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마법소녀는 많은 사람들을 지켜야 해!
* * *
Side 루리에
그건 인간의 형태를 취한 무언가였다.
보랏빛 머리카락을 가진 트윈테일의 소녀.
하지만 그 양손에 있는 건 2개의 얇은 검.
마치 수술대에서 사용하는 메스처럼 무언가를 가르는 것에 특화된 무언가가 그녀의 팔에서 형태하고 있었다.
...저게 뭐야, 실험체라도 돼?
인간이라고 하기엔 소설 속 묘사되는 엘프처럼 긴 귀.
무감각하다 못해 기계와도 같은 느낌을 주는 보랏빛 눈동자.
그러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입을 법한 보랏빛 스웨터와 검은 반바지를 입고 있는 소녀는 굉장히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넌... 뭐야?"
"나는, 리시안셔스. 인공 마족입니다."
"인공... 마족?"
마족.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경계 태세를 풀 수 없게 된다.
인공이라는 단어가 붙었지만, 3단계 초창기에 남은 흐릿흐릿한 기억에 의하면 '마족'은 '천족'과 대칭되는 악 성향에 가까운 세력이다.
3단계부터 연결되는 차원 중 하나로 1,2단계의 초월자들이 그나마 인간으로서 초월한 존재들이라면, 이들은 다르다.
그저 '인류에게 패배한' 마계 혹은 '마계에게 패배한' 천계가 세상에 연결된다고 들었으니까.
문제는 지금 시기가 2단계라는 점.
마족은 기본적으로 4성 이상의 스펙을 자랑하는 녀석들이다.
2단계인 만큼 3성으로 스펙이 떨어졌어도 현재 3성을 찍지 못한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적은 아니란 이야기다.
"당신은 의왕시의 영주입니까?"
"글쎄, 어떻게 생각해?"
"코드 네임 '수해'. 원 네임 '루리에'. 푸른 마법소녀. 확인했습니다. 지금부터 처단을 실시합니다."
내가 장난스럽게 답하자, 이미 알고 있다는 것처럼 마족이 움직인다.
곧바로 바닥을 한 번 툭. 차올리며 물을 일으킨다.
의왕시가 전장이 될 가능성을 고려한 게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하수를 끌어올려 물기둥을 불러 일으킨다.
최근 레벨 상승으로 6레벨이 된 물기둥들.
그대로 마족 소녀에게 직격하지만, 메스와 같은 칼로 물기둥을 반으로 베어내면서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오는 모습이 눈에 띈다.
아니, 칼로 물베기라는 속담 다 거짓말이라니까.
스노우도 그렇고 저 소녀도 그렇고 물을 칼로 베어내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곧바로 아쿠아 드래곤을 일으켜 소녀와 거리를 만들어낸다.
"수해, 드래곤. 확인했습니다. 데이터 조회결과 한 번 파괴 시 한동안 나타나지 않습니다. 파괴를 시작합니다."
"그건 무린데. 아쿠아 브레스!"
그런 이야기를 한 후 빠르게 뛰어오기 시작하는 소녀를 보며, 나는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려 아쿠아 브레스를 뿜어내게 한 후 그대로 정면으로 돌격한다.
상대는 내 기술에 대해서 다 알고 온 냄새가 난다.
그럼에도 검을 들고 있다는 건, 검으로 모든 물을 베어낼 수 있다는 의미.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마족이라면 안 될 것도 없지.
그런 판단하에 나는 정면 승부를 위해 쏘아진다.
그러자 드래곤의 브레스가 만들어내는 수압이 더 강력해지고, 계속해서 그걸 베어나가며 다가서는 소녀.
미친 수준으로 빠르게 물을 갈아내기 시작하는 그녀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다.
"아쿠아 쓰러스트!"
추가로 물기둥이 솟아오른다.
지금 아쿠아 브레스도 버거워보이는 상황이니, 분명 이 공격은 먹히겠지.
물론 상대가 3성이니까 방심하진 않는다.
자체적으로 아쿠아 실드를 두른다.
4중 시전으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솟아오른 물기둥이 보랏빛으로 보이는 건 착각일까.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신제!"
ㅡ직감이 빠르게 끝내지 않으면 죽는다고, 그렇게 선언하고 있었다.
모든 물의 마력이 터져나간다.
비가 쏟아져 내린다.
폭류가 상대를 뒤덮는다.
이 물의 마력은 베어낼 수 없다.
말 그대로 '수해'.
거대한 물의 폭풍과 해일이 그녀에게 쏟아져 내린다.
2개의 메스같은 검이 계속해서 휘둘러지지만, 갈라지지 않는다.
아니, 갈라졌다가 다시 재생되길 반복한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가 지속적으로 나에게 물을 공급한다.
마력 회로가 아프다.
4개의 마법 사용을 강제로 중단하고, 필드와 수해를 만들어내는 수신제.
당연하지만 능력상 내 몸에 무리를 주는 능력이다.
스노우와 사이네를 만나고 깨진 퀘스트로 받은 스킬.
평범한 재능을 가진 마법소녀인 나에게는 이런 식으로 도핑하는 게 베스트라고, 시스템이 판단을 내린 게 아닐까.
그래야만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어쩐지 그렇게 선고받은 느낌이라 마음이 아프다.
"과연, 처음 보는 기술입니다."
"당연하지, 필살기는 아끼는 법이잖아?"
계속해서 밀려나며 그녀의 몸에 상처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단순한 물의 마력으로 밀어내는 게 아니라, 마력 피해를 지속적으로 입히는 능력이다.
물에 닿고 있으면 닿고 있을 수록 마력 피해는 커지고, 결국에는 쓰러지게 만드는 대마법.
막을 방법이 없다면, 이미 게임은 끝났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하겠습니다."
끼기긱.
그런 생각을 하며 비행하고 있을 때, 수상한 소리와 함께 소녀의 머리칼이 풀어진다.
그와 동시에 목 뒤편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보라색 문양.
그리고 잠시 후, 소녀의 머리카락들이 자동으로 뭉치기 시작한다.
"뭐...?"
"마법, 베어내겠습니다."
뭉친 머리카락 전체가 거대한 메스가 돼 해일을 두 동강낸다.
순간적으로 갈라지는 수해를 보며 눈을 크게 뜨는 나.
하지만 당황하는 건 순간. 이내 가만히 있으면 당할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억지로 마력을 끌어올린다.
"쿨럭."
아, 이거 글렀네.
마력 회로가 덜 회복돼있던 건지, 입에서 토혈이 튀어나온다.
체력이 퍼센트로 줄어드는 게 실시간으로 눈에 띈다.
그러는 사이 계속해서 해일을 서걱서걱 베어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이 다가온다.
저 메스같은 거에 베이면 아플까.
아프겠지.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가 담긴다.
창을 앞으로 세운다.
몸을 조금 숙인다.
어차피 마력 회로가 터져서 죽건 저거에 베여서 죽건 죽는 건 매한가지.
도망친다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닿지만, 이내 고개를 살짝 젓는다.
내가 물러날 곳이 언제 있었다고.
지금 내가 도망가는 순간, 내 도시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는다.
그럴 순 없다.
또다시 모두 잃을 순 없다.
"아쿠아 쓰러스트!"
죽음에게 다가간다.
물의 마력이 뒤따르듯 따라붙는다.
노리는 건, 상대가 해일을 베어내는 순간.
분명 막을 수 없는 그 순간을 노리고 찔러 들어간다.
인간이라면 반응할 수 없는 공격의 딜레이를 찌른다.
ㅡ그래, 인간이었으면 반응할 수 없었겠지.
서걱!
"컥...!"
"판단은 좋았습니다."
의식이 흐려진다.
그녀가 나를 스쳐지나간다.
보이는 건 다리가 검으로 변한 형태.
머리카락이 변했을 때, 예상했어야 할 가벼운 반격.
팔과 머리카락이 묶인 것을 보고 한 판단의 결과는 내 체력이 바닥을 기게 되는 것이었다.
아파.
마치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덜덜 떨린다.
체력 수치가 5% 이하로 떨어졌을 때 들려오는 비상 신호음이 귀에서 울려퍼진다.
죽는 건가.
당장 바로 옆에 있는 적이 나에게 검을 휘두르기만 해도 죽는 상황.
어째서인지 바로 검을 휘두르지 않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위험하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일어나려던 몸이 다시 풀썩 하고 쓰러진다.
므네를 땅에 꽂으며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그러자 이상한 걸 본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적.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내 목에 검을 슥하고 가져다대며 입을 열었다.
"죽고 싶은 겁니까? 어째서? 당신은 도망쳐도 됐을 텐데, 굳이 사서 죽음을 자처하는 겁니까? 이해할 수 없는 데이터입니다. 답변을 요구합니다."
"..."
인공 마족이라고 불린 그녀의 눈동자에는 그저 처음 보는 생물을 보는 듯한 혼란이 담겨 있었다.
약간의 호기심과 혼란.
나를 살린 건 리시안셔스에게 있는 그 감정이었다.
"하."
ㅡ아, 참을 수 없어.
ㅡ그렇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속삭임.
물의 마력이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창이 다시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마음은 평온하게.
감정은 뜨겁게.
무슨 소리냐고?
개소리다.
"답변을 요구하긴 얼어죽을 놈의."
"...죽어가는 사람치곤 허세가 가득한 말입니다."
"왜 도망가지 않냐고 물었지."
"네."
"너같으면 지킬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도망갈 수 있겠어?"
"지킬 사람...?"
수룡이 다시 솟아오른다.
아까 사용한 것보다 훨씬 큰 수룡이 그녀를 잡아먹을 듯 솟아오르자, 거대한 메스가 용을 가르기 위해 움직인다.
싹둑! 하고 기반이 잘리는 소리가 나지만, 곧바로 연결된 수원으로 인해 딜레이없이 복구된다.
그래, 원래 이런 기술이었지.
눈이 보랏빛으로 물드려는 걸 억지로 벗겨낸다.
ㅡ어째서 저항하지? 네가 원하던 힘이다.
"닥쳐."
너는 나한테 힘만 내놓으면 돼.
내 정신까지 침범하려 들지마.
보랏빛 기운이 파직. 하고 저항하듯 피어오르지만 씹어삼킨다.
억지로 복종하라는 것처럼 내 마력으로 찍어누르자, 계속해서 저항하다가 이내 수긍하듯 내 마력에 가만히 흡수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당신의 힘이 ★★★에 도달했습니다.]
[축하합니다! 'Rurie'는 더 이상 NPC가 아닙니다.]
[스킬 '수해'를 얻었습니다.]
"수해."
보랏빛과 푸른빛이 섞인 거대한 파도가 일어난다.
남은 체력은 2%.
저 마족이 죽든, 내가 죽든 거기서 승부가 나겠지.
그렇게 목숨을 건 도박이 시작됐다.
그 말에 반응해 방어 마법들을 펼친 건, 아마 본능이었으리라.
막아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모든 방어마법을 펼친다.
볼리션 오브 디펜스. 범위내 아군에 숫자에 따라 강대해지는 방어 스킬.
아쿠아 실드. 수원이 있을 때 강해지는 물 속성 방어 마법.
플레임 아머. 공격을 받았을 때 화염 데미지를 일으키며 데미지를 경감시키는 방어 스킬.
프로텍션. 한쪽 면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막아주는 자동 방어 스킬.
내가 익히고 있는 모든 방어 마법이 이중으로 중첩 발동된다.
그럼에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ㅡ저걸 맞으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막아내!]
그런 나에게 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자 안드로이드와 로봇들 전체가 몸을 부딪히거나 이상한 필드를 펼치며 주황빛 레이저포를 막아내는 광경.
무수히 겹친 녹색 필드가 깨져나가면서 점차적으로 화력을 약화시킨다.
약간 벌어진 시간.
이런 시간을 활용할 수 없으면, 나는 마법소녀가 아니다.
"별에게 소원을."
물론 사용하는 스킬이 그리 합리적이진 않지만.
[별에게 소원을 발동.]
[플레이어의 빛을 모집합니다.]
[당신의 요청에 플레이어 2598321명이 승인했습니다.]
[무작위 플레이어의 힘을 받습니다.]
[타이틀 '별무리의 마법소녀' 플레이어 '2Yuzm2i'의 힘을 받아들입니다.]
"...?"
순간 내 눈을 의심하지만, 타이틀은 변하지 않는다.
별무리의 마법소녀...?
[플레이어 '별무리의 마법소녀'가 '스타라이트 브레이커'를 발동합니다.]
"이런 식으로 잠깐 연결될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아무튼 잘 봐둬, 스노우. '별'은 굉장히 강하니까."
내 뒤로 내 마법진 10개가 마치 꽃처럼 개화한다.
내 마력을 사용해 발동하는 거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치로 응집되기 시작하는 10개의 마력.
마치 꽃망울이 하나하나 새겨지듯 응축되고 압축되던 마력은 이내 서서히 그 압축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모든 필드가 깨져나가고 주황빛 광선이 내 첫 방어 마법에 닿는다.
실드가 빠르게 파훼되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세 가지의 실드가 깨져나가고 남은 건 방어 마법이라기엔 연약한 갑옷 하나.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ㅡ더 이상 공격은 닿지 않는다.
"스타라이트 브레이커."
시동어를 읊는다.
그리고... 응축된 10개의 마력은 폭주하듯 일자의 형태로 주황 마력포를 꿰뚫으며 그대로 거대한 함선까지 쭉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 * *