 내 방에 누워있는 쌍둥이들을 더 걱정해야 하는 게...

"오지 말라니까 왜 왔어."

"마법 전력이 필요하니까."

"유레하랑 파이렌이 있단 건 알았잖아."

"네가 오라고 했어."

"아니, 그건 맞는데... 오지 말라고 다시 말했잖아?"

"난 강아지가 아닌 걸."

"강아지...?"

잠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깜박이다가, 잠시 후 의미를 깨달았는지 가볍게 콩. 하고 꿀밤을 때리는 루시에르. 아프진 않지만 기분 나쁘다는 의사를 표하는데, 그대로 머리를 쓰다듬는다.

"똥개 훈련같은 게 아냐, 네가 미트 골렘을 보지 않았으면 했어."

"별 느낌 없는데..."

"...스노우."

내 말에 시선을 낮춰 내 코앞에서 눈을 맞추는 루시에르.

그 행동에 나는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고 밀어내려 하지만, 그는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어, 뭐, 잠깐. 뭔데.

뭔가 고백이나 키스라도 할 거 같은 분위기에 살짝 소름 돋기 시작한다.

"네가 감정이 옅다는 건 알아."

"...?"

"그렇다고 너 자신을 위험에 밀어넣어도 되는 게 아냐. 물론 네가 나설 수밖에 없는 일이 분명 있을 거고, 그런 곳에 몸을 밀어넣음으로서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지."

"??"

"그래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 보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너처럼 어린아이가 움직일 필요는 없어. 그러기 위해 어른이 있는 거니까."

"???"

"지금은 이해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명심해 둬. 모든 일을 네가 하지 않아도 돼."

얜 대체 지금 뭔 소릴 하는 거야.

뭔가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고 있는 느낌의 루시에르에게 뭔가 말하려하지만, 뭘 말해야할 지 몰라 머뭇거린다.

감정 옅은 거야 평소 페이스가 무표정이라 착각할 수도 있다.

근데 내가 위험을 자처해서 들어가고 있다고?

딱히 그런 기억은 없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내 몸을 쓰는 감각 자체도 좀 강한 장수가 어디로 가야할 지를 생각해서 움직이는 거니까.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생각한다.

"루시에르."

"응?"

"루시에르도 아직 고등학생."

"아니, 내가 전생자인 건..."

"고.등.학.생."

"아니, 그러니까... 에라, 진짜. 그렇게 따지면 넌 중학생이거든?"

"아닌데, 고등학생인데."

"아주 거짓말을 밥먹듯이하네. 네 나이 스스로 말했었잖아."

유지가 말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쓸데없이 진지한 분위기를 잡고 있는 루시에르의 분위기를 풀자, 그는 쓰게 웃으면서 그걸 받아들인다.

아무래도 내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고 판단했겠지.

실제로도 그렇고.

"아무튼 뭐, 그렇다고. 걍 혼자 다 하려고 하지마."

"이번 전투에서 내가 한 건 얼마 없어. 혼자 다하려 한 적도 없고."

"뭐, 네가 그렇다면 그렇다고 해줄게."

아니, 진짠데.

왜 이렇게 고평가를 하는지 모르겠다. 의왕시는 루리에가 솔로로 격퇴, 광주는 사실상 현성이 막은거나 마찬가지고, 추가로 온 마법소녀 용병은 사이네가 시간을 열심히 끌어줬다.

성남시에선 루시에르가 없었으면 우리 마법소녀들이 쪽도 못 쓰고 당했을 거고. 스나이퍼 영웅이라니, 생각도 못했으니까.

모든 전투가 나 혼자 해낸 일이 아니라 전부가 노력해서 이겨낸 일인데, 왜 혼자했다고 판단한 건지...

"아무튼 전쟁이라, 솔직히 그리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

"받은 건 되돌려줘야겠지. 미트 골렘 같은 걸 만드는 곳이라면, 사람들이 갈려나가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웃는 루시에르의 모습은 어쩐지 섬뜩해보였다.

­­­­

경상북도 영천.

빌런 연합에 소속된 영주가 된, 나름대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영천 영주는 영주관까지 쭉 뚫고 들어오는 괴물을 보며 공포를 느낀다.

아주 방비되지 않은 곳도 아니었다.

대구를 점령한 괴물에 대한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던전에서 아티팩트가 생산될 때마다 각성자들에게 지급하고, 지급된 각성자들 위주로 대구 쪽에 방비를 마치던 상황.

그런데도...

콰아아아앙!

"뭐냔 말이냐! 저 괴물 새끼는!"

검은 기사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마력이 터지며 각성자들이 날아다닌다.

그런 상황에서 더 놀라운 점은 죽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

그나마 죽은 사람은 폐허에 있는 무언가 뾰족한 것에 꽂혀 죽은 게 전부.

실제로 검은 기사는 모든 인원을 전부 기절시키면서 나아가고 있었다.

쿵!

문을 걷어차면서 영주실로 들어온 검은 기사. 괴물같은 힘과는 별개로 굉장히 아름다운 외모와 반짝이는 검은 머리칼이 휘날리며 등장한 그녀는 곧바로 영주에게 검을 겨눈다.

"네가 영천시 영주인가?"

"그그그그, 그렇네! 뭐가 필요한가!? 뭐 때문에 내 영토를...!"

"흠, 메세지가 갔을 터."

"뭐!?"

"왕국 '페리아'는 왕국 '스노우'의 동맹으로서 '빌런 연합'에게 전쟁을 선포했다만."

"전...쟁?"

"자기 나라가 전쟁중이라는 것도 모르는가? 영주라는 작자가."

"그, 그렇군. 그럼 나한테 원하는 게 뭔가!?"

"영토를 넘겨라."

"뭐라고?"

"반론은 받지 않는다."

검붉은 검을 그의 목에 들이대며 선고하는 샤브린. 칼에 살갗이 베여 피가 조금씩 흐르기 시작하자, 영천 영주는 급하게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한다.

"아, 알겠다! 영주 권한을 포기하지! 그럼 살려준다고 약속하게!"

"네 병력들을 살려놓은 걸 보면 모르겠나. 딱히 죽일 생각까진 없다."

"알겠네!"

그녀의 말에 영주창을 조작하기 시작하는 영천 영주. 그걸 본 샤브린이 검을 슬며시 거두는 순간이었다.

"내가 힘들게 모아둔 걸 그냥 줄 것..."

서걱!

그가 버튼을 꺼내 누르려는 순간, 샤브린의 검이 그의 목을 날려버린다.

그와 함께 마법서를 꺼내 시체를 불태우는 그녀. 덤덤하게 검을 회수시키며 샤브린은 천천히 영주관을 나서며 말했다.

"배신자들의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군."

[영토 '영천시'가 왕국 '페리아'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잠시 나타난 메세지를 보며 미소짓는 샤브린. 그리고 잠시 후, 영천 시의 영주창을 조금 조작한 그녀는 영천 시를 버려두고 그대로 다음 도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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