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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37화 (37/149)

〈 37화 〉 마법소녀는 많은 사람들을 지켜야해!

* * *

Side 루리에

귀에 들려오는 건 바다의 소리.

파도치는 소리와 갈매기가 우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

그런 소리들을 들으며 감겨진 눈을 살며시 들어올린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뜨거울 정도로 강렬한 태양.

어쩐지 정말 오랜만에 보는 느낌의 하늘을 보며 나는 눈을 가리며 몸을 일으킨다.

여긴... 어디지?

분명 나는 마을을 지키다가...

"언니이~"

"...루루?"

"차암, 또 여기서 자고 있어."

나와 같은 바닷빛깔 머리칼을 가진 사랑스런 내 동생.

내가 마지막까지 마을을 지키려고 했던 이유인 소녀가 웃으면서 안겨온다.

"표정이 왜 그래~ 안 좋은 꿈이라도 꿨어?"

"꿈...?"

그게 다 꿈이라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채로 가만히 루루를 안아준다.

스노우와 만나고 사람들을 지키고, 다른 마법소녀들을 만나고...

그게 다 꿈...?

그럴 리가 없는데.

"밥 준비해놨으니까 빨리 와~"

"으, 응. 알겠어."

"오늘따라 더 멍하네! 잠 덜 깼구나?"

"..."

루루의 말에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모래가 조금 묻는 옷들을 털어내며 몸을 일으킨다.

꿈... 꿈인가.

나 외에 다른 마법소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꾼 꿈일지도 모른다.

그래.

그럴지도 몰라.

ㅡ라고 생각하기에는 지금 환경이 너무 이질적이었다.

"루루."

"응? 왜 언니?"

"미안해."

"으응...? 왜 사과하는 거야. 여기서 매번 자고 있어서? 괜찮아~ 하루이틀도 아니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응? 뜬금없어라."

내 말에 키득이면서 장난스럽게 웃는 루루.

하지만 이내 나에게 살며시 안겨온 사랑스런 동생은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언니는 언제나 내 자랑스러운 언니인걸."

"루루..."

"헤헤, 역시 언니라니까. 돌아갈 생각인 거지? 아쉽다. 밥이라도 먹이고 보내고 싶었어."

"...여기가 아포칼립스였다면 눈치채는 게 늦었을 거야."

만약 여기가 아포칼립스였다면.

나는 정말로 꿈이었던 건지 여기가 꿈인지 알아채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오랫만에 보는 푸른 하늘이 있는 이상, 나는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내가 원했던 꿈.

아포칼립스가 찾아오지 않고 그저 나의 착한 동생과 함께 둘이서 살아가는 평범한 나날을 원한... 그런 나의 이상.

차라리 깨닫지 못했다면 계속 꿈속에 머물 수도 있었을텐데.

눈물이 흐른다.

또다시 동생을 놓고 가야한다는 사실이 두렵고, 힘들다.

꿈이라는 걸 자각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니."

"..."

"내가 언니한테 짐이야?"

"아냐! 루루 넌..."

"그럼 그런 표정 짓지 말기! 오랜만에 만나서 기뻤어, 언니. 언니한테는 많은 동료들이 생겼잖아? 항상 앞만 보고 걸어가는 언니니까, 친구들이 생겼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서서히 모든 풍경이 신기루처럼 빛이 돼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며 루루를 좀 더 꼭 껴안는 나.

그러자 내 동생은 곤란하다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눈물을 담은 눈동자로 그대로 미소지어 보인다.

"언젠가, 다시 보자. 언니."

"그래, 꼭... 언젠가... 다시 보자."

기약도 없는,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약속.

동생을 꼭 껴안은 채로 그렇게 약속하며, 나는 꿈에서 튕겨나갔다.

­­­­

잠에서 깨어나자 보이는 건, 낯선 천장.

의왕시에 있는 내 건물이 아니라 뭔가 이상한 종이와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벽지로 된 방을 보며, 나는 슬며시 몸을 일으킨다.

마지막 기억이... 그래, 적이 도주하면서 남긴 마법을 강제로 받아치고 쓰러졌지.

현재 HP를 보니 남은 체력은 6%.

1%까지 떨어졌었으니까, 대충 생각해도 4시간은 기절해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5% 이하는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될지...

"와! 일어나셨네요! 루리에 님!"

"...아."

열려있던 방문 쪽으로 누가 지나가다가, 내가 몸을 일으킨 걸 보며 놀라는 단발의 소녀.

이내 들고 가고 있던 무언가 중 하나를 나에게 물과 함께 건네준다.

"이거 드세요!"

"...약?"

동그란 형태로 만들어진 무언가에서 희미하게 나는 약초의 향.

마법소녀에게 이런 게 통했던가 싶지만, 소녀가 기대하는 모습으로 바라봐 나는 잠깐 약의 정보만 보고 바로 삼킨다.

[동글동글 특제 회복환]

제작자 : 서 미령

먹는 즉시 HP를 20% 회복합니다.

퍼센트 단위로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아이템.

먹자마자 몸 상태가 많이 호전된 것을 느끼며 나는 잠시 감탄사를 표한다.

제작자가 서 미령... 이 아이 이름인가?

"이제 몸 상태는 괜찮아졌나요?"

"아, 네. 고맙습니다. 절 구해주신 거죠?"

"네에~? 아뇨아뇨! 그냥 저희 집 근처에서 쓰러져있길래... 아무튼 괜찮으셔서 다행이에요. 아, 저는 잠깐 환자가 더 있어서 먼저 다녀올게요."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하곤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미령. 아마 나에게 먹인 환이 다른 사람에게 주려던 물건이었던 모양이다.

호전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서자 보이는 건 아까 싸웠던 곳의 모습.

조금 여기저기 땅이 터져나갔고, 많은 물을 운용했다는 걸 증명하듯 땅에는 물기와 서리, 얼음구덩이들이 넘친다.

해일을 막아내지 않았다면 가장 먼저 이 오두막이 날아갔으리라.

"..."

마력 회로 상태는 조금 애매하네.

체력이 회복된다고 해서 마력 회로가 과부하한 거까지 나아지는 건 아니니까, 당분간은 전투가 불가능해졌다.

좀 씁쓸하긴 하지만 마족 상대로 이정도라도 한 게 어디야.

스노우가 내 스킬을 따라쓴 경험이 있는데, 안일하게 저런 건 스노우만 할 수 있는 묘기라고 생각한 내 실수가 크다.

물론 알고 싸웠어도 그런 괴물은 이길 수 없지만.

"앗, 안 되요. 환자는 누워있어야죠."

"저는 마법소녀라 괜찮아요."

"아뇨아뇨, 무조건 앉아 있기라도 주세요. 마력이 통하는 통로가 좀 망가져서 많이 움직이시면 안 되요. 그리고 말 놓아요! 루리에님보다 제가 어릴 테니까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할게. 이름이 뭐야?"

"아, 미령이라고 해요. 서 미령. 잠시 실례할게요."

그렇게 싱긋하고 웃은 청순한 소녀는 그대로 나를 지나쳐가며 또다른 방으로 향한다.

내부를 슬쩍 보자 보이는 건, 앉아서 여기저기 피를 흘리고 있는 남자들.

일단 붕대로 응급처치를 한 모양이지만, 계속해서 출혈이 일어나고 있는 탓에 제법 위험해보였다.

마법만 쓸 수 있었다면 도와줬을텐데.

그래도 본인 회복이 먼저라는 미령의 말은 이해했기 때문에 굳이 나서진 않는다.

"그래도 굉장하네..."

아포칼립스에서 가장 중요한 약품을 제조하는 능력.

그런 능력이 있으면 어딘가에 소속되서 왕처럼 대우받으면서 살 수 있을텐데, 그러지 않고 홀로 살아가면서 다친 사람들을 돕는 그녀의 행동을 쉬운 일이 아니다.

좋게 말하면 욕심이 엄청 없는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용당하기 쉬운 성격.

의왕시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건 처음 들었다.

역시 영주라도 모르는 부분이 많네.

다 나으면 도시 순찰을 좀 더 세세하게 해봐야겠다.

"다른데는 어떻지...?"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 메뉴를 건드린다.

볼 수 있는 건 다른 마법소녀들의 상황 정도에 메신저 기능에 들어가있는 플레이어들 정도네.

어차피 전부 봐야하니 충분한 이야기다.

다들 지금 현재 위치가...

"스노우는 사이네한테 갔네. 놀러갔나..."

가장 안쪽인 의왕시를 공격받은 시점에서 가장 격전지는 분명 광주.

알고 움직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옳은 판단이다.

정황을 보니 의왕시 외에는 마법소녀가 전부 2명 이상씩 있네.

나름대로 방어가 성공적일 확률이 높아보이긴 하지만... 어떨까나.

가장 안쪽에 보낸 녀석 스펙이 3성보다 윗줄인 걸로 봐선 쉽지 않은 전투일 거라고 생각한다.

본진엔 루시에르가 있으니까 별 문제는 없겠고...

"괜찮겠지."

영상을 볼까 하다가, 차라리 자서 체력 회복을 더 해놓는게 좋다고 판단한다.

전쟁 중에 휴식은 필수.

조금이라도 자도록 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나왔던 방으로 돌아갔다.

­­­­

파이렌이 발바닥에 연이어 폭발을 일으켜 부스터를 일으킨다.

평소와는 다른 수준의 믿을 수 없는 속도.

루시에르는 그걸 보곤 인상을 찌푸리며 결계를 해제하곤 곧바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우습다는 것처럼 웃는 로브의 남자.

그리고 동시에.

타앙!

또다시 한발, 파이렌을 노리고 날아드는 탄환이 있었다.

"막아라!"

그와 동시에 자신의 방패를 부메랑처럼 던지는 걸로 탄을 튕겨내는 루시에르. 그와 동시에 부메랑처럼 회전하던 방패가 허공에 탁! 하고 서더니 그대로 파이렌과 유레하를 동시에 보호하는 신성한 장막이 만들어진다.

그러던지 말던지 급하게 유레하의 가슴에 귀를 대는 파이렌.

조그맣게 두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찌릿하고 로브의 남자를 노려본다.

"흐음...? 살았나? 그가 실수했을 리가 없는데."

"머리에 총탄을 맞는다고 정령이 죽을 거라고 생각해?"

"허, 기절로 끝난 건가?"

파이렌의 시선을 가볍게 흘리며 감탄사를 표하는 로브의 남자.

이내 귀찮다는 것처럼 허공에 손을 쏙. 하고 집어넣은 그는 큐브와 같은 무언가를 꺼내든다.

그 물건의 정체를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놀란 기색과 함께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하는 마법소녀들의 앞에 서는 루시에르. 이내 그의 성격과는 너무나도 맞지 않는 싸한 미소가 입가에 잡힌다.

"골렘술사가 아니라 흑마법사군."

"흑마법은 부수적인 거라네, 수호자."

"웃기는 소릴."

"자네, 미트 골렘이라고 들어는 봤나? 이쪽 세계 녀석들을 갈아봤더니 제법 풍미가 짙더군."

"..."

"나는 골렘술사이자 대지와 어둠의 마법사, 파이톤. 지금부터 위대한 군주님을 위해 제물을 공양하도록 하지. 수호자여, 네 녀석 하나만 희생한다면, 우리의 소환주는 영원토록 우리들을 현세에 머무르게 할 수 있을걸세. 가능하다면 얌전히 당해주시게."

그렇게 말한 후, 노인의 큐브가 징그러운 고깃덩어리를 무한정으로 양산하기 시작한다.

점점 거대해지며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 형태가 되는 큐브.

계속해서 살을 양산하던 큐브는 골렘이 5m가 될 때즈음 살덩이 생산을 정지하고 사라졌고, 그 위에 올라탄 파이톤은 즐겁다는 것처럼 웃을 따름이었다.

"보시게, 수호자. 이게 다 인간이라네. 살덩이 골렘이라니, 흑마법사들도 재밌는 걸 만들었더군. 흥미롭지 않나?"

"..."

여기저기에 보이는 인간이었던 무언가의 육편들.

어딘가에는 손가락, 어딘가에는 눈알.

어딘가에는 이빨, 어딘가에는 내장.

스노우가 봤다면 곧바로 안정된 정신이라도 발동됐을 법한 모습의 골렘에 루시에르는 그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문제는 파이렌.

가까운 거리에서 그 끔찍한 골렘의 형태를 본 파이렌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루시에르는 곧바로 검면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강타한다.

그러자 유레하를 놓으며 그대로 자리에 엎어지는 붉은 소녀.

그녀가 기절한 걸 확실하게 확인한 루시에르는 방패를 그대로 그녀들에게 기대놓은 채로 검에 마력을 부여하기 시작한다.

"흐음... 자네는 방패를 더 잘 쓰는 걸로 안다만, 괜찮겠나?"

"쓸데없는 걱정이다."

타앙! 핑!

그새 날아오는 스나이퍼의 탄환을 칼을 휘둘러 베어내는 루시에르. 그 묘기에 감탄사를 흘린 파이톤이 골렘을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전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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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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