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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38화 (38/149)

〈 38화 〉 마법소녀는 많은 사람들을 지켜야해!

* * *

Side ???

얼마나 오랜 시간 여기에 있었을까.

마치 인형인 것처럼 다뤄지는 나날.

어느 교회의 지하에서 매일 같이 일어나는 마력 추출 작업.

희망을 노래하던 마법 지팡이가 매일 같이 나를 케어해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마력이 한 톨도 남지 않아 빠져나갈 수 없다.

조금 회복된다 싶으면 계속해서 빼앗기고 다른 곳으로 배분된다.

마법소녀로 변신하고 마력이 없다니, 다른 마법소녀들이 들으면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웃지 않을까.

전에 이런 적이 있었다.

마력 공급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면서 변신을 풀어보았다.

이건 이상하다고.

사람들을 구하려고 마법소녀가 된 거지, 도구가 되기 위해서 된 게 아니라고.

그러자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사람들에게 '봉사'시켜도 괜찮겠냐고.

"..."

그 말에 나는 그저 자원봉사를 말하는 거라고 생각해 수긍하고, 그는 그 날 날 묶어둔 채로 떠났다.

그리고 다음날.

'봉사'의 진짜 의미를 깨달은 나는 절망했다.

그 날 이후 나는 희망을 가지지 못했다.

이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나를 희생해?

이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살아갈 의미가 있는 걸까?

죽고 싶어.

죽으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혀를 깨물었지만, 무슨 장치가 있었는지 돌아온 그가 치유사에게 상처를 치유하게 했다.

그리고... 죽도록 맞았다.

변신을 푼 상태였기에 여기저기 멍이 들고 상처가 났다.

그리고 바로 치유당했다.

살기 위해 변신해도 마찬가지.

상처만 나지 않을 뿐 고통은 그대로.

체력이 줄었다가 올라가는 수치를 계속해서 바라보며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다음부터 더 '봉사'시키기 전에 죽을 생각은 하지 말라고.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저 마력을 만들어내는 인형 장치.

기계로서 돌아가는 톱니바퀴이자 그 죽일 목사의 노예.

이런 세상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걸까.

마음이 죽어간다.

그런 나에게 쓸데없는 희망을 불어넣은건, 내 마법 지팡이인 '하리'였다.

내가 절망에 완전히 먹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이야기였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의지를 잃을 수가 없게 한 그 말.

[마스터, 언니 분께서 이 세계에 살아계십니다.]

그 후로 나는 희망을 놓을 수 없게 됐다.

목사에게 '봉사'당할 때도 의지를 잃을 수 없었다.

마력이 생겨날 때마다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음에도 의지를 잃을 수 없었다.

마음을 죽일 수 없었다.

오히려 저주.

하리가 내 가슴에 새긴 건, '가족'이라는 이름의 저주.

우리를 위해 모든 걸 바치고 사그라들었던 가족의 생존 사실.

만나고 싶어.

언니.

보고 싶어.

루리에 언니...

그리고 그 날 밤.

나는 루리에 언니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

의왕시는 방어 성공, 루시에르가 본진을 막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안심했다.

루시에르라면 본진을 충분히 막아줄 테니까. 딱히 걱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걱정되는 건 사이네.

무슨 짓을 당했길래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야...

"괜찮아?"

도착한 곳에 보이는 주황빛 원피스를 보며, 나는 그녀를 흔들면서 묻는다.

깨어나지 못하는 건지 전혀 무반응.

렌에게 물어보자 한동안 일어나지 못한다는 답변을 받는다.

[체력이 4%입니다.]

"난 체력 바닥일 때도 기절 안 했지 않아?"

[그건 그냥 레벨업 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그렇네?"

시야가 흐릿해지는 걸 강제로 붙잡고 레벨업했던 기억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해보니 그렇네. 5%이하일 때 계속 기절할랑말랑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 테나가 마스코트가 아니였으면 죽었겠지, 아마?

[맨날 집에 방치해놓으니까 테나가 자꾸 밖에 나가는 거 아닙니까.]

"..."

미안해, 테나야.

최근 자주 밖으로 나돌아다니는데, 매번 방치당한 테나가 삐져선 맨날 돌아다니고 있다.

생각해보니 지금 테나 위험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딱히 도시에서 나가진 않고 나돌아다닌다고 제보받고 있으니까... 문제 없겠지?

...조금 불안하지만, 루시를 믿어보자.

아무튼 아까 봤던 마릴다는 현성이 체포해서 데려갔고.

사이네도 죽진 않았으니까 영주관에 쉬게 해주면 낫겠지.

게임 중에 장수가 죽는 것만큼 힘든 것도 아니니까, 조심하자.

[...장수입니까.]

"응, 전략 게임이니까? 마법소녀들이 일반 사람들보다 강하니까 장수인 거지."

[마스터.]

"왜?"

[스스로도 알고 계시겠지만, 현재 이 세계를 게임으로 생각하고 계시지요.]

"...그렇지?"

[그건 좋습니다. 마스터의 멘탈 관리에도 영향을 주니까요.]

"응."

[하지만, 적어도 친구를 숫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

렌의 말에 나는 잠깐 침묵한다.

지금 이 말의 저의가 뭐지?

순간적으로 렌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몰라 눈을 깜박이다가, 이내 내가 했던 발언의 이상점을 깨닫고 입술을 깨문다.

그렇네, 아무래도 세상을 게임화시켜서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게임 속의 장수는 실제가 아니고, 죽으면 그저 아쉬운 인물들이다.

ㅡ실제로 이 세계는 게임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도 나는 저런 생각을 하며 움직여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최대한의 병력을 보존하는 건 당연하다.

장수는 하나도 잃어선 안 된다.

안일하게 생각해선...

"알았어."

전부 개소리 집어치우자.

어떤 식으로 여기로 왔건, 전부 내 친구이자 지인이다.

그 누구든 죽어선 안 돼.

"렌, 현재 가장 위험한 사람은?"

[사이네 4%, 루리에는 1%였다가 24%까지 회복했습니다. 사이네는 현재 전투 상황이 아니므로 회복에 전념시키면 됩니다. 그 다음은... 유레하가 19%네요.]

"유레하? 루시가 있는데 왜?"

[알 수 없습니다. 저 체력으로 기절 상태인 걸로 봐선 뭔가 강하게 맞은 모양이죠.]

"..."

루시가 있는데도 유레하가 상처를 입을 정도면, 생각 이상으로 강한 적이 나타난 걸지도 모른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나는 곧바로 비행을 시작한다.

본진이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샤브린이랑 유린이한테도 연락해둘까...

­­­­

Side 루시에르

까다롭네.

미트 골렘의 공격과 방어를 베어넘기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날아오는 주먹을 두 동강 내버린다.

ㅡ트롤 이상의 재생력으로 다시 붙어버린다.

핵을 찾기 위해 아예 몸체를 여러갈래로 절단한다.

ㅡ큐브를 베었음에도 재생은 계속된다.

결론적으로 내가 노려야할 건...

"수호자, 나를 노리고 싶은 게로고?"

"칫."

미트 골렘의 한참 뒤편에서 아이언 골렘을 타고 관전중인 파이톤이다.

억지로 미트 골렘을 뚫고 나가려해도 미트 골렘이 골렘의 형상을 버리곤 벽처럼 길을 막아선다.

그걸 밟고 점프하려는 순간, 마치 슬라임 마냥 발 지지대가 사라진다.

이걸 골렘이라고 하는 게 맞는가 의문이 들 정도로 슬라임에 가까운 녀석.

마법을 쓸 수 없는 나에게는 상극이다.

파이렌을 기절시키면 안 됐나?

하지만 어린 아이에게 저런 잔인한 괴물을 보여줄 정도로 타락하지 않았다.

계속되는 대치.

아무리 찾아도 핵이 존재하지 않는 미트 골렘을 보며, 나는 후. 하고 숨을 고른다.

내 스테미나를 빼려고 미트 골렘을 앞세운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막아서지 않으면 저 골렘은 도시를 향해 달려가겠지.

지금이라도 도시에서 마법사를 데려올까?

그런 생각을 해보지만 그럴 시간도 없고, 미트 골렘에게 마법 데미지를 제대로 줄 수 있는 사람이 도시에 있을지도 의문.

결국 다른 애들이 올 때까지 버티거나, 내가 쓰러지거나의 싸움이다.

그걸 머릿속에 담는 순간, 모든 공격과 수비가 간결해진다.

짓밟으려는 공격을 조금 걷는 것으로 피해낸다.

휘둘러지는 팔은 검으로 방향을 흘리며 고개만 살짝 흔들어 피해낸다.

날아오는 탄환을 면으로 튕겨낸다.

그러자 폭발하는 탄환.

처음 일어나는 일에 얼굴을 살짝 찌푸리지만, 거의 데미지는 없다.

뭐, 그저 스나이핑만 하는 녀석을 데려오진 않았을 테니 능력이 있는 건 당연했다.

마비탄이나 그런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조심하자.

"흐음... 생각 이상이군. 이게 능력치가 감소한 상태라니."

"..."

파이톤의 말에 답하지 않는다.

녀석은 내 체력을 뺏기 위해 저런 행동을 하고 있는 녀석이다.

말하는 것도 체력을 쓰는 일.

일부러 말을 거는 거겠지.

"본인에 대한 건 별로 관심이 없나? 흐음흐음. 그럼 저 뒤에 소녀들을 가지고 놀아야 반응이 있으려나?"

"..."

"붙잡고 비명을 지르게 하면 분명 감미로울 거야. 녹색은 특히나 좋은 소리를 낼 거 같군. 앙탈 부리는 녀석만큼 맛있는 것도 없지."

"..."

무시하고 골렘의 공격을 흘려낸다.

동시에 스노우의 메신저를 열어 메세지를 보낸다.

[Rusie­r : 어디야.]

[Snow : 복귀중. 유레하는 어떻게 된 거야.]

[Rusie­r : 결계에서 뛰어나갔어. 미안.]

[Snow : 전투중이구나.]

[Rusie­r : 마법이 필요해.]

[Snow : 파이렌은.]

[Rusie­r : ...기절시켰어. 좀 보여주기 그런 게 있어.]

[Snow : 나는 봐도 문제없다면, 상관없어.]

[Rusie­r : ...]

솔직히 안 괜찮은데.

전생의 기억을 가진 내 입장에선 스노우고 파이렌이고 둘 다 어린애다.

마음 같아선 스노우를 부르고 싶진 않았다. 차라리 루리에, 샤브린, 유린이를 불렀다면 모를까.

루리에는 빈사 상태.

샤브린은 복귀한다고 했지만, 너무 멀리 있다.

유린이도 마찬가지.

현 시점에서 '마법이 통할 수준이 된다.'와 '가깝다'를 만족시키는 건 스노우 뿐이다.

어린애한테 이런 걸 보여줄 순 없는데...

순간 갈등한다.

나는 타락한 사람이 아니다.

어린 아이의 동심이나 마음은 지켜주고 싶다.

[Snow : 이미 다 왔어. 빨리 말해.]

[Rusie­r : 아니, 오지 마라. 역시 너도 봐선 안 된다.]

[Snow : 늦었어. 괜찮아. 나는 어떤 걸 봐도 그렇게까지 심한 반응을 보이진 않아.]

[Rusie­r : 그게 네가 참아야할 이유가 되진 않아.]

"후."

공격을 피해내고, 살짝 흘리고, 베어낸다.

그냥 가벼운 운동을 하는 정도의 느낌.

하지만 그 정도도 위험하다.

벌써 운동을 하는 느낌이 들 정도라니, 그렇게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의미니까.

[Snow : 참고 있는 게 아냐.]

[Rusie­r : 네가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

[Snow : 희생하고 있지도 않은걸.]

[Rusie­r : 정의의 마법소녀 씨. 너는 새하얀 사람이야. 좋은 걸 보고, 누구보다 굳건한 의지로 악당을 물리쳐야하는 그런 존재잖아.]

마법소녀라는 건, 그런 사람을 의미하잖아.

"멋대로 나에 대해 정의하지마."

내 메세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보이는 건 새하얀 옷과 분홍빛으로 빛나는 마법진.

멋스러운 케이프가 휘날린다.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소녀의 눈이 점멸한다.

머리에 희미한 마력의 날개가 솟구친다.

"별무리의 마법소녀 스노우!"

그녀의 무표정에 새겨진 건 의지.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조차 내세우지 않을 꿈과 같은 말 그대로 어린애의 이상을 나타내는 발언이 입에 담긴다.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마력이 퍼져나간다.

아군에게 닿은 마력은 아무런 효과도 나타나지 않은채 그저 뺨에 따스한 온기만을 느끼게 할 뿐.

미트 골렘의 움직임이 조금, 느려진다.

파이톤의 표정에 어이없음이 새겨지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랑과 정의를 외치며 나타난 소녀.

나는 그저 쓴웃음을 입가에 담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너무 옛날 애니메이션 대사 아니냐?"

"시끄러."

그게 내가 처음으로 본 스노우의 부끄러워하는 표정이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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